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20

선생님 연구실 정리를 돕고 나서



지난 주 금요일에 전 지도교수님을 만났다. 전 지도교수님 연구실에 가니 책은 없고 서류 상자만 몇 개 있었다. 책은 이사 업체를 불러서 모두 옮겼지만 업체를 부를 때까지 옮길 서류와 파쇄할 서류를 분류하지 못해서 서류를 옮기지 못한 것이다. 선생님은 작은 상자를 못 구해서 큰 상자에 서류를 넣었더니 두 사람이 들어야 할 정도로 무거워졌다고 하셨다. 아무래도 선생님은 평소에 이런 일을 안 해보신 것 같다. 나는 서류 상자를 선생님 차로 옮기는 일과 몇몇 서류를 파쇄하는 일을 했다. 일을 하다 보니 저녁 시간이 되었다. 선생님과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6동에서 나와 식당으로 향할 때 선생님이 물어보셨다. “요즈음도 화성에서 통학을 하나?” 나는 기숙사 리모델링하느라 1월 한 달 간 찜질방과 집을 오가며 지내다 2월부터 학부 동창의 집에 얹혀살고 있다. 매일 찜질방에서 지내면 몸이 상하고 매일 통학하면 하루에 통학 시간만 네 시간이 걸린다. 나는 화성에서 서울로 등교한 날은 근처 찜질방에서 하룻밤 자고 그 다음날 학교에 등교한 다음 화성 집으로 가는 방법을 택했다. 그렇게 일주일에 두 번 등교해서 4일 동안 연구실에서 지내는 생활을 했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학부 동창은 기숙사 리모델링 끝날 때까지 한 달 간 같이 지내자고 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은 선생님 석사 과정 때의 이야기를 하셨다.

선생님이 석사 과정에 입학했을 때는 학교가 황량했다고 한다. 지금은 건물도 많고 나무도 많지만 당시는 혜화동에 있던 학교를 옮긴지 얼마 안 되어서 텅 빈 골프장에 건물 몇 개 지어놓고 묘목 몇 그루 심어놓은 정도였다고 한다. 강남 개발 이전인데다 골프장은 대중교통과 별로 상관없는 곳이라 교통이 매우 불편해서 친구들하고 막걸리 한 잔 하려고 해도 한참을 걸어서 나가야 했다. 그렇게 걸어서 학교를 나가는데 그 때 그렇게 눈이 왔었다고 하셨다. 6동에서 내려와 3동을 지날 때 선생님은 3동을 가리켰다. 3동 4층에 있는 연구실을 네 명이 같이 썼다고 한다. 마침 3동 4층에 불이 켜져 있었다.

석사과정 때 선생님은 수유에 사셨다. 학교에 오는 데만 2시간가량 걸렸기 때문에, 연구실에서 책상을 붙여서 잠을 잘 때도 많았다고 한다. “그 때는 고생을 해도 그게 고생인 줄 모를 때였지.” 선생님은 그 옛날 친구들과 막걸리 마시러 갈 때 눈이 온 것처럼 눈이 와서이기도 하고 마침 내 숙소 이야기도 들어서 예전 생각이 났다고 하셨다. 말씀은 안 하셨지만, 아마도 학생으로 다녔던 학교에서 교수 생활을 마치고 연구실을 정리하면서 든 감회도 있었을 것이다.

교수 식당에서 내가 물을 따르려고 하니 선생님은 “아니야. 내가 따르지”라고 말씀하셨다. 컵에 물을 따라 주시면서 “고생한 사람은 이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지”라고 하셨다.

(2019.02.20.)


공무원 가족 무고단을 상대하는 나의 각오

내가 읽은 글 중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대충 기억에 얼마 전까지 인문계열의 조교수 최초 임용연령 평균은 47.6세였다. 박사학위를 27살에 받는다고 치면 20년, 35살에 받아도 10여 년의 일시적인 고난이 기다리고 있다.” 인문계열의 조교수 최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