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나는 담장 안에 있는 감나무를 베었다. 할아버지가 심은 나무인지 증조할아버지가 심은 나무인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집 안에 두기에는 너무 큰 나무였다. 담장 안에 있는 나무는 너무 커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관리하지 않으면 『어린 왕자』에 나오는 바오밥나무처럼 된다. 그런데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반세기에 걸쳐 방심하셨고, 그렇게 가을에 감만 따고 그대로 방치하다 감나무가 너무 크게 자랐다. 더 두면 안 될 것 같아서 내가 손을 보았다.
한 방에 감나무 밑동을 자르면 나무가 쓰러져 담장이 무너지거나 집이 다 부서질 판이었다. 나무 꼭대기부터 잘라가며 내려오는 방법밖에 없었다. 나는 겁이 많고 이전에 나무에 오른 적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사다리차를 부르는 건 과한 것 같아서 나무에 올라가기로 했다.
나무에 사다리를 놓았다. 3m가 넘는 사다리를 나무에 놓았는데 나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일단 사다리가 닿는 곳까지 사다리를 타고 나무에 오른 다음, 줄기를 붙잡고 나무 꼭대기로 오르기 시작했다. 올라갈 때는 나무 위만 보고 올라갔기 때문에 무서운 줄 몰랐다. 감나무 꼭대기에 오르니 바다가 보였다. 우리집이 바닷가 근처에 있는 것이 아닌데도 저 멀리 바다가 보였다. 바다가 보이니 좋긴 한데 너무 높이 올라와서 무서웠다.
바람이 불자 나무가 심하게 흔들렸다. 죽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살아 있는 나무는 바람에 흔들린다더니 맞는 말이었다. 맞는 말인데, 살아있는 나무에서 떨어지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사다리차를 불렀어야 했다. 멋모르고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간 나는 나무 꼭대기서부터 가지와 줄기를 조금씩 잘랐다.
며칠을 두고 나무를 오르락내리락 하며 가지와 줄기를 잘랐다. 가지는 내 허벅지보다 굵었고 줄기는 내 몸통보다 굵었다. 전기톱으로 잘라야 하는데 내가 겁이 많아 전기톱을 못 쓰고 수동톱을 사용하니 작업시간이 오래 걸렸다. 몇 주에 걸쳐서 나무를 잘랐다. 그렇게 밑동만 남았다. 계절이 바뀌자 밑동에서 움이 텄고 몇 년이 지나자 다시 감이 열릴 정도로 자랐다.
화천이는 가끔씩 그 밑동에서 쉰다. 현관문 앞에서 뒹굴뒹굴 구르며 자다가, 담장 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또 집 근처를 한 바퀴 돌다가 밑동에 가서 쉰다. 밑동에 엎드려서 뭔가를 지긋이 바라본다. 나는 “화천이, 뭘 그렇게 보나?”하고 물어봤다. 화천이가 나를 보고 “에-옹”이라고 한 마디라도 할 줄 알았는데 싱끗도 안 한다. 고개를 돌려 나를 슥 보더니 한 마디 대꾸도 안 하고 다시 고개를 돌려 아까 보던 곳을 계속 보았다. 우리집의 다른 고양이들과 달리, 화천이는 원체 고집이 세고 자존심이 강해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산다.
화천이는 자기가 깔고 앉은 그 밑동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를 것이다. 내가 감나무를 자르다 죽을 뻔 했다는 사실을 안다고 해도 아마 화천이는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것이다.
(2015.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