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는 대학원에 아르바이트가 들어왔다. 어떤 기업에서 책읽기 모임을 하는데 책에 관한 강의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책 읽기 모임에서 읽기로 한 책이 과학사 책이어서 과학사 전공자가 그 일을 하겠거니 했는데 아무도 그 일을 하겠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학생조교한테 물어보았다. “얼마야?”, “OO만원.” 내가 하기로 했다.
흔히들 책모임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나 모여서 아무 책이나 읽고 아무 말이나 아무렇게나 하다가 엄한 사람한테 생돈을 갖다 바치는 호구들의 사교 모임이다. 그런데 고전을 읽기로 하고 대학원에 강의 요청을 했다는 것은 참여자들이 나름대로 체계적인 독서를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고객들이 만족할 수 있을 것인가.
직원들이 읽기로 한 책은 찰스 길리스피의 『객관성의 칼날』이다. 직원들 중에 과학사 전공자 출신이 있거나 읽을 책을 잘못 고른 것이다. 아르바이트 일주일 전, 책읽기 모임 책임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강의 때 그 책을 읽을 때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추천해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 전화를 받고 나는 감을 잡았다. 그 사람들은 책을 잘못 고른 것이다.
견적을 내보았다. 40분 강의하고 20분 동안 질의응답을 받아야 한다. 분명히 사람들은 책을 잘못 골랐다며 혼란에 빠져있을 것이다. 『객관성의 칼날』은 총 열 장으로 구성된다. 책 내용을 전부 설명한다면 책 소개를 하는데 한 시간이 필요하고 각 장을 설명하는 데 한 시간씩이 필요하니 총 열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것은 분명하다. 본문 내용 소개를 최대한 줄이고 책 읽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배경 정보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렇게 40분 간 배경 정보를 설명하고 5분 간 본문 내용을 배경 정보와 연관 지어 설명했다(원래 40분짜리로 준비했는데 5분 넘쳤다). 참석자들 반응을 보면 내가 견적을 괜찮게 낸 것 같다.
나는 책모임 참석자들에게 『객관성의 칼날』을 읽을 만 했느냐고 물었다. 다 읽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많이 읽은 사람은 1/3 정도 읽었는데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책모임 담당자는 서울대 권장도서 목록에 있는 책이라서 골랐는데 책을 잘못 고른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권장도서라는 것은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읽으라고 권장하는 것이지 목록에 나오는 책을 본인들이 다 읽었다는 것이 아니므로 일반인이 그대로 따라하면 낭패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2018.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