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13

목수정을 비판한 김우재 박사의 칼럼



김우재 박사의 칼럼의 고질적인 문제는, 욕하고 싶은 대상들을 이유 없이 나열하고 글의 주제와 무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정작 원래 욕하려고 했던 대상에 대해서는 아무런 타격도 입히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한 고질적인 문제는 <한겨레>에 실린 칼럼 “목수정의 반계몽주의”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번 칼럼은 다른 칼럼보다도 글의 상태가 좋지 않다. 칼럼 한 편에서 남겨도 될 부분은 다음의 세 문장뿐이며 나머지는 모두 글의 논지와 무관하다.


며칠 전 목수정은 영국의 백신 접종 사후관리 시스템인 ‘옐로카드’의 문건을 근거로, 영국의 백신 부작용 신고가 4만 건이 넘는다는 제목의 글을 썼다. 이 글은 마치 기자가 사실만을 나열한 것처럼 작성되어 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목수정은 사실을 취사선택하고 자신의 신념에 맞지 않는 근거는 빼는 방식으로 백신에 대한 음모론을 만들어 퍼뜨리고 있다.


도대체 김우재 박사의 칼럼이 어떻기에 세 문장 빼고 모두 지워야 한단 말인가? 칼럼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 문단(1): 근대민주주의는 프랑스 계몽사상에서 나왔다.

- 문단(2): 프랑스 계몽사상의 철학적 기틀은 근대과학으로부터 왔다.

- 문단(3): 홍세화가 프랑스의 정치사상을 한국에 널리 알린 이후, 한국 철학계는 프랑스의 현학적인 포스트모더니즘에 잠식되었다.

- 문단(4): 볼테르의 계몽사상에서 유래된 똘레랑스는 근대과학적 맥락에서 사유되어야 하는데, 홍세화는 프랑스 계몽사상의 핵심인 근대과학을 쏙 빼고 똘레랑스를 수입했다.

- 문단(5): 프랑스 유행이 시들해가던 무렵 프랑스를 다시 한국에 수입한 목수정은 그림자 정부론에 가까운 음모론을 퍼뜨리고 있다.

- 문단(6): 과학이라는 상식적 세계관에서 멀어진 좌파는 극우보다 위험할 수 있으며 목수정이 여기에 해당한다.

애초부터 칼럼을 위와 같이 구성하려고 했다면 칼럼 제목은 “목수정 반계몽주의의 계보” 정도로 했어야 했다. “목수정의 반계몽주의”라는 제목에 걸맞은 글을 쓰려면 문단(5)를 글의 맨 앞에 넣고 목수정의 반계몽주의가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기술한 다음 그게 왜 문제인지 밝혀야 했다. 그러려면 글의 대부분을 지우고 거의 다시 써야 한다. 그래서 칼럼에서 남는 건 위에서 언급한 세 문장뿐이다.

그런데 애초에 칼럼을 “목수정의 반계몽주의”가 아니라 “목수정 반계몽주의의 계보”로 쓰려고 했더라도 글은 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목수정으로 이어지는 반-계몽주의의 계보를 만드는데도 실패하기 때문이다.

문단(1)에서 프랑스 계몽사상가로 꼽는 두 사람은 볼테르와 루소다. 계몽사상가들 중 볼테르와 루소만이 프랑스대혁명 이후에 사망한 위인들만 안장되는 프랑스의 팡테옹에 예외적으로 안장되었다고 한다. 김우재 박사에 따르면 볼테르는 좋은 사상가이고 루소는 나쁜 사상가인데, 왜 그러하냐 하면 볼테르는 “뉴턴이 완성한 근대과학의 방법론적 틀에서 계몽사상의 강력한 근거를 발견했”고 루소는 “과학과 문명에 대한 비상식적 주장”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볼테르도 잘 모르고 루소도 잘 모르니까 두 사람이 어떤 사상가인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겠다. 그런데 김우재 박사의 판단을 100% 믿는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그래서 그러한 계몽사상가들이 목수정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볼테르는 동인이고 루소는 서인이고 목수정은 노론쯤 된단 말인가?

최대한 좋게 해석해서, 김우재 박사가 볼테르는 계몽주의자의 범례로 제시하고 루소를 반계몽주의자의 범례로 제시하려고 했다고 치자. 그래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볼테르의 계몽주의가 무엇이고 루소의 반계몽주의가 무엇인지 칼럼에 전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칼럼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과학에 근거한 주장을 하는 사상가는 좋은 사상가이고 그렇지 않은 사상가는 나쁜 사상가라고 김우재 박사가 믿고 있다는 것뿐이다. 이렇게 쓸 것이면 칼럼에 프랑스 계몽사상가가 나올 필요가 없다. 목수정하고 아무 관계없고 목수정을 비판하는 데도 아무 도움이 안 되는 프랑스 계몽사상가 이야기를 왜 한정된 지면에 굳이 써야 하는가?

문단(3)에 나오는 홍세화 이야기도 뜬금없기는 마찬가지다. 계몽사상가들과 홍세화가 연결되는 지점은 똘레랑스 하나뿐이고 홍세화와 목수정이 이어지는 지점은 프랑스 소식을 전했다는 점뿐이다. 김우재 박사에 따르면 “한때 한국의 지식생태계는 홍세화가 수입한 똘레랑스에 대한 글과 논문으로 가득했”고 “한국 철학계는 프랑스의 현학적인 포스트모더니즘에 잠식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김우재 박사가 접할 정도의 수준의 글에서는 그랬을지는 모르겠으나, 학위논문만 검색해 봐도 한국 철학계에서 프랑스 철학의 비율이 그다지 높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문단(4)에서 소칼의 과학전쟁을 언급하면서 홍세화가 “프랑스 계몽사상의 핵심인 근대과학을 쏙 빼고 똘레랑스를 수입했”음을 지적하는 부분도 말이 안 된다. 홍세화가 반-과학적인 면모를 드러낸 적이 없는데 근대과학을 쏙 빼고 똘레랑스를 수입했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홍세화는 개화기의 조선인이 아니다. 홍세화가 프랑스 파리에서 돌아올 때는 이미 한국에 근대과학이 있는데, 왜 홍세화가 근대과학까지 수입해야 하는가? 홍세화가 유럽해서 택시 운전을 하지 말고 이학박사 학위라도 땄어야 했단 말인가?

이런 식으로 불필요하거나 틀리거나 말이 안 되는 부분을 날리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칼럼에서는 딱 세 문장 남는다.

김우재 박사의 칼럼은 한국 이공계 학부생들의 글쓰기 교육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번 백신 관련 사안에서는 약간 다르다. 김우재 박사가 글을 너무 못 쓰는 바람에 목수정의 반박문을 훨씬 논리적으로 보이게 만들어서 오히려 백신반대론자에게 도움이 된다.

이렇게 본다면, 글 못 쓰는 과학자는 보통 수준의 글을 쓰는 백신반대론자보다 위험할 수 있다. 김우재 박사가 그렇다.

* 링크: [한겨레] 목수정의 반계몽주의 / 김우재

( www.hani.co.kr/arti/opinion/column/984996.html )

(2021.03.13.)


2021/05/12

[외국 가요] 보이즈 라이크 걸즈 (Boys Like Girls)



Boys Like Girls - The Great Escape

( www.youtube.com/watch?v=JGPgxoIPY6Q )

(2021.05.14.)


어용학자 캐릭터



시사풍자 개그에 활용할만한 캐릭터가 떠올랐다. 어용학자 캐릭터다.

무대에 두 명이 등장한다. 한 명은 어용학자, 다른 한 명은 사회자이다. 시사프로그램에 어용학자가 출연해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며 정부 편을 드는 방식으로 개그를 하는 것이다. 적당히 그럴듯하게 우기면 사람들이 개그인 줄 모를 수 있기 때문에 어용학자 캐릭터를 맡은 연기자는 개억지를 쓰면서 박박 우겨야 하는데, 그러면서도 학자니까 천천히 차분한 말투로 억지를 써야 한다. 형식과 내용의 부조화가 핵심이다.

어용학자가 억지를 부리고 사회자가 난처해하는 구도로 가는 것도 좋겠지만, 사회자가 아예 어용학자 편을 들고 다른 정상적인 학자가 여기에 분개하며 펄펄 뛰는 구도로 가는 것도 좋겠다. 그렇게 되면 무대에는 세 명이 등장해야 할 것이다. 어용학자, 사회자, 그리고 정상적인 학자. 어용학자는 차분하게 억지를 쓰고, 사회자는 어용학자의 억지를 일방적으로 옹호하고, 정상적인 학자는 얼굴이 뻘개져서 펄펄 뛰는 것이다. 이 때 정상적인 학자 역할로 나오는 사람이 이왕이면 시정잡배 같은 모습을 하는 것이 좋겠다. 여기에 설정을 하나 추가하면, 방청객이나 시청자 의견을 추가하는 것이다. 당연히 방청객이나 시청자도 어용학자 편을 들고 정상적인 학자를 비난해서 정상적인 학자가 펄펄 뛰다 뒷목 잡고 쓰러지는 장면도 넣을 수 있겠다.

그러면 어용학자 이름은 뭐라고 지으면 좋을까? 특정 인물이 연상될 수도 있으니 어용학자든 정상적인 학자든 이름을 붙이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런데 이런 대사는 넣을 수 있지 않을까?


- 정상 학자: “아니,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당신 어용학자예요?”

- 어용학자: “네, 전 어용 학자입니다.”

- 정상 학자: “뭐라구요? 어용이라구요?”

- 어용학자: “네, 전 어용입니다. 잘못됐습니까?”


아니다. 이런 대사를 넣으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도 있겠다.








(2021.03.12.)


2021/05/11

대체 역사물



동료 대학원생의 고등학교 동창이 웹소설을 연재하다가 출판사와 계약까지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삼국지를 배경으로 하는 대체역사물라고 한다. 삼국지 게임을 하다가 원하는 결과가 안 나와서 원하는 결과를 소설로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대체역사물로 만들 소재는 많다. 웹소설에서는 현실 세계에서 찌질하게 살던 주인공이 시간을 건너뛰어서 뭘 한다든지 하는 식의 설정을 많이 한다고 한다. 그런 유치한 설정을 넣지 않고도, 주인공이 실제와 다른 선택을 하고 그 이후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만 가지고도 충분히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내가 예전에 생각했던 것은, 진시황의 장남인 부소가 자살하지 않는 가능세계에 관한 것이다. 진시황에게 간언을 했다가 미움을 사서 변방으로 쫓겨났던 부소가 이사와 조고가 조작한 가짜 유서의 지시대로 자살하지 않고 몽염과 함께 함양으로 군대를 몰고 갔다면?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너무 단순해질 것처럼 보인다. 몽염이 “이 반란군 놈의 새끼들, 내가 전차를 몰고 가서 늬놈들 머리통을 다 날려버리겠어”라고 하면서 군대를 몰고 가서 함양을 점령하고, 이사와 조고는 거열형을 당하고, 유방은 그냥 동네 양아치로 살고, 항우는 객기부리다가 죽는, 그런 식의 이야기로 끝날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야기는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될 수도 있다. 진시황의 유서가 조작되지 않았다고 해보자. 진시황은 아버지가 죽으라고 한다고 정말로 죽어버리는 약해빠진 아들에게 황위를 넘기고 싶지 않았고, 호해도 자신이 황제가 되기를 바라고 나름대로의 준비를 해왔다고 한다면, 진시황이 죽으면서 부소에게 자결하라는 유서를 남기는 것도 말이 된다. 장남인 부소가 호해의 앞길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 우려될 만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진시황의 유언을 부소에게 전하고 부소는 자결하려고 하는데, 이 때 몽염이 이를 말리고 실제 역사와 달리 부소가 몽염의 말을 듣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몽염이 변방의 군대를 몰고 함양으로 쳐들어가서 쉽게 이야기가 끝날 것 같지만, 그게 그렇지 않다. 진시황 사후에 후계 문제가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면 호해는 쉽게 사치와 향락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면 실제 역사와 달리 맛이 가지 않았을 수 있다. 맛이 안 간 호해가 정상적으로 황제로서 기능하면서 함곡관을 굳게 지킨다면 싸움은 장기전이 될 것이다. 부소와 몽염이 함곡관을 넘지 못하는 사이 그들의 부대에는 보급 문제가 생긴다. 황위 계승을 둘러싸고 내전이 벌어진 틈을 타서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난다면 부소와 몽염은 꼼짝없이 독 안에 든 쥐와 같이 된다. 이걸 부소가 어떻게 해결하느냐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도 있다.

<삼국지연의>에서 등장 인물의 선택을 분기점으로 하면 대체역사물 소재가 장편으로는 몇 십 개, 단편으로는 몇 백 개는 나올 수도 있겠다.

제갈량이 형 제갈근한테 나이 먹고 뭐 하는 거냐고 욕을 뒤지게 먹고 결국 손권 밑으로 들어갔다고 하자. 유비는 어떻게든 도망가서 유장한테 가고, 손권은 조조를 막고 그런 다음 천하삼분이 아니라 이분이 되고, 여기서 제갈량이 어떤 활약을 할지를 가지고도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유장이 무능한데 마음씨까지 나쁜 놈이었다고 하자. 신하가 이렇게 건의한다.

“깊숙이 들어와 고립되어있는 유비군은 만 명도 채우지 못하고, 사람들도 귀부하지 않았으며, 들의 곡식에 의존할 뿐 따로 치중(보급)이 없습니다. 파서(巴西)와 재동(梓潼)의 주민들을 모두 부수(涪水) 서쪽으로 철수시키고, 곳간과 노천의 곡물은 모두 태워 없애고, 보루를 높이고 해자를 깊이 파고, 가만히 방어만 하고 적이 싸움을 걸어와도 응하지 않으면, 오래도록 물자를 조달할 수 없어 100일도 지나지 않아 스스로 도주할 것입니다. 이때 습격하면 반드시 사로잡습니다.”

이 말을 들은 유장이 이렇게 말한다. “어, 그럴까?” 이렇게 싸움은 장기전이 되고 유비는 보급을 받지 못하고 발이 묶인다. 이 때 형주에 있는 관우에게서 서찰이 온다. “형님, 조조군이 밀고 내려올 것 같은데 어떡하죠?” 이런 식으로 또 다른 유비의 대모험을 만들 수도 있다.

등애가 검각에서 막히자 우회해서 진령산맥을 넘는다. 7백 리에 걸쳐 고난이도 산악 행군을 마치고 강유관을 마주하는데, 강유관을 지키던 마막이 등애군을 보고 이렇게 생각한다. ‘어? 이 겨울에 산을 넘어왔어? 그러면 해볼 만 하겠는데?’ 그렇게 마막이 강유관을 굳게 지킨다면 등애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식으로 등장 인물의 선택마다 이야기를 만든다면, 시간과 자원만 충분할 경우 이야기를 찍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2021.03.11.)


[외국 가요] 빌리 홀리데이 (Billie Holiday)

Billie Holiday - I’m a fool to want you ( www.youtube.com/watch?v=qA4BXkF8Dfo ) ​ Billie Holiday - Blue Moon ( www.youtube.com/watch?v=y4b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