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도 그랬지만 외가 식구들하고 외가에 가면 아무도 다른 곳에 가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힘이 없어져서 아무 데도 가기 싫어한다고들 하니 이모들이나 외삼촌들은 그럴 수도 있겠으나, 나는 바다를 한 번 보아야 할 것 같았다. 내가 운전을 못 해서 어머니를 앞세워 송호해변으로 갔다.
송호해변으로 가는 차 안에서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어머니도 오랜만에 외가에 오면 어디 좀 돌아다니고 싶은데 동생들이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며 이래서 따로 차를 가져와야 한다고 하셨다.
사실, 어머니 형제들이 외가에 와서 낮에 에어컨 바람을 쐬며 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 분들 중 자식과 함께 외가에 오는 것은 나의 어머니뿐이다. 사촌 동생들은 다들 직업도 있고 애인이나 배우자가 있어서 그런지 자기 부모와 함께 외가에 오지 않는데, 나는 마흔 살이 되도록 직업도 없고 애인도 없으니 어머니를 따라 외가에 온다. 그렇게 가서 저녁에 고기 먹고 술 먹고 이모에게 당뇨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침에 일어나 아침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점심 먹고 막걸리 한 잔 마시고 커피 마시다가, 어머니를 꼬드겨서 어머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어디로 가는 것이다.
하여간 송호해변으로 가다가 도로변에 있는 “공재고택”이라는 안내판을 보았다. 공재 윤두서는 고산 윤선도의 증손자이고 종손이니 해남 윤씨인 어머니와 관련이 있기는 있을 텐데, 어머니는 녹우당(해남 윤씨 종가)만 가보았지 공재고택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했다. 송호해변에 들르기 전에 공재고택부터 들르기로 했다. 공재고택으로 가는 길에 저수지에 연꽃을 잔뜩 심은 것도 보았는데 일단 공재고택부터 들르기로 했다.
녹우당은 종손이 거주하고 있어서 평상시에는 문이 잠겨있는데, 그와 달리 공재고택은 외부인에게 개방되어 있었다. 옛날에는 비교적 규모가 컸다고 하는데 현재는 일부만 남아 있다고 한다.
공재고택 근처에는 고택과 비슷한 건물하지만 사람이 거주하는 건물들도 있다. 전후 사정은 모르지만, 아마도 예전에는 공재고택의 일부였으나 별도로 사용되는 건물인 것 같았다. 거주자는 아마도 공재의 후손일 것 같기는 하지만(명패를 보니 윤씨였다) 정확히는 모르겠다. 공재고택 담 너머로 얼핏 보니 그 집에서 키우는 누런 개가 맹렬히 짖었다.
고건축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는 내가 보아도 공재고택은 다른 옛날 집들과는 확연히 달라 보였다. 옛날 부자집은 저렇구나 싶은 그런 건물이었다. 담벼락부터 달랐다. 해남 쪽에는 돌이 많기 때문에 부자집이나 일반집이나 돌을 쌓아 담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확실히 부자집 담벼락은 달랐다. 특히나 일반집과 다른 것이 배수였다. 민속촌 같은 데서는 어디서 기둥이나 서까래를 뜯어왔는지 모르겠지만 배수가 개떡같이 되어 있어서 비가 조금만 와도 진흙탕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공재고택은 웬만한 집 한두 채에 들일 정성을 배수에 들인 듯했다. 배수에 문제가 생기면 집은 물론이고 담벼락까지 무너진다.
공재고택을 향하며 지나쳤던 곳이 신방저수지다. 공재고택에서 나와 송호해변으로 가다 신방저수지 근처를 반 바퀴 정도 차로 돌았다.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는 그 넓은 저수지를 연잎이 뒤덮고 있었다. 연꽃이 피면 굉장한 장관이겠다 싶었는데 나중에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알아보니 여간해서는 신방저수지에서는 연꽃이 피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내가 원빈 같은 남자면 이나영 같은 여자하고 이런 곳에서 결혼하겠네’ 하는 생각을 했다.
하여간 신방저수지를 반 바퀴 돌면서 보니 기가 막힌 장소가 두 군데 있었는데 마침 두 군데 모두 임자가 있었다. 한 곳은 산 사람을 위한 공간이었고, 다른 한 곳은 죽은 사람을 위한 공간이었다.
한 곳에서는 나지막한 건물이 몇 개 있고 일부는 잔디가, 일부는 자갈이 깔려 있었다. 빈 땅을 본 사람들이 텐트를 치려고 해서 그런지 “이 곳은 사유지이니 텐트 설치를 금합니다”라고 써 있었다. 누가 이렇게 좋은 곳에 사는가 싶어서 둘러보니 “국제영성원 해남휴양지”라고 써있었다. 으스스해서 얼른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다른 한 곳은 일종의 가족 묘지였는데, 그 전날 보았던 죽음사하고는 비교가 안 되게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내가 풍수는 전혀 모르지만, 이런 곳이 명당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좋은 자리였다. 묘지를 그 정도로 잘 관리할 정도로 후손이 잘 되었으니 이런 곳을 차지하고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신방저수지에서 몇십 분을 가면 송호해변이 나온다. 송호해수욕장을 가는 중간 중간에 경치 좋은 곳이 몇 곳 있는데 거기는 해수욕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해수욕이 목적이 아니라면 사람 많은 해수욕장을 대신 그런 곳에 잠시 들러서 바다를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송호해수욕장에는 사람이 많았다. 날이 하도 더워서 그런지 빽빽 우는 아이들이 더러 있었다. 어머니는 “더워 죽겠는데 뭐 하러 아이들을 바다에 데려와서 저 고생이냐?”면서, 나중에 결혼해서 어디 갈 때 아이는 자기한테 맡기고 가라고 했다. 빽빽 우는 아이들을 보니 어머니 말씀이 맞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송호해수욕장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공재 고택과 신방저수지를 둘러보고 와서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송호해수욕장에서 3km 거리에 땅끝마을이 있으나 땅끝마을은 땅끝이라는 의미 부여 말고는 그냥 바다일 뿐이므로 어머니는 땅끝마을에 들를 마음은 없었고 보길도에 가보는 것은 어떠냐고 나에게 제안했다. 보길도에 가면 좋겠지만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보길도에 들어가면 그 다음 날에야 나올 판이었다. 다음에 해남에 오면 그 때 보길도에 오기로 하고 맥주와 치킨이 기다리는 외가로 돌아왔다.
* 뱀발
해남 읍내에는 토종닭을 튀겨 치킨을 만드는 가게가 있다. 늙은 닭을 튀기면 일반 어린 닭처럼 부드럽지는 않지만 씹는 맛이 있다. 씹을 때 약간 더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다.
(2024.08.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