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07

고등 종교의 기능

     

지난 주에 어머니께서 이모, 외삼촌과 함께 외가에 다녀오셨다. 주말에 외가 식구들이 외가에 있는 교회에서 오전 예배를 보았다. 시골 교회라 신도들 대부분이 노인이다. 목사님 설교 중에 신도들이 꾸벅꾸벅 졸았고 이모, 외삼촌들도 졸았다. 이모 중에 교회를 심하게 다니는 분이 있는데 외가 식구들이 외가로 돌아올 때 그 이모가 “성령이 충만하면 잠이 안 오는데 잠의 마귀에 빠져서 설교 중에 꾸벅꾸벅 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무당 뒷다리 잡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졸리면 조는 거지 무슨 마귀 같은 소리를 하고 앉았어. 내가 너 같은 사람들 때문에 교회를 안 다니는 거야.” 이모 말이 맞다면 성령이 부족할 때는 카페인 음료를 마시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에게는 잠의 마귀를 처방하면 되겠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어머니는 집에 돌아와서 너희 이모가 미쳤다고 몇 번을 말씀하시더니 교회를 심하게 다니는 친척 할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예전에 그 할머니가 우리집에 오셔서는 처마 밑에 친 거미줄을 보고 빗자루로 황급히 거미줄을 치우며 “거미는 거미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거미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지는 모르지만, 거미가 거미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지 않고 사람처럼 세상을 보면 그게 더 무서울 것 같다.
  
두 분은 모두 비교적 체력도 약하고 정신적으로도 약한 편이며 심지어 빙의 체험도 했다. 내가 보기에 두 분은 사이비 종교에 빠지고도 남을 사람들인데, 그런 두 분이 사이비 종교 같은 데 빠지지 않고 가정을 유지하며 정상적으로 사는 것은 기독교 덕분이다. 사이비 종교는 가진 것을 모두 내놓으라고 하지만 개신교는 소득의 10분의 1만 내라고 하고, 사이비 종교는 가정을 버리고 와서 종교 시설에서 살라고 하지만 개신교는 가정에 충실하고 일주일에 두세 번만 교회에 나오라고 한다.
  
내가 종교학 같은 건 배워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내가 관찰한 바로는 종교의 순기능 중 하나는 사람들이 조금 이상해 보이는 것을 믿게 해서 정말 이상한 것을 안 믿게 하고 이를 통하여 사회를 유지하는 것 같다. 물론, 조금 이상해 보이는 것도 안 믿고 정말 이상한 것도 안 믿으면 되지 않느냐고 반박할 수 있는데, 세상 일이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사람들 중에는 육체든 정신이든 태어날 때부터 약한 사람이 있고, 정신적으로 강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잠시 정신이 약해질 때가 있다. 항상 약한 사람이든 가끔 약한 사람이든, 약한 사람의 극단적인 이상 행동을 막아 개인과 가정의 평화를 안전을 지켜준다는 점에서, 고등 종교는 일종의 사회적 안전 장치로써 기능한다고 볼 수 있다.
  
  
(2018.08.07.)
    

2018/10/03

거실 방충망에 자란 넝쿨 식물

     

넝쿨 식물은 착한 넝쿨 식물과 나쁜 넝쿨 식물로 나눌 수 있다. 이 구분은 학계에서 정식으로 채택한 것은 아니고 내가 임의로 만든 말이다. 착한 넝쿨 식물은 줄기에서 넝쿨손이 나와 주변 사물을 휘감아 올라간다. 이 식물은 건물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 나쁜 넝쿨 식물은 줄기에서 산 성분을 분비해서 주변 물질을 녹여서 줄기를 벽에 부착한다. 이런 식물이 벽을 타고 올라가 양철 지붕까지 도달하면 양철 지붕에 구멍이 뚫려서 천정에서 비가 샐 수도 있다. 나팔꽃, 오이, 인동초 같은 식물이 착한 넝쿨 식물에 속하고 새삼이나 담쟁이는 나쁜 넝쿨 식물에 속한다.
  
5년 전 봄, 거실 방충망에 어떤 넝쿨이 달라붙은 것이 보였다. 방충망에 붙은 것은 착한 넝쿨 식물이었다. 어머니가 호미로 잡아 뽑는다는 것을 내가 말려서 넝쿨 식물은 계속 자랄 수 있었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되자 넝쿨 식물이 방충망을 가득 채우게 되었다. 마치 줄을 맞춘 것처럼 방충망을 타고 올랐다.
 
 
 
 
 
이후에도 넝쿨 식물은 매년 자랐지만 5년 전만큼 예쁘게 자라지 않는다. 매년 자라기는 하지만 삐뚤빼뚤 자라든지 시들시들하든지 한다. 올해도 넝쿨 식물은 예쁘게 자라지 않았다. 5년 전에 사진을 찍어두기를 잘했다.
  
  
(2018.08.03.)
    

2018/10/02

경제신문 논설위원이 쓴 경제학 교양서적을 읽고



아르바이트 때문에 청소년용 경제학 교양서적을 읽을 일이 있었다. 경제학을 인문학적 시각에서 본다는, 제목부터 수상한 책인데, 역시나 내용도 좋지 않았고 구성도 엉성했다. 경제신문 논설위원이 쓴 책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였다.

그 책은 1장부터 이상하다. 저자는 『맨큐의 경제학』에 나오는 10대 기본 원리를 소개한 뒤 우리 관점에서 쉽게 와 닿지 않거나 잘 이해되지 않는 것들도 있다면서 각자 ‘나만의 경제원리’를 찾아보자고 한다. 맨큐가 제시한 10대 원리가 어떤 점에서 와 닿지 않는지 설명한 다음 자기만의 경제 원리를 찾든 말든 하는 것이 옳을 텐데, 굳이 ‘나만의 경제원리’를 찾는 이유를 모르겠다. 아마도 책의 분량을 채우기 위해 『맨큐의 경제학』을 베껴야 하겠는데, 대놓고 베끼면 문제가 생기니까 그렇게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저자가 제시한 10대 원리 중 네 번째 원리는 “무료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것이다.(20-21쪽) 맨큐가 제시한 경제학의 기본 원리 중 첫 번째는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있다”는 것인데 저자는 이를 인용하여 공짜 점심은 없다는 서양 속담과 같은 의미라고 설명한다. 역시나 ‘나만의 경제원리’ 같은 것은 굳이 찾을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저자는 영 엉뚱한 소리를 한다. 휴대전화 요금에 무료 통화 몇 분을 제시하는 것이나 경품 행사 등에서 공짜라고 제시하는 것은 공짜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맨큐의 경제학』에서 말하는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있다”는 것은 기회비용을 말하는 것이며 의사 결정에서 어떠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상충되는 다른 목표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저자가 제시한 사례는 상품 가격에 반영되지만 공짜로 위장된 것을 말하는 것이다.

2장에서는 비교 우위를 설명하면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다스를 언급한다. 미다스의 손에 닿는 것은 전부 황금이 되어서 굶어 죽었다는데, 저자는 미다스의 손이 애덤 스미스가 말한 절대 우위에 해당한다고 설명하고 리카도의 비교 우위 소개를 하다가 FTA를 꺼낸다. FTA를 체결할 때마다 거론되는 농업이 비교열위 산업에 해당되는데 “1차 산업인 농업을 2차, 3차 산업화 하는 것을 6차 산업이라고 부른다”면서 1+2+3이나 1×2×3이나 모두 6이 된다는 데서 나온 개념이라고 한다.(47-52쪽)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절대 우위와 비교 우위를 설명하는데 왜 미다스의 손이 나오는 것이며, 6차 산업은 왜 나오는가?

꼼꼼히 읽을 만한 책이 아니었지만 아르바이트 때문에 죽 훑어가면서 끝까지 다 보았는데, 책에 이상한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분명히 저자 소개에는 “A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B대학교 경제대학원을 나와 경제신문 기자로 26년째 일하고 있다”고 했는데, 책만 놓고 보면 <경제학 원론>도 안 들은 것 같았다. 경제학과 대학원을 나왔다는 사람이 어떻게 책을 이 모양으로 쓸 수 있나 싶어서 RISS에서 석사 논문을 찾아보았다. 박사는 당연히 아닐 거고 어쩌다 석사 학위는 받았나보다 하고 석사 논문을 찾았는데, 학위 논문이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석사도 아니었던 것이다. 석사 수료면 석사 수료라고 적어야지 “B대학교 경제대학원을 나와”라고 적으면 대학원을 졸업한 줄 알 것 아닌가? 대학원을 때려치우고 나온 건지 쫓겨나온 건지는 모르겠으나, 졸업한 것도 아니면서 “대학원을 나와”라고 쓰면 대학원에서 학위 받은 것으로 오해하라는 것밖에 안 된다.

더욱 놀라운 점은, 저자가 책을 한 권만 쓴 것이 아니라 여러 권 썼으며, 심지어 경제학 강연을 하며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맨큐의 경제학』도 제대로 소화했는지 의심스러운 사람이 행동경제학을 소개하는 책을 쓰고 그 책을 가지고 강연까지 한다. 강연자 약력에는 경제대학원을 나왔고 경제신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경제학 서적의 저자라는 것이 항상 나온다. 최소한의 상도덕이라도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대학원 다니다 망한 사람이 개떡 같은 책을 쓰고 청소년 대상으로 약을 팔고 다닌다고 하면 그런가 보다 하겠다. 그런데 해당 저자는 <◯◯경제신문>의 논설위원이다. 경제학에 대해 제대로 아는지 의심스러울 뿐 아니라 최소한의 상도덕도 없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경제신문에서 최저임금이 어떠네 법인세가 어떠네 하며 사설을 쓴다는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예전에 이준구 선생님이 강연 중에 “내가 모르는 것을 신문논설위원들이 어떻게 압니까”라고 하셨을 때는 ‘아, 저런 게 전문가의 위엄인가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경제신문 논설위원이 쓴 3류 교양서적을 읽고 나니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2018.08.02.)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예언한 알라딘 독자 구매평 성지순례

졸업하게 해주세요. 교수되게 해주세요. 결혼하게 해주세요. ​ ​ ​ ​ ​ * 링크: [알라딘] 흰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소설 ( 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4322034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