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07

택시기사 아저씨의 음담패설



택시기사들이 승객들한테 말을 걸어서 짜증났다는 이야기를 가끔씩 듣는다. 택시기사가 새누리당을 지지해서 승객이 기사와 싸웠다는 이야기도 몇 번 들었다. 내 경우에는, 택시기사가 쓸데없이 말을 건 적도 별로 없고 정치 이야기를 한 적도 거의 없다. 대신, 택시기사가 주행 내내 음담패설을 한 적은 있다. 택시기사가 미친놈이었다.

흔히들 아저씨들이 하는 음담패설은, 본인들이 신동엽도 아니면서 주제 파악 못하고 유머 감각을 자랑하거나 사회통념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롭고 소탈한 사람인 척 하려고 할 때 벌어지는 일련의 참담한 일이다. 그래도 음담패설을 하기 전에는 분위기를 살피거나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이 택시기사는 미친놈이었고 나를 포함한 승객들이 탑승하고 택시문을 닫자마자 인사말처럼 음담패설을 시작했다.

음담패설이라는 것이 재치나 해학이 있어야 하는데, 이 택시기사가 하는 음담패설은 그런 것은 하나도 없고 원색적이기만 했다. 김형곤이나 최병서 같은 옛날 개그맨들이 하는 음담패설에도 스토리텔링이 있고, 『고금소총』 같은 옛날 책에 나오는 음담패설에도 은유와 비유가 있는데, 택시기사의 음담패설에는 밑도 끝도 없이 무작정 원색적인 이야기만 있었다. 이야기를 하다 야한 이야기를 한두 마디 한 것도 아니고 신촌에서 낙성대까지 가는 내내 그런 이야기만 했다. 내가 들은 야한 이야기 중에 이렇게 재미없고 더럽고 불쾌한 이야기는 처음이었다. 승객 중 아무도 그 이야기에 동조하거나 호응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는데도 택시기사는 혼자 계속 이야기를 했다. 보통 미친놈이 아니었다. 택시에 나 포함해서 남자만 네 명 탔는데 하도 불쾌해서 승객들이 항의하고 화내고 택시기사와 싸우게 되었다.

택시기사 아저씨의 메시지는 단순했다. 남자는 거시기만 크면 장땡이다, 거시기만 크면 아무 것도 안 해도 된다, 여자가 다 먹여 살려주니까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신촌에서 낙성대까지 가는 내내 그 이야기만 한 것이다.

나는 기숙사 입구에서 택시에서 내렸다. 내가 겪은 일이 하도 황당해서 피식피식 웃으면서 혼자 기숙사로 걸어갔다.

‘저 아저씨는 남자가 거시기만 크면 일 안 해도 된다면서 본인은 저렇게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어?’

택시기사도 나름대로 불쌍한 아저씨였던 모양이다.

(2017.12.07.)


2018/02/06

방과후학교 한 학기를 마칠 때 학생들의 반응



지난주 화요일(11월 28일) 고등학교에서 방과후학교를 할 때 업체 직원이 교실에 와서 나에게 인사하며 이렇게 말했다. “어? 학생들이 많이 남았네요?” 시작할 때 여덟 명밖에 안 되는데 여기서 더 줄어들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방과후학교에서 교육학을 가르쳤는데 그 때는 스물네 명으로 시작해서 일주일 만에 세 명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방과후 학교는 일주일에 한 번만 가르치니까 수업 한 번 듣고 학생들이 1/8로 줄어든 것이다. 고등학생들에게 교육학을 가르쳐서 어디에 쓰나 모르겠는데, 아마도 해당 강사는 가뜩이나 재미없는 것을 굉장히 열심히 가르친 모양이었다.

사람이 무슨 일을 하기 전에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주제 파악이다. 대학원생이 교수 같은 마음으로 가르치면 교수보다 못 가르치면서 교수보다 더 재미없게 가르치게 된다. 많이 가르칠 것도 없고 열심히 가르칠 것도 없고 고등학생들이 알아들을 만큼만 가르치면 된다. 학교에서 내신 부풀리려고 방과후학교를 하는 건데 수능에도 안 나오는 것을 가르치면서 교사도 아닌 사람이 학생들한테 교사인 척 하면 안 된다. 나는 학생들이 수업 중에 음식물 먹는 것, 자는 것, 화장실 가는 것, 다른 과목 공부하는 것 등을 다 허용했다. 단, 떠드는 것은 금지했다. 나의 노동 강도를 높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떠들기는 했다.

그리고 나는 학생들한테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어른인 내가 아이들한테 진실된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런 식으로 말했다. “방과후학교를 왜 하냐? 내신 부풀리려고 하는 거 아니냐.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예습 복습 같은 거 다 필요 없고 저녁 시간에 와서 그냥 좋은 이야기 듣는다 생각하고 듣고 가든지, 잠깐 쉬었다 간다고 생각하고 왔다 가든지 해라. 그런데 떠들지는 마라. 내 노동 강도가 높아지니까.”, “철학은 무슨 얼어 죽을 놈의 철학이냐. 먹고 사는 데 도움 되냐, 생애소득이 증가 하냐? 그런 거 없다.”, “고등학생이 무슨 놈의 과학철학이냐, 과학이나 잘 하지. 너네 과학 잘 하냐? 모의고사 보면 1등급 나오냐? 과학철학이 중요한 게 아니고 모의고사 1등급 나오는 게 훨씬 중요하다.”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났다. 학교에서는 11월 28일 이후 일정은 학생들하고 알아서 협의해서 처리하라고 했다. 서류상으로는 일정이 2주 남았고 학교 일정상 실질적인 일정은 1주 남은 상황에서 나는 11월 28일에 수업 때 학생들에게 네 가지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

(1) 한 주 더 수업하고 과학철학을 배운다.

(2) 한 주 더 수업하고 과학철학 아닌 것을 배운다.

(3) 오늘까지만 배운다.

(4) 기타

이렇게 칠판에 쓰고 익명으로 투표를 했다. 나는 모두 (3)번을 선택할 줄 알았는데, 여덟 명 중 두 명은 (2)번을 선택했고 한 명은 투표용지에 “기권”이라고 썼다. 내가 진심으로 학생들을 대했더니 진심이 일부 통했나 보다.

(2017.12.06.)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예언한 알라딘 독자 구매평 성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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