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20
무엇을 배우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배우느냐다
과외 때문에 <Grammar in Use>를 조금 읽었다. <Grammar in Use>나 <성문영어>, <맨투맨>이나 다루는 내용은 거의 비슷한데, 설명방식은 정반대다. 인칭대명사 같은 것을 설명할 때, <성문영어>나 <맨투맨>은 표 하나로 정리한 것을 먼저 보여준 다음 용례를 보여준다. 반면 <Grammar in Use>는 용례를 먼저 보여주고 나서 맨 마지막에 표 하나로 정리한다.
어디서 들은 건데, 외국 중학교에서 과학시간에 암석 분류 가르치는 방법은 한국에서 가르치는 방법과 다르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화산암, 퇴적암, 변성암을 구분해놓고 표로 만들어서 외우게 하는데, 외국에서는 여러 돌멩이들이 각각 어떻게 다른지 설명한 후 공통점이 있는 돌멩이끼리 모은 다음 화산암, 퇴적암, 변성암을 구분한다고 한다.
두 사례 모두 한국 방식이든 외국 방식이든 배우는 내용은 똑같다. 여기서 보아야 할 것은 가르치는 방식이다. 결론을 보여주고 외울 것을 정해주느냐, 현상을 나열해놓고 추론적 사고를 거쳐 결론 내리는 것을 보여주느냐, 이 차이다.
한국의 중등 교육의 문제점이 주입식 교육이라는 비판은 절반만 맞는 이야기다. 학력고사에서 수능으로 바뀐 이후부터는 주입식 교육만 가지고는 수능을 풀 수가 없다. 생각해봐야 할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선 학교에서는 주입식 교육이 이루어지냐는 점이다. 이것은 교사 개인의 문제는 아니라 교육체계와 여러 가지 구린 것이 엉켜 있기 때문일 것이다.
중등 교육의 문제보다 더 심각할 수도 있는 문제는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주입식 교육이다. 대학입시가 온 국민의 관심사이기 때문에 중등교육의 문제는 사회쟁점이 되지만, 대학교육의 문제는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대학에서 무엇을 어떻게 배우느냐가 아니라 어느 직장에 들어가 얼마를 버느냐이기 때문이다.
내가 오늘 본 것은 어떤 학부수업의 과제물이었다. 책을 읽고 정해진 부분의 논증을 파악해서 제출하는 과제였다. 그 수업을 직접 듣지는 않았지만 과제만 보고서도 어떻게 수업이 진행될지 대충 짐작이 되었다. ‘교양수업에서 이렇게 하는 것도 가능 하구나’ 싶었다. 적어도 그 수업은, 교수가 책을 요약해주는, 수업을 들으나 책 몇 권 읽으나 별 차이 안 나는 그런 수업이 아닌 게 분명했다.
(그동안 나는 교양수업이라는 게, 책 내용을 적당히 읽어주는 것을 수업이라 하고, 그런 수업내용을 대충 외워서 쓰는 것을 시험이라 하고, 누가 누가 무절제한 상상력을 발휘하나 경합을 벌이는 것을 과제 또는 토론이라고 하는 줄 알았다. 나는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다.)
이런 방식의 수업에서는 매 수업시간마다 과제물이 부여될 수밖에 없다. 학생은 그 과제를 다 해야 하고 교수도 그 과제를 다 채점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학생도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교수도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학생에게는 학자금 지원이 필요하고 교수에게는 행정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것을 중등교육에 적용하면 어떨까. 압축적으로 설명하고 그것을 몇 번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 제대로 가르치고 그에 맞게 과제를 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제 하느라 사교육 받을 시간이 없을 것이니까 사교육으로 인한 문제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물론 숙제를 대신 해주는 사교육이 등장할 수도 있다. 여기는 한국이니까.)
그렇다면 한국의 중등교육의 문제는 교사 수를 늘리고 행정인력을 배치하는 것으로도 어느 정도는 해결 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여기에 학부모가 찡찡대도 무시할 수 있는 교권을 보장하는 것과 동시에 여건을 마련해준 틈을 타서 놀고 있는 교사를 조질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 한 줄 요약: 한국의 중등교육의 문제와 고등교육의 문제는 발생 원인은 다르지만 문제점과 해결책은 똑같다.
(2014.10.09.)
2014/12/18
Scientific Explanation, Space, and Time (1982) by Feigl & Maxwell
Herbert Feigl and Grover Maxwell (1982), Minnesota Studies in the Philosophy of Science Volume III – Scientific Explanation, Space, and Time
: 과학적 설명에 대한 선집
Grover Maxwell, “The Ontological Status of Theoretical Entities”
P. K. Feyerabend, “Explanation, Reduction, and Empiricism”
Carl G. Hempel, “Deductive-Nomological vs. Statistical Explanation”
Michael Scriven, “Explanations, Predictions, and Laws”
May Brodbeck, “Explanation, Prediction, and “Imperfect” Knowledge”
William W. Rozeboom, “The Factual Content of Theoretical Concepts”
Hilary Putnam, “The Analytic and the Synthetic”
Grover Maxwell, “The Necessary and the Contingent”
Adolf Grünbaum, “Geometry, Chronometry, and Empiricism”
: 과학적 설명에 대한 선집
Grover Maxwell, “The Ontological Status of Theoretical Entities”
P. K. Feyerabend, “Explanation, Reduction, and Empiricism”
Carl G. Hempel, “Deductive-Nomological vs. Statistical Explanation”
Michael Scriven, “Explanations, Predictions, and Laws”
May Brodbeck, “Explanation, Prediction, and “Imperfect” Knowledge”
William W. Rozeboom, “The Factual Content of Theoretical Concepts”
Hilary Putnam, “The Analytic and the Synthetic”
Grover Maxwell, “The Necessary and the Contingent”
Adolf Grünbaum, “Geometry, Chronometry, and Empiricism”
2014/12/14
예전에 했던 일
오랜만에 동생을 만나서 피자를 먹었다. 동생은 내가 까맣게 잊고 있던 예전 일을 꺼냈다.
(1) 동생이 중학교 전교 학생회장에 출마했을 때의 일이다. 동생은 선거 벽보 2부를 만들어야 했고 어떻게 만들지 나한테 물어봤다. 동생에 따르면,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던 나는 동생에게 두 가지 벽보를 제안했다고 한다. 하나는 4절 색지 한가운데에 커다랗게 느낌표를 그리고 그 밑에 “느낌이 오는 후보, 기호 2번 김OO”라고 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4절 색지 한가운데 커다랗게 물음표를 그리고 그 밑에 “항상 고민하는 후보, 기호 2번 김OO”이라고 쓰는 것이라고 했다. 후보 사진도 붙이지 말고 공약도 쓰지 말고 딱 그렇게만 하라고 했다고 한다.
동생은 내가 말한 그대로 했고, 그 다음날 선생님한테 매우 심하게 혼났다고 한다. 당시 학생회장 선거 벽보는 4절 색지에 후보 사진을 붙이고 공약을 쓰는 게 관례였는데, 선거 벽보라고 가져온 것이 그랬으니 화를 냈나 보다. 나는 그런 말을 했다는 것조차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나가는 선거가 아니라서 되는대로 말했던 모양이다.
(2) 초등학교 방학 숙제와 관련된 일이다. 동생과 나는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 내 동생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다. 학교에서 방학숙제로 관찰일기를 쓰라고 하자, 나는 동생을 관찰해서 관찰일기를 써냈다고 한다. 그 당시 학교에서 관찰일기를 쓰라고만 하고 관찰대상은 제한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2014.09.28.)
동양철학과 조선시대 펠리칸 멸종사
학부 때 동양철학 교수 중에 희한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서양 철학에 대해 아는 것도 없으면서 동양 철학은 이렇고 서양 철학은 저렇다면서 성급한 일반화를 한 다음, 현대 사회의 문제는 서양 철학의 산물이고 그 대안이 동양 철학이라는 굉장히 거대하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러면서 나치의 유태인 학살을 꼭 예로 들었다. 이게 서양철학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수업 중에 교수가 나에게 의견을 묻길래, 이렇게 답했다.
“<사기>에 따르면, 진나라의 백기는 항복한 조나라 군사 40만 명을 산 채로 파묻었고 항우는 항복한 진나라 군사 30만 명을 산 채로 파묻었고 합니다. 저는 근대 이전 유럽사에서 단일 전투에서 이렇게 대량학살을 했다는 기록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한국에 펠리컨이 살았다는 것도 놀랍고 그걸 조선 사람들이 멸종시켰다는 것은 더 놀랍다. 동아시아 사람들은 자연과 일체감을 느껴서 자연을 보호했고 근대 유럽인들은 그렇지 않아서 환경을 파괴했다는 게 말이 되는가. 둘의 차이는 사상의 차이가 아니라 생산력의 차이다.
* 링크: 조선시대 펠리칸 멸종사
(2014.09.23.)
2014/12/07
연구윤리 수업을 다르게 해보자 (타짜 버전)
수의학과를 비롯한 몇몇 학과에서는 연구윤리 수업을 의무적으로 들어야 한다. 황우석이 수의학과 교수였고 그 여파로 연구윤리 수업이 생겼다고 한다. 내 룸메이트 말에 따르면 그 수업은 정말 재미없고 별 내용도 없다고 하는데, 이왕 하는 거 조금 재미있게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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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독백) “싸늘하다. 지도교수의 한 마디가 가슴에 꽂힌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편집 속도는 연구 속도보다 빠르니까. 외국 논문에서 한 단락, 국내 논문에서 한 단락, 내가 쓴 거 한 단락, 외국 논문에서 한 단락, 다시 국내 논문에서 한 단락...”
논문심사위원: “동작 그만, 첫 논문부터 표절이냐?”
학생: “무슨 말씀입니까?”
논문심사위원: “국문초록만 늬 손으로 썼지, 교수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냐?”
학생: “증거 있으십니까?”
논문심사위원: “증거? 증거 있지. 너는 구글 스칼라에서 자료를 찾았을 것이여. 그리고 이거 이거 주술 호응 안 맞고 내용 전개도 뜬금없고 인용부호 없는 문장, 이거 외국 논문에서 그냥 따온 거 아니여? 자, 모두들 보쇼. 어디서 적당히 대충 긁어 와서 석사과정을 끝내겠다 이거 아니여?”
학생: “상상력이 풍부하십니다, 교수님.”
옆 교수: “저기 김 선생, 그 표절 확인하는 프로그램에 넣고 돌려봐.”
논문심사위원: “논문 건들지 마, 손모가지 날라가분께. 해머 갖고 와!”
학생: “정말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논문심사위원: “표절하다 걸리면 피 보는 거 지도교수한테 안 배웠냐?”
<<표절에 대해 알아봅시다.>>
(2014.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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