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02

융합 같은 소리 하네 - 융합연구 총괄센터



어쩌다 <융합연구 총괄센터>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센터 이름부터 이상한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더 이상하다. 나는 4대강 공사 이후로 이렇게 황당한 건 처음 봤다. 말도 안 되는 연구 주제를 “학제 간 융합연구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제안하고 눈 먼 나랏돈을 지원 받아 연구를 진행한다. 주제 하나 하나가 예술인데 너무 많으니 몇 개만 보자.

<사상체질과 미디어 이용행태 및 효과 연구>라는 연구가 있다. “이제마의 사상체질 이론의 핵심적인 내용을 살펴보고, 체질별 심리적, 행동적 특성을 밝혀내고, 체질별 미디어의 이용 행태 및 효과와의 관계를 분석”한다고 한다. 차라리 혈액형 심리분석이 더 과학적일 것이다. 혈액형은 명확하게 구분이라도 되지만, 사상 체질은 명확하게 구분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프랙탈에서 예술작품까지: 아름다움의 과학>이라는 연구가 있다. “아름다움의 특성을 규명하기 위해 아름다움의 속성을 물리적, 심리적, 신경생리학적 측면에서 관찰하고 분석하는 작업”이라고 한다. 어떻게 분석하는가? “fMRI를 이용하여 숭고미 관련 뇌활성화 부위에 관한 연구와 현대 미술에 대한 교육이 지각적 생경성을 유발하는 미술작품 감상에 미치는 효과”를 살펴본다고 한다. fMRI를 통해 뇌 활성화 부위를 살펴보면, 무엇이 숭고미인지 탐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가?

<심신치유의 프로토콜 구축을 위한 불교와 사상의학(四象醫學)의 융합연구>도 있다. 이제는 불교와 사상의학도 융합한다. 나중에는 천주교와 개신교도 융합하고 불교와 힌두교도 융합할 모양이다.

<한국 청소년들의 지능 및 성격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 및 후성유전적, 환경적 요인 발굴 사업: 쌍둥이 연구>라는 연구도 있다. 이 연구는 “지금까지 학계에서 지능, 성격 발달의 원인에 관하여 논할 때 유전적 영향과 환경의 영향을 분리 독립시키는 이분법을 주로 사용”한 것과 달리, “유전적으로 특이한 쌍둥이 피험자를 대상으로 하여, 지능과 성격 발달에 미치는 유전요인과 환경요인을 분리시키지 않고 접목시켜, 상호작용 양상을 경험적으로, 과학적으로 규명했다”고 밝힌다. 같은 부모와 같은 집에 사는 쌍둥이한테서 연구를 했다는 것이다. 같은 집에 사는 쌍둥이에게서 후성유전적 환경적 요인을 발견하겠다고 연구 목표를 세운 것도 놀라운데, 더 놀랍게도 “부모의 소득계층에 따라 지능에 미치는 유전의 영향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고 연구 성과를 요약했다.

학부생이나 석사 과정생이 이런 걸 한다고 해도 지도교수한테 욕을 먹을 판인데, 놀랍게도 이런 연구를 제안한 사람들은 모두 학술논문을 한 편 이상 쓴 연구자들이다. 심지어 모두 피-인용수도 1회 이상이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국내 대학원생 수준을 못 믿겠다는 말이 나오고 국내 논문을 한 등급 아래로 보는 모양이다.

어떤 사람이 이런 말도 안 되는 계획서를 보고 연구승인을 내줬을까. 나는 그 답을 융합연구 종합센터 기조연설에서 찾았다. 계획서를 심사하는 사람부터 문제가 있었다. 거기에 참여하는 어떤 교수는 기조연설에서 이런 기가 막힌 말을 한다. 참고로 철학과 교수다.


“MBIC 보고서는 보면 이들이 가지는 생각은 과학기술로 인간을 개조하면 그 능력을 엄청나게 증강시킬 수 있고 더 나아가 인간의 정신을 다운로드 시켜 인간은 죽지 않을 수 있다고 합니다. 굉장히 정확한 과학기술적 통계기술로 처리하는 것으로 보이고 이들이 말하는 것이 굉장히 전문용어이기 때문에 일반인은 물론이고 학자들도 그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


이 보고서는 2050년 쯤 과학기술이 서로 수렴하게 되고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우리는 영생할 수 있다는 취지인데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인간의 정신은 뇌의 작용이고, 뇌의 작용은 생화학적 작용이고, 생화학적 작용은 디지털 신호로 변환 가능하다, 즉 우리의 정신은 컴퓨터로 옮길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죽어도 영생할 수 있다는 겁니다.


영생을 하면 좋을 것 같죠? 그런데 인문학자는 의심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영생을 하는 게 아니라 여기 사는 우리가 아바타가 되는 게 아니냐는 거죠. 기술 발전을 보면 우리가 아바타를 만드는 게 아니라 여기 사는 우리가 아바타가 되는 게 아니냐는 거죠. [...]”


이게 무슨 학자인가, SF 작가인가? 정상적인 학자라면 우리가 아바타가 되는지 아닌지를 상상하기 전에 그런 허무맹랑한 말이 맞는 말인지 검토해야 한다. 그런데 이 교수는 “굉장히 전문 용어이기 때문에” 그냥 받아들이자고 한다. 개소리인지 아닌지도 판단할 능력도 안 된다는 말이다. 굳이 그렇게 상상력을 발휘하고 싶으면 정식으로 작가 데뷔를 하는 것이 옳겠으나, 작가로 데뷔하기에는 상상력이 그다지 참신하지도 않다.

얼마 전 네드 블록 교수가 서울대에 방문했고, <중앙일보>와도 인터뷰를 했다. 네드 블록이 융합연구 총괄센터의 작업을 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네드 블록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기자: “연구 성과는 실용적, 특히 산업 분야에서 어떻게 응용되고 있는지.”


▶ 블록: “철학 연구의 직접적인 실용성은 없다. 단 마음에 대해 잘 알게 되면 자연히 실용적 응용도 쉽다. 또 철학은 ‘무엇이 실용적인 가능성이 없는가’에 대해 잘 알려준다. 고해상도 뇌 촬영과 같이 무엇이 잘못된 투자인지를 지적해 주는 것이다.”


- 기자: 잘못된 투자를 하는 이유는.


▶ 블록: “사람들은 마음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무엇인지 이해가 부족하다. 마음에 대한 고차원적인 이해가 필요한데 이를 제공하는 것은 과학이라기보다는 철학이다.”


우리가 아바타가 될 것이라는 주장을 접한다면, 네드 블록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네드 블록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 기자: “언제쯤 뇌에 사전・백과사전 같은 정보 문헌을 다운로드할 수 있을 것인가. 로봇 기자・디자이너・화가는 언제 등장할 것인가.”

▶블록: “뇌에 대한 이해 없이, 특히 수년 내로 그런 게 이루어질 가능성은 전무하다.”

- 기자: “그렇다면 현재 마음・뇌에 대해서 몇 퍼센트나 알고 있는지.”

▶ 블록: “0.00001%인지 그 이상인지, 계산을 하려면 의식이 어떤 것인지 완벽히 이해해야 한다. 얼마나 알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 김기현: “우리는 사실 의식에 대해 친숙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의식이 어떻게 발생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아직 의식에 대한 많은 신화가 있다. 탈신화의 과정이 필요하다.”


인터뷰 기사는 “철학은 뇌에 대한 과학자들의 황당한 결론 막는 안전장치”라고 말한다. 그러든지 말든지, 융합연구 총괄센터에서는 철학 교수가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황당한 주장이나 하고 앉아있다.

* 링크(1): Hubcon 2013 기조 강연 - 이종관 교수님

( www.youtube.com/watch?v=-FKaslg5DnE )

* 링크(2): [중앙일보] 네드 블록 뉴욕대 교수 & 서울대 김기현 교수 / 직격 인터뷰

( https://news.joins.com/article/16256935 )

(2014.10.30.)


[한국 가요] 드렁큰 타이거

   
드렁큰 타이거 - True Romance (Feat. 윤미래)
  
드렁큰 타이거 - 몬스터
  
드렁큰 타이거 - 8:45 Heaven
  
  
(2018.11.02.)
    

2014/12/30

노래는 부르는 게 아니라 불리어지는 것



마음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계절 변화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들에게 계절 변화란 벚꽃이나 단풍 같은 게 아니라 단순히 “춥다” 또는 “덥다”로 인식된다고 한다. 김창옥의 강의에서 들은 이야기다.

25살에 뒤늦게 음대에 들어간 김창옥은 열등감이 많았다고 한다. 집은 가난했고 아버지는 귀가 안 들렸고 어머니는 글을 몰랐다. 동기들처럼 예고를 나온 것도 아니었다. 공고를 나와 삼수에 실패하고 해병대에 갔다. 좋은 환경에서 좋은 교육 받으며 자란 동기들한테 기가 죽지 않으려고 김창옥은 대학에서도 해병대 군복을 입고 다녔다고 한다. 그래서 후배들은 “오빠는 언제 제대해요?”라고 물었다.

김창옥이 교수 앞에서 노래를 부를 때였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부르는 노래였는데 그는 해병대 군복을 입고 눈에 있는 대로 힘을 주고 군가처럼 그 노래를 불렀다. 교수가 노래를 멈추게 한 뒤 “다 놓고 해”라고 했다. 그가 말귀를 못 알아듣자 그냥 하라고 했다. 그는 다시 군가처럼 그 노래를 불렀다. 교수가 말했다. “노래는 부르는 게 아니야. 불리어지는 거지. 너는 지금 노래를 배워봤자 소용없다. 밖에 나가서 가을 보고 와라.” 그렇게 해서 본 게 김창옥의 첫 가을이었다고 한다.

<과학철학통론1> 수업을 듣다가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지도교수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석사논문이 어떻게 되어 가냐고 물으셨다. 내가 정신을 놓았다면 “선생님, 논문은 쓰는 게 아니라 써지는 것 같아요”라고 했을 지도 모른다. 정신을 놓지 않은 나는 “12월 말까지 계획서를 내겠습니다”라고 했다.

어쨌거나 가을은 가을이다.

(2014.10.24.)


현대미술인가 시각공해인가



220동에 가려고 기숙사 삼거리에서 셔틀버스를 기다렸다. 걸어서 10분 거리인데 30분 동안 셔틀버스를 기다렸다.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그냥 걸어 내려갔다. 나중에야 셔틀버스가 안 온 이유를 알았다. 개교기념일이었기 때문이다.

걸어 내려가다 국제대학원 앞에서 이상한 걸 보았다. 투표소에서 본 것 같은 가림막이 있었다. 분홍색 천으로 되어 있었고 그 천에 커다랗게 “키스방”이라는 큰 글씨가 있고 큰 글씨 밑에 “연인들을 위한 키스 방입니다. 자유롭게 키스하고 가실 수 있습니다”라는 작은 글씨가 있었다. 다른 면에는 이 전시물이 졸업 작품이며 며칠 후 자진 철거할 예정이니 철거하지 말아달라는 종이가 붙어있었다.

“졸업 작품”이라는 글귀를 보고 ‘이 사람도 얼마나 답답했으면 이런 걸 졸업 작품이라고 내놨겠나. 이 사람도 안 됐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그런 시각공해를 발생하면 안 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현대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이상한 걸 설치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중 상당수는 시각공해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예술가면 예술가지 무슨 권리로 남에게 피해를 준단 말인가. 솔직히 그런 사람들이 예술가인지도 의심스럽다. 그들을 누가 예술가로 인정했나. 운송업자들에게 사업자등록증을 발급하는 것처럼 예술가도 등록증제로 운영해야 하지 않나 모르겠다. 그게 힘들다면 이산화탄소 배출권처럼 미술작품 배출권을 시장에서 거래하도록 하는 것은 어떨까.

내가 무식한 건 맞는데, 그래도 명화라고 하는 게 왜 명화인지 설명을 들으면 납득은 간다. 가령, 얼마 전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왜 명화인지 설명을 들었을 때 적어도 납득은 갔다. 그런데 현대미술을 표방하는 사람들이 하는 작품설명을 들으면 그 작품이 더 이상해 보인다. 고작 그걸 표현하려고 저러고 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뒤샹은 가게에서 소변기를 사다가 거기에 자기 서명을 해서 <샘>이라는 이름으로 미술관에 전시했다. 뒤샹이 한 번 했으면 거기에서 끝나야지, 어디서 대변기를 사가지고 와서는 <된장독>이라는 이름으로 전시하겠다고 우기면 안 된다.

(2014.10.15.)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예언한 알라딘 독자 구매평 성지순례

졸업하게 해주세요. 교수되게 해주세요. 결혼하게 해주세요. ​ ​ ​ ​ ​ * 링크: [알라딘] 흰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소설 ( 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4322034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