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16

[과학철학] Chang (2004), “Introduction” in Inventing Temperature 요약 정리 (미완성)

      

[ 장하석, 「서문」, 『온도계의 철학: 측정 그리고 과학의 진보』, 오철우 옮김 (동아시아, 2013), 27-34쪽.
  Hasok Chang (2004), Inventing Temperature: Measurement and Scientific Progress (Oxford University Press), pp. 3-7. ]
  
  
[p. 3, 27쪽]
이 책을 통해 “상보적 과학”(complementary science)의 사례를 보여주고자 함.
전문가적 과학에서는 묻고 비평하는 일에서 벗어나 있어서 어느 정도 둑단주의가 뒤따르기 마련이고 결과적으로 지식의 소실로 귀결될 수 있음.
과학사와 과학철학이 상호적인 방식을 취할 때 이러한 상황을 개선할 수 있음.

[pp. 3-4, 27-28쪽]
- 우리가 쉽게 믿는 과학의 많은 결과는 사실 매우 비범한 주장들임.
- 영민하고 지적인 500년 전의 자연 관찰자들이 다음과 같은 명제를 믿기 얼마나 어려웠을지 생각해볼 것
• 지구는 매우 오래되어 나이가 40억 년을 훨씬 넘겼다.
• 지구는 거의 진공인 우주공간에 존재하며 태양 둘레를 공전한다.
• 모든 물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분자와 원자와 이루어져 있다.
“서구” 문명에 순응하며 사는 오늘날 교육받은 많은 대중들은 주저 없이 이러한 명제 대부분에 동의하고, 자신의 아들딸에게도 그것들을 자신 있게 가르칠 것이며, 또 일부 무지한 사람이 이런 진리에 의문을 품으면 화를 낼 것임.
그렇지만 이런 과학적 상식을 믿는 이유를 말해달라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은 설득력 있는 주장을 제시하지 못할 것임.
이는 묻지 않은 믿음이 진정한 이해인 것처럼 여겨져왔음을 보여주는 것

[p. 4, 28-29쪽]
- 열의 형이상학적 성격에 관한 논쟁을 되짚어보는 대신에, 대체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여기면서 동시에 열에 관한 모든 경험적 연구의 근본이 되는 기초적 난제인 온도 측정법(thermometry)를 살펴볼 것임.
• 우리가 쓰는 온도계가 온도를 정확히 알려준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 온도계들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면?
• 온도계 자체가 제시하는 온도 기록에 대한 순환적 신뢰(circular reliance) 없이 온도계 안의 유체가 온도 상승에 따라 정확하게 팽창하는지를 어떻게 시험할 수 있는가?
• 온도계가 없었던 시절의 사람들은 언제나 같은 온도에서 물이 끓거나 얼음이 녹는다는 것을, 그래서 이런 현상이 온도계의 눈금을 매기는 데 쓸 “고정점”(fixed points)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어떻게 알았을까?
• 당시에 알려진 모든 온도계를 물리적으로 망가뜨리고 극도의 뜨거움과 차가움에서, 어떻게 새로운 온도 표준을 정립하고 입증했을까?
• 온도 측정의 실천(practice)을 뒷받침해주는 믿을 만한 이론은 있었는가? 그런 이론이 있었다면, 잘 정립된 온도 측정법이 없는 상황에서 이런 이론들을 경험적으로 검증하는 것을 어떻게 가능했는가?
 

5-, 31-



(2021.10.10.)
    

2021/09/15

[한국 가요] 김장훈 (Kim Jang Hoon)

김장훈 - 나와 같다면

www.youtube.com/watch?v=LoJ6HZ8eqb0 )


김장훈 - 노래만 불렀지

www.youtube.com/watch?v=BdN3iBWi_VI )


김장훈 - 노래만 불렀지 [EBS 스페이스 공감]

www.youtube.com/watch?v=LReK4Lr5osE )


김장훈 - 바보 [EBS 스페이스 공감]

www.youtube.com/watch?v=wR6PNREOU6A )


김장훈 - 난 남자다

www.youtube.com/watch?v=D91l3EWsHy8 )


김장훈 - 오페라

www.youtube.com/watch?v=ANRcs1XxGDM )


김장훈 - 혼잣말

www.youtube.com/watch?v=zOA4N3cX9rg )


김장훈 - 반지

www.youtube.com/watch?v=kFMnajryLCQ )


김장훈 - 우리 기쁜날

www.youtube.com/watch?v=1xZGs2NOVSg )


김장훈 - What are You?

www.youtube.com/watch?v=4pm305bkzzM )



(2023.02.19.)


고등학교 과학신문 동아리의 강의 요청



며칠 전 내가 다니는 학교의 평생교육원에서 강사 요청과 관련하여 연락이 왔다. 담당자는 어떤 고등학교에서 강연 요청이 들어왔는데 적당한 사람이 없는 것 같아서 강사들의 이력서를 살펴보다가 내가 그나마 제일 적합할 것 같아서 연락했다고 했다. 도대체 무슨 강연이길래 적합한 사람이 그렇게 드물었을까? 어느 고등학교의 과학신문 동아리에서 미래의 과학기사는 어떻게 달라질지에 대한 강연을 해줄 수 있느냐고 문의했다고 전했다.

아르바이트를 할지 말지를 판단하는 데는 3초도 걸리지 않았다. 사기를 쳐도 어느 정도는 사실에 근거해서 쳐야 하는데, 이건 근거할 사실이 전혀 없지 않다. 미래 과학을 전망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고 미래의 신문 기사를 예측하는 것도 내가 할 수 없는 일인데, 미래의 과학기사가 어떤 식으로 변할지 내가 어떻게 예측한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견적 자체가 나오지 않아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다고 말했고 담당자도 웃으면서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미래의 과학기사가 어떤 식으로 변할지 말지를 떠나서, 왜 고등학교에 과학신문 동아리가 있는지 그게 더 신기하다. 몇 년 전에 학회 총무간사를 할 때 어떤 아주머니가 자기 아들이 학급신문을 만들어야 하는데 기숙사 학교라서 전화를 못 한다면서 이번 학술대회가 몇 회째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 때 그 아주머니가 학술대회가 몇 회째인지를 물으면서 문턱에 발을 걸치더니, 나중에는 자기 아들이 SF영화를 보고 쓴 감상문을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수 있느냐고 묻기까지 했다. 하여간 나는 그 때 고등학생이 학급신문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게 무슨 미친 소리인가 싶었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고등학생이 학급신문을 왜 만드는가? 말이 신문이지 학생들이 취재할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 때는 그냥 이상한 아주머니와의 헤프닝 정도로 여기고 그냥 넘겼다. 그런데 이제는 고등학교에 아예 신문 동아리까지 있다는 것이다.

과학신문 동아리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배우겠는가? 아마도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고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할 것이다. 이는 교사의 태만 때문도 아니고 학생의 불성실 때문도 아닐 것이다. 그들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대학 가려면 고등학교에서 책 한 줄 읽은 것까지 기록으로 남겨서 알리바이를 만들라고 하는 판이니 아무리 헛짓거리라고 하더라도 그런 동아리를 만들고 되든 안 되든 기록으로 남겨야만 할 것이다.

내가 대학 교수인데 대학에 입학하려는 고등학생이 과학신문 동아리 같은 곳에서 활동한 내역을 입시 자료랍시고 내면 황당할 것 같다. 자료를 받아보고 “그래서 어쩌라구요?”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그딴 짓을 실제로 하고 있다는 것은 그러한 것이 대학 입학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 아닌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런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자료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대학에 못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런 짓을 왜 해야 하는가?

낭만쟁이들은 분명히 수능 점수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식으로 말할 것이다. 그런데 입시에서 누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보여달라고 그랬나? 대학에서 학생에게 요구할 만한 것은 그 학생이 대학에서 공부하는 데 적합한 사람인지에 대한 것이다. 과학신문을 만드는 것이 그 학생의 어떤 점을 보여줄 것인가? 대학에 입학하고 싶다, 고졸자로 남고 싶지 않다는 의지 외에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학생마다 다양한 개성이 있다고 입발린 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말로 남다른 개성이 있는 사람도 있기는 있겠으나, 그런 학생이 전체 학생 중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분야에서도 두각을 보이지 않는다. 대한민국에 직업이 2만 개 정도 있다고 치면 각 직업별로 1등부터 100등까지 해봐야 200만 명이고 500등까지 해봐야 1천만 명이다. 5천만 명 중에 절대 다수는 어느 분야에서도 두각을 드러내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애초부터 별다른 개성 같은 것이 없으니 수능 점수 같은 것으로 등수별로 잘라도 그리 큰 문제 될 것은 없다. 숨겨진 개성 같은 것이 있다고 한들, 숨어있는 것이 어떻게 보이겠는가? 그러니까 점수별로 자르든지 등수별로 자르는 것은 그 자체로 큰 문제는 아니다. 그 자체로는 문제가 될 것이 아닌데, 점수를 잘 받든지 등수가 높은지 좋은 대학 간 사람들이 나 잘났다고 하면서 지랄하는 바람에 문제가 생긴다. 낭만쟁이들이 마치 점수나 등수로 나누는 것이 아미 비-인간화의 상징인 것처럼 난리를 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잘 나가는 사람들이 웬만큼 뻗댔으면 모르겠는데, 그들 중 일부가 도를 넘어서서 뻗대고 행패 부리는 바람에 낭만쟁이들의 개소리가 마치 맞는 말처럼 들리는 것이다.

그런데 수능 점수로 치사하게 굴지 않는다고 해서 치사한 꼴을 안 보게 되는 것도 아니다. 시골 동네에서는 수능으로 답이 안 나오니까 내신으로 대학을 보내는데, 어정쩡한 놈들이 상을 나누어 가져가면 아무도 대학을 못 가게 되니까 대학 갈 것 같은 놈한테 교내대회 상을 몰아준다. 수학 못 하고 과학 못한다고 해서 글짓기까지 못 하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좋은 대학을 못 가든 아예 대학을 못 가든 고등학교 때 받은 상장 하나 가슴에 품고 살 수도 있지 않은가? 아들한테 “아빠가 학교 다닐 때 공부는 잘 못했지만 시를 학교에서 제일 잘 썼단다” 이런 식의 말을 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러지 말라는 것이다. 어차피 대학도 못 갈 놈이 시는 무슨 놈의 시며 글은 써보았자 무슨 글을 쓰느냐고 학교에서 대놓고 보여주는 것이다.

낭만쟁이들의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결국 어떻게든 치사한 꼴을 보는 것은 마찬가지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치사하게 살지 않을 수가 있을까?

(2021.07.15.)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예언한 알라딘 독자 구매평 성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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