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16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한 <빗소리>



대학원 와서 신기한 것을 많이 보았다. 그 중 하나가 <빗소리>다. <빗소리>는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 학부생들이 만든 단체다. 어쩌다 <빗소리>의 주동자(?)를 만나게 되었다. 주위에 사람이 없을 때 나는 주동자한테 슬쩍 물어보았다.

- 나: “좋은 일 하시네요. 그런데 어디 소속이세요?”

- 주동자: “아, 저 철학과 소속이에요.”

- 나: “철학과인 건 아는데요, 그런 소속 말고 진짜 소속이 있을 거 아니에요?”

- 주동자: “철학과 맞는데.”

- 나: “에이, 다 알면서 왜 그러실까. 어디 소문 안 낼 테니까 말해 봐요. 나도 이 학교에 뭐가 있는지는 대충 알아요.”

주동자는 <빗소리>를 만든 경위를 나에게 말해주었다. 누군가 학교 커뮤니티에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에 관한 글을 올렸고 사람들이 여기에 반응해서 단체를 만들게 되어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다. 아무리 들어도 『치즈와 구더기』 같은 이야기였다.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일 중에서 좋은 건 우라늄 농축 같아서 역량을 쏟아도 잘 되기 힘들다. 어느 학교 어느 학생회 망했다더라, 어느 동아리 망했다더라, 어느 단체 없어졌다더라 하는 일은 숱하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일 중에 나쁜 건 생물 농축 같아서 밥 잘 먹고 잠만 잘 자도 알아서 척척 진행된다. 신입생들 오리엔테이션 한다고 애들을 모아놓으면 선배라는 놈들이 과 전통이라고 하면서 성희롱을 하지 않나, 학내 노동자들이 시위하면 왜 학교를 시끄럽게 만들어서 학습권을 침해하냐고 항의하지 않나, 학내 노동자들이 월급 더 받으면 우리가 등록금 더 내야 한다면서 천막 농성장 가서 깽판치지 않나, 하여간 온갖 꼴 보기 싫은 일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잘 한다. 그러니, 학교 커뮤니티에서 서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자연 발생적으로 이런 단체를 생겼다는 이야기는 치즈에서 구더기가 나오듯 혼돈 속에서 신과 인간이 생기고 자연이 질서 잡히게 되었다는 이야기만큼이나 신비로운 이야기다. 뼈대 있고 족보 있는 단체도 망해 자빠지는 판인데 어느 운동 단체에도 소속된 적이 없는 사람들이 이런 단체를 만든다니 말이 되나?

그러던 중 학교 곳곳에 붙은 <빗소리> 간담회 현수막을 보고 일말의 의심을 풀었다. 특정 정파에 소속된 사람들이 만든 현수막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산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단체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이렇게 신기한 일이 종종 일어났으면 좋겠다.





(2016.11.16.)


2017/01/15

100만 명이 모여 고작 평화시위 했다고 실망하는 사람들



11월 12일 광화문에 100만 명이 모였다. 어떤 사람들은 평화시위가 박근혜 정권에 무슨 타격을 주겠느냐며 폭력/비폭력 구분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깜깜한 소리다.

나도 그 날 광화문에 있었다. 언론에서는 100만 명이나 모인다고 하고 내 주변에서도 정치에 아무 관심 없는 사람까지 집회에 나가겠다고 하는 판이었다. 그렇다면 학부 때 나와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은 죄다 광화문으로 나올 것 아닌가? 나는 광화문에서 유사-동문회를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경솔한 생각이었다.

후배들과 광화문역 5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광화문역에 내렸는데 승강장에서 어떤 사람이 “5번 출구가 막혀 있으니 8번 출구로 나갑시다!”라고 소리쳤다. 나는 경찰이 5번 출구를 막은 줄 알고 8번 출구로 향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경찰이 안전 등의 이유로 5번 출구를 막은 것이 아니라 그냥 내리는 사람이 많아 5번 출구가 막힌 것이었다. 별 생각 없이 1번 출구로 나갔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사람들과 뒤엉켰다. 지하철역에서 나오려는 사람,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려는 사람, 그냥 인도에 멀거니 서 있는 사람 등이 뒤엉켰다. 하도 사람들하고 비벼져서 마치 비빔밥의 밥알이 된 것 같았다. 지나가게 비키라는 사람, 좌우로 길을 트라는 사람, 밀지 말라는 사람들이 서로 아우성쳤다. 출퇴근 지하철이 지옥철이라면 이건 그냥 지옥이었다. 나는 후회했다. ‘그냥 연말에 만나자고 할 걸 나는 왜 굳이 여기서 보자고 해서 지옥체험을 하나’ 하고.

발 디딜 틈 없이 모인 사람들 사이에 끼었을 때 ‘이런 상황에서 전경들이 들이닥치면 나는 꼼짝 없이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최 측은 사람들이 다닐 통로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다. 이 정도로 사람이 많이 모였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이들의 움직임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도에 서 있는 사람들은 뒤엉켰고 차도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옆 사람과 거의 들러붙어 있었다. 인원을 운용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세종로 쪽은 양옆이 건물로 막혀 있고 길목이 좁다. 경찰 입장에서 방어에 유리하고 적은 인원만 동원해도 많은 인원을 포위할 수 있는 지형이다. 고대 전투에서 전투 중 한 쪽이 학살당하는 것은 대체로 이런 상황에서다. 게다가 시위에 참여한 사람 중 상당수는 나이가 많거나 어려서 물리적인 충돌에 취약했다. 이런 상황에서 평화시위 말고 다른 것을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금 같은 상황에 폭력/비폭력 구분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다. 집회에서 왜 물리적인 충돌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고 어떤 상황에서 폭력/비폭력 구분에 연연하지 말아야 하는지도 모르니까 그딴 소리나 하는 것이다. 시위에서 물리적인 충돌이 일어나는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시위대가 어디로 가려는 것을 전경이 막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충돌이 일어나는 것이며, 어쩌다 보니 피를 보는 것이다. 폭력/비폭력 구분에 연연하지 않으면 뭘 어쩔 것인가? 도대체 뭘 하고 싶다는 것인가? 아무 것도 없다.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놈들이 어디서 낭만에 취해서 아무 말이나 하는 것뿐이다. 물리적인 충돌을 하면 시위대가 훨씬 많이 다친다. 전경들은 젊고 운동도 하고 훈련도 받고 보호 장구에 진압 장비까지 갖추지만 시위대는 그냥 맨 몸이기 때문이다.

광화문에 왜 100만 명씩이나 모였는가? 혁명 정부를 세우려고? 아니다. 그들은 박근혜-최순실을 부정하는 것이지 대한민국 체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100만 명이 모여서 촛불 들면 된 것 아닌가? 의회가 해산된 것도 아니고 계엄령이 선포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많이 모였으니 뭔가 비상한 일이 벌어지지 않아 아쉽다는 사람들이 있다. 뭔가 단단히 잘못된 생각을 하는 것이다. 무질서하게 난장판 벌이는 것이 시민들의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단일 세력이 동원하지 않았는데도 100만 명이나 되는 인원이 모여서 별다른 충돌 없이 평화적으로 집회를 연다는 것이 그 사회의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다. 앞으로 집회가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지만, 설사 물리적인 충돌이 다소 일어난다고 해도 그것이 박근혜가 물러나야 한다는 요구를 부당하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그때 가봐서 판단할 일이다. 지금 상황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100만 명이 모인 집회가 별다른 충돌 없이 평화롭게 끝났음을 폄하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100만 명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는 것만으로 집회의 의미는 충분하다.

100만 명이나 모여서 고작 촛불이나 들었다며 실망하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혁명을 다룬 영화나 소설에 심취해서 그런 것인가?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같은 것이나 떠올린 것인가, 아니면 <레 미제라블> 같은 것을 보고 그러는 것인가? 그런 영화나 소설을 감상하는 것은 좋은 취미일 수 있겠으나, 일정 수준 이상의 판단 능력을 가진 성인이라면 현실과 작품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혁명이 주는 낭만적인 분위기가 매혹적일 수는 있겠으나, 또 그런 작품들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매력적일 수는 있겠으나, 그게 그러한 낭만은 작품 속에서나 등장한 것일 뿐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런 고상한 취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웬만하면 거리에 나오지 말고 비슷한 사람들끼리 옹기종기 골방 같은 데 모여 심각한 표정 지으면서 시국 걱정이나 하는 것이 좋겠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에게도 좋고 거리에 나온 사람들에게도 좋다. 군중들이 모였을 때의 흥분을 느끼고 싶다면 굳이 시위에 나오지 말고 락 페스티벌에 가는 것을 권한다.

시위대와 전경이 맞붙어서 대치할 때 시위대 뒤편에서 전경들에게 욕을 하며 돌을 던지는 사람들이 꼭 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그런다. 뒤에서 돌을 던지면 시위대 앞쪽에 있는 사람들이 다친다. 뒤에서 날아온 돌에 맞아서 다치는 것이 아니라 전경들과 충돌해서 다치는 것이다. 전경 방패에 몸을 맞댈 때의 두려움을 아는 사람은 아무리 성격이 불같아도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 뱀발: 광화문에서 이승환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신해철이 살아있었으면 저기서 노래를 불렀을 텐데’ 하고.

* 링크: [경향신문] 폭력・비폭력・반폭력 / 지금 SNS에선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1132121015 )

(2016.11.15.)


2017/01/14

대학원생 워크샵 뒤풀이



지난 주 금요일, 대학원에서 하는 <영미철학 대학원생 워크샵>에 갔다. 한동안 안 가다 오랜만에 갔다. 논문도 통과되어 급한 일도 처리되었으니 이제 다른 사람들이 하는 연구도 보러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워크샵 끝나고 선생님은 뒤풀이로 맥주 한 잔 하는 것이 어떠냐고 하셨다. 나는 원래 워크샵 끝나고 길거리에서 일곱 알에 2천 원 하는 문어빵을 사서 자취방에서 혼자 맥주를 마실 생각이었다. 순순히 뒤풀이에 따라갔다. 선생님을 포함하여 열 명 정도가 맥주집에 갔다.

사람들은 그날 워크샵 주제인 피터 행크스의 명제 이론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내가 아는 행크스는 톰 행크스밖에 없어서 구석에서 조용히 맥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어떤 대학원생이 내가 페이스북에 쓴 글을 보았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놀라서 “선생님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 안 돼!” 하면서 제지했지만 이미 선생님은 “◯◯◯씨가 페이스북에 어떤 글을 쓰는데요?”라면서 궁금해 하셨다.

나는 내가 페이스북에 쓰는 글이 그리 부끄러운 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료들이 내 글을 읽고 재미있어 하는 것과 그러한 사실을 선생님이 아는 것은 다른 일이다. 남들이 3년이면 쓰는 석사 논문을 나는 4년 넘게 걸려서 썼고, 그렇게 쓴 논문이 그다지 훌륭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에이스도 아닌데, 이런 내가 개그 글이나 쓰고 앉았다는 것이 선생님께 알려지는 건 쑥스러운 일이다. 국내 등재지에 논문 한 편이라도 싣고 나서 그러한 사실이 알려졌다면 덜 쑥스러웠을 것이다.

나는 선생님께 해명했다. 내가 살면서 즐거울 일이 많지 않아 술을 마시거나 개그 글을 쓰는데 나와 마찬가지로 즐거울 일 없는 대학원생들이 그런 글을 재미있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다른 대학원생들이 선생님께 내가 쓴 글을 하나씩 소개했다. 심지어 페이스북도 안 하는 대학원생은 블로그에 내가 쓴 글을 본 것 같다고 했다. 사실, 그 블로그는 내 블로그가 맞다. 페이스북은 게시글을 정리하기 힘들어서 쓴 지 한 달 이상 지난 글은 블로그에 옮기거나 지운다. 그 대학원생은 그 블로그를 본 것이다.

블로그에 게시한 내 글을 읽은 선생님은 활짝 웃으며 김창완처럼 따뜻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아, ◯◯◯씨, 정말 재능 있군요!”

선생님은 석사 논문 심사 위원 중 한 명이었다. 재능 있다는 말을 논문 심사장에서 들었어야 했는데.

(2016.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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