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2/09

셰익스피어와 방어회



며칠 전에 방어회를 먹었다. 태어나서 처음 먹었다. 내가 한국에서 30년 넘게 살았는데 처음 먹었다. 먹고 나서, 이렇게 맛있는 생선이 있다니, 그동안 어머니는 나한테 방어회를 왜 안 사줬을까, 어머니는 나를 사랑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방어회를 먹으며 술을 마시고 나서 며칠 동안 술을 안 먹으니 아무래도 술을 먹어야할 것 같았다. 술을 먹어야겠는데 뭐 하고 먹어야 할까. 마침 숙소 근처에 횟집이 있었다. 방어회를 먹기로 했다. 마침 그날 계좌에 돈이 들어왔다.

몇 주 전, 나는 어느 중고서점에서 <시공사 셰익스피어 선집 세트>를 사서 온라인 중고서점에 매물로 올려놓았다. 팔리면 팔고 안 팔리면 내가 읽을 생각이었다. 동료 대학원생이 내 상품을 보고 사고 싶어 했다. 동료는 매물로 올린 가격대로 사겠다고 책을 했지만, 아는 사람끼리 값대로 다 받는 것이 좀 그래서 나는 얼마 깎아서 팔았다. 그래도 밑지지 않고 몇 푼 남기기는 했다.

횟집에 가서 방어 반쪽에 채소와 초고추장 추가해서 1만 1천 원 주고 샀다. 편의점에서 맥주를 샀다. 맥주 맛은 잘 모르지만 회에는 독일 맥주보다는 일본 맥주를 마시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350ml짜리 기린 맥주 다섯 캔을 1만원에 샀다.

숙소에 와서 혼자서 회에 맥주를 먹었다. 혼자 먹으면 무슨 맛이냐는 사람도 있는데, 좋은 음식은 혼자 먹어도 맛있다. 여럿이서 흥겹게 먹는 맛도 있지만 혼자서 멀거니 앉아 꼭꼭 씹어 먹는 맛도 있다.

가난했던 이덕무는 <한서> 한 질을 이불 삼고 <논어> 한 권을 병풍 삼아 겨울을 났다고 하니 반고와 공자 덕에 겨울을 난 셈이다. 나는 셰익스피어 덕분에 회 한 접시를 먹었다.

(2016.12.09.)


2017/02/08

트럼프 관련 자기계발서가 정말로 나오다



나는 트럼프 관련 자기계발서가 나올 것이라고 지난달에 예측했다. 내 예측이 실현되었다. 『트럼프: 승자의 생각법』이라는 책이 2016년 12월 5일에 출간되었다.






(2016.12.08.)


2017/02/06

성균관대 총동창회보를 보고



총동창회에서 동창회보가 온다. 동창회비 내라고 동창회보가 온다.

동창회보 1면에는 “모교 건학 618주년”이라고 큼지막하게 써있다. 성균관대와 조선시대 성균관 사이에 연속성에 대해서는 형이상학적인 탐구가 필요할 것 같은데, 이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역사가 장구하다고 자랑한다. 그런 글을 보면 내가 쓴 글도 아닌데 괜히 남사스럽다.

조선시대 성균관과 성균관대 사이에 연속성이 있다고 하면 조선시대 웬만한 인물들은 죄다 성균관대 출신이 된다. 정도전, 이황, 이이, 정약용, 김정희, 홍대용, 유형원 등이 자랑스러운 학교 선배가 되고, 세종은 대학 이사장이 된다. 학생들 공부 열심히 하고 교수들 연구 열심히 하고 동문들 열심히 산다고만 해도 총동창회보에 쓸 내용은 충분할 것 같은데, 그렇게도 학교에 자랑할 것이 없는지 총동창회보에는 항상 유구한 역사가 장강처럼 흐른다. 그런데 이조차도 충분하지 않다고 여겼는지 동창회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2000년대 모교는 인재창출 요람으로 부상했다. 정홍원・이완구・황교안 국무총리와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의 등장으로 역사 속 인물들의 맥을 잇고 있다.”





유구한 역사까지는 그런가보다 하겠는데 이건 아니다 싶다. 나는 지금까지 총동창회비를 안 냈는데 앞으로도 안 낼 거다. 나중에 돈 많이 벌어도 절대로 총동창회비는 안 낼 거다.

내가 투덜투덜하니까 동료 대학원생이 이렇게 말했다. “〇〇씨, 그러지 마요. 저희 학교는 난리도 아니었어요.” 그 사람은 서강대를 졸업했다.

(2016.12.06.)


2017/02/04

논술 캠프 아르바이트를 하고 나서

     

올해 11월 하순에 논술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학부생 때도 논술 아르바이트가 들어온다고 하는데 나는 대학원 들어온 지 4년이 지나서야 논술 아르바이트가 처음 들어왔다. 용인에 있는 기숙학원에서 5일 동안 먹고 자면서 논술 첨삭을 했다.
  
논술 특강은 5일 동안 진행되었다. 학생들은 강의 듣기 전에 각자 알아서 논술 문제를 풀어본 다음, 강의 듣고 나서 다시 논술 문제를 푼다. 그렇게 논술 문제를 푼 것을 첨삭 선생님에게 가져와서 첨삭받고 글을 수정한 다음, 수정한 것을 다시 첨삭 선생님한테 첨삭 받는다. 내가 한 일은 논술 첨삭이었다.
  
나는 논술 아르바이트 하기 전까지 대입 논술을 풀어볼 일이 없었으니 약 12년 만에 처음 대입 논술을 풀어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학원에서는 별도의 교육 없이 나를 논술 첨삭에 투입했다. 그렇게 저녁 먹고 조금 쉬었다가 곧바로 논술 첨삭을 시작했다. 학생들한테 논술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나는 그 전에 주워들은 것에 근거하여 대학에서 논술 문제를 어떻게 채점할지 나름대로 상상해보았다.
  
1만 6천 명 정도 다니는 대학이 있다고 하자. 1학년부터 4학년까지 1만 6천 명이니까 이 학교는 1년에 4천 명씩 뽑는다. 요즈음은 정시에서는 논술을 안 보고 수시에서는 논술을 본다고 한다. 수시로 뽑는 학생이 입학 정원의 절반이 넘는다고 하는데 일단 절반을 뽑는다고 가정하면 1년에 2천 명이다. 경쟁률이 1대3이면 6천 명이 논술 시험을 보고 1대4면 8천 명이 논술 시험을 본다. 그 많은 것을 누가 채점할 것인가? 외부 인력을 사서 채점했다가 문제라도 생기면 아무도 책임질 수 없으니 내부 인력으로 해야 한다. 교수・강사 다 동원해봐야 몇 명 안 된다. 그 중에서도 이과대・공대・의대・약대 교수한테 논술 채점을 시킬 것 같지는 않다. 전문대학원도 다 뺀다. 그러면 문과 계열만 남는데 그 중에서도 상경 계열에서 논술 채점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 인문대의 몇 개 과만 남는다. 한 줌도 안 되는 사람들이 엄청난 양의 논술 시험지를 채점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줌도 안 되는 사람들이 그 많은 논술 답안지를 채점한다면 글을 꼼꼼하게 읽을 리 없다. 아마도 채점 기준에 따라 기계처럼 채점해야 할 것이다.
  
채점자가 기계처럼 채점한다면 응시자도 기계처럼 글을 써야 한다. 논술 시험은 백일장이 아니다. 제시문이 있고 논술 문제에는 논술시 지켜야 할 요구사항이 있다. 그러니 시키는 대로만 써야 하고 시키는 만큼만 써야 한다. 누군가 창의성을 발휘해서 출제자가 생각하지도 못한 답안을 써낸다고 하자. 그것을 누가 알아줄 것인가. 산더미처럼 논술 답안지를 쌓아놓고 채점을 할 텐데 누가 그런 것을 신경 쓸 것이며, 한 학교에 지원하는 사람들 수준이 다 거기서 거기인데 채점하다 놓치는 것에 누가 죄책감을 느낄 것인가. 운으로 교수가 된 사람이 있고 강사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을 텐데 채점자의 수준을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학생들한테 가르쳐야 할 방향이 분명해졌다. 기계처럼 글을 쓸 것, 논술 문제에서 요구하는 대로 요구하는 만큼만 글을 쓸 것, 어느 제시문의 어느 부분에 근거하는지 분명히 드러낼 것, 글의 논리적인 구조를 명확하게 보여줄 것, 가산점을 생각하지 말고 감점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안전하게 글을 쓸 것, 창의성 같은 것은 생각하지 말 것, 뜬금없이 착한 이야기를 한다거나 한국 사회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지 말 것 등등.
  
5일 동안 중앙대 논술 문제 여섯 세트 풀었는데, 문제 내용만 다르지 형식은 모두 동일했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한테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구조의 문제라고 하면서, 1번 문제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고 여섯 문장으로 쓰면 되고 2번 문제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고 여덟 문장으로 쓰면 된다고 했다. 논술 답안지를 학생이 보는 앞에서 대학이 제시한 채점 기준에 맞춰서 플러스 펜으로 촥촥촥 표시하며 빠뜨린 부분을 지적한 다음, 구조를 지적하고 내용을 지적하면 전달해야 할 내용을 10분 안에 다 전달할 수 있다.
  
첨삭할 때 글의 구조를 지적하기 전에 내용부터 지적하면 몇 가지 문제가 생긴다. 하루에 한 명당 두 번씩 30명을 첨삭해야 하는데 글의 세세한 부분을 짚어주게 되면 하루종일 말하게 되어 체력 소모가 너무 심해진다. 그래서 어떤 선생님은 마지막 날에 목소리가 거의 안 나왔다. 또, 글의 내용을 지적하면 자기가 쓴 글의 내용이 원래는 이런 것이었다면서 우기는 학생들이 나타나는데, 이러면 노동 강도만 높아진다. 글의 논리적인 구조를 먼저 짚은 다음 내용을 지적해야 말이 먹히고 노동 강도가 줄어든다. 혹시라도 자기가 글을 잘 썼다고 말하려고 하는 학생이 있으면 이렇게 물으면 된다. “대학에서는 논술 답안을 어떻게 채점할 것 같아요?” 이러면 대부분 걸려든다. 내가 첨삭한 학생 중에는 자기가 쓴 글이 맞다고 우긴 학생이 한 명도 없었다.
  
예전에 어떤 철학박사는 논술 책에서 조언이랍시고 논술 답안을 쓸 때 참신한 예를 들라고 했다. 자기가 논술 채점하는데 똑같은 글을 보니 지겨웠다는 것이다. 다른 문학박사는 학생들이 사교육 영향을 받아서 획일적으로 쓰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내가 5일 동안 논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보니 그런 건 다 개소리였다. 논술은 다양한 목소리를 내라고 만든 시험이 아니라 학생이 글을 읽고 출제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 또 이해한 것을 언어로 논리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지를 보는 시험이다. 제시문이 있고 논술 요구사항이 있으니 일정한 형태로 글을 쓰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박사씩이나 된 사람이 채점자 재미있으라고 논술 답안지에 참신한 예를 들라고 한다니, 이런 것을 보면 대학에서 논술 시험이 제대로 운용되기나 하는지 충분히 의심할만하다.
  
  
(2016.12.04.)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예언한 알라딘 독자 구매평 성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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