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4/22

여백이 있는 글쓰기 - 영화 <역린>은 왜 구린가

글쓰기 교육 전문가 이강룡은 여백이 있는 글을 쓰라고 말한다. 여백이 있는 글은 엉성한 글이 아니라 군더더기를 모두 없애서 꼭 필요한 말만 하는 글이다. 그러한 글을 쓰려면 주장을 줄이고 근거를 늘려야 하고 감정을 직접 표현하는 대신 그러한 감정을 느낄 여지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한다.

이강룡은 다음과 같은 사례를 들었다. 어떤 초등학교에서 민속촌으로 현장체험학습을 갔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고 과제를 하게 했다. 어떤 학생이 한눈을 파는 사이, 지나가던 말이 그 학생이 손에 쥐고 있던 유인물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놀란 학생은 자신의 인쇄물을 말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다른 애들은 모두 그걸 보며 웃었고 그날 학생들의 일기 내용은 모두 똑같았다. “오늘 민속촌에 소풍 갔는데 말이 ◯◯의 종이를 뜯어먹었다. 참 재미있었다.” 그런데 자신의 유인물을 말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애쓴 그 학생이 쓴 일기는 달랐다. “나는 말에게 종이를 빼앗기지 않느라 고생했다. 왜냐하면 종이 끝에 스템플러가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강룡은 그 학생의 일기 같은 글이 여백이 있는 글이라고 말한다.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나 자신이 동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역설하는 것보다 그러한 여백이 더 강한 힘을 가지며 그 학생의 따뜻한 마음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게 생각만큼 잘 안 된다는 것이다. 글로 먹고사는 사람 중에도 이런 걸 잘 못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이들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 번째 유형은 여백이 뭔지 아예 모르는 부류다. 이들은 대놓고 감정 상태를 기술한다. 그런 글을 쓰는 저자는 혼자 감동받지만 그런 글을 읽는 독자는 차분해진다. 가령 이런 식이다.

강유는 몹시 제갈량을 안타까워했다. ‘불쌍한 분...’

작가는 제갈량이 안 됐다는 것을 강유의 입으로 표현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해놓으니까 독자 입장에서는 제갈량이 불쌍하다는 것이 와닿지 않는다. 출판한 권수로만 놓고 보면 중견작가 축에 끼는 사람 중에도 이런 식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종종 있다.

두 번째 유형은 여백을 억지로 쥐어 짜내는 경우다. 이들은 심심하면 말 줄임표를 붙여서, 무형의 여백을 만드는 대신 문장 안에 물리적인 공간을 만들어낸다.

얼마 전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영화 <역린>의 각본을 소설화한 책을 훑어보았다. 놀랍게도, 소설에 있는 거의 모든 대화마다 말 줄임표가 있었다. 큰따옴표 안에 말 줄임표가 반드시 하나 이상 있었다. 이런 식이다.

“상선은... 어디 있느냐.”, “나는 편전이... 이러이러해서... 좋구나”

나는 <역린>을 보고 현빈이 몸만 좋지 연기를 못한다고, 저게 무슨 목우유마 같은 연기냐고 욕했었는데, 그건 내가 오해한 것이었다. 현빈은 각본대로 연기를 충실하게 했을 뿐이다. 어쩌면 현빈 또한 그러한 각본의 피해자였는지도 모른다.

(2015.02.10.)

2015/04/21

나를 외국인으로 오인한 한국인에 대한 배려

기숙사에서 어떤 한국 사람과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고 같은 층에서 내렸다. 나는 그 사람보다 앞서 건물에서 나오며 유리문을 열었고 그 사람이 유리문에 부딪치지 않도록 손잡이를 잠시 잡았다. 그러자 그 사람은 나에게 “Thank you”라고 했다.

그 사람이 (교포든지 해서) 영어가 편해서 자기도 모르게 영어를 쓴 것 같지는 않다. “감사합니다~” 하는 한국어 억양 그대로 “Thank you~”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내가 외국인인 줄 알았나 보다.

그 사람이 내가 한국인인 것을 알면 민망해 할 까봐, 나는 “Thank you”라는 말을 듣고 나서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그 사람한테 고개만 꾸벅 숙였다.

나의 배려는 아무 것도 아니다. 김창옥은 택시를 타서 택시기사한테 행선지를 말하니 택시기사가 “외국분이 한국말을 정말 잘 하시네요!”라고 감탄하더란다. 김창옥은 택시기사가 민망해 할까봐 “캄샤함미댜(감사합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2015.02.06.)

2015/04/18

경축! 정몽준 전 대표의 막내아드님 연세대 철학과 합격

   

   

정몽준 새누리당 전 대표님의 막내아드님의 연세대 철학과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미개한 국민들을 계몽하는 철학도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 자료사진: “아들이 대학 합격해” 감격한 정몽준 전 대표

* 링크: [경향신문] ‘국민 미개’ 발언 정몽준 막내 아들, 재수 끝 연세대 합격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1220920321 )

(2015.01.25.)

2015/04/16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 아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고 알려져 있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사실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 아니다.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 벽에 새겨진 말인데, 아직도 그 글귀가 남아 있다고 한다. 신전 벽에 새겨진 그리스 일곱 현자의 격언은 다음과 같다.

- 밀레토스의 탈레스(Thales): “너 자신을 알라”

- 아테네의 솔론(Solon): “모든 일에서 절제하라”

- 스파르타의 칠론(Chilon): “불가능한 것을 탐하지 말라”

- 코린트의 페리안데르(Periander): “모든 일에서 멀리 내다보라”

- 린도스의 클레오불루스(Cleobulus): “절제가 최선이다”

- 피리에네의 비아스(Bias): “모든 인간은 악하다”

- 미틸레네의 피타쿠스(Pittacus): “어떤 선택을 할지 알아야 한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가 아니라 “모든 인간은 악하다”에 꽂혔다면 유럽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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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레스: “저작권료 내놔!”

- 소크라테스: “드, 드리겠습니다.”

- 탈레스: “필요 없어!”

(2015.01.23.)

2015/04/14

인문학+멘토링 = 인문학 멘토링?

요즈음은 사교육 시장에 ‘인문학 멘토링’도 있다. 인문학 운운하는 상품은 태반이 불량품이고 멘토링도 도움 안 되기는 마찬가지인데 인문학 멘토링은 이 둘을 결합한 것이다. tvN <코미디 빅리그>에서 이와 비슷한 것을 본 것 같다. 개와 새를 합쳐서 ‘개새’를 만든다든지, 시조새와 부엉이를 합쳐서 ‘시부엉새’를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이러한 업체는 특목고 입시와 대학 입시에 바로 제출할 수 있는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준다고 홍보한다. 단편 소설도 만들고, 한국 시를 영어로 번역하고, 단편 영화도 제작하고, 영어 뮤지컬도 하고, 컴퓨터 프로그래밍도 하고, 모의 UN 프레젠테이션도 하고, 소논문도 쓴다고 한다. 특목고나 대학을 입학하는 데 왜 이런 게 필요한지는 모르겠다.

업체 홈페이지에는 초등학생이 프리젠테이션 하는 영상도 있다.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모의 국무회의”에서 “한국 교육정책의 현실”을 비판하고 “대학교육의 문제”를 지적한다.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면 대학 교육 이전에 일단 중학교부터 가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 학생은 이 프리젠테이션에서 “지식이 아니라 지혜를 가르치는 대학교육이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진로 진학 캠프 같은 것도 한다고 한다. 대학 전공과 무관하게 먹고 사는 사람도 무수히 많은 판에,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진로 진학 캠프를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업체는 진로 진학 캠프의 성과도 홍보한다. 진로 진학 캠프에 가기 전에 “문예창작학과”에 가고 싶다고 한 초등학생은 캠프 참가 후 진로 학과가 “카이스트 문예창작과”로 바뀌었다. 도대체 캠프에서는 아이한테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인문학 멘토링 프로그램은 “인문교양 지수”도 높인다고 한다. 모네와 세잔의 그림을 구분하게 되고, 바로크 시대 예술의 특징이 무엇인지 기억하면 인문교양 지수가 높아진 것으로 간주한다. SNS에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 스토리,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속한다고 했던 아이가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SNS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을 “IT 지식 습득”이라고 표현한다. 상식시험 준비하는 식으로 많이 외우면 아이의 인문교양 지수가 높아지는 것이다.

이런 교육을 받으려면 얼마가 필요할까? 인문학 멘토링(4박 5일 코스)은 90-100만원이 들고, 인문학 멘토링에 공부법을 추가한 것(11박 12박 코스)은 170-180만원이 든다. 4박 5일 코스 갈 돈으로 여행하면, 한 사람이 백두산 4박 5일 여행을 가고 돈이 약간 남는다. 11박 12일 코스를 갈 돈으로 여행하면, 한 사람이 백두산 4박 5일 여행을 하고 나서 상해-소주-항주 7박 8일 여행을 할 수 있다. 내가 부모라면 그 돈으로 자식과 여행을 갈 것 같다.

(2015.01.22.)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예언한 알라딘 독자 구매평 성지순례

졸업하게 해주세요. 교수되게 해주세요. 결혼하게 해주세요. ​ ​ ​ ​ ​ * 링크: [알라딘] 흰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소설 ( 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4322034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