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과학학과 콜로키움에서는 문학 전공 선생님을 모시고 “근현대 한국 SF에 나타난 과학자의 상: 미친 과학자에서 메이커까지”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들었다. 내가 문학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으므로 강연을 듣고 대단한 감명을 받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치 있는 강연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콜로키움이 끝나고 개강 파티를 했다. 개강 파티에 강연자 선생님도 같이 참석했고, 강연자 선생님과 몇 마디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강연자 선생님이 오늘 강연 어떻게 들었냐고 나에게 물어서 나는 대충 다음과 같이 답했다. “한국 SF에 등장하는 과학자 유형을 제시하셔서 제가 빠진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았는데 제가 아는 게 다 그 유형 안에 있더라구요. 아무리 생각해도 거기에 포함되지 않는 유형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으니 문학 전공자들한테 까불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답변을 듣고 강연자 선생님은 환한 표정으로 소리 내며 웃으면서 답했다. “철학하는 사람들은 다 비슷한가 봐요. 우리 남편도 철학하거든요? analytic한 philosophy를 하는데 우리 남편도 똑같이 말해요. ‘어쩜 문학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아무 근거 없이 말하냐?’ 그래요.” 강연자 선생님은 내가 까불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에서 근거 없이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까불었다고 추측한 모양이다. 사실, 맞다.
문학 전공자 선생님의 남편이 분석철학 전공이라니. 문학 하는 사람들은 왜 아무 근거 없이 말하느냐고 대놓고 하면서도 문학 전공자와 연애하고 결혼하고, 또 결혼 생활을 오랜 기간 지속하는 것을 보면, 역시나 사랑에는 근거가 필요 없는 것인가?
생각해보면, 전 지도교수님도 전공은 과학철학인데 사모님은 영문과 교수였다. 전 지도교수님의 정년퇴임 때 다른 선생님께 들은 바에 근거하여 추측해보자면, 아무래도 두 분은 서로의 연구에 대해 거의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러든 말든, 나는 두 분이 통화하는 것을 우연히 들은 적이 있는데(면담 중이고 전 지도교수님이 사모님의 전화를 받아 잠시 통화했다), 노부부인데도 서로 존대말을 했고 꽤나 다정하게 대화하셨다.
내가 아는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서도, 배우자가 어떤 전공이고 어떤 연구를 하는지는 부부 생활에 거의 영향을 안 미치는 것 같았다. 나와 학부를 같이 다닌 사람 중에 남편이 대학원을 다니거나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이 두 명인데, 둘 다 남편이 뭘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자기 남편이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는 것 또는 학위를 취득했다는 것 말고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그게 결혼 생활에 무슨 관계이겠는가? 두 부부 모두 잘 사는 것으로 알고 있다.
(2022.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