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라드 피엘(Gerard Piel)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을 대중 과학잡지로 키운 인물이다. 『라이프』지에서 과학부 편집자로 일하던 피엘은, 대중 과학잡지를 만들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오랜 전통을 자랑하지만 죽어가던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을 인수하여 1948년 5월에 첫 창간호를 냈다. 2001년에 출간된 『과학의 시대』(The Age of Science)에서 피엘은 그 당시의 일을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나는 작가로서, 편집자로서, 그리고 출판인으로서 20세기 중반 이후 전개된 객관적 지식을 향한 탐구를 관찰해왔다. 나의 임무는 각 과학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연구를, 과학적 모험의 첨단에서 일어나는 발전에 뒤처지지 않기를 원하는 더 넓은 독자층에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1940년대 당시 막 창간된 대중적 사진잡지 <라이프>(Life)의 과학부 편집자로 일하는 동안 나는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구심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나는 초보 편집자로 일하면서 만난 독자들을 위해 과학 잡지를 창간하기로 마음먹었다. 동업자와 지권과 필요한 자금을 모으는 과정에서 나는 <라이프>의 서례를 따랐다. 남은 일은 재미있는 잡지를 세상에 내놓는 일뿐이었다. 우리의 사업을 위해 나는 당시 거의 죽어가고 있던 102년 전통의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을 사들였다. 우리는 1948년 5월 옛 명칭을 붙인 새 잡지 창간호를 발간했다.(12쪽)
피엘이 과학 잡지의 편집인이니까 대학에서 과학을 전공했을 것이라고 짐작하기 쉬운데, 사실 피엘은 역사학도였다. 역사학도일 뿐 아니라 수학을 매우 싫어했다.
결국 이 일이 천칙이 되었지만, 내가 공부했던 것들은 이 일과 어울릴 법하지 않은 것들이다. 하버드 칼리지(Harvard College)에서 1937년에 내가 받은 학위는 역사학 학사학위다. 그 학위증은 내가 완전히 과학 문맹임을 보여주는 증명서이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거의 모든 미국 학생들이 그러한 것처럼, 수학과 과학에 대한 나의 위축감 역시 아주 일찍부터 생겨났다. 반복 훈련을 통해 가르치는 수학은 암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반항심이 생겼다. 멍청한 계산 실수 때문에 나는 대수학에서 창피함을 느꼈고, 그 후 수학 전체에서 모욕감을 느꼈다.(12쪽)
그랬던 피엘은 왜 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가?
하버드에서 내가 과학에 접근할 기회를 얻은 것은 사회학 연습시간을 통해서였다 머튼(R. K. Merton)이라는 이름의 대학원생이 나로 하여금 과학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전적으로 빠져들어야 한다는 원칙하에 그는 나로 하여금 거장들을 읽도록 시켰다. 토니, 뒤르켐, 마르크스, 좀바르트, 베버, 심지어 막 번역된 파레토까지 읽어야 했다. 나는 절망을 경험했고 역사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13쪽)
로버트 K. 머튼(Robert King Merton)이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한 것이 1935년이고 제러드 피엘이 하버드대에서 역사학 학사학위를 받은 것이 1937년이다. 피엘이 만난 사회학과 조교는 아마도 과학사회학의 그 로버트 K. 머튼였을 것이다. 머튼은 연구를 열심히 해서 사회학의 진로를 바꾸었고, 조교일도 열심히 해서 학부생의 진로도 바꾸었다.
* 참고 문헌
제라드 피엘, 『과학의 시대』, 전대호 옮김 (민음사, 2003).
(2019.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