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15

[근세철학] 베이컨, 『새로운 논리학』 2권 요약 정리 (미완성)

     

[ 프란시스 베이컨 지음, 『신기관』, 진석용 옮김 (한길사, 2016). ]

 

 




[6]

- 우리가 말하는 ‘잠재적 과정’은 사람의 정신으로 금방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님.

• ‘잠재적 과정’은 물체 자체가 드러내 보이는 양적 관계나 징후 또는 단계적 과정이 아니라 그 대부분이 사람의 감각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하나의 연속적 과정임.

• 예) 모든 물체의 생성과 변형 과정에서 무엇이 소멸하고 잔존하는지, 무엇이 부가 되는지, 무엇이 팽창되고 수축되는지, 무엇이 결합되고 분리되는지, 무엇이 연결되고 절단되는지 등을 탐구해야 함.

• 예) 어떠한 변화와 변동에 대해서도 무엇이 선행하고 후속하는지, 무엇이 빠르고 느린지, 무엇이 운동을 일으키고 운동을 규제하는지 등을 탐구해야 함.

- 자연의 모든 작용은 적어도 감각으로 지각하기에는 너무 작은 분자 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분자들을 적절한 방법으로 파악하고 관찰하지 않는 한 자연을 지배하거나 변화시킬 수 없음.




[11]

- 형상에 대한 탐구는 다음과 같이 진행됨.

• 탐구 대상이 되는 본성에 대해 우선 질료는 전혀 다르지만 본성이 동일한 모든 알려진 사례를 수집해야 함.

• 이러한 자료 수집을 할 때는 쓸데없는 궁리를 하지 말고, 너무 미세하게 하지도 말고, 다만 사례가 나타나는 순서에 따라 해야 함.

- 예) 열의 본성을 탐구할 경우

- 표 1. 열의 본성에 일치하는 사례

• 이 표를 ‘존재와 현존의 표’라고 부르자.

 

 

[12]

- 다음으로 탐구 대상이 되는 본성을 결여하는 사례를 수집해야 함.

• 왜냐하면 앞에서 말한 것처럼 형상은 주어진 본성이 현존하는 곳에 현존하고, 그 본성이 현존하지 않는 곳에는 현존하지 않기 때문임.

- 그러나 이러한 사례를 모두 모으려면 끝이 없을 것이므로, 부정적 사례는 긍정적 사례로 분류될 수 있음직한 것들 중에서 찾아야 하며, 탐구 대상이 되는 본성을 가지는 물체들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사물들 중에서 그 본성을 결여하고 있는 경우를 찾아야 함.

- 이 표는 ‘근접사례 중 일탈 또는 부재의 표’라고 부르자.

- 표 2. 열의 본성을 결여하는 근접 사례

 

 

[13]

- 셋째로 탐구 대상이 되는 본성이 서로 다른 정도로 존재하는 사례를 모아야 함.

• 동일한 대상을 놓고 그 본성의 증가와 감소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하든지, 여러 대상을 놓고 그 본성의 다소의 정도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하든지 어느 쪽이든 좋음.

• 사물의 형상은 사물 그 자체임. 사물이 형상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현상과 실재의 차이일 뿐이며,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의 차이일 뿐이며, 우주와 관련된 것으로 생각되는 것과 인간에 관련된 것의 차이일 뿐이기 때문임.

• 그러므로 그 본성의 증감 정도에 따라 형상도 똑같이 증감하지 않는 한 어떠한 본성도 진정한 형상으로 여겨서는 안 됨.

- 본성의 정도나 증감을 나타내는 표를 ‘정도표’ 또는 ‘비교표’라고 부르자.

 

 

[17]

- 형상 개념과 관련해서 반드시 주의하고 명심해야 할 것은, 베이컨이 말하는 ‘형상’을 지금까지 사람들의 사변과 사유에 익숙해진 형상과 혼동하면 안 된다는 것.

- 지금 베이컨이 문제 삼는 것은 개개의 단순본성이 결합된 복합형상이 아니기 때문.

- 단순본성에 관해서도 베이컨이 말하는 형상은 질료와 아무런 상관없이 규정되어 있거나 또는 잘못 규정된 추상적인 형상이나 관념(이데아)이 아님.

 

 

[20]

- 진리는 혼란보다는 오히려 오류에서 얻을 수 있으므로, 세 종류의 표(존재표, 부재표, 정도표)를 작성하고 검토한 다음에는 이들 표에 제시된 사례를 가지고 또는 다른 방법으로 얻은 사례를 가지고 자연을 해석하는 일을 긍정적으로 수행하도록 정신을 자유롭게 두는 것이 유익- 베이컨은 이러한 종류의 시도를 ‘지성의 해방’ 또는 ‘해석의 단초’ 또는 ‘최초의 수확’이라고 부를 것임.

- 열의 형상에 대한 최초의 수확 

... 

- 이 최초의 수확에 의하면, (인간의 감각에 관계된 것이 아니라 우주에 관계된) 열의 형상 또는 진정한 정의는 다음과 같이 간추릴 수 있음.

• 열은 억제된 상태에서 저항하는 소-분자 사이의 팽창운동임.

• 이 팽창운동은 모든 방향으로 일어나지만 특히 위 방향으로 일어남.

• 또한 소-분자 사이의 저항은 완만한 것이 아니라 급속하고 격렬함.

- 작업적 부문에 관해서도 이는 마찬가지임.

• 어떤 자연적 물체에다 자기 확장 혹은 팽창 운동이 일어나게 하고, 또한 그 확장이 균등한 것이 아니라 일부는 일어나고 일부는 저지되도록 운동을 억제할 수 있다면 이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열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함.

 


[21]

- 열의 존재표, 부재표, 제외표를 이용해 최초의 수확을 얻었으므로 다음에서 지성이 자연을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진실되고 완전한 귀납에 관해 살펴볼 것.

• 논의 도중 표에 나온 내용을 다룰 경우에는 열과 냉에 관한 논의를 계속하겠지만 소수의 사례만으로 족한 경우에는 열과 냉에 국한하지 않고 모든 것에 걸쳐 논의하기로 할 것임.

• 이렇게 하는 것이 탐구의 혼란을 줄이고 우리의 주장이 편협해지는 것을 막아줄 것이기 때문

- 베이컨이 서술하고자 하는 것

• (1) 특권적 사례

• (2) 귀납의 지주

• (3) 귀납의 정정

• (4) 주제의 본성에 따른 탐구의 변화

• (5) 탐구에 관한 특권적 본성, 즉 먼저 탐구해야 할 것과 나중에 탐구해야 할 것

• (6) 탐구의 한계, 즉 우주의 모든 본성

• (7) 실천적인 응용, 즉 인간과 관련된 것

• (8) 탐구를 위한 준비

• (9) 공리의 상승적 단계와 하강적 단계


 

 

 

 

 

(2021.06.09.)

    

2021/04/14

은교는 왜 시종일관 이해할 수 없는 행동만 하는가 - 영화 <은교>에 대한 감상



유튜브의 어느 영화소개 채널에서 영화 <은교>를 소개한 영상을 보고, 영화 <은교>를 다시 보았다. 몇 년 전에 처음 보았을 때는 신인 여배우가 고생한다는 생각 정도만 들었는데 최근에 다시 보니 영화가 한두 군데 이상한 게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말이 안 된다.

우선, 은교(김고은 분)가 등장하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 이적요(박해일 분)가 밖에서 일을 보고 집에 돌아오니 어떤 여고생이 남의 의자에 앉아 쳐자고 있다. 지나가던 거렁뱅이가 대문이 열린 것을 보고 들어와서 잤다고 해도 말이 안 될 판인데, 멀쩡한 고등학생이 담벼닥에 사다리가 있다고 그걸 타고 남의 집에 들어와서 잔다니 말이 되는가? 남의 집에 들어오는 것까지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왜 자기 집을 멀쩡히 두고 그것도 대낮에 남의 집에서 자는가? 이것부터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여고생인 은교가 70대 노인 이적요에게 그렇게 엉겨붙는 것부터 말이 안 되지만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말이 안 되니 이 정도는 그냥 그렇다고 치자. 은교는 잘 곳이 없다면서 왜 비 오는 날 굳이 이적요의 집에 찾아오는가? 은교가 말했듯이, 은교는 엄마에게 혼나고 집에 나온 날은 친구 집에서 잔다. 친구 집이 있는데 굳이 할아버지 혼자 사는 집에 자러 온다는 것이 있을 법한 일인가? 비가 오고 우산도 없으니, 은교가 멀리 떨어진 이적요의 집까지 찾아오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는 친구 집에 가는 것이 훨씬 더 상식적이다. 더 말이 안 되는 것은, 이적요가 자고 일어나보니 은교는 이적요의 이불 속으로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은교는 간밤에 천둥이 쳐서 무서워서 할아버지 겨드랑이에 숨었다가 잠들었다고 설명한다. 이게 말이나 되는가?

서지우가 은교를 자기 집에 불러서 개수작하려고 아프니 약을 사오라고 시킨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여자 혼자서 성인남자 혼자 사는 집에 가지 않고 친구나 아는 언니 등을 대동할 법한데 은교는 굳이 혼자 간다. 전혀 말도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꽤나 이상하다.

이적요는 <은교>라는 알페스를 쓰고 서지우는 이적요가 쓴 알페스를 자기 이름으로 발표한다. 이에 대해 은교는 자기를 주인공으로 한 알페스를 돈 주고 사보고는 자기를 그렇게 예쁘게 그려줘서 고맙다고 한다. 은교는 정신이 정상적으로 박힌 애인가?

소설 『은교』가 젊은 여자에 대한 욕망을 다룬 소설이든 늙어가는 슬픔에 대해 쓴 소설이든, 나는 소설을 안 읽어봐서 얼마나 아름다운 작품인지는 모른다. 다만 영화 <은교>는 은교의 등장부터 끝까지 말이 안 되고 이상하다. 10대 소녀에 대한 70대 노인의 욕망이 이상하다는 것도 아니고 10대 소녀를 둔 두 남자의 질투나 갈등이 말이 안 된다는 것도 아니다. 10대 소녀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시종일관 하면서도 그러한 행동을 해야 하는 이유가 영화에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 이상하다는 것이다.

물론, 은교가 왜 그런 행동을 해야만 했는지는 은교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영화 속의 두 남자 주인공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모두 설명된다. 이적요의 늙어가는 슬픔을 부각하기 위해 어린 은교가 거의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황당하게 등장해야 하는 것이고, 이적요가 은교에 대한 이상한 상상을 하는 것이 정당화되어야 하니까 은교가 이적요에게 헤나를 그려준 것이고, 은교가 이적요에게 헤나를 그려줘야 하니까 굳이 비 오는 날 은교가 이적요의 집에 찾아와야만 하는 것이고, 서지우가 은교와 뭔 짓거리를 해야 하니까 은교는 굳이 혼자서 성인남자 혼자 사는 집에 찾아오는 것이다. 그런데 은교가 이러한 일련의 행동을 해야 하는 이유는 전혀 없다.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도 희수(신민아)에게는 강 사장(김영철) 말고도 따로 젊은 애인이 있는데, 영화 <은교>에서 은교에게는 친구도 없고 애인도 없고 이웃도 없고 주변 어른도 없다. 이 또한 위와 같이 설명될 수 있다. 영화 <은교>에서 이적요와 서지우의 여러 가지 사회적인 관계가 드러나지만 은교와 관련된 어떠한 다른 사회적 관계도 나타나지 않는데, 이는 은교가 철저히 이적요와 서지우의 욕망에 따라 행동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에서 은교는 “여교생이 섹스를 하는 것은 외롭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은교가 왜 외로운지, 얼마나 외로운지는 전혀 나오지 않는 것이다.

영화 <은교>에서 보이는 어린 은교에 대한 시선이 어떠네 불편하네 하며 말하는 것은, 영화를 보니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는 말을 요새 유행에 맞게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훨씬 더 근원적인 문제는 남자 주인공들이 은교를 보는 시선 같은 것이 아니라, 은교라는 인물 자체가 두 남자를 뒤치다꺼리 해주는 인공지능 다용도 가사로봇 정도로 나왔다는 점이다.

(2021.02.14.)


2021/04/13

문재인 대통령의 외모



문재인 대통령이 전남 신안을 방문했을 때 전남도청 직원들이 과잉의전을 했다고 비판받고 있다고 한다. 도청 직원들은 무슨 헛짓거리를 했는가? 기사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도청 직원들이 직접 만든 플래카드에는 “그거 알아요? 저 굴 좋아하는 거. 문재인 얼굴”, “문재인 너는 사슴. 내 마음을 녹용”, “문재인 별로. 내 마음의 별(星)로” 등의 문구가 담겨 있었다. 현수막에도 “대통령님은 우리의 행복”,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공무원들이 현수막에 썼다는 문구를 보니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저게 뭔 짓거리이며 찬양 문구가 왜 다 저 모양이란 말인가. 그런데 이런 와중에도 문재인이 잘 생겼는지를 가지고 시비를 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사건에서 제일 흥미로운 지점이다. 도청 직원들이 문재인이 정치를 잘 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만들었다면 분명히 문재인이 정치를 잘 하는지 여부를 두고 지지자와 반대자들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을 텐데, 문재인이 잘 생겼다는 내용으로 현수막을 만들자 공무원의 과잉 의전만 비판할 뿐 어느 누구도 문재인이 잘 생기지 않았다고 하지는 않는다. 여느 한국 언론사의 기사처럼 이 기사도 어김없이 네티즌 의견이라고 하여 신문사에서 원하는 댓글을 취사선택했는데, “북한 의전을 보는 것 같다”, “명백한 과잉 의전”, “공무원이 저랬다니 충격이다”라는 비판을 전할 뿐 문재인이 잘 생기지 않았다는 비판은 전하지 않는다. 그만큼 문재인이 잘 생겼다는 데는 국민적인 합의가 있다는 것이다.

어떠한 정치적 판단이든 찬반 의견이 갈리게 마련인데 문재인이 잘 생겼다는 데는 찬반 의견이 갈리지 않는다. 평양냉면이 맛있느냐 함흥냉면이 맛있느냐를 가지고도 피 터지게 싸우는데 문재인이 잘 생겼느냐를 두고는 논쟁이 벌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사람 외모에 대한 판단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수렴하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사람 외모에 대한 판단이 갈린다고 사람들이 믿는 것은, 사람이 외모에 대해 극미한 차이를 가지고 분별할 정도로 예민하기 때문이지 전혀 다른 평가기준을 가지기 때문은 아닌 것이다. 설현이 예쁘냐 수지가 예쁘냐를 두고 싸울 수는 있겠으나, 이는 하버드대가 좋으냐 예일대가 좋으냐 싸우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사람에 대한 호감도가 외모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는 정말 잘 생긴 것이 아니라 어중간하게 잘 생겨서 심리적인 요소에 외모 판단이 좌우되는 것이다. 일정 선을 넘어가면 그 사람의 얼굴 사진을 보고 기분이 나빠지더라도 못 생겼다고 하지 않는다. 십몇 년 전쯤에 오세훈이 서울시장에 당선되었을 때 학부 동기가 분개했던 적이 있었다. 여자 동기였는데, 강남 아주머니들이 오세훈이 잘 생겼다고 찍었다고, 골이 비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고 그렇게 비난했었다. 당시 나도 오세훈이 당선된 것이 유감스럽기는 했다. 그러나 나는 동기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세훈은 잘 생겼잖아. 강남 아줌마들이 어차피 한나라당 찍을 건데 이명박은 못 생겨도 찍었는데 오세훈은 잘 생기기까지 했잖아.” 동기도 오세훈이 잘 생겼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 외모에 대한 판단기준이 선천적으로 결정되는지, 후천적인 영향에 의해 결정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으나, 하여간 문재인 외모에 관한 평가 같은 현상을 보면, 한 사회에서 받아들이는 외모에 관한 미적 기준은 분명히 있는 것 같고 일시적인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래서 획일적인 미적 기준을 거부하고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은, 미남-미녀 축에 못 드는 사람도 방송에 자주 나오게 한다거나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면 안 된다는 식의 상식적인 입장으로 받아들여야지, 마치 미적 기준 자체가 없거나 그러한 매우 일시적이거나 유동적인 것처럼 여기는 방식으로 받아들이면 안 될 것 같다. 아무리 취지가 좋은 주장이라고 해도 근거가 빈약하면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

* 링크: [아시아경제] 文 환영하는 전남도청 직원들 “우주미남 우유빛깔 문재인”

( www.asiae.co.kr/article/2021020615195304079 )

(2021.02.13.)


[외국 가요] 빌리 홀리데이 (Billie Holiday)

Billie Holiday - I’m a fool to want you ( www.youtube.com/watch?v=qA4BXkF8Dfo ) ​ Billie Holiday - Blue Moon ( www.youtube.com/watch?v=y4b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