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부 다닐 때 교수가 하는 말도 귓등으로 들었다. 훌륭한 선생님이 어쩌다 있기는 했지만 이상한 교수가 심심치 않게 있었다. 수업 시간에 그런 사람들이 하는 말을 귓등으로 들으며 ‘한 5년 정도 썩으면 나도 저 정도는 하겠는데?’ 하는 생각을 했다. 대학원생을 봐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개도 석사하고 소도 박사하는가 보다’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때 나는 몰랐다. 그러한 망상이 재앙을 불러올 줄은.
대학원 들어오기 전에는, 대학원을 정상적으로 다니기만 하면 학위가 알아서 나오는 줄 알았다. 개나 소나 학위를 받는 것을 보니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대학원에 들어와서 수료하고도 석사 논문을 못 썼다. 6학기 정도가 되니까 나도 모르게 석사 학위를 받은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기 시작했다.
석사 과정에 들어온 지 이제 8학기째다. 아직도 학위 논문을 못 썼다. 7학기까지는 마음이 조금 혼란한 정도였는데 학기 수가 8에서 9로 넘어가려고 하니까 미치겠다. 이제는 8학기 넘어서도 대학원 안 그만두고 석사 논문 준비하는 사람을 봐도 존경심이 우러나온다. 두 자릿수 학기에 이상 행동을 보이지 않는 것만 해도 대단한 정신력이다.
고난 속에 인격이 점점 성숙하고 있다. 이제는 글쓰기 교양 수업에서 학부생들이 하는 말도 다 귀담아듣는다. 학부생이 물어보는 거 다 답해주고 이상하게 글 써와도 나름대로 어떤 구도를 짰는지 물어보고 고쳐준다. 그런데 나와 같은 학부를 다녔던 학생들이 여기 학부생들처럼 똑똑했으면 진작에 그들의 말을 경청했을 것이고, 아예 대학원 갈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 같기는 하다.
이렇게 인격이 성숙해져서일까? 신년 모임 때 지도교수님은 다른 전공자들에게 나를 소개하며 “nice human being”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내가 성직자가 될 것도 아닌데 필요 이상으로 인격이 좋아질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 멋모르고 대학원에 온 게 죄라지만 어리석음에 대한 대가치고는 이건 너무 가혹하다.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으니 이제는 인격이 그만 성숙했으면 좋겠다.
(2016.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