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11

[경제학의 철학] Grüne-Yanoff and Verreault-Julien (2021), “How-possibly explanations in economics: anything goes?” 요약 정리

     

[ Till Grüne-Yanoff and Philippe Verreault-Julien (2021), “How-possibly explanations in economics: anything goes?”, Journal of Economic Methodology, 28(1): 114-123. ]

  

  

  1. Introduction

  2. Anything goes?

  3. Epistemically possible HPEs: Krugman on trade and geography

  4. Objectively possible HPEs

     : Axelrod et al. on social networks and cooperation

  5. Conclusion

  

  

  1. Introduction


114-115

- 많은 방법론자들은 모형이 어떠한 인식적 가치를 가지려면 실제 현상에 관한 설명을 제공해야만 한다고 주장함.

• 모형들이 실제 현상을 설명하지도 않고 예측하지도 않는다고 믿을 좋은 이유가 있음.

• 이는 많은 경제 모형제작이 인식적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는 비관적인 평가로 이끎.

- 많은 저자들은 많은 과학적 모형제작은 how-actually explanations(HAEs)가 아니라 how-possibly explanations(HPEs)를 목표로 한다고 주장함.

- HPEs의 인식적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2. Anything goes?


115

- 경제학이 HAEs가 아닌 HPEs를 제공한다는 기술적인 주장이 제기하는 방법론적 우려

• 왜 우리는 HPEs가 인식적으로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믿어야 하는가?

- HPEs가 인식적으로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하는 문헌들 


115-116

- HPEs는 가능한 설명(possible explanations)

• HPEs는 어떤 현상의 가능한 원인이 무엇인지 보여줌.

- HPEs를 평가하는 기준?

• 좋은 HPEs는 참인 HPEs이고, HPEs는 참이거나 거짓.

• 참과 거짓은 HPEs를 평가하는 거친 방법인데 문헌들에서 간과되었음.

- 저자들: 모든 거짓인 HPEs이 나쁘다면, 참인 HPEs이 모두 동등하게 좋은 것도 아님.

• 다른 가능성 주장들(possibility claims)은 다른 진리조건을 가질 것임.

• 가능성 연산자(possibility operator)(◇)는 복수의 해석을 가질 수 있음.

• 경제학자들은 경제학적으로 가능한 것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가짐.

  (주어진 시스템에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원인은 무엇인가)

• 그러나 가능성 주장은 단순히 논리적이거나 개념적인 가능성일 수 있음.

• 그래서 같은 주장이 어떤 양상 연산자에서는 참이고 다른 양상 연산자에서는 거짓.

 

116

- 양상 연산자의 해석과 관련된 중요한 구분 → 이는 HPEs의 진리조건과 관련됨.

• 어떤 HPEs는 인식적으로 가능한 반면, 다른 HPEs는 객관적으로 가능함.

- 인식적 가능성은 세계의 실제 상태에 관한 지식에 의존함.

• 어떤 명제가 무엇이 실제로 일어났는지에 대한 행위자의 지식에 의해 배제되지 않는다면, 그 명제는 인식적으로 가능함.

- 인식적으로 가능한 HPEs(EpHPEs)는 HAEs로 가는 인식적 진전을 구성함.

- 우리는 ‘왜 p인가?’를 아는 데 관심을 가짐.

• 우리가 무엇이 그러한 설명인지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잠재적 후보 c를 고안하고 어떤 후보가 인식적으로 가능한지 결정하기 위해 지식을 사용할 것임.

• 실제로 일어난 것에 관한 지식이 후보에 대한 인식적 가능성을 배제한다면, 우리는 다른 후보를 찾아야만 함.

• 그러한 후보가 가능하다면, 우리는 그것이 실제로 참인지에 대한 증거를 찾을 것.

• 어떤 EpHPEs가 단지 가능한 것이 아니라 실제 일어났다는 것은, 해당 현상의 HAE를 산출하고 대안 EpHPEs를 쓸모없는 것으로 만듦.


116

- 때때로 우리는 ‘왜 P인가?’를 묻지 않고 ‘왜 p가 가능하지 않은가’와 ‘왜 p가 필연적인가?’를 물음.

•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실제로 가능한 것 이상의 정보가 필요함.

• 실제로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가능한 것은 무엇인가?

• 그래서, 인식적으로 가능한 것 대신 객관적으로 가능한 HPEs(ObHPEs)가 필요함.

- 객관적 가능성은, 인식적 가능성과 대조적으로, 실제 세계의 것들과 어느 정도 독립적임.

- 그러므로, ObHPEs는 실제에 대한 우리의 지식의 부분들과 비-일관적일 것임.

• 예) 주거지 분리에 관한 체크판 모형은 가능한 요소를 식별하여 불가능성 주장을 반박함. 이는 그러한 요소가 실제 세계에서 작동하는지 여부와 독립적임.

- ObHPEs를 평가하는 데 특히 중요한 것은 질문에 대한 양상성의 유관성

• 과학자에게 세계가 물리적으로 또는 경제적으로 가능한 방식은 논리적 또는 형이상학적 가능성보다 더 흥미로움.

• ObHPEs는 어떤 해석(e.g. 논리적 가능성)에서는 참이고 다른 해석(e.g. 물리적 가능성)에서는 거짓일 것.

- EpHPEs는 특히 경제학에서 중요한데, 이는 우리가 증거에 의해 배제되지 않는 가능한 설명을 원하기 때문임.

• EpHPEs는 설명을 ‘메뉴’에 추가하고 IBE에 대한 후보를 제공함.

• ObHPEs는 사태들(states of affairs)의 필연성이나 우연성을 우리에게 알려줌.

- 주어진 맥락에서 ‘가능한’의 적절한 개념이 무엇인지 일단 우리가 해석하면, 우리는 가능성 주장에 관한 진리 조건들을 제공할 수 있음.

• 반대로, 이는 HPEs에 대한 인식적 기여를 평가하는 것을 허용함.

- 이는 다음 두 절에서 설명할 것

 


  3. Epistemically possible HPEs: Krugman on trade and geography


116-117

- 1970년대 이전까지 무역의 패턴은 비교 우위로 설명됨.

• 20세기 중반 이후 달라진 무역 패턴을 설명하는 데 실패함.

• 비슷한 기술이나 부존 자원을 가진 국가들의 무역 패턴

- 새로운 설명은, 규모의 경제가 무역 패턴의 핵심 동인이라는 크루그먼의 모형

• 2008년 크루그먼은 이 모형을 통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함.

• 노벨상 위원회에서는 해당 모형의 예측적 함축에 관한 경험적 시험이 ‘혼합된 결과를 보여주었다’고 함.

• 모형의 설명이 실제 무역 패턴에 관한 것인지에 대하여 상당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있다는 것.

• 그러므로, 크루그먼은 HAE에 대한 상을 받은 것이 아님.

- 크루그먼의 모형은 EpHPEs를 제공함.

• 국가들 간의 생산성 차이가 없을 때도 어떻게 무역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실제 무역 패턴을 설명한다고 주장함.

• 수확 체증과 불완전 경쟁은 아마도 무역 패턴들을 설명했을 것.

• 모형 결과는 데이터와 일치했고, 경험적 증거는 이러한 두 요소가 무역 패턴들을 산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음.


117-118

- 그러나 어떤 현상을 설명하는 모든 모형이 성공한 EpHPEs인 것은 아니며, 적어도 두 가지 이유에서 EpHPEs를 제공하는 데 실패할 수 있음.

- 이유(1): 모형은 실제로 참이 아닌 것으로 알려진 설명항에 호소하여 어떤 현상을 설명함.

• 대부분의 모형은 한때 EpHPEs를 제공하다가 증거가 축적되면서 설명항이 참이 아니었음이 밝혀짐.

- 이유(2): 모형의 가능한 후보 설명항은 설명적 질문(explanatory question)이 묻는 차이점을 함축하지 않기 때문에, 모형은 EpHPEs를 제공하는 데 실패할 수 있음.

• 즉, 설명항이 피-설명항의 차이를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없기 때문에, 현재 지식을 고려한다면 설명항 자체는 가능하더라도 설명은 가능하지 않음.

- 크루그먼의 지리학적 경제학(GE)의 경우

• 생산 요소의 위치를 내생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중심-주변(CP) 모형

• 비판가들은 그 모형이 특정한 집합체를 설명하는 데 실패한다고 주장함. 설명적 부담은 통합적 메커니즘만 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구체적인 것들’도 지기 때문.

• 즉, 크루그먼이 제공한 후보 설명항들은, 비록 인식적으로 가능하더라도, 설명될 차이점을 산출할 수 있는 요소들을 식별하는 데 부족하다는 것.

- 그래서 우리는 GE에 반대하는 반응을, 규모의 경제와 수송 비용만으로 어떤 위치 현상에 대한 EpHPEs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이해할 수 있음.

• GE는 흥미롭고 유관한 요소들을 식별할 수 있으나, 실재는 더 복잡하고 그러한 요소들은 경제 지리학자들이 대체로 관심이 있는 종류의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

• 즉, 크루그먼의 CP 모형은, ‘CP가 p를 설명한다’는 주장이 인식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의미에서, 특정한 현상 p에 대한 거짓 EpHPEs를 제공한다는 것. 왜냐하면 다른 원인들이 p에 기여하지만 CP에서는 그러한 원인이 없기 때문.

- 마르키오니: GE의 주된 목표는, 왜 분산되는 대신 경제적 활동의 집합체가 있느냐는 것이며, 경제적 활동의 집합체가 어떤 곳에 있고 다른 곳에 없느냐를 설명하는 것이 아님.

• 그래서 CP는 전자의 피-설명항에 대한 성공한 EpHPEs를 제공하고 후자의 피-설명항에 대한 실패한 HPEs를 제공한다는 것.

- 어쨌든, EpHPEs 개념은 경제학에서 모형제작 논쟁을 평가하는 데 추가적인 개념적 자원을 제공함.



  4. Objectively possible HPEs

     : Axelrod et al. on social networks and cooperation


118

- 진화적 게임이론 모형은, 협력 행위의 진화를 죄수의 딜레마(PD)가 독립적으로 반복되는 개체군에서 전략들의 보수-의존적 복제로 모형화한 것.

• 이러한 모형제작 전략은 상당한 추상화와 이상화를 포함함.

• 그럴법한 초기 가정들로부터 안정적 협력 균형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보여줌으로써, 비-친족 기반의 메커니즘을 협력의 진화의 진정한 객관적 가능성으로 수립하게 함.

- 이러한 모형들은 반-사실적 가정을 하며, 이는 실제 세계에 관해 알려진 것과 직접적으로 반대되는 것.

• 이러한 모형들은 근사화나 추적가능한 가정으로 정당화될 수 없고 그 대신 설명항이나 피-설명항을 표상한다는 의미에서 본질적임.

- 이는 이러한 모형들이 EpHPEs를 제공하지 않고 그 대신 ObHPEs으로서 중요한 인식적 기능을 함을 가리킴.


118

- 사례: Axelrod et al. (2002)

• 행위자 기반 모형에서 다른 네트워크 구조에서의 개체군의 행동을 시뮬레이션함.

- 집단들은 

• (i) 각 라운드에서 무작위로 짝지어지거나,

• (ii) 전체 시뮬레이션에서 고정된 위치에 고정된 이웃들이 할당되거나,

• (iii) 시뮬레이션의 초기에 무작위로 짝지어지지만 그 짝이 모든 라운드에서 유지됨.

- 저자들은 개체군들이 (ii)에서처럼 (iii)에서 행동하고 둘 다 (i)보다 낫게 행동함을 발견함.

- 결론: 지리학적 뭉치기(clustering)는 사회적 협력에 필수가 아님.


118-119

- 여기서 저자들은 두 측면에 주목함.

- 측면(1): 저자들이 논문을 쓸 때, 실제 인간은 안정적인 랜덤 네트워크에 참여하지 않았음.

• 당시에는 지금 같은 SNS가 없었고, 저자들이 이를 예측했지만 실제로는 없었음.

• 그래서 이는 실제 현상의 설명항으로 역할을 할 수 없었고, 안정적인 랜덤 네트워크가 절대로 발생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는 ObHPEs를 덜 성공적인 것으로 만들지 못함.

- 측면(2): 저자들은 양상적 결론을 이끌어냄. 그러한 네트워크는 뭉쳐진 네트워크(clustered network)만큼이나 협력을 지지할 수 있음.

• 이러한 가능성은 중요함. 그런데 어떤 종류의 가능성인가?


119

- 엑셀로드 등의 모형은 그 당시 주어진 지식을 고려할 때 인식적으로 가능했던 후보 설명항을 제공하지 않으며, 그보다는 반-사실적 설명항도 협력을 산출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함.

• 협력에 관한 이전의 연구는 뭉쳐진 네트워크에 초점을 맞추었고 그러한 네트워크가 협력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가정함.

• 저자들의 목적은 이러한 암묵적인 필연성 주장에 반대하는 것.

- 엑셀로드 등의 모형은 하나 이상의 인식적 기능을 하지만, 반-사실적 가능성을 표상하는 모든 모형이 그러는 것은 아님.

• 그러한 실패의 이유는 양상적 주장의 정당화에 있을 것임.

• 어떠한 가능성을 알 필요가 없을 때 모형은 ObHPE로서 실용적으로 실패함.

• 예) 어떠한 가능성에 반대되는 필연성 주장이 심각하게 고려되지 않거나, 또는 모형이 보여준 가능성은 그러한 필연성 주장의 양상적 범위 밖에 있음.


119

- 사례: Arrow and Debreu (1954)

- 견해(1): 이러한 일반 균형 모형제작은 그것이 전적으로 ‘형식적’이라는 것.

• 모형이 참인 ObHPEs를 제공하고 이는 유관한 양상성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것.

• 그러한 일반 균형이 수학적으로 가능한 것은 경제학의 인식적 목표와 무관함.

• 블로흐(Blaug): 일반 균형에 관한 경제학적 문제는 가상 경제에 관한 수학적 문제로 변환되어 왔으며, 이는 경제학적 작업의 표준이 아닌 수학적 작업의 표준으로 해결됨.

- 그러므로, 핵심 쟁점은 양상 연산자에 관한 해석과 관련됨.

• 블로흐 등의 비판은 특정한 양상 연산자의 유관성에 관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음.

- 견해(2): 완전경쟁 경제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여전히 유관한 가능 세계를 묘사함.(Hands 2016)

• “실제 완전경쟁 경제는 존재한 적 없고 존재하지 않을 경제이다. 이는 독점과 과점이 없고, 정부에 의한 생산이 없는 [...] 가설적인 경제이다. [...] 그러나 이는 가능한 세계이다. 이는 어떤 논리 법칙이나 자연 법칙을 위한하지 않고, 실제 시장경제의 몇몇 분야는 이를 근사하기도 한다.”

• 즉, 완전경쟁 경제는 인식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객관적으로 가능함.

- 일반 균형 모형이 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가능한 세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설명하는 것.

• 핸즈에 따르면, 많은 가정들은 ‘경제학적 해석’을 가지므로 그러한 모형은 순수 수학에서의 연습문제가 아니라는 것.


119-120

- 두 입장은 모형들이 객관적 가능성에 대하여 참인 주장을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한 쪽에서는 그것이 단지 수학적 가능성이라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물리적 (또는 경제적) 가능성보다 더 강한 어떤 것이라고 함.

- 이는 두 가지 잠재적인 주장을 제안함.

- 제안(1): 경제학이 찾아야 하는 것이 어떤 종류의 양상적 주장인가에 대한 것

• 수학적 가능성에 관한 주장이 경제학에 유관할 수 있는가?

- 제안(2): 일반 균형 모형이 지지하는 주장의 종류에 관한 것.

• 모형은 수학적 가능성 또는 경제학적 가능성을 주장하는가?

- 이 논문의 목표는 ObHPEs의 개념이 어떻게 불일치의 본성을 보여주고 규범적인 평가를 도울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



  5. Conclusion


120

모형제작 실행을 HPEs을 제공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원리적으로는, 좋은 실행이 HAEs를 제공하는 것이라는 요건으로부터 인식적 가치를 구제하는 것.

그러나 이는 경제학자들을 그들이 원하는 이야기나 만드는 사람으로 만듦.

‘나쁜’ HPEs로부터 ‘좋은’ HPEs를 구분하는 기준이 있다는 것은 오도된 것.

- 핵심 구분을 만드는 개념 틀: HAEs와 HPEs의 구분, EpHPEs와 ObHPEs의 구분

이러한 틀은 경제 모형제작 실행의 폭넓은 인식적 평가를 허용함.



(2021.03.17.)

     

2022/02/10

[외국 가요] 도니 해서웨이 (Donny Hathaway)



Donny Hathaway - A Song For You

( www.youtube.com/watch?v=riwePTnk-Zk )

Donny Hathaway - I Love You More Than You’ll Ever Know

( www.youtube.com/watch?v=IIegNRlNAi8 )

Donny Hathaway - Giving Up

( www.youtube.com/watch?v=80rngc_jY1o )

(2022.02.10.)


학부 수업에서의 상도덕



내가 학부 때 들었던 수업을 돌이켜 보자면, 냉정하게 말해서, 대체로 별로였다. 선생님들이 너무 못 가르쳤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대학원에서 만난 학부 선배는 단 둘이 있을 때 나에게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아, 우리 학교(학부) 선생님들은 어쩌면 그렇게 하나 같이 못 가르쳤냐?”

내가 학부에 입학한 것이 2004년이므로 학부 시절 이야기라고 해봐야 그저 옛날 이야기일 뿐이기는 한데, 하여간 요즈음 학부생들이 들으면 아마도 놀라울 것이다. 일단, 중간고사는 기본으로 안 본다. 요약문이나 비평문도 절대로 안 쓴다. 기말고사를 보면 기말보고서를 안 쓰고, 기말보고서를 쓰면 기말고사를 안 본다. 수업 자료를 따로 만드는 것도 아니다. 수업 자료 없이 수업하면서 말을 잘 하는 것도 아니다. 이 정도만 했으면 내가 욕을 안 했다. 한 학기의 절반을 학생들 발표로 때운 수업도 여럿이었다. 어떤 교수는 사실상 한 학기 내내 잡담이나 해서 실질적으로는 두세 주 정도만 수업했다. 그런데 이게 모두 철학과 전공 수업의 이야기이다. 동양철학 전공 수업은 상황이 더 안 좋았고, 교양 수업은 그보다도 상황이 안 좋았다.

물론, 이게 온전히 선생님들만의 잘못은 아니었을 것이다. 강사료가 적으니 강사 선생님들은 학교를 옮겨 다니며 강의를 여러 개 해야 했을 것이고, 수강생도 많으니 일일이 지도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20년 전인 그 때는 한국 대학들의 수준도 낮았고 학생들의 수준도 낮았고 여러 기준도 낮았으니까, 당시로서는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못 가르치는 주제에 학생들보고 못 한다면서 야단치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들었던 <사회학개론> 수업에서는 강사가 중간고사 기간까지 대충 강의하더니 중간고사 이후부터는 사회학의 연구방법론을 가지고 조사해서 발표하라고 했다. 이게 무슨 <철학개론> 수업 듣고 철학 논문 발표하는 소리냐 싶겠지만, 해당 강사는 정말로 그렇게 시켰고, 당연히 정상적인 발표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개론 수업을 다 듣지도 않은 학부생들이 현장연구를 하겠는가, 통계조사를 하겠는가? 그런데 발표 시간마다 강사는 학생들을 야단쳤다. 학생들이 비판적 사고능력이 떨어지네, 분석능력이 떨어지네, 요새 학생들은 책을 안 읽네 등등. 뭘 가르쳐 준 다음에 시키든지 말든지 해야지, 이게 대학인가, 한국 육군인가?

사회학과 강사는 심지어 이런 말도 했었다. 정확히 이렇게 말한 것은 아니지만 대략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젊은 사람들이 첨단 기기를 잘 다루니까 나이 든 사람들이 긴장해야 한다고 하는데, 저는 그런 말을 믿지 않습니다. 저희 세대는 여러분보다 기계는 못 다루더라도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책을 안 읽잖아요. 그걸 어떻게 아느냐구요? 중요한 건 비판적 사고인데 그건 기계를 잘 다룬다고 나오는 게 아니라 책을 읽어야 나오는 거거든요.”

미친 놈이 수업이나 똑바로 하지, 놀고 자빠졌네, 하는 반응이 나올 만한 발언인데, 실제로 해당 강사는 이런 식으로 말했다. 수업 개판 치는 것도 모자라 이렇게 뻔뻔하기까지 했다.

철학과의 어떤 전공 수업에서는 강사가 중간고사 기간 전까지 설렁설렁 강의하다가 중간고사 이후부터 종강 때까지 학생들보고 원서를 번역해와서 발표하게 했다. 당연히는 아니지만 나를 포함하여 몇 사람은 잘 못 했고 해당 수업의 강사는 발제 준비를 어떻게 한 것이냐고 야단쳤다. 야단치더라도 쥐뿔이나 뭘 제대로 가르쳐놓기나 하고 야단쳐야 하는 것 아닌가?

철학과의 다른 전공 수업에서는 강사가 수업 중에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고 수업 시작하자마자 대뜸 학생들보고 질문하라고 했다. 아무도 질문하지 않으면 “책을 읽었으면 당연히 질문이 생겨야 하는데 왜 질문이 없느냐?”고 다그쳤다. 읽어오라는 것은 있었으나 제대로 설명하지도 않고 곧바로 질의응답 및 토론으로 넘어갔으니, 질문이랍시고 나오는 건 당연히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소리이었고, 토론이라고 이어지는 것은 개소리 퍼레이드였다. 수업을 그 따위로 하려면 혼자서 책을 보지 뭐 하러 수업을 듣나? 실제로, 나는 철학과 대학원 입학 준비를 독학으로 했다.

그러한 교수나 강사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적어도 크립키처럼 어디서 배우지 않고도 물체의 연장성 개념을 네 살 때 알았을 것 같지는 않다. 어떻게든 누군가에게는 배웠을 것이고, 설사 혼자서 터득했다고 해도 단박에 알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고 시행착오를 거쳤을 것이다. 그러면 그러한 것들을 학생한테 가르쳐야지, 아무 것도 안 가르치고는 학생들에게 왜 못 하느냐고 닦달하면 되겠는가, 안 되겠는가?

옛날 사람들은 미개한 시절에 태어나고 자랐으니 어쩔 수 없다고 치자.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요즈음 대학생들이 도서관에 가네 안 가네 하는 이야기를 하며 제대로 가르치지도 않고 학생 수준이나 탓하는 강사들이 요새도 있다는 것이다. 도서관에 가기만 하면 답이 저절로 나오나? 도서관에 가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야 답이 나온다. 책을 찾으면 어떤 책을 찾을지, 논문을 찾으면 어떤 논문을 찾을지, 찾아서 어떻게 할지 알아야 그 자료를 쓸 것 아닌가? 그런데 그와 관련된 것을 하나도 안 가르쳐놓고 학생들이 도서관에 안 간다고 채근한다. 대학원생도 학위 논문 계획할 때 막막하다고 하는 판인데, 학부생보고 제대로 가르쳐준 것도 없이 왜 도서관에 안 가느냐고 야단친다. 거듭 말하지만, 이게 대학인가, 한국 육군인가? 자기가 할 일을 알아서 찾으면 그게 주임 원사지 이등병이겠는가?

학생들이 질문을 안 한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뭘 알아야 질문할 것 아닌가? 어리석은 질문 같은 것은 없다고 말을 하지만, 그건 수업 분위기 유지하려고 그냥 하는 말이고, 좋은 질문과 어리석은 질문은 대체로 어렵지 않게 구분된다. 학부 수업의 질문이라는 것은 어린 아이가 처음 보는 것을 가리키며 “엄마, 저게 뭐예요?”라고 묻는 것이 아니다. 유의미한 질문은 강의 내용과 관련 자료와 유관한 질문이고, 이는 자료에 대한 이해와 분석이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 학생들은 왜 좋은 질문을 안 하는가? 학생들에게 지적인 자극을 줄 만한 내용이 수업에 없어서가 아니라 정말로 학생들의 근성이 썩어빠져서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단지 교수나 강사의 눈에 들기 위해 하나도 안 궁금한데 궁금한 척하며 무작정 질문이나 많이 하는 학생도 실제로 있다는 사실을 정말 모르는가?

과제도 마찬가지다. 한국 대학 중에 글쓰기를 제대로 가르치는 곳은 몇 군데 없다. 강의하는 학교 상태나 학생들 상태를 보면 글쓰기의 기초적인 부분을 수업에서 언급해야 하는지, 안 해도 되는지 견적이 나올 것이다. 학생들 상태가 썩 좋은 것 같지도 않은데 냅다 과제라고 내주면, 당연히 학생들은 못 해온다. 어쩌면 해당 학생들은 어느 수업에서도 정상적으로 배운 적이 없을 수도 있고, 필요한 부분을 가르쳐줄 만한 똑똑한 선배가 학과에 단 한 명도 없을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과제 가이드 라인을 알려주기 전에 글쓰기 가이드 라인을 알려주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과제 가이드 라인도 분명치 않은데 과제를 자유롭게 창의적으로 하라고나 하면 학생들은 천편일률적으로 못할 것이다. 이래놓고 학생들이 썩었다고 하면 되겠는가, 안 되겠는가?

내가 대학원 다니면서 학부 수업 청강을 해보았는데, (똑똑한 학생들만 뽑았으니까) 분명히 학생들이 다들 똑똑한데도 그런 학생들을 두고도 선생님들은 항상 가이드 라인을 명확하고 자세하게 제시했으며, 조교를 통해서 하든 선생님이 직접 하든 어떤 방식으로든 적절한 피드백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렇게 똑똑하지도 않은 학생들을 모아놓고 대강 가르치는 사람들이 가이드 라인이랍시고 하나마나한 소리나 하면서, 학생들 수준이 어떠네, 근성이 어떠네, 책을 안 읽네, 유튜브를 많이 보네, 대학생 답지 않네 하며, 학생들이 낮은 성과를 죄다 학생 책임으로 뒤집어씌워도 되는 것인가? 이건 교육자의 윤리를 떠나서 상도덕의 문제이다. 교육 봉사로 하는 일이라면 모르겠으나, 적은 액수라도 어쨌든 돈을 받고 하는 일이라면 그런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 사실, 교육 봉사라도 그딴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2021.12.10.)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예언한 알라딘 독자 구매평 성지순례

졸업하게 해주세요. 교수되게 해주세요. 결혼하게 해주세요. ​ ​ ​ ​ ​ * 링크: [알라딘] 흰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소설 ( 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4322034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