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15

[강연] 정재서 교수

     

[플라톤 아카데미] 피어라 상상력, 만나라 산해경 / 정재서 교수

www.youtube.com/watch?v=QKXlbjbtbMI )

  

  

(2021.02.03.)

     

2021/06/13

2021/06/12

[윤리학] MacIntyre (2007), Ch 2 “The Nature of Moral Disagreement Today and the Claims of Emotivism” 요약 정리 (미완성)

     

[ Alasdair MacIntyre (2007), After Virtue: A Study in Moral Theory, Third Edition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pp. 6-22.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 「제2장. 오늘날 도덕적 불일치의 본질과 정의주의의 주장들」, 『덕의 상실』, 이진우 옮김 (문예출판사, 2021),  ]

   

    

오늘날의 도덕적 논쟁은 지루하게 평행선을 긋고 있음.

이러한 논증의 세 가지 특징

특징(1): 서로 다른 전제에서 논증이 시작된다는 점

특징(2): 사적 자의성이 개입하는 점

특징(3): 각 주장들의 뿌리가 상이한 역사적인 기원에 있다는 점

이러한 도덕적 불일치로 인해 나타난 개념이 다원주의

다원주의는 교차하는 개념들의 조화를 가능하게 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단편적 사고들의 조화롭지 못한 혼합을 의미할 수도 있음.

여기에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의 개념 또한 당시의 맥락에서 벗어났다(도덕적 용어가 무질서해졌다)는 점도 도덕적 불일치의 원인이 됨.

  

그래서 등장한 것이 정의주의

정의주의는 모든 가치판단이 선호를 표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함.

정의주의의 세 가지 결함

결함(1): 순환논리에 빠진다는 점

결함(2): 개인적인 선호는 개인적인 상황에 의존하지만 가치판단은 개인적인 상황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

결함(3): 명제의 의미 뿐 아니라 언제 어디서 사용하는가 하는 것 또한 관련된다는 점

정의주의는 객관적 도덕성을 정당화하려는 시도가 실패했다는 주장을 근거로 함.

그러나 정의주의는 궁극적으로 도덕적 표현에 대한 이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도덕 자체를 부정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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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철학에서는 정의주의가 도덕적 표현의 의미에 관한 이론으로서 실패했기 때문에 이를 거부함.

  

정의주의를 비판하는 주장 중 하나는, 행위자는 특정한 판단을 그것이 논리적으로 추론될 수 있는 보편적 규칙과 연관시켜 정당화할 수 있으며, 또 이 규칙을 다시 더욱 일반적인 규칙 및 원리로부터 추론하여 정당화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추론에 추론을 거듭하다 보면 가장 일반적인 기준이 필요함.

정당화에는 유클리드 기하학의 공리와 같은 첫 번째 명제가 필요함.

게다가 도덕적 합리성의 개념과 합리성에 기반해야 할 도덕성의 본질에 대해서도 합의에 이를 수 없다는 점에서 이 또한 실패함.

 

  

(2021.04.25.)

    

2021/06/11

사려 깊은 페미니스트 부모의 역설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의미나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의미로 성을 안 쓰거나 부모 성을 함께 쓰는 사람들을 괜히 고깝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 왜 고깝게 보는가? 별다른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왜 호적에 올라온 이름을 안 쓰냐는 둥, 식민지를 건설할 때 원주민들의 성을 못 쓰게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냐는 둥, 부모 성을 함께 쓰면 성이 2의 제곱으로 늘어나느냐는 둥, 그런 사람들이 문제 삼는 것은 죄다 시덥지 않다. 그냥 싫어서 싫어한다는 것뿐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시대를 앞선 페미니스트 부모가 있다고 가정하자. 페미니스트 부모는 자기 자식이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사람이기를 바라며, 자기 자식이 부모 성을 같이 써도 부당하게 비난받지 않기를 바란다. 분명히 사람들이 왜 호적에 올라온 이름을 안 쓰냐고 시비를 걸 것이므로 아예 호적상 이름에 부모 성을 다 넣기로 한다. 예를 들어, 자식 이름을 ‘남인순’이 아니라 아예 ‘남윤인순’으로 지어서 호적에 올리는 것이다.

자식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자식은 부모 성을 함께 써서 페미니즘을 지지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런데 사려 깊은 부모가 호적에 부모 성을 함께 올려놓았다. 그렇다고 성이 남윤씨인 것도 아니다. 성은 여전히 남씨이며 이름이 윤인순인 것이다. 그래서 자식은 부모 성을 함께 쓰기 위해 ‘남윤윤인순’이라고 할 것이다.

이제 다시 부모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앞서 말했듯이 부모는 사려 깊은 페미니스트이고 사려 깊기 때문에 자식이 자신의 이름을 ‘남윤윤인순’이라고 부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호적에 자식 이름을 ‘남윤윤인순’이라고 올려놓는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자식이 자기 이름을 남윤윤인순이라고 하면 여전히 아버지의 성만 쓰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이름을 ‘남윤윤윤인순’이라고 부르게 된다. 이런 식으로 부모의 고민도 깊어지면 이름도 길어지고 이 때문에 자식은 부모 성을 함께 쓰지 못하게 된다. 이를 ‘사려 깊은 페미니스트 부모의 역설’이라고 하자.

부모가 사려 깊은 페미니스트일 경우, 자식의 이름을 정확히 표현하려면 아마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표기해야 할 것이다.


남(윤)ⁿ인순 (n은 1→∞이고 자연수)


n이 1 이상의 자연수이어야 하는 이유는, n=0이면 ‘남일인순’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 이름을 이런 식으로 쓰면 안 될 것 같다.

부모 성을 함께 쓸 경우 사려 깊은 페미니스트 부모의 역설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부모 성을 둘 다 쓰는 것보다는 부모 성을 안 쓰는 게 더 나은 것 같다. 그런데 부모 성을 안 써도 또 사소한 문제가 생긴다. 한국은 성도 몇 개 없지만 비슷한 이름을 쓰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성을 쓰지 않으면 누군가를 부르기 위해 이름 앞에 다른 것으로 수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옛날처럼 호를 짓지도 않을 것 아닌가?

내가 보기에 대안은 창씨다. 창씨개명을 하면 친일파처럼 보이니까 창씨만 하는데, 남자도 창씨하고 여자도 창씨하는 것이다. 그러면 성 안 쓰기와 부모 성 같이 쓰기의 취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둘의 문제에서도 벗어날 수 있고, 성도 다양해져서 이름도 특색 있는 이름도 많이 생길 것이고, 외국 사람들이 한국 이름을 식별할 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창씨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우선, 이름에서 성을 날리고 가운데 자를 성으로 삼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나는 ‘평범할 범(凡)’씨 정도로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원래 본관은 지역을 나타내는 게 보통이지만 어차피 알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평범한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아니면, 영어식 표기를 음차하여 이용할 수도 있다. 최씨는 초이(礎夷)씨로 할 수 있다. 기존 성을 파자해서 새로운 성을 만들 수도 있다. 기존 성과 발음은 같지만 한자는 다른 이름을 만들 수도 있다. 가령, 컴퓨터 쪽 종사자는 전(全)씨를 전(電)씨로 바꿀 수도 있겠다.

(2021.04.11.)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예언한 알라딘 독자 구매평 성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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