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02

[철학] Cook (2013), “Introduction” in Paradoxes 요약 정리 (미완성)

[ Roy T. Cook (2013), Paradoxes (Polity), pp. 1-8. ]

[1-2]

역설은 종종 가장 기초적인 개념들에 대한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직관이 어떤 의미에서 틀렸음을 증명하거나 제안함.

[2]

몇몇 철학자들은 철학사 전체가 다양한 역설들에 대한 일련의 응답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함.(e.g. Sorensen 2005)

[p. 4]

1장

역설이 무엇인지, 역설을 다루는 어떤 접근이 있는지, 몇몇 잘 알려진 역설들이 이러한 분류

2장

거짓말쟁이 역설

3장

거짓말쟁이의 역설의 변종들

4장

집합론적 역설과 무한과 관련된 역설

5장

Sorites Paradox

6장

지식과 믿음 같은 인식론적 개념을 포함한 역설

(2023.04.11.)

2021/07/01

컴퓨터 책상 밑에 들어온 화천이



화천이가 큰 창고에 가길래 화천이를 따라서 큰 창고에 갔다. 새끼가 들어있는 상자에 화천이가 들어갔는데 상자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상해서 사다리를 타고 상자를 열어보았더니, 상자 속에 새끼는 한 마리도 없고 화천이만 혼자 웅크리고 있었다. 새끼가 다 죽어서 화천이가 어디에 갖다버린 건지, 아니면 화천이가 새끼를 다 죽인 건지는 모르겠다. 화천이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화천이는 한동안 작은 창고에 혼자 있고 싶어 했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고양이의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물을 수 있겠는데, 다 나름대로 근거가 있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내가 작은 창고에 들어갈 때 화천이가 따라온 적이 있었다. 내가 창고에서 물건을 정리하는 동안 화천이는 어떤 상자 속에 들어가서 혼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내가 창고에서 볼 일을 다 본 다음에 문을 열어둔 채 창고를 나가면 한참 후에 화천이는 창고 밖으로 나왔다.

화천이가 창고에 몇 번 따라온 다음에는 화천이가 먼저 나를 창고로 이끌었다. 화천이는 밥 달라고 울 때와 어디 가자고 울 때가 다르다. 내가 울음소리만 듣고 그걸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울 때 폼이 다른 것을 보고 추측하는 것이다. 현관문 밖에서 화천이가 나를 불러서 내가 현관문 밖으로 나갔을 때, 화천이가 배가 고프면 사료통 근처에서 빙빙 돌면서 운다. 어디 가고 싶어서 나를 부른 것이면 화천이가 내가 현관문에서 나온 것을 확인하고는 현관문에서 멀리 떨어져서 다시 나를 부른다. 화천이 소리를 듣고 내가 화천이를 따라가면 화천이는 그것을 보고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기어가고 중간중간에 내가 자기를 잘 따라오나 고개를 돌려서 확인한다. 내가 다른 곳으로 간다 싶으면 다시 울어서 나를 부른다. 그런 식으로 화천이는 나보고 창고에 함께 가자고 했고, 내가 창고 문을 열어주면 창고로 들어가서 지난번에 들어갔던 상자 속에 혼자 들어가서 웅크리고 있었다.

며칠 동안 창고에 가니 싫증이 났는지 화천이는 더 이상 창고에 가자고 나를 부르지는 않는다. 그 대신 밤만 되면 집 안에 들어오려고 한다. 고양이는 집 밖에 살고 사람이 집 안에 살아야 하는 것이지만, 화천이가 불쌍하니 잠시 집 안에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예전에 집 안에 들어오면 거실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는데, 이제는 현관문으로 들어오자마자 거실에 있는 컴퓨터 책상 밑으로 곧장 간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옆도 안 돌아보고 곧장 컴퓨터 책상 밑으로 간다. 컴퓨터 책상 밑에서 화천이가 하는 일은 그냥 자는 것이다. 내 발을 베개 삼아서 베고 자는 것이다.









(2021.05.01.)


2021/06/30

[한국 가요] 뱅크 (The Bank)



뱅크 - 가질 수 없는 너

( www.youtube.com/watch?v=iYDb1qCvsbE )

(2021.05.17.)


이준석은 왜 그럴까?



며칠 전에 시청 공무원 한 명과 설계사 두 명과 만났다. 그들을 만난 것은 내가 창고부지 건설과 관련하여 민원을 넣었기 때문이다. 악성 민원인들은 대체로 같은 내용을 반복적으로 보내서 담당 공무원을 괴롭힌다고 하는데, 나는 그들과 다르게 보내는 민원마다 내용이 다 달랐고 질문과 요구사항이 구체적이었다. 그러자 어느 순간부터는 시청에서 답변하기 곤란한지 답변을 구체적으로 하지 않고 뭉뚱그리기 시작했다. 어느 시점부터는 내가 민원 하나를 보내는데 30분에서 1시간 정도 걸리는데, 민원 답변이 오는 데 한 달 보름 정도가 걸리기 시작했다. 결국 공무원이 면담하자고 했고 그 자리에 설계사 두 명을 동반했다.

설계사가 두 명이나 온 것은, 내가 연립주택 하수도 때문에 창고 배수로를 가지고 장난질을 치는 것이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물류창고를 설계한 설계사와 연립주택을 설계한 설계사를 모두 만났다. 처음 만나는 자리니까 설계사가 나에게 인사를 하고 명함을 주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는 나의 어머니도 있었는데 나에게만 명함을 주고 어머니에게는 명함은 주지 않고 고개만 까딱 인사만 했다. 민원은 내가 보낸 것이지만 그래도 어머니가 옆에 있는데 그들은 그랬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은 이번 한 번이 아니다. 재작년에 옆집 아저씨가 행정사를 데려온 적이 있었다. 옆집 아저씨의 부인이 도청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인데 부인의 공무원 선배가 퇴직한 뒤 행정사를 새로 개업했다고 했다. 행정사도 전관예우나 있다나 뭐라나. 하여간 행정사도 처음 만났으니 인사를 나누는데 그 행정사 아저씨가 나에게만 명함을 주고 어머니한테는 고개만 까딱하고 명함은 주지 않았다.

이번에 만난 설계사 놈은 50대쯤 되는 것 같았고 지난번에 만난 행정사 놈은 60대 쯤 되는 것 같았다. 두 놈 모두 속이 훤히 보이는 개수작을 하려고 했다는 것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왜 멀쩡히 옆에 있는 어머니한테 명함을 주지 않았는가? 명함이 순금으로 된 것도 아니고 한 장 주나 두 장 주나 거기서 거기인데, 왜 아들인 나에게만 주고 어머니한테는 주지 않은 것인가? 이것은 단순히 두 놈의 싸가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인가, 아니면 특정 연령대 남성의 일반적인 경향이 싸가지 없는 두 놈에게서 조금 과하게 드러난 것인가?

내가 사회생활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사회생활 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어쩌다 들어보면, 패악질을 부린다든가 아니면 가시적인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지만 위험한 놈들은 50-60대에 걸쳐 있는 것 같다. 50-60대 남성이 다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나쁘다 싶은 놈들은 그 연령대에 몰려 있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그럴 것 같다.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것부터, 인사고과를 평가하는 것이며, 근무를 배정하는 등의 권한을 가진 사람이 모두 그 연령대에 집중되어 있으니, 나쁜 짓을 해도 그런 권한이 있는 사람이 나쁜 짓을 더 수월하게 할 것이다. 20대 남성이 나쁜 짓을 해봐야 데이트 폭력이나 기타 강력범죄 등 물리력에 의한 폭력을 저지를 수는 있겠지만, 위력에 의한 뭐시기를 하기는 힘들 것이다.

또 한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은, 여성 차별이 옛날 이야기냐 요즈음도 일어나는 일이냐 하면서 싸울 때, 옛날 이야기와 요즈음 일어나는 일에 모두 등장하는 연령대가 50-60대라는 것이다. 가령, 예전에는 태아의 성별을 감별해서 여자아이면 낙태하는 일이 있었고 그래서 30대에는 성비가 안 맞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 그건 옛날 이야기이고 그런 일은 사라진 지 오래라고 반박한다. 둘 다 맞는 이야기다. 그런데 태아 성감별해서 낙태하는 일은 사라졌지만 그런 짓을 했던 사람은 여전히 남아 있고 그 연령대가 50-60대다. 이렇게 본다면, 옛날 일이 옛날 일로 끝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그렇게까지 이상한 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20대나 30대 여성이 겪는 차별이라든지 구조적 불합리 등과 관련하여 화살을 돌린다면 50-60대 남성에게 돌리는 것이 전략적으로 효과적일 텐데, 이상하게도 20대 남성과 20대 여성의 싸움의 형태로 나타난다. 왜 그런가? 20대 남성으로서는 취업도 안 되어서 죽겠는데 할당제 같은 소리나 들리니 짜증이 나는 것이고, 20대 여성으로서도 취업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50-60대 남성의 쓴맛을 본 적이 없고 근처에서 알짱거리는 20대 남성에게나 화풀이를 하는 것인가?

상황이 이러하니, 내가 30대 보수 정치인이라면, 20대 남성과 20대 여성의 대결 구도로 몰고 가서 20대 남성을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20대 남녀 중 일부 극렬분자와 선을 긋고 20대 남녀 대 50-60대 개저씨의 구도로 잡을 것 같다. 20대 남성과 20대 여성의 대결 구도로 잡으면, 20대 남성 중 일부의 지지를 받더라도 20대 남성 중 제정신인 사람과 20대 여성 대부분의 지지를 포기해야 한다. 50-60대 남성 중 상당수가 조국, 윤미향, 박원순, 오거돈, LH의 와중에도 민주당을 지지했던 것을 감안하면, 50-60대 남성을 적으로 돌리고 20대 남녀를 다 끌어안는 식으로 편을 갈라야 보수 쪽에 유리하다. 특히나 그러한 흐름을 주도하는 정치인이 30대라면 남녀가 아니라 세대로 갈라쳐야 자기 입지를 굳히는 데 유리할 것이다. 20대가 다 자기표인 것처럼 굴어야 지분을 확보할 때도 유리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준석이 왜 세대로 가르지 않고 20대 남성과 20대 여성으로 가르는지 이해가 안 간다. 이제 20대 여성표는 적어도 이준석에게 가지 않는다는 것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는데, 사회정의고 뭐고 다 떠나서 자기 정치적 입지를 굳히는 데 별로 도움이 안 될 것 같은데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2021.04.30.)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예언한 알라딘 독자 구매평 성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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