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27

[KBS] 도올의 논어 이야기 (64부작)

      

제1강. 공자와의 만남
  
제2강. 유교란 무엇인가
   
제3강. 배우니 기쁘지 아니한가
   
제4강. 논어의 해석과 민주주의
   
제5강. 사마천과 공자세가
    
제6강. 공자의 탄생을 둘러싼 이야기
    
제7강. 고주와 신주
    
제8강. 공자의 제자들
   
제9강. 개비와 비개비
  
제10강. 짱구와 잉어
  
제11강. 삼성오신
  
제12강. 공자 삼대 이혼설
  
제13강. 공부란 무엇인가
  
제14강. 안영과 공자
  
제15강. 어울림의 디자인
  
제16강. 훈민정음과 회사후소
  
제17강. 인이란 무엇인가
  
제18강. 여인과 현인
  
제19강. 허물있으면 고쳐라
  
제20강. 신종추원
  
제21강. 한국유학과 일본유학
  
제22강. 제사와 동학
  
제23강. 개벽과 혁명
  
제24강. 아버지의 도를 삼년만...
  
제25강. 인류문명사 어떻게 볼까 (1)
  
제26강. 인류문명사 어떻게 볼까 (2)
  
제27강. 예와 악
  
제28강. 한시의 세계
  
제29강. 비피행
  
제30강.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치 말라
  
제31강. 절차탁마
  
제32강. 중용의 세계
  
제33강. 대학은 왜 가는가
  
제34강. 사랑이란
  
제35강. 불혹지천명의 참뜻
  
제36강. 소정묘의 주살
  
제37강. 춘추의 시작
  
제38강. 삼환의 역사
  
제39강. 학문의 길
  
제40강. 오직 병들까 걱정
  
제41강. 안회는 어리석지 않다
  
제42강. 온고이지신과 군자불기
  
제43강. 앎이란 무엇인가
  
제44강. 군자란 무엇이뇨
  
제45강. 출세하는 방법
  
제46강. 정자정야
  
제47강. 백세가지야
  
제48강. 유교의 새로운 해석
   
제49강. 공자의 음악이야기
  
제50강. 낙이불음
  
제51강. 배와 말
  
제52강. 임방이 예의 근본을 묻다
  
제53강. 활과 술
  
제54강. 공자의 손바닥
  
제55강. 너는 양을 아끼느냐, 나는 예를 아끼노라
  
제56강. 하늘에 죄 얻으면 빌 곳 없다
   
제57강. 공자의 인간관과 그리스도의 인간관 (1)
  
제58강. 공자의 인간관과 그리스도의 인간관 (2)
  
제59강. 과학 생명 논어 (1)
  
제60강. 과학 생명 논어 (2)
  
제61강. 회덕과 회토
  
제62강. 대추와 밤
  
제63강. 성균의 이념과 논어
   
제64강. 청춘과 문명의 모험
  
  
(2021.10.13.)
     

2019/09/26

[언어철학] Ayer (1946), Ch 1 “The Elimination of Metaphysics” 요약 정리 (미완성)

   
[ Alfred J. Ayer (1946), Language, Truth and Logic (Penguin Books), 2nd ed., pp. 45-61.
알프레드 J. 에이어, 『언어 논리 진리』, 송하석 옮김 (나남, 2010). 제1장. 「형이상학의 제거」 ]
   
   
■ 형이상학에 대한 에이어의 비판 [pp. 45-46, 53-54쪽]
- 철학자들의 전통적인 논의는 대부분 무익하고 확증되지 않았음.
• 이러한 논의를 끝내려면 철학적 탐구의 목적과 방법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밝혀야 함.
- 형이상학적 논제는 철학이 과학과 상식의 세계를 초월한 실재(reality)에 대한 지식을 제공한다고 함.
• 형이상학적 진술들은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의식적 욕망이 아니라 논리적 실수를 범했기 때문에 생김.
- 형이상학자를 공격하는 방법 중 하나는 형이상학자들이 제시하는 명제가 어떤 전제에서 연역되는지 질문하는 것.
- 가능한 반박
• 형이상학의 주장은 궁극적으로 감각적 증거에 근거하지 않음.
• 감각 경험을 통해서는 알 수 없는 사실을 지적 직관을 통해 알 수 있음.
- 에이어의 처방
• 형이상학을 존재하게 된 방식을 비판하여 초월적 형이상학의 체계를 전복할 수 없음.
• 형이상학을 구성하는 실제 진술들(actual statements)의 본질을 비판해야 함.
• 모든 가능한 감각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는 “실재”를 지시하는 진술은 아무런 문자적 의미(literal significance)도 가질 수 없음.
• 형이상학적 실재를 기술하는 것은 무의미를 만들어낼 뿐.

■ 칸트에 대한 기존의 비판 [pp. 46-48, 55-56쪽]
- 칸트는 초월적 형이상학을 비판했지만 또 다른 형이상학적 근거 위에서 이를 수행함.
• 인간 오성이란 가능한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하고, 물자체를 다루려고 시도할 때 모순에 빠지도록 구성되어 있다는 것.
• 초월적 형이상학의 불가능성을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의 문제.
• 우리의 정신은 현상적 세계를 넘어서는 능력을 가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러한 능력이 없다는 것.
- 칸트에 대한 기존의 비판
• 우리가 감각 경험의 한계 내에 있는 것만을 알 수 있다면 한계를 넘어서 실재가 존재한다는 주장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
• 그 한계를 넘어갈 수 없다면 인간 오성이 탐구할 수 없는 한계가 무엇인지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 에이어는 칸트에 대한 기존의 반론이 자신의 논제에 반론이 되지 않는다고 함.
• 가능한 감각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가 무익하다는 것은 심리학적 가설(인간 마음의 현실적 구성)이 아니라 언어의 문자적 의미를 결정하는 규칙에서 연역됨.
• 형이상학자들의 문제는 탐구할 수 없는 영역에 오성을 사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문자적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
• 한 문장이 사실에 관한 진짜 명제를 표현하는지 여부를 검토할 수 있는 기준을 정식화하기만 하면 됨.

■ 검증가능성 [pp. 48-50, 56-59쪽]
- 사실에 관한 분명한 진술이 진짜인지 아닌지 검토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준은 검증가능성(verifiability)의 기준. 
• 한 문장이 어떤 사람에게 사실적으로(factually) 유의미하다 iff 그 사람이 그 문장이 표현하고자 하는 명제를 어떻게 검증할 수 있는지 안다.
• 명제를 어떻게 검증할지 아는 것은, 어떤 사람이 일정 조건에서 어떤 관찰이 그 명제를 참으로 인정하게 하거나 거짓으로 거부하게 하는지를 안다는 것.
- 실천적 검증가능성(practical verifiability)과 원리상의 검증가능성(verifiability in principle)의 구분
• “달의 반대 편 표면에 산이 있다”는 명제는 현실적 관찰로는 참/거짓을 결정할 수 없지만 원리상 검증가능하므로 유의미한 명제
• “절대자의 진화는 진보에 관계하지만, 그 자체는 진화하거나 진보하지 않는다.”는 명제는 원리상 검증가능하지 않음.
- ‘검증가능성’의 ‘강한’(strong) 의미와 ‘약한’(weak) 의미
• 어떤 명제가 강한 의미로 검증가능하다 iff 그 명제의 참이 경험에 의하여 확실하게 결정된다.
• 어떤 명제가 약한 의미로 검증가능하다 iff 그 명제의 참이 경험에 의하여 개연적으로 결정된다.

■ 검증가능성에 대한 다른 의견과 에이어의 비판 [pp. 50-52, 59-61쪽]
- 의견(1): 어떤 실증주의자들은 확정적 검증가능성(conclusive verifiability)을 주장함.
- 에이어: 확정적 검증가능성을 채택하면 너무 많은 것을 증명하게 됨.
• 예) “비소는 유독하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등의 일반 명제
• 일반 명제는 유한한 관찰에 의하여 그 명제들의 참이 확실성을 가질 수 없음.
• 확정적 검증가능성을 채택하면 법칙에 관한 일반 명제를 형이상학의 진술과 같은 방식으로 다루게 됨.
- 의견(2): 어떤 실증주의자들은 이러한 일반 명제는 본질적으로 중요한 무의미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무의미한 것이라고 함.
- 에이어: “중요한”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도피처에 불과함. 역설적인 견해다.
• 이러한 문제는 먼 과거에 관한 명제에도 해당됨.
• 역사적 진술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아무리 강력해도 그 진술의 참은 개연적인 것임.
- 의견(3): 한 문장이 경험에 의해 결정적으로 반박될 수 있는 경우, 그리고 오직 이 경우에만 그 문장이 사실적으로 유의미한 것으로 보자는 주장.
- 에이어: 어떤 가설을 참이라고 결정할 수 없지만 명백하게 반증하는 결정적인 경우가 있다는 가정은 잘못된 것임.
• 어떤 관찰을 주어진 가설을 거짓으로 만드는 증거로 간주할 때 우리는 어떤 조건이 전제하므로, 가설은 확정적으로 검증될 수 없는 것처럼 결정적으로 반증될 수도 없다.
- 에이어의 결론: 더 약한 의미의 검증가능성.
• 사실에 관한 임의의 진술에 대해서 물을 때
“그 명제를 논리적으로 확실한 참이나 거짓으로 만들어주는 관찰이 있는가?”(X)
“그 명제의 참과 거짓을 결정하는 데 관련이 있는 관찰이 있는가?”(O)

■ 검증 원리 [pp. 52-53, 61-62쪽]
- 경험 명제(experiential proposition): 현실적 관찰이든 가능적 관찰이든 하나의 관찰을 보고하는 명제
• 어떤 명제 P가 하나의 경험 명제나 유한한 수의 경험 명제와 동치는 아니고, 그 명제와 다른 전제들을 결합했을 때 어떤 경험 명제가 연역될 수 있지만 다른 전제들만으로는 그 경험 명제가 연연될 수 없을 때, 그 명제 P는 진정한 사실 명제(a genuine factual proposition)임.
* 주석(8): 이는 너무 단순한 진술이므로 서론 16쪽의 정식화를 볼 것.
- 이 기준은 충분히 관대하여, 일반 명제나 과거에 관한 명제의 의미를 부인하지 않음.

■ 검증 원리 기준이 배제하는 진술의 예 [pp. 53-55, 62-64쪽]
- 예(1): 감각 경험의 세계는 모두 비실재적(unreal)이라는 주장.
• 감각이 때때로 우리를 속이기도 함.
• 그러나 감각 경험으로부터 발생하는 실수를 알려주는 것은 또 다른 감각 경험.
• 감각에 기초한 판단을 받아들이거나 반박하기 위해서 또 다시 감각에 의존함.
• 그러므로, 감각적 판단이 때로 실수라고 밝혀진다는 사실은 감각경험의 세계가 비-실재적임을 보여주지 않음.
- 예(2): 세상에 존재하는 실체(substance)의 수에 관한 논쟁
• 일원론자든 다원론자든 모두 논쟁의 해결과 관련되는 경험적 상황을 생각할 수 없음.
- 예(3): 실재론자와 관념론자 사이의 논쟁
• “실재적”이라는 말이 “관념적”이라는 말과 대립되는 의미에서 그것이 실재적인지 판단할 수 있는 과정이 없기 때문에 허구적임.

■ 형이상학의 진술은 무의미함 [pp. 55-56, 64-65쪽]
- 검증 원리가 주장하는 것
• 사실적 내용을 가지는 명제는 모두 경험적 가설.
• 경험적 가설의 기능은 경험에 대한 기대를 하게 하는 어떤 규칙을 제공하는 것.
• 모든 경험적 가설은 현실 경험이나 가능한 경험과 관련되어야 함.
• 따라서, 아무 경험과도 관련되지 않는 진술은 경험적 가설이 아니고 사실에 관한 내용도 가지지 않는다는 것.
- 형이상학자의 진술은 무의미함.
• 이는 형이상학자들의 언명(utterance)이 사실적 내용을 결여하기 때문이 아니라 선험적 명제(a priori proposition)가 아니라는 사실에서 도출됨.
• 형이상학적 문장은 진짜 명제를 표현하려고 하지만, 항진명제(tautology)도 아니고 경험적 가설도 표현하지 않음.

■ 형이상학적 주장이 만들어지는 과정 [pp. 56-59, 65-68쪽]
- 형이상학적 주장이 만들어지는 과정
• 우리는 사물 자체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는 단어나 어구를 도입하지 않고 사물에 관한 것을 언급할 수 없음.
• 그 결과 모든 이름에 단 하나의 실재적 존재자가 대응한다는 근본 가정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사물 자체와 감각될 수 있는 사물의 성질을 논리적으로 구별해야 한다고 가정함.
• 사물 자체를 가리키기 위해 “실체”라는 용어를 사용함.
• 문법에 관한 잘못된 생각 때문에 형이상학이 생겨남.
- 예: ‘존재’(Being)라는 형이상학적 개념
• 존재에 관한 명제를 표현하는 문장과 속성에 관한 명제를 표현하는 문장의 문법 구조가 동일함.
• 가능한 어떤 경험을 통해서도 대답할 수 없는 존재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려는 경향이 생김.
• 예) “순교자들이 있다”(Martyrs exist)와 “순교자들이 고통 받는다”(Martyrs suffer)가 문법적으로 동일해 보인다는 사실은 그 문장들의 논리적 형태가 동일하다고 생각하게 함.
- 그러나 칸트가 지적했듯, 존재는 성질(attribute)이 아님.
• 존재가 성질이라면, 모든 긍정존재명제는 항진명제가 되고 모든 부정존재명제는 자기모순이 됨.
• 비-존재적 존재자가 실재한다는 가정은 문장의 문법적 주어가 될 수 있는 모든 단어나 어구는 어딘가에 그에 대응하는 실재적 존재자가 있다는 가정에서 생겨남.
• 예) “유니콘은 가상적이다”와 “개는 충직하다”는 문법적으로 같은 구조
• 예) 무(Nothing)에 대한 하이데거식의 진술
- 전통적인 ‘철학의 문제’ 중 많은 것이 형이상학이며 허구적이라는 견해는 철학자들의 심리에 관한 믿기 힘든 가정을 포함하는 것이 아님.

■ [pp. 59-61, 69-71쪽]
- 형이상학자를 일종의 시인이라고 하는 견해
• 형이상학의 진술은 문자적 의미를 가지지 않으므로 참/거짓에 관한 기준과 부합되지 않음.
• 그러한 진술들은 감정을 표현하거나 일으키기 위해 사용될 수 있음.
• 그 결과 윤리적 기준이나 미학적 기준의 적용을 받을 수 있음.
• 그러므로 도덕적 영감의 수단이나 예술 작품으로서 가치를 가짐.
- 에이어: 철학에서 추방당하는 형이상학자들은 그런 보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
• 시인이 만드는 문장은 대부분 문자적 의미를 가짐.
• 예술 작품은 그것을 구성하는 모든 명제가 문자적으로 거짓이라는 사실 때문에 나빠지지 않음.
• 형이상학자들은 무의미를 의도하지 않음.
• 형이상학자들은 문법에 속거나 추론상의 잘못 때문에 감각세계는 비-실재적이라는 견해에 빠져 무의미한 문장을 만듦.
  
  
(2019.10.11.)
   

2019/09/25

일본 제품 불매운동 중 벌어진 김치 테러

   
간디의 물레가 아름다운 것은 조용하게 묵묵히 오랫동안 물레를 돌렸기 때문이다. 영국산 면직물을 찢고 불태우고 카레를 뿌렸다면 얼마나 추해보였을 것인가. 일본 제품 사용한다고 김치 테러를 하거나, 그런 테러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행동이 얼마나 추한지 모르는 것 같다.
  
  
(2019.07.25.)
    

2019/09/24

벽을 눕혀도 다리가 안 된다

     

벽을 눕히면 다리가 된다고 한다. 참신한 개소리다. 벽을 눕히면 다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건축 폐기물이 된다.
 
벽을 눕히면 하중을 못 견딘다. 벽돌담이 보기에는 튼튼해 보이지만 눕혀놓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철근콘크리트로 만든 벽이라고 해도 눕히면 하중을 못 견딘다. 잘 해봐야 징검다리 정도로나 쓸 수 있다. 벽과 다리는 설계부터 다르다. 벽을 눕혀서 다리로 쓸 수 있으면 미장일 하는 아저씨들 불러서 벽 만든 다음에 눕혀서 다리로 쓰지, 대학에 뭐 하러 토목공학과가 있겠는가.
    
  
(2019.07.24.)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예언한 알라딘 독자 구매평 성지순례

졸업하게 해주세요. 교수되게 해주세요. 결혼하게 해주세요. ​ ​ ​ ​ ​ * 링크: [알라딘] 흰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소설 ( 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4322034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