2023/05/25

보강토 블록으로 만든 화단을 새로 쌓기

작년 말에 어느 건설업체가 우리집 근처에 있던 산을 택지로 만들기 위해 밀어버렸다. 그 건설업체(이하 건설업체2)는 우리집과 소송 중인 건설업체(이하 건설업체1)와는 달리, 비교적 매너도 좋았고 법적으로 문제가 될 일도 만들지 않았다.

건설업체2는 토목 작업에 방해가 되니 내가 만든 개비온을 잠시 해체했다가 다시 만들어주면 안 되냐고 제안했고, 나는 개비온은 웬만하면 그대로 두고 공사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업체에서는 알았다고 하고 토목공사를 진행했는데, 결국 공사 차량이 개비온을 들이받았고 토목공사가 끝난 뒤 업체에서 보강토 블록으로 화단을 두 개 만들어주었다. 원래는 개비온으로 똑같이 만들어주도록 업체에 요구했으나, 개비온을 만들어본 적이 없었던 업체 직원들은 개비온을 너무 못 만들었고(조경 쪽이 아니고 토목 쪽이라 개비온을 만들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보강토 블록으로 화단을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보강토 블록으로 만든 화단이 괜찮았다. 업체에서 개비온 해체해달라고 했을 때 순순히 해체해줄 걸 그랬나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일이 마무리되나 싶었는데, 어떤 놈이 화단을 들이받아 3단으로 된 화단 중 2단과 3단이 틀어졌다. 근처에서 전원주택을 짓는 또 다른 건설업체(건설업체3)의 대형 트럭이 공사현장에 진입하다가 화단을 들이받은 것 같았다. 나는 공사 현장에 찾아가서 건설업체3의 책임자에게 일의 경위를 물었다. 책임자는 내가 민원을 넣은 이후로 웬만하면 동쪽 출입로(내가 개비온을 만든 쪽 출입로)로 출입하지 않는데, 현장에 처음 온 사람들이 모르고 그 쪽으로 진입한 모양이라고 했다.

몇 년 전에 어머니가 토지사용승낙서에 서명을 잘못하는 바람에 마을 한복판에 길이 뚫렸고(사실 이것도 아버지가 서명하라고 해서 어머니가 모르고 서명했던 것이다), 몇 년이 지나서야 자초지종을 알게 된 내가 그걸 수습하느라고 토지의 명의를 바꾸고 경계 표시용 구조물을 설치한 것이다. 내가 시청에 민원을 넣어 알아본 결과, 원래 전원주택의 진입로는 서쪽 출입로로 허가를 받았는데 나의 토지를 관통하는 동쪽 출입로가 출입하기 편하니까 계속 동쪽 출입로로 출입했던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도로 자체를 막고 싶었으나 그것은 불법이기 때문에 승용차만 출입하고 대형 트럭은 서쪽 길로 우회하도록 구조물을 만들었고, 그것을 건설업체2에서 망가뜨려서 화단으로 받아냈는데, 그걸 건설업체3에서 들이받았던 것이다. 건설업체3의 책임자는 나의 민원 이후에 서쪽 출입로로 출입한다고 했고, 화단을 들이받은 이후 실제로 건설업체3의 공사 현장에 출입하는 차량들은 주로 서쪽 출입로로 출입하고 있다. 그래도 시청에 관련 민원을 한 번 더 넣을 것이다.

들이받은 놈을 잡아야 물어내라고 할 텐데 잡을 방법은 없었다. 비가 오기 전에 화단을 고쳐야 했다. 보강토 블록이라는 것이 대충 민다고 원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결국 2단과 3단을 모두 해체하고 다시 쌓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1단은 틀어지지 않고 말짱했다는 점이다. 1단까지 틀어졌으면 심은 나무를 완전히 들어내고, 그리드를 걷어내고, 수평을 다시 맞추어야 했을 것이다.

보강토 블록을 해체하고 다시 쌓은 날 미세먼지가 상당히 심했는데, 다른 날 일할 시간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미세먼지를 마시면서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보강토 블록이 너무 무거웠다. 30kg쯤 될 텐데 그렇게 힘이 안 들어갔다. 왜 그랬을까? 미세먼지가 너무 심해서 그랬나, 아니면 내가 나이를 먹어서 그랬나? 조립을 다 하고 집에 가서 확인해보니, 보강토 블록의 무게는 30kg이 아니라 60kg이었다. 어쩐지, 건설업체에서 화단을 만들어줄 때 보니까 보강토 하나 드는 데 러시아 사람 두 명이 붙더라.

건설업체2에서 화단을 만들어줄 때는 보강토 블록 빈 공간이나 연결 부위에 자갈을 넣지 않고 흙을 넣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특별히 문제가 생기지는 않겠지만, 아무래도 틈으로 흙이 새어나올 수밖에 없다. 나는 이번에 새로 쌓는 김에 아예 보강토 블록 빈 공간과 연결 부위를 자갈로 채워넣었다.

화단을 손댄 김에 두 번째 화단도 손을 댔다. 흙만 채워넣은 빈 화단이었는데, 모종삽으로 보강토 블록의 빈 공간과 연결 부위에서 흙을 파내고 자갈로 채워넣은 다음, 뒤란에 있는 나무를 뽑아서 심었다. 이렇게 화단 작업은 마무리되었다. 내가 해보니까 보강토 블록하고 골재하고 인부 두세 명만 있으면 화단 하나 정도는 대충 반나절 정도면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어머니는 내가 화단을 만드느라 몸이 아프다고 하니까 공부를 해야 하는 사람이 노동을 한다고 가슴이 아프다고 하셨다. 그런데 소나무를 가리키며 “저걸 어떻게 옮겨 심을 방법은 없을까?”라고 하셨다. 하긴, 어머니가 소나무를 옮겨 심을 수는 없겠지. 그러나 나도 몸이 아프니까 소나무를 옮겨 심는 일은 가을로 미루기로 했다.

(2023.03.25.)

2023/05/23

[참고 문헌] 형이상학 - 허구적 대상 (한국어 학위논문)

이종희 (2012), 「허구적 대상에 대한 추상적 실재론 연구: 밀주의에 기반한 혼합논제를 중심으로」, 서울대 철학과 박사학위논문.]

(2021.03.29.)

2023/05/21

학생 소모임 결성 중에 알게 된 것



과에서 학생 소모임을 지원한다고 해서 나도 소모임을 만들어보았다. 이름은 <경제사 및 경제철학 학술모임>이다. 내가 맨 처음에 지은 가칭은 <경제사・경제학사・경제철학・경제정책 모임>이었고, 이후에 구성원들끼리 합의하여 <경제사 및 경제철학 협동모임>이라고 이름을 정했는데, 심사 과정에서 <경제사 및 경제철학 학술모임>이라고 바뀌었다. <경제사 및 경제철학 협동모임>이라는 것 자체가 과학학과의 전신인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을 연상하게 하는 이름이라, <협동모임>을 <학술모임>으로 바꾼 것은 적당히 까불라는 일종의 메시지인 것 같았다. 적당한 선에서 까불기로 했다.

사실, 내가 원래 소모임을 결성하기로 할 때 절반쯤은 약탈적 소모임을 만들 생각이었다. 약탈적 학술지도 있는데 약탈적 소모임은 왜 안 되겠는가? 어차피 지원 금액이 소액이라 약탈해도 된다. 그런데 활동 계획 등을 다듬을수록 멀쩡한 소모임에 가까워졌다. 일단 계획서에 적은 활동 계획에는 (1) 경제학과 접점이 있는 연구 내용 또는 연구 자료 소개 (2) 경제학 연습 문제 풀이 (3) R 또는 파이썬 실습 (4) 기타 친목으로 구성된다. 원래 소모임 결성의 목표는 (4)였으나 (1)-(3)이 추가되었다. 역사를 보면 해적이 해군 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내가 과학학과에서 경제학을 접점으로 하는 소모임을 만들겠다고 할 때 아무도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내가 정말로 소모임 결성의 최소 인원인 네 명을 모으자 사람들이 다들 약간씩 신기해했다. 그게 안 될 줄 알았나 보다. 과학학과 대학원생은 대부분 이공계 출신이다. 인문대 출신이 약간 있고, 사회과학 쪽 출신은 매우 드물다. 과학정책 전공자들도 대부분은 이공계 출신이다. 여기서 어떻게 경제학을 접점으로 소모임을 만드냐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게 왜 안 될 거라고 생각했을까? 내가 볼 때 충분히 가능한데.

이 과정에서 내가 한 가지 알게 된 점이 있다. 내가 어떤 일을 하면서 느끼는 약간의 보람이나 기쁨의 정체가 일에 대한 성취감이라기보다는 남을 놀래킬 때의 기쁨에 가까운 것 같다는 것이다. 내가 마흔 코앞까지 오면서 이룬 성취라고는 석사학위 취득 말고는 거의 없다시피 하니, 사실상 성취감을 느낄 구석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어떤 일을 해냈을 때 약간의 기쁨이 있었던 것 같은데, 돌이켜 보면 그 중 상당 부분은 사람들의 기대나 예상과 어긋났다는 점과 관련되었던 것 같다. “이게 돼?”라는 반응이 “이게 되네?”라고 바뀌는 것이 재미있고 즐거운 것이다.

소모임 결성만 봐도 그렇다. 나를 포함해서 네 명 모으는 게 뭐가 어려운 일인가? 나는 대충 어떤 식으로 어떤 사람들을 모을지 대충 생각해두었기 때문에 소모임 결성이 그렇게 극적인 성공도 아니었다. 또한, 지원금이 푼돈이라서 경제적 이득도 미미하다. 이까짓 일에서 무슨 성취감을 느낄 것인가? 즐거움의 원천은 자신의 예상과 빗나간 일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다. 만일 사람들이 당연히 소모임이 결정될 것으로 예상했다면 소모임 결성으로 인한 재미나 즐거움은 반감되었을 것이다.

이는 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일을 할 때 지속가능하게 즐거움을 느끼려면, 사람들의 기대나 예측과 어긋날 정도로는 어렵지만 어렵지 않게 달성할 정도로 쉬운 일에 도전하면 될 것이다. 정말로 어려운 일에 도전할 경우, 실패하면 크게 실패해서 망할 수 있고(망하면 재미가 없다), 성공하더라도 투입하는 비용이나 노력이 너무 커서 재미가 없어질 것이다. 사람들이 일찍이 본 적이 없어서 안 될 것으로 예상하지만 실제로는 그리 큰 노력이 들지 않는 일에 계속 도전하는, 그런 얄팍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2023.03.21.)


2023/05/20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예언한 알라딘 독자 구매평 성지순례

졸업하게 해주세요. 교수되게 해주세요. 결혼하게 해주세요. ​ ​ ​ ​ ​ * 링크: [알라딘] 흰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소설 ( 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4322034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