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2/04

논술 캠프 아르바이트를 하고 나서

     

올해 11월 하순에 논술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학부생 때도 논술 아르바이트가 들어온다고 하는데 나는 대학원 들어온 지 4년이 지나서야 논술 아르바이트가 처음 들어왔다. 용인에 있는 기숙학원에서 5일 동안 먹고 자면서 논술 첨삭을 했다.
  
논술 특강은 5일 동안 진행되었다. 학생들은 강의 듣기 전에 각자 알아서 논술 문제를 풀어본 다음, 강의 듣고 나서 다시 논술 문제를 푼다. 그렇게 논술 문제를 푼 것을 첨삭 선생님에게 가져와서 첨삭받고 글을 수정한 다음, 수정한 것을 다시 첨삭 선생님한테 첨삭 받는다. 내가 한 일은 논술 첨삭이었다.
  
나는 논술 아르바이트 하기 전까지 대입 논술을 풀어볼 일이 없었으니 약 12년 만에 처음 대입 논술을 풀어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학원에서는 별도의 교육 없이 나를 논술 첨삭에 투입했다. 그렇게 저녁 먹고 조금 쉬었다가 곧바로 논술 첨삭을 시작했다. 학생들한테 논술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나는 그 전에 주워들은 것에 근거하여 대학에서 논술 문제를 어떻게 채점할지 나름대로 상상해보았다.
  
1만 6천 명 정도 다니는 대학이 있다고 하자. 1학년부터 4학년까지 1만 6천 명이니까 이 학교는 1년에 4천 명씩 뽑는다. 요즈음은 정시에서는 논술을 안 보고 수시에서는 논술을 본다고 한다. 수시로 뽑는 학생이 입학 정원의 절반이 넘는다고 하는데 일단 절반을 뽑는다고 가정하면 1년에 2천 명이다. 경쟁률이 1대3이면 6천 명이 논술 시험을 보고 1대4면 8천 명이 논술 시험을 본다. 그 많은 것을 누가 채점할 것인가? 외부 인력을 사서 채점했다가 문제라도 생기면 아무도 책임질 수 없으니 내부 인력으로 해야 한다. 교수・강사 다 동원해봐야 몇 명 안 된다. 그 중에서도 이과대・공대・의대・약대 교수한테 논술 채점을 시킬 것 같지는 않다. 전문대학원도 다 뺀다. 그러면 문과 계열만 남는데 그 중에서도 상경 계열에서 논술 채점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 인문대의 몇 개 과만 남는다. 한 줌도 안 되는 사람들이 엄청난 양의 논술 시험지를 채점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줌도 안 되는 사람들이 그 많은 논술 답안지를 채점한다면 글을 꼼꼼하게 읽을 리 없다. 아마도 채점 기준에 따라 기계처럼 채점해야 할 것이다.
  
채점자가 기계처럼 채점한다면 응시자도 기계처럼 글을 써야 한다. 논술 시험은 백일장이 아니다. 제시문이 있고 논술 문제에는 논술시 지켜야 할 요구사항이 있다. 그러니 시키는 대로만 써야 하고 시키는 만큼만 써야 한다. 누군가 창의성을 발휘해서 출제자가 생각하지도 못한 답안을 써낸다고 하자. 그것을 누가 알아줄 것인가. 산더미처럼 논술 답안지를 쌓아놓고 채점을 할 텐데 누가 그런 것을 신경 쓸 것이며, 한 학교에 지원하는 사람들 수준이 다 거기서 거기인데 채점하다 놓치는 것에 누가 죄책감을 느낄 것인가. 운으로 교수가 된 사람이 있고 강사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을 텐데 채점자의 수준을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학생들한테 가르쳐야 할 방향이 분명해졌다. 기계처럼 글을 쓸 것, 논술 문제에서 요구하는 대로 요구하는 만큼만 글을 쓸 것, 어느 제시문의 어느 부분에 근거하는지 분명히 드러낼 것, 글의 논리적인 구조를 명확하게 보여줄 것, 가산점을 생각하지 말고 감점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안전하게 글을 쓸 것, 창의성 같은 것은 생각하지 말 것, 뜬금없이 착한 이야기를 한다거나 한국 사회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지 말 것 등등.
  
5일 동안 중앙대 논술 문제 여섯 세트 풀었는데, 문제 내용만 다르지 형식은 모두 동일했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한테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구조의 문제라고 하면서, 1번 문제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고 여섯 문장으로 쓰면 되고 2번 문제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고 여덟 문장으로 쓰면 된다고 했다. 논술 답안지를 학생이 보는 앞에서 대학이 제시한 채점 기준에 맞춰서 플러스 펜으로 촥촥촥 표시하며 빠뜨린 부분을 지적한 다음, 구조를 지적하고 내용을 지적하면 전달해야 할 내용을 10분 안에 다 전달할 수 있다.
  
첨삭할 때 글의 구조를 지적하기 전에 내용부터 지적하면 몇 가지 문제가 생긴다. 하루에 한 명당 두 번씩 30명을 첨삭해야 하는데 글의 세세한 부분을 짚어주게 되면 하루종일 말하게 되어 체력 소모가 너무 심해진다. 그래서 어떤 선생님은 마지막 날에 목소리가 거의 안 나왔다. 또, 글의 내용을 지적하면 자기가 쓴 글의 내용이 원래는 이런 것이었다면서 우기는 학생들이 나타나는데, 이러면 노동 강도만 높아진다. 글의 논리적인 구조를 먼저 짚은 다음 내용을 지적해야 말이 먹히고 노동 강도가 줄어든다. 혹시라도 자기가 글을 잘 썼다고 말하려고 하는 학생이 있으면 이렇게 물으면 된다. “대학에서는 논술 답안을 어떻게 채점할 것 같아요?” 이러면 대부분 걸려든다. 내가 첨삭한 학생 중에는 자기가 쓴 글이 맞다고 우긴 학생이 한 명도 없었다.
  
예전에 어떤 철학박사는 논술 책에서 조언이랍시고 논술 답안을 쓸 때 참신한 예를 들라고 했다. 자기가 논술 채점하는데 똑같은 글을 보니 지겨웠다는 것이다. 다른 문학박사는 학생들이 사교육 영향을 받아서 획일적으로 쓰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내가 5일 동안 논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보니 그런 건 다 개소리였다. 논술은 다양한 목소리를 내라고 만든 시험이 아니라 학생이 글을 읽고 출제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 또 이해한 것을 언어로 논리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지를 보는 시험이다. 제시문이 있고 논술 요구사항이 있으니 일정한 형태로 글을 쓰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박사씩이나 된 사람이 채점자 재미있으라고 논술 답안지에 참신한 예를 들라고 한다니, 이런 것을 보면 대학에서 논술 시험이 제대로 운용되기나 하는지 충분히 의심할만하다.
  
  
(2016.12.04.)
     

2017/02/03

<쓰리랑 부부>를 모르는 후배들

     

노회찬과 심상정이 정치적 동반자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동시에 정치적 경쟁자이기도 하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술자리에서 어떤 정당인이 이 이야기를 할 때 나는 정의당 사정은 잘 모르지만 옆에서 이런 추임새를 넣었다. “그러니까 노회찬-심상정은 김한국-김미화 같은 사이라는 거지. 심상정이 ‘음메 기 살어’ 이러면 옆에서 노회찬은 ‘음메 기 죽어’ 이런다는 거지.”
  
이 말에 1985년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은 웃었는데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눈을 말똥말똥 뜨고만 있었다. 그들은 <쓰리랑 부부>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김한국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김한국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아, 이렇게 나이 들고 늙고 그러다 아재가 되나 보다’ 하고 탄식을 하고는 술을 퍼마셨다. 그런데 사실, 꼭 그 이유 때문에 술을 퍼마신 것은 아니었다.
  
  
* 오늘의 한 마디: “괴물이 될지언정 아재는 되지 맙시다.”
  
  
(2016.12.03.)
    

2017/02/02

[과학사] Richmond (1997), “A Lab of One’s Own: The Balfour Biological Laboratory for Women at Cambridge University, 1884-1914” 요약 정리 (미완성)

     

[ Marsha L. Richmond (1997), “A Lab of One’s Own: The Balfour Biological Laboratory for Women at Cambridge University, 1884-1914”, Isis, 88(3): 422-455. ]
  
  
- 이 논문은 1884년에 설립된 The Balfour Biological Laboratory를 다룸
- The Balfour Biological Laboratory는 캠브리지 대학에서 Natural Sciences Tripos 경연대회를 대비하여 Newnham and Girton College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과학을 교육할 목적으로 만든 것임.
- Tripos는 캠브리지 학생들을 대상으로 열리는 일종의 경시대회. 이 대회가 1881년에 최초로 여성들에게 개방되었으며, 그에 기인하여 여성들을 위한 과학교육 기관으로서 The Balfour Biological Laboratory가 설립됨.

- 1870년 이후 여성들에게 과학 분야의 고등교육이 개방되었으며, 이는 과학에서의 여성들 의 역사에 한 분기점이 됨.
- The Balfour Biological Laboratory도 이러한 경향의 산물로서, 여성과학도들이 생명체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hands-on experience)을 하고 새로운 실험생물학의 실용적 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설립됨.

- Cambridge에서 생명과학 분야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경험했던 장벽과 그를 극복하는 문제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과학 분야에 일반화되어 있던 여성들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 사례임. (p. 454)
- Cambridge에서 여성에 대한 교육이 시작된 이후 30년 간 많은 우수한 여성 과학자들이 배출되었으며 적지 않은 경우에 “꽤 쓸 만한 연구 결과”(p. 455)가 나오기도 했고, 때로 “천재”라는 칭호가 주어지기도 함.
- 그러나 더 넓은 영역에서 과학 커뮤니티에 귀속되어 완전한 참여를 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이들은 대학에서 그들 여성 과학자들만의 하위 문화를 형성함.
  
  
(2018.10.27.)
     

2017/02/01

능력자 열전 - 김영식 선생님 편

  

   

세상에는 여러 능력자들이 있고, 그러한 능력자 중에는 공부 능력자도 포함될 것이다. 공부 능력자라고 하면 고시 3관왕 고승덕 변호사 같은 사람들을 떠올리기 쉬운데,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분 중에서는 아마도 김영식 선생님이 대표적인 공부 능력자로 손꼽힐 것이다. ‘김영식’이라는 이름이 이전 세대에서는 흔한 이름이라 선생님들 중에 여러 분 계시는데, 내가 말하고자 하는 김영식 선생님은 동양사학자인 김영식 선생님이다.

김영식 선생님은 하버드 대학에서 화학물리로 박사 학위를 받고(1973년) 서울대 화학과 교수가 되었다(1977년). 일단 이것만 해도 대단한 건데, 김영식 선생님은 서울대 화학과 교수가 되고 나서 3년 뒤 프린스턴 대학의 과학사-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동아시아 과학사 연구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1980년). 그러니까 김영식 선생님은 전혀 다른 분야에 걸쳐서 박사학위가 두 개이며 모두 세계 최상위권 대학에서 받은 것이다. 김영식 선생님은 박사학위만 두 개인 것이 아니라 교수도 두 학과에서 했다. 화학과 교수를 그만 둔 김영식 선생님은 곧바로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로 부임했다(2001년).

김영식 선생님은 1984년에 서울대에서 과학사-과학철학 협동과정을 창설했다. 어느 학기에는 과학철학을 공부하겠다고 하는 기계공학과 학부생이 과학사-과학철학 협동과정 면접을 보았다. 면접장에서 김영식 선생님은 성적표를 보고 그 학생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자네는 계절 학기까지 했는데 왜 이렇게 성적이 안 좋은가?” 성적이 안 좋으니까 계절 학기를 듣는 것인데, 김영식 선생님은 공부 능력자라서 계절 학기까지 했는데도 성적이 안 좋은 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기계공학과 학생은 그러한 질문을 받고 자기가 떨어졌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질문은 대학원 입학 면접에서 흔히 물어보는 것이다. 그 학생은 과학사-과학철학 협동과정 석사 과정에 입학하여 박사 학위까지 받았고, 나중에는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가 되었다.

* 출처: 장〇〇 선생님 (<제5회 우당 이회영 선생 기념강좌>)

(2016.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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