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적에는 발상의 전환이랍시고 “이누이트(에스키모)한테 어떻게 냉장고를 팔 것이냐?”, “아프리카 열대 기후에 사는 사람들에게 난로를 어떻게 팔 것이냐?”를 묻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딴 게 무슨 발상의 전환인가? 아마도 그 당시는 한국이 개발도상국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두 가지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국은 연교차가 극단적인 곳이라서 여름에는 영상 40도 가까이 올라가고 겨울에는 영하 20도 가까이 내려간다. 한국인들은 겨울에는 냉장고를 안 쓰나? 베란다에 음식 저장하고 냉장고 전원을 끄나? 아니다. 한국인들은 여름에는 난로를 안 쓰나? 예전에 제습기가 없을 때는 장마철에 습기 제거한다고 가끔씩 보일러를 틀어놓았다. 이 두 가지를 다 경험해놓고는 이누이트한테 냉장고 파는 것이 퍽이나 발상의 전환인 것처럼 굴었던 것이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서 나는 웬만하면 밖에 안 나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 야외에 냉동식품을 보관한다고 치자. 아이스크림 하나 꺼내 먹으려고 문을 열고 밖을 나간다? 안 먹고 만다. 한국의 겨울 정도라면 그렇다고 치자. 북극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아이스크림 하나 먹으려고 오밤중에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다. 야생동물이라도 내려와서 뭘 먹고 있으면 어쩌려고? 여기에 하나 더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 냉장식품은 어떻게 먹느냐는 것이다. 우유 한 모금 마시려고 땡땡 언 우유를 가져와서 불을 피워서 녹여 먹겠는가, 아니면 냉장고 냉장실에 우유를 보관하겠는가? 그래서 이누이트에게 냉장고를 파는 것은 구매 의사와 관련된 발상의 전환의 문제가 아니라 구매력과 판매망의 문제다. 이누이트들의 주거 형태, 가족 구성, 소득 수준 등을 고려하면 1년에 몇 대를 구입할지 예측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누이트들에게 냉장고를 파는 일은 발상의 전환이 아니라 인센티브의 문제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아무리 20-30년 전에 한국이 개발도상국이고 인터넷도 잘 안 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누이트들에게 구매력만 있다면 냉장고를 구입할 의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팔 수 없는 것처럼 생각했던 것은 일종의 심리적인 요인이 작용해서였을 것이다. 해외 지사를 가야 하는데 북미 지사도 아니고 그린란드 쪽으로 가라고 하니 가고 싶겠는가? 유배도 아니고 생각만 해도 끔찍하니 무엇을 알아보아야 할지 자체도 생각하기 싫었을 것이다. 그런데 질문 형식을 이렇게 바꾸었다면 아마 20-30년 전의 한국인이라고 해도 훨씬 다른 답변을 내놓았을 것이다.
“아, 김 부장! 김 부장도 임원 한 번 해봐야 할 거 아냐? 그런데 지금으로써는 좀 어려운 거, 김 부장도 알지? 이번에 그린란드에 지사 하나 생기는데, 한 3년만 다녀오면 임원은 쉽게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그런데 에스키모한테 냉장고를 어떻게 팔 수 있을까? 김 부장 말고도 거기 가겠다는 사람이 꽤 있어.”
(2023.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