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의 노래가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책이 꽤 많이 팔렸다고 한다. 매트릭스로 철학하고 라디오헤드로 철학하고 심지어 나꼼수로도 철학한다는 마당에 무엇으로는 철학을 못 하겠는가? 공연예술학 박사 학위 논문 중에는 조용필 노래가 맹자 사상을 담고 있다는 논문도 있다.
나는 방탄소년단으로 철학을 한다는 책을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책이 어떤지 말할 수 없다. 그런데 그것과 별개로, 노래 가사에 아무 말이나 붙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며 별다른 노력이나 숙고도 필요로 하지 않음은 누구나 알 수 있다. 방탄소년단 노래 중에 <피 땀 눈물>이라는 것이 있다는데 여기에 아무 말이나 붙여보자.
<피 땀 눈물>은 2차 대전 때 있었던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노래한 것이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다. 2차 대전 때 소련은 인민들에게 피 땀 눈물을 요구했다. 가사를 살펴보자.
내 피 땀 눈물 내 마지막 춤을 다 가져가, 가
내 피 땀 눈물 내 차가운 숨을 다 가져가, 가
내 피 땀 눈물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군에게 포위된 소련 인민들이 공화국에게 자신의 피 땀 눈물을 바치겠다는 내용이다. “마지막 춤”은 독일군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겠다는 의미를 드러낸다. 숨이 따뜻하지 않고 차가운 것은 그만큼 소련의 날씨가 춥기 때문이다.
내 피 땀 눈물도
내 몸 마음 영혼도
너의 것인 걸 잘 알고 있어
이건 나를 벌 받게 할 주문
Peaches and cream, sweeter than sweet
Chocolate cheeks and chocolate wings
“벌 받게 할 주문”이라는 것은 스탈린그라드가 독일군에게 포위되어 식량이 떨어진 상황에서 달콤한 것을 상상하는 것조차 죄책감이 든다는 뜻이다. 공산주의의 가치가 내면화된 소련 인민을 잘 표현한 것이다.
피 땀 눈물을
But 너의 날개는 악마의 것
너의 그 sweet 앞엔 bitter bitter
“너의 날개”는 독일군 폭격기를 의미한다.
Kiss me 아파도 돼 어서 날 조여줘
더 이상 아플 수도 없게
Baby 취해도 돼 이제 널 들이켜
목 깊숙이 너란 위스키
“Kiss me 아파도 돼 어서 날 조여줘”는 독일군의 공습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소련 인민들의 항전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더 이상 아플 수도 없게”는 더 이상 파괴될 건물조차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스탈린그라드가 폐허가 되었음을 뜻한다. “위스키”는 kiss me와 운을 맞추기 위한 시적 허용이다. 소련 사람들은 보드카를 마셨다.
아파도 돼 날 묶어줘 내가 도망칠 수 없게 (쉿)
꽉 쥐고 날 흔들어줘 내가 정신 못 차리게
Kiss me on the lips, lips
“아파도 돼 날 묶어줘 내가 도망칠 수 없게”는 스탈린이 소련군에게 내린 항복 금지 명령을 나타낸다. “꽉 쥐고 날 흔들어줘 내가 정신 못 차리게”는 소련군 병사가 항복할 경우 남은 가족들이 배급을 받지 못해서 배가 고파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둘만의 비밀 너란 감옥에 중독돼 깊이
니가 아닌 다른 사람 섬기지 못해
알면서도 삼켜버린 독이 든 성배
“너란 감옥”은 독일군에게 포위된 스탈린그라드를 가리킨다. “니가 아닌 다른 사람 섬기지 못해”는 독일군에게 투항할 수도 없게 된 상황을 나타낸다.
나를 부드럽게 죽여줘
너의 손길로 눈 감겨줘
어차피 거부할 수조차 없어
더는 도망갈 수조차 없어
니가 너무 달콤해 너무 달콤해 너무 달콤해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나은 비참한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니가 너무 달콤해 너무 달콤해 너무 달콤해서”는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영양실조와 저체온증에 시달리는 화자의 아득한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하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갖다 붙여도 되고, 팔만대장경을 갖다 붙여도 되고,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를 갖다 붙여도 되고, 일리아드나 아라비안 나이트를 갖다 붙여도 될 것이다. 그런데 그딴 식으로 아무거나 막 갖다 붙이는 것이 철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는가,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는가?
(2018.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