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21

어감

말이라는 게 묘해서 약간만 바꾸어도 느낌이 많이 달라진다.

‘새끼 개’는 작고 귀엽고 안아주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개 새끼’는 그냥 욕이다.

‘여행 전문가’라고 하면 해당 지역의 역사와 문화까지 잘 아는 지역 전문가 느낌인데 ‘상습적 여행자’라든지 ‘전문 여행꾼’이라고 하면 그냥 날백수라는 말이다.

‘전문 시위꾼’이라는 말도 그렇다. ‘전문 시위꾼’이라는 말은 일정한 직업이 없는 폭도라는 느낌을 풍기는데 ‘시위 전문가’라고 하면 민주노총 같은 데에서 수년간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시위 관련 전문 인력이라는 느낌이 든다.

(2015.11.21.)

2016/01/19

감나무 밑동에서 쉬는 화천이

     

3년 전, 나는 담장 안에 있는 감나무를 베었다. 할아버지가 심은 나무인지 증조할아버지가 심은 나무인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집 안에 두기에는 너무 큰 나무였다. 담장 안에 있는 나무는 너무 커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관리하지 않으면 『어린 왕자』에 나오는 바오밥나무처럼 된다. 그런데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반세기에 걸쳐 방심하셨고, 그렇게 가을에 감만 따고 그대로 방치하다 감나무가 너무 크게 자랐다. 더 두면 안 될 것 같아서 내가 손을 보았다.
  
한 방에 감나무 밑동을 자르면 나무가 쓰러져 담장이 무너지거나 집이 다 부서질 판이었다. 나무 꼭대기부터 잘라가며 내려오는 방법밖에 없었다. 나는 겁이 많고 이전에 나무에 오른 적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사다리차를 부르는 건 과한 것 같아서 나무에 올라가기로 했다.
  
나무에 사다리를 놓았다. 3m가 넘는 사다리를 나무에 놓았는데 나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일단 사다리가 닿는 곳까지 사다리를 타고 나무에 오른 다음, 줄기를 붙잡고 나무 꼭대기로 오르기 시작했다. 올라갈 때는 나무 위만 보고 올라갔기 때문에 무서운 줄 몰랐다. 감나무 꼭대기에 오르니 바다가 보였다. 우리집이 바닷가 근처에 있는 것이 아닌데도 저 멀리 바다가 보였다. 바다가 보이니 좋긴 한데 너무 높이 올라와서 무서웠다.
  
바람이 불자 나무가 심하게 흔들렸다. 죽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살아 있는 나무는 바람에 흔들린다더니 맞는 말이었다. 맞는 말인데, 살아있는 나무에서 떨어지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사다리차를 불렀어야 했다. 멋모르고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간 나는 나무 꼭대기서부터 가지와 줄기를 조금씩 잘랐다.
   
며칠을 두고 나무를 오르락내리락 하며 가지와 줄기를 잘랐다. 가지는 내 허벅지보다 굵었고 줄기는 내 몸통보다 굵었다. 전기톱으로 잘라야 하는데 내가 겁이 많아 전기톱을 못 쓰고 수동톱을 사용하니 작업시간이 오래 걸렸다. 몇 주에 걸쳐서 나무를 잘랐다. 그렇게 밑동만 남았다. 계절이 바뀌자 밑동에서 움이 텄고 몇 년이 지나자 다시 감이 열릴 정도로 자랐다.
   
 

화천이는 가끔씩 그 밑동에서 쉰다. 현관문 앞에서 뒹굴뒹굴 구르며 자다가, 담장 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또 집 근처를 한 바퀴 돌다가 밑동에 가서 쉰다. 밑동에 엎드려서 뭔가를 지긋이 바라본다. 나는 “화천이, 뭘 그렇게 보나?”하고 물어봤다. 화천이가 나를 보고 “에-옹”이라고 한 마디라도 할 줄 알았는데 싱끗도 안 한다. 고개를 돌려 나를 슥 보더니 한 마디 대꾸도 안 하고 다시 고개를 돌려 아까 보던 곳을 계속 보았다. 우리집의 다른 고양이들과 달리, 화천이는 원체 고집이 세고 자존심이 강해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산다.
    
 
 
화천이는 자기가 깔고 앉은 그 밑동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를 것이다. 내가 감나무를 자르다 죽을 뻔 했다는 사실을 안다고 해도 아마 화천이는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것이다.
  
  
(2015.11.19.)
    

2016/01/17

서울대 사범대 학생회의 투표 독려 현수막

  

   

전체 현수막을 다 보면 이 분들이 그 문제에 대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겠다 하는 것을 제가 잘 알겠습니다.
 
 
 
 
(2015.11.17.)
    

2016/01/12

국제적 도둑놈



연구실에서 기숙사로 가기 전에 어떤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보았다. 제목은 “국제적 도둑놈”인데 어떤 방송을 캡처한 내용이었다.


그 방송은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이 겪는 어려움 등을 다루었다. 남편은 한국인이고 부인은 외국인이다. 남미에서 온 여성은 모 대학 한국어학당을 다니다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당시 한국어강사였다.


남편은 부인보다 열다섯 살 많은 대학원생이다. 부인은 눈이 깊고 콧등이 물소처럼 높고 팔다리가 길었다. 게다가 공학 전공자였다. 여성이 공학을 전공한다는 것은 매력을 배가하는 요소다. 커뮤니티의 게시글은 미남과 거리가 멀고 소득도 적은 남편이 열다섯 살 어린 미모의 부인과 결혼한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다른 사람의 외모를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논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데 솔직히 그 남편은 미남이 아니었다.


기숙사에 들어와 씻고 자리에 누웠다.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다른 날보다 커피를 많이 마시지도 않았다. ‘한국어 강사 자격증을 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자국 시장에서 별다른 호응을 받지 못하는 상품이 해외 시장에서 잘 팔리는 경우도 있다. 한국산 손톱깎이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같은 것들이 그렇다. 그리고 사람은 낯선 곳에서 물건을 잘못 사거나 바가지를 쓰기 쉽다. 결혼 시장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닐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수업에 조교 활동을 해야 해서 일찍 일어나야 했는데 괜히 뒤척거리며 잠을 못 잤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죄다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2015.11.12.)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예언한 알라딘 독자 구매평 성지순례

졸업하게 해주세요. 교수되게 해주세요. 결혼하게 해주세요. ​ ​ ​ ​ ​ * 링크: [알라딘] 흰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소설 ( 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4322034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