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11

학부생의 진로를 바꾼 로버트 K. 머튼



제라드 피엘(Gerard Piel)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을 대중 과학잡지로 키운 인물이다. 『라이프』지에서 과학부 편집자로 일하던 피엘은, 대중 과학잡지를 만들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오랜 전통을 자랑하지만 죽어가던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을 인수하여 1948년 5월에 첫 창간호를 냈다. 2001년에 출간된 『과학의 시대』(The Age of Science)에서 피엘은 그 당시의 일을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나는 작가로서, 편집자로서, 그리고 출판인으로서 20세기 중반 이후 전개된 객관적 지식을 향한 탐구를 관찰해왔다. 나의 임무는 각 과학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연구를, 과학적 모험의 첨단에서 일어나는 발전에 뒤처지지 않기를 원하는 더 넓은 독자층에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1940년대 당시 막 창간된 대중적 사진잡지 <라이프>(Life)의 과학부 편집자로 일하는 동안 나는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구심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나는 초보 편집자로 일하면서 만난 독자들을 위해 과학 잡지를 창간하기로 마음먹었다. 동업자와 지권과 필요한 자금을 모으는 과정에서 나는 <라이프>의 서례를 따랐다. 남은 일은 재미있는 잡지를 세상에 내놓는 일뿐이었다. 우리의 사업을 위해 나는 당시 거의 죽어가고 있던 102년 전통의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을 사들였다. 우리는 1948년 5월 옛 명칭을 붙인 새 잡지 창간호를 발간했다.(12쪽)


피엘이 과학 잡지의 편집인이니까 대학에서 과학을 전공했을 것이라고 짐작하기 쉬운데, 사실 피엘은 역사학도였다. 역사학도일 뿐 아니라 수학을 매우 싫어했다.


결국 이 일이 천칙이 되었지만, 내가 공부했던 것들은 이 일과 어울릴 법하지 않은 것들이다. 하버드 칼리지(Harvard College)에서 1937년에 내가 받은 학위는 역사학 학사학위다. 그 학위증은 내가 완전히 과학 문맹임을 보여주는 증명서이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거의 모든 미국 학생들이 그러한 것처럼, 수학과 과학에 대한 나의 위축감 역시 아주 일찍부터 생겨났다. 반복 훈련을 통해 가르치는 수학은 암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반항심이 생겼다. 멍청한 계산 실수 때문에 나는 대수학에서 창피함을 느꼈고, 그 후 수학 전체에서 모욕감을 느꼈다.(12쪽)


그랬던 피엘은 왜 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가?


하버드에서 내가 과학에 접근할 기회를 얻은 것은 사회학 연습시간을 통해서였다 머튼(R. K. Merton)이라는 이름의 대학원생이 나로 하여금 과학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전적으로 빠져들어야 한다는 원칙하에 그는 나로 하여금 거장들을 읽도록 시켰다. 토니, 뒤르켐, 마르크스, 좀바르트, 베버, 심지어 막 번역된 파레토까지 읽어야 했다. 나는 절망을 경험했고 역사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13쪽)


로버트 K. 머튼(Robert King Merton)이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한 것이 1935년이고 제러드 피엘이 하버드대에서 역사학 학사학위를 받은 것이 1937년이다. 피엘이 만난 사회학과 조교는 아마도 과학사회학의 그 로버트 K. 머튼였을 것이다. 머튼은 연구를 열심히 해서 사회학의 진로를 바꾸었고, 조교일도 열심히 해서 학부생의 진로도 바꾸었다.

* 참고 문헌

제라드 피엘, 『과학의 시대』, 전대호 옮김 (민음사, 2003).

(2019.04.11.)


2019/06/10

국어 수행평가 시 쓰기



일주일에 한 번 고등학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저녁 6시 20분에 시작해서 8시에 끝나고 중간에 10분 쉰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수행평가 때문에 걱정하는 것을 들었다. 국어 수행평가인데 선생님이 어떤 단어를 제재로 제시하면 그에 맞는 시를 지어 와야 한다고 한다. 시 짓는 법을 가르치지도 않았을 것이고 시 감상 하는 법도 가르치지 않았을 텐데 시 짓는 것으로 수행평가를 하다니, 예나 지금이나 중등교육의 수행평가는 시간 낭비에 자원 낭비인 것이 분명하다. 마치 군부대에서 하는 이면지 활용과 비슷하다. 사단장이나 연대장이 각급 부대에서 이면지를 활용하라고 지시하면 이면지를 만들기 위해 새 종이에 아무거나 출력해서 이면지를 만들어 이면지 활용을 시행한다.

어떤 단어로 시를 쓰는지 학생들에게 물었다. 지하철, 집, 이런 것이라고 한다. 그까짓 걸로 무슨 시를 짓는단 말인가? 그런데 학생들에게 그런 단어를 듣자마자 시상이 떠올랐다. 곧바로 시를 지어 학생들에게 들려주었다.

지하철 4호선

지금

당고개

당고개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타는 곳 안쪽으로

물러서주시기

바랍니다

승강장

사이가 넓어

발이

빠질 수 있으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놀랍게도 곧바로 또 다른 시상이 떠올랐다.

네가 사는 그 아파트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부는 갈대숲을 지나

언제나 나를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너의 아파트

니가 사는 그 아파트

그 아파트가 내 아파트이었어야 해

니가 타는 그 차

그 차가 내 차였어야 해

나에게 이런 재능이 있었다니. 그러나 그 학생은 “그러면 큰일 나요. 국어 선생님한테 혼나고 빵점 받아요”라고 말했다.

(2019.04.10.)


2019/06/08

외국인 노동자들의 택배



택배를 보내러 집 근처 편의점에 들렀다. 택배 기계 앞에 외국인 두 명이 서 있었다. 내가 택배 기계 근처에 가자 외국인 한 명이 나보고 먼저 기계를 쓰라는 듯 비켜 서 주었다. 나는 택배 발송에 필요한 인증번호를 미리 받아왔기 때문에 금방 택배 여러 개를 부칠 수 있었다. 송장을 택배에 붙이고 편의점 직원에게 택배물품을 맡겼다. 편의점을 나오려고 할 때 옆에서 외국인이 서툰 한국어로 나에게 물었다. “이거 할 줄 아세요?” 택배 보내는 것을 도와달라는 말이었다.

편의점 택배함에는 택배물품이 하나도 없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택배를 맡긴 사람이 없었던 모양이다. 일요일 밤에 내가 택배를 맡기러 왔고 마침 그 외국인들이 나를 본 것이었다. 외국인들은 한국어가 서툴어서 다른 한국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편의점에 들어와서 물건을 사자마자 나갔을 것이고 점원은 계산하느라 바빴을 것이다.

외국인들은 택배 기계에 화면에 나오는 ‘이름’, ‘주소’ 같은 단어도 몰랐다. 자기 주소와 수신자 주소밖에 몰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주소를 아는 것도 아니었고 주소를 찍은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보여주는 정도였다.

수신자 중 한 명은 충북 음성군에 살았다. 주소지 끝부분이 “무슨 무슨 다방 위 원룸 몇 호”로 끝났다. 다른 수신자는 경남 거제에 살았다. 거제에 사는 사람도 주소지 끝부분이 “무슨 무슨 건물 원룸 몇 호”로 끝났다. 주소지 끝에 알파벳이 몇 자 있었다. 이게 뭔가 싶어서 보는데 둘 중 한국어를 조금 더 잘 하는 사람이 말했다. “아, 친구예요. 내 친구.” 외국인 노동자들은 음성에 사는 친구에게 과일을 보냈고 거제에 사는 친구에게 옷을 보냈다. 음성과 거제가 어떤 동네인지 알았다면 음성 사는 친구에게 옷을 보내고 거제에 사는 친구에게 과일을 보냈을 것이다.

동네 사람들에 따르면, 요즈음은 한국 사람한테 장사해서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들한테 장사해서 먹고 산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은 승용차를 타고 대형매장에 가서 물건을 사오는데 외국인들은 차도 없고 지리도 몰라서 동네에서 파는 싼 물건을 산다고 한다. 과일 상자 크기로 보아서는 몇 개 담지 못한 것 같았고 옷도 보나마나 싸구려 옷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외국인들은 꼭 좋은 것이 아니더라도 멀리 있는 친구한테 뭔가를 보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2019.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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