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16

[인식론] Hawthorne and Stanley (2008), “Knowledge and Action” 요약 정리 (미완성)

[ John Hawthorne and Jason Stanley (2008), “Knowledge and Action”, The Journal of Philosophy, 105(10): 571-590. ]

I. 이전의 제안 (A previous Proposal)

II. 우리들의 제안 (Our Proposal)

III. 반론과 답변들 (Objections and Replies)

IV. 결론 (Conclusion)

[p. 571]

표준적 견해: 지식과 행위 사이에는 아무 관련이 없음.

합리적 행위는 기대되는 효용을 최대화하기 위한 행위이고, 이때 기대되는 효용은 효용의 기능과 주관적 믿음의 문제일 뿐임.

즉, 합리적 행위를 결정짓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주관적 믿음의 정도에 따른 것

p에 대한 지식을 가진다는 것은 p에 대한 믿음에 근거해서 행위하는 것이 합리적이냐의 문제와는 완전히 독립적이라는 것

- 호손과 스탠리는 이러한 통념에 반대함.

[pp. 571-572]

일상적으로 행위의 합리성은 지식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님.

일상적인 몇 가지 예

존이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하여 보험을 들지 않았다고 그의 어머니가 야단을 칠 수 있는 것은 존이 앞으로도 건강할지 아플지에 대해 모르기 때문임.

감옥의 간수가 도망치려고 시도하는 죄수에게는 총을 쏘라고 명령을 받았는데, 정말 죄수가 도망치려고 했는지 모르고 단지 직감으로 총을 쏜다면 그의 직감이 맞아 죄수가 총을 맞을 당시 도망치려 했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해도 간수가 비난받는 이유는, 그가 행위 당시 죄수가 도망치려고 했는지 몰랐기 때문임.

[p. 574]

호손과 스탠리는 우리가 행위한다는 것은 단지 ‘정당화된 믿음’이라거나 ‘합리적인 믿음’에 근거한 것이 아닌 지식에 근거한 것이라고 강조함.

이러한 예들은 기대되는 효용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문제 이상으로 개인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도 그가 가진 지식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줌.

I. 이전의 제안 (A previous Proposal)

[pp. 574-575]

호손과 스탠리는 자신들의 이론을 펼치기 전에 먼저 Jeremy Fantl과 Matthew McGrath가 제기했던 지식과 행위에 관한 원리를 살펴봄.

The Knowledge-Action Principle: If you know that 𝑝, then it shouldn’t be a problem to act as if 𝑝.

위의 원리는 쉽게 반박됨. 내가 내 동생 철수가 암에 걸린 것을 알고 있는데,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임.

내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행동한다면, 내가 철수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과 나의 행동 사이의 관계는 설명할 수 없게 됨.

그래서 위의 원리는 수정됨.

The Refined Knowledge Action Principle

If 𝑋 knows 𝑃 during period 𝑑, then for any choice between states of affairs 𝑥₁... 𝑥ₙ during 𝑑, 𝑋 is rational to prefer one state of affairs 𝐴 to another state of affairs 𝐵 iff 𝑋 is rational to prefer 𝐴 to 𝐵 conditional on 𝑃.

수정된 원리에 의하면, 만약 내가 집에서 동생을 구박하는데 동생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구박하던 행동을 멈추었다면, 나는 구박하던 시기 동안 동생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

동생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더 이상 구박하지 않는다면, 구박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선택한 것이어서 앎과 행동 사이의 관계를 설명했다고 볼 수 있음.

[p. 575]

이런 식으로 지식과 행위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에 대해 호손과 스탠리는 반대하지 않음.

다만 이러한 원리가 지닌 빈틈을 채워야 하는데, 우선 세 가지 점에서 이 원리가 가지는 한계를 밝히고 자신들의 원리를 제시함.

[pp. 575-576]

먼저, 위의 원리에 의하면 지식과 행위의 관계를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함.

의사는 수술 중에 환자가 죽지 않는다는 것을 몰라도 의사는 수술할 것임.

그러나 의사가 수술 중 환자가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면 당연히 수술할 것이기 때문에, 의사의 수술 행위와 지식 사이의 관계를 설명한다고 볼 수는 없음.

[p. 576]

둘째, 만약 나의 친구가 다음 주 월요일 아침까지 안 갚으면 절대로 안 되는 빚을 갚기 위해 토요일까지 은행에서 돈을 인출해야 함.

이번에 기회를 놓치면 그는 꿈에 그리던 사업을 못할 수 있음.

그는 평소에 토요일에 은행문을 연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평소 같으면 토요일에 은행에 갔을 것임.

그러나 상황이 심각한 만큼 그는 금요일인 오늘, 내일 은행 문을 열지 안 열지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고 생각함. 그래서 그는 오늘 은행에 감.

우리는 그가 내일 토요일 오후 1시까지 은행 문을 연다는 사실을 안다고 생각해야 하는가?

그가 모른다면 오늘 은행에 가야하고, 안다면 안 가도 될 것임

이와 같이 어떤 사실을 알고 모르고가 먼저이고 합리성을 평가하는 것은 나중인데, Fantl과 McGrath는 합리적인 행위를 하지 못한 경우 그가 모른다고 판단하고 있어서 설명의 순서를 혼동했다고 말할 수 있음.

[pp. 576-577]

셋째, 나는 속도위반 하면 구청이 10파운드의 범칙금을 부과한다는 사실을 앎.

마찬가지로 서울시도 10파운드의 범칙금을 부과한다는 사실을 앎.

여러-전제 폐쇄성 원리에 의하면 나는 구청과 시청이 속도위반에 벌금을 부과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 됨.

내가 10파운드만 범칙금으로 낸다면 속도를 위반할 것이지만, 20파운드를 범칙금으로 내야 한다면 속도위반을 하지 않으려 할 것임. 그 확률은 80%임.

그런데 나는 90% 확률이 있는 벌금은 낼 각오로 속도를 위반하는 것은 선호하는데, 80%의 확률을 가진 두 관청에서 나오는 벌금을 내고 싶지는 않아 속도를 위반하지 않으려 함.

그러니까 나는 벌금이 하나만 나온다는 조건에서는 속도위반을 선호하면서 두 개가 동시에 나온다는 조건에서는 속도위반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선호하는 것이 됨.

벌금이 두 군데에서 동시에 나온다는 조건 하에서 속도위반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나는 구청과 시청이 속도위반에 대해 벌금을 부과한다는 사실은 모르게 됨. 왜냐하면 벌금을 두 개 다 낸다는 조건에서 선호가 바뀌었기 때문임.

그러나 이것은 여러-전제 폐쇄성 원리에 따라 내가 구청과 시청에서 속도위반에 대해 벌금을 부과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명제와 충돌함.

II. 우리들의 제안 (Our Proposal)

[p. 577]

많은 경우, 행위를 평가할 때 이론적 지식과 실천적 지식을 구분하려 하지만 호손과 스탠리는 이러한 구별에 대해 무시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 같음.

오히려 이 두 가지 지식이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닌 하나로 통합될 수 있음을 보이고자 함.

The Action-Knowledge Principle

Treat the proposition that 𝑝 as a reason for acting only if you know that 𝑝.

표준적인 견해는 행위의 근거를 정당화된 믿음에서 찾지만, 호손과 스탠리는 지식에서 그 근거를 찾음.

즉 p라는 명제를 알고 있을 때만 행위의 이유가 된다고 주장함.

[]

그러나 p라는 명제를 알고 있다는 것이 어떤 행위의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지는 못함.

관악구에 있는 속도위반 단속 카메라가 모두 고장이라는 사실을 내가 아는 것이 나의 속도위반을 설명해줄 수 있지만 영철이의 키가 크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 곧 나의 속도위반을 설명해줄 수는 없기 때문임.

따라서 이때 p라는 명제는 선택된 행위에 의존적이어야 함.

그것이 의존적인지 아닌지는 p라는 명제가 not-p가 되었을 때 행동이 변하는지 아닌지를 보면 알 수 있음.

만약 관악구에 있는 속도위반 단속 카메라가 고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 나는 속도위반을 하지 않을 것임.

그러므로 이 명제는 의존적임.

그러나 영철이가 키가 크지 않다는 사실을 안다고 해서 나의 속도위반 행위가 바뀔 것 같지 않음.

그러므로 이 명제는 의존적이지 않음.

이와 같이 명제 의존적인 선택적 행위까지 고려하여 다음과 같은 원리가 나옴.

The Reason-Knowledge Principle

Where one’s choice is 𝑝-dependent, it is appropriate to treat the proposition that 𝑝 as a reason for acting iff you know that 𝑝.

그렇다면 호손과 스탠리가 제시하는 이 원리가 앞에서 지적했던 ‘수정된 지식-행위 원리’의 한계를 해결할 수 있을까?

III. 반론과 답변들 (Objections and Replies)

[pp. 580-581]

반론1

결정 이론이 설명하듯이, 기대효용 최대화에 근거해서 인식적 가능성을 이용하여 최상의 기대효용이 나오도록 행동하면 되는 것이지, 굳이 행위에 이유까지 말할 필요가 있을까?

답변

누가 잘못된 이유로 어떤 행위를 하는 경우, 그것이 효용을 극대화하는 행동이라고 해도 그 행위의 동기에 대해서는 설명을 필요로 함.

우리가 어떤 행동을 온전히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 동기까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함.

느슨한 믿음으로 탈옥하려는 죄수를 쏟 간수의 경우, 실제로 총에 맞아 죽은 죄수가 탈출을 시도하려고 했다는 사실이 그의 행위를 합리화할 수 있을지 몰라도 동기를 설명하지는 못함.

오직 죄수가 탈옥하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만이 그의 동기를 설명할 수 있음.

[pp. 581-585]

반론2

우리는 부분적인 믿음에 근거하여 합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것처럼 보임.

내가 식당으로 가는데 갈림길이 나타난 경우, 나는 오른쪽보다 왼쪽에 식당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함.

오직 나의 선택만이 있고, 전화를 걸거나 지도를 찾아볼 수 없는 경우 내가 왼쪽 길을 택한 것을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합리적으로 보임.

그러나 나는 왼쪽에 식당이 있다는 것은 알지 못함.

답변

호손과 스탠리는 이에 대하여, 기대되는 효용이론을 선호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부분적인 믿음으로 한 행동이 합리적일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러한 행동이 그 행동의 이유를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주장을 펴면서, 우리가 부분적인 믿음이라고 알고 있는 것은 실제로 지식의 총체에 의해 결정되는 인식적 개연성으로 설명함.

여기서 호손과 스탠리는 부분적인 믿음이라고 알려진 것들에게 지식으로서의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인식적 개연성과 지식의 연관성을 확인하고 결국 우리의 행위가 합리적일 때, 그것은 부분적인 것들이 모인 지식에 근거한 것일 수 있음을 주장함.

[p. 585]

반론3

가능성이라는 개념을 가지지 못한 존재들도 이유에 맞게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

아마도 그들은 또한 부분적 믿음에 근거하여 합리적으로 행동할 수도 있을 것임.

그러나 당신들의 설명에 의하면 그들이 이러한 능력을 가져야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음. 왜냐하면 그들은 가능성에 관한 명제들을 이해할 능력이 없기 때문임.

답변

우리들의 제안은 가능성에 대한 개념이 부족할 때에도 이유에 맞게 행동할 수 있는 존재의 가능성과 완전히 일치함.

자연적인 언어에서 가능성과 유사한 구문들이 널리 퍼져있는데, 이는 비록 그들이 가능성의 본질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해도 가능성이라는 기본적인 개념은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에 이미 내장되어 있기 때문임.

[pp. 585-586]

반론4

어떤 사람이 알고 있기는 하지만 주관적으로 확신이 없는 경우, 그러니까 1보다 낮은 개연성을 가지고 행동했을 경우에도 합리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답변

우리가 집을 나설 때 가스 밸브가 잠겨 있는지 의심스럽더라도 다시 가서 확인하지 않고 그냥 잠겨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주관적인 의심의 정도가 어디서부터 확신이고 확신이 아닌지는 어느 경우에나 모호하게 남을 수 있음.

우리의 직관이 그다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인데 이 경우에도 합리적인 행위를 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함.

[p. 586]

반론5

행동을 할 때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히 모르는 경우에도 그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답변

우리가 단언할 때는 지식에 근거해야만 함.

이런 규범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해서 이 규범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p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할 모든 이유를 가지고 있으나 실제로 알지 못한 경우에도 p에 대해 단언하는 것은 봐줄 만함.

[p. 587]

반론6

비올 확률이 40% 정도라고 믿는 사람이 산책길에 우산을 가져가는 경우, 이유-지식 원리에 따르면 이들은 비가 올 가능성에 대해 알지 못했기에 비난받아야 함.

그러나 비가 올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충분히 정당화되든 말든 이런 사람들은 합리적임.

우리는 급하면 비올 가능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우산을 들고 급히 집밖을 나서기도 하기 때문임.

당신들의 견해에 따르면 이들도 비난받아야 하는가?

답변

여기서 비난은 강제적이지 않음. 누군가 규범을 위반했을 때도 이해할만한 근거에서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임.

도끼를 들고 죽이겠다고 덤비는 상황에서 지식에 근거하여 행동한다는 것 자체가 비합리적임.

마찬가지로 급하게 집을 나서야 하는 상황에서 우산을 들고 나오는 것이 내가 비올 가능성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합리성의 규범을 위반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임.

[pp. 587-589]

반론7

너희들의 결정이론의 틀은 우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함.

결정이론은 확률을 알고 있다면 어떠한 위험이라도 내기를 해야 하는데, 내기를 하지 말아야 하는 경우라면, 우리는 알고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답변

누군가가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 10명의 아이들이 죽고, 추위를 느끼는 경우 10원을 받는 내기를 제안할 경우, 이런 미친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을 뿐 아니라, 받아들인다면 비난을 받아야 할 것임.

그러니 결정이론이 잘못되었거나 우리가 추위를 느낀다는 것을 주관적으로 확신한다는 것을 부인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겠음.

그러나 투명성의 실패에 대한 일반적 관점을 넘어 할 말이 많음.

우선, 위험-민감성 전략이 있음.

위험의 정도가 높아지면 우리는 알고 있는 것도 모르는 경우가 될 수 있음.

이런 경우, 앞에서 제시한 내기의 경우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음. 아이들이 생명이 내기에 걸린 경우라면 그 경우 나는 추위를 느낀다는 것을 모른다고 해야 하기 때문임.

두 번째로는 실천적 추론에 대한 규범적 평가와 인식적 성격에 대한 규범적 평가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임.

어떤 사람이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판단과 인식적으로 결핍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다르게 나타날 수 있음.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구분을 하지 못한 경우라고 볼 수 있음.

내가 추위를 느끼는지에 대해서 아이들의 생명까지 걸린 내기에 내가 참여하지 않는다고 하여 내가 추위를 느끼는 것을 인식적으로 모른다고 말할 수 없음.

나는 내가 추위를 느낀다는 것을 인식적으로 확실히 알지만, 실천적 이성의 요구에 따라 내기에는 참여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임.

IV. 결론 (Conclusion)

[p. 590]

우리의 일상적인 개념적 계획은 그동안 표준적 결정이론과 도덕적 심리학자가 무시해온 지식과 이유 사이의 연관성을 제안하는 것임.

그들은 실천적 이론적 규제에 대하여 지식으로부터 자유로운 접근법으로 우리 자신을 규정해 왔었음.

이제는 지식의 가치가 행위를 위한 규범으로서의 역할에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임.

(2023.05.14.)

2019/04/15

고려사를 한 문장으로 줄인다면



어떤 대학원생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고려사를 한 문장으로 줄이라고 하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요?” 학원에서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을 대상으로 논술을 가르쳐야 하는데 전임자가 그런 방식으로 가르쳐서 자기도 그런 식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한다. 고려사뿐만 아니라 엘리자베스 여왕 같은 것도 가르쳐야 한다고 한다.


고려사를 한 문장으로 뭐라고 표현할지 3초 정도 생각해봤는데 마땅한 답이 생각나지 않았다. ‘전임자가 얼마나 고려사를 잘 알기에 고려사 500년을 한 문장으로 줄였나?’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전임자는 엘리자베스 여왕도 한 문장으로 줄여서 설명했다. 웬만한 역사 전공자라고 해도 고려사와 영국사를 모두 잘 알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그랬다는 것은 전임자가 전문 지식 없이 상식에 기초해서 수강생들을 대충 후려쳤다는 말이다. 그러니 질문에 대한 답을 굳이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나 같으면 이렇게 할 것이다. 첫 시간에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고려사를 한 문장으로 줄인다면 뭐라고 해야 할까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답하지 않으면 몇 명 지목해서 질문한다. 몇 명은 모른다면서 대답을 피할 것이고, 몇 명은 까불면서 이상한 대답을 할 것이고, 몇 명은 나름대로 진지한 대답을 할 것이다. 이렇게 분위기를 진지하게 몰아간 다음에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교육 하는 사람들 중에 고려사 같은 것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뭐라고 뭐라고 하는 사람이 있거든요? 다 사기꾼입니다. 조선 초기에 『고려사』를 편찬해요. 그러고 나서 『고려사절요』가 나옵니다. 『고려사절요』가 왜 나왔느냐. 『고려사』의 분량이 너무 많아서 축약본이 나온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줄인 『고려사절요』도 양이 많단 말이에요. 고려사를 한 줄로 줄일 수 있으면 한 줄로 줄이지 『고려사절요』를 왜 편찬했겠어요? 고려사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어떠어떠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다 사기꾼입니다. 제대로 알고 그런 소리 하는 게 아니에요.”


이렇게 말해도 구습에 젖어서 의심스러운 눈으로 강사를 바라보는 학생들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면 그 학생을 지목해서 물어본다. “너 몇 살이야?”, “열다섯 살이요.”, “네 인생을 한 문장으로 설명해봐.” 잘 대답할 리 없고 설사 대답을 잘 해도 트집 잡으면 된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말한다. “15년 인생도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 어려운데 고려사 500년을 한 문장으로 설명한다고 하면 그 사람은 사기꾼이겠어 아니겠어?”


내가 하려는 말이 청자가 기존에 알던 것과 배치된다면 청자를 한 번 흔들어놓고 나서 원래 하려는 말을 꺼내는 것이 좋다. 이것은 중세 전쟁에서 기병으로 상대 진영을 흔들어놓은 다음에 보병을 보병으로 밀어붙이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시장에 새로 진입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능력이 웬만큼 되는 사람이라면, 시장을 점유하는 사람을 한 번 밟고 가는 것도 좋은 전략일 수 있다.



(2019.02.15.)


2019/04/14

역사학을 창의성 교육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지난 학기에 경제학과 학부 수업을 들었다. 평소에 창의성을 강조하시던 선생님은, 수강자 중 희망자에 한하여 방학 때 모여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자리를 가지자고 학기 말에 제안하셨다. 선생님이 나를 개인적으로 여러모로 신경써주셨기 때문에, 성의라도 보여야겠다고 생각하여 나도 발표하기로 했다.

발표 주제와 형식은 모두 자유였다. 나는 발표 시간을 고려하여 두 가지만 발표하기로 했다. 선생님이 로버트 루카스의 제자인 만큼 인적 자원 축적에 관한 내용을 발표했다. 첫 번째 발표는 학문 간 교류에 관한 것이다. 학문 간 교류가 중요하다면서 교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해봤자 비용만 많이 들고 효과는 별로 없을 것이니 대학원생에게 커피 쿠폰을 주면서 다른 과 대학원생을 만나게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내용이다. 예전에 페이스북에 썼던 것이다. 두 번째 발표는 역사 교양교육 방식을 바꾸면 같은 내용을 가르치면서도 더 나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오늘날 한국의 역사 교양교육은 학생들의 사고력을 기르는 것과 무관하다고 본다. 역사 교양교육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사교육에서 역사나 사회 과목을 가르치던 사람들이 교양교육 시장으로 진입한 경우다. 설민석이나 최진기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수험용 역사교육의 연장선에서 단순 암기 위주의 정보를 제공하며 빈약한 내용을 신파나 애국주의로 만회한다. 다른 하나는 정상적인 역사 전공자들이 대중 교양시장에 진입한 경우다. 이들은 사교육 강사 출신들과 달리 비교적 전문적이고 정확한 지식을 전달한다. 그러나 이들이 하는 교양교육도 단순한 정보 전달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학생들의 사고력 향상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둘의 차이는 신파를 섞은 파편적인 정보 전달이냐, 조금 더 정확하고 체계적인 정보 전달이냐의 차이밖에 없다.

나는 단순히 교육 방식만 바꾸어도 학생들의 교육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창의성을 ‘도전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정된 자원을 활용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면, 그에 맞는 역사 교양교육은 충분히 가능하다. 실제 역사에는 창의력을 발휘하여 문제를 해결한 사례가 널려 있기 때문에, 그러한 실제 사례들을 소개하고 문제 해결의 원리를 탐구하게 하는 교육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인류 역사는 끊임없는 문제 해결의 연속이므로, 역사 교양교육도 일종의 연습 문제 풀이처럼 구성할 수 있다. 학생들로 하여금 자기가 연습문제로 주어진 상황에 처했다면 어떤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할지 생각하는 연습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배경 지식을 부가적으로 습득할 수도 있다.

내가 만든 연습 문제는 다음과 같다.


- 문제(1): 에라토스테네스는 지구 둘레를 어떻게 측정했는가?

- 문제(2): 조충은 코끼리의 무게를 어떻게 쟀는가?

- 문제(3): 콜럼버스는 왜 서쪽으로 항해했는가?

- 문제(4): 동아시아는 왜 금속활자를 잘 활용하지 않았는가?

- 문제(5): 모스는 모스 부호 순서를 어떻게 정했는가?


문제(3)을 예로 들어보자. 콜럼버스는 왜 신대륙으로 갔는가? 중교등학교 때 다들 배웠다. 향료 등에 대한 수요가 생기고 오스만 투르크가 길을 막고 대항해 시대가 열리고 등등. 그런데 당연하다는 것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옛날부터 널리 알려졌다. 지구가 네모라고 생각해서 서쪽으로 안 간 게 아니다. 이미 고대 그리스에서는 지구 둘레를 오늘날 우리가 아는 것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측정했다. 이걸 설명하면서 에라토스테네스의 지구 둘레 측정 방법을 학생들에게 제시한다. 그러면, 콜럼버스가 살던 당대에도 배운 사람들은 인도에 가려고 서쪽으로 가면 한참 돌아가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을 추론하게 된다. 당대 항해술을 고려하면 서쪽으로 항해하는 것은 지구가 네모가 아니어도 미친 짓이다. 이러면서 당대 항해술이 어떤 건지 선박이 어떻고 등등을 설명한다. 이렇게 죽 설명하면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게 이상하다는 자연스럽게 생각이 들게 된다.

문제(5)는 모스가 모수 부호의 수서를 정할 때 알파벳별 사용 빈도를 어떻게 알아냈냐는 것이다. 모스 부호는 이진법을 통해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다. 길게 누르는 것이 1, 짧게 끊는 것이 0이다. 모스 부호로 효율적인 정보 전달을 하려면 사용 빈도가 높은 알파벳에 최대한 작은 수를 부여하고 사용 빈도가 낮은 알파벳에 비교적 큰 수를 부여해야 한다. 그런데 19세기 기술로 알파벳별 사용 빈도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는 오늘날보다 기술 수준이 낮은 상황에서 어떻게 빅 데이터를 활용했는지 추론하는 문제이다.

내 발표가 끝나자 선생님은 유학 시절 이야기를 하셨다. 역사학을 창의성 교육에 활용하자는 내 발표를 들으니 유학 시절이 떠오른다고 하셨다. 그 선생님은 시카고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으셨는데, 미국 대학원에 한국 대학원과 다른 특별한 게 없는데도 학생들이 잘 해서 신기했다고 한다. 문제 풀고 시험 보는 게 한국이나 미국이나 똑같은데 미국 학생들이 훨씬 잘 하더라는 것이다. 학부에는 뭐 다른 게 있나 싶었는데, 조교하면서 봐도 한국이나 미국이나 문제 풀고 시험 보고 똑같았다고 한다. 두 나라의 차이는 초등학교에 있다고 하셨다.

선생님의 딸은 초등학교를 미국에서 다녔다. 미국 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숙제로 이런 것을 내주었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피라미드 안에 고양이 그림을 많이 그렸다. 왜 그랬는지 조사해오시오.” 그러면 학생들은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으면서 과제를 하는 것이다. 한국 초등학교는 학생들에게 하루 종일 암기만 시키고 집에 가서 하루 종일 암기한 것을 복습하는 것을 숙제로 내주는데 미국 초등학교는 어려서부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생각하게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봐도 <서울대에서 누가 A+를 받는가> 류의 논의는 혹세무민에 불과한 것 같다.

* 뱀발(1)

내 발표가 다 끝나고 나서 선생님은 혹시 사교육 같은 것을 해본 적이 있는지 물어보셨다. 여기서 말하는 사교육은 입시 관련 사교육이 아니라 교양교육과 관련된 사교육이다. 선생님은 지금 발표한 것 같은 내용으로 사교육을 하면 설민석이나 최진기보다 한국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것 같다고 하셨다. 나는 감사한 말씀이지만 박사학위를 받은 것도 아니고 연구자로서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은 경거망동할 때가 아닌 것 같다고 답했다. 선생님은 그래도 이런 걸 썩히면 아까우니 유튜브라도 하는 것이 어떠냐고 하셨다. 나는 감사한 말씀이지만 그러면 지도교수님이 걱정하시니 아직은 경거망동할 때가 아닌 것 같다고 답했다. 선생님은 그렇게 몇 번을 권하셨고 나도 몇 번 사양했다. 그런데 내가 그 선생님의 지도 학생이 아니어서 편하게 말씀하신 것이지 그 선생님 지도 학생 중에 나 같은 사람이 정말 있었으면 그 선생님은 골치를 썩였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선생님은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아, 아쉽네. 경거망동이라... 그래요, 빨리 박사학위 받았으면 좋겠네요. 수고했습니다.”

* 뱀발(2)

- 문제3의 답: 콜럼버스는 오차가 상당히 큰 지도를 가지고 있었고, 그 지도에 근거해서 인도 항해를 하려고 했다.

- 문제5의 답: 조수를 시켜서 근처 출판사, 인쇄소, 신문사의 알파벳별 활자 개수 순위를 알아보도록 했다.

(2019.02.14.)


[KOCW] 경제학 - 파생상품론

■ 강의 영상+자료 ​ 파생금융상품론 / 이시영 (동국대, 2014년 1학기) ( www.kocw.net/home/cview.do?cid=dad6dbf28a4e66d0 ) ​ ​ ■ 강의 자료 ​ 파생상품론 / 윤평식 (충남대, 2011년 2학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