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03

나의 첫 학부수업 강의



이번 학기부터 학부 강의를 맡게 되었다. <언어철학>과 <심리철학>, 이렇게 두 개다. 처음 맡는 학부 수업이다.

원래는 같은 대학원 다니는 목사님께 소개받은 <영화로 철학하기>라는 교양수업을 할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말이 안 되는 수업이라고 생각했다. 영화는 영화고 철학은 철학이지, 영화로 철학을 한다니 되나? 이상한 영화나 보고 철학 같은 소리나 하며 되지도 않게 꼬부랑꼬부랑 프랑스 말이나 쓰는 떠벌이들이나 할 법한 소리 아닌가? 그런데 말이 되게끔 수업을 재편할 방법이 떠올랐다.

영화와 철학을 연관 짓는 기존 저작들은 어떤 영화의 일부분을 과장되게 해석하여 철학자 한 명과 억지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무슨 영화는 플라톤, 무슨 영화는 아리스토텔레스, 무슨 영화는 니체, 하는 식으로 연결하여 철학사를 책 한 권으로 정리한다. 당연히 영화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안 되고, 철학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안 되고, 철학사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안 된다. 가령,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인간을 모방한 레플리컨트들이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플라톤의 이데아와 연결된다. 레플리컨트를 붕어빵이나 국화빵과 연결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그런데 이것은 국내 교양서의 문제라고만 하기도 어려운데, 해외에서 이런 식의 교양서적이 나온 뒤에 한국에서 비슷한 유형의 교양서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영화와 철학을 정상적으로 연결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영화의 내용이나 주요 소재를 사고실험과 연결하는 것이다. 철학에서 쓰는 주요한 도구 중 하나는 사고실험인데, 사고실험은 실생활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이를 접했을 때 일종의 심리적 저항감이 생길 수 있다. 반면, 영화나 소설은 애초부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감상자가 심리적 저항감 없이 작품 설정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영화가 감상자를 사고실험 코앞까지 데려오면 그 다음부터 철학적 내용이 시작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영화의 배경을 통해 어떤 철학 사조가 생겨날 때의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는 것이다. 철학 그 자체의 논증보다는 사상사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가령, 영화 <묵공>은 초기 묵가와 더불어 그의 경쟁자인 맹자 등을 설명할 때 도움이 될 수 있고, 이연걸이 자객으로 나오는 영화 <영웅>은 후기 묵가 등을 설명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다.

세 번째는, 영화에서 잘 이해되지 않을 수 있는 부분을 설명하는 데 철학적 내용을 이용하는 것이다. 가령, 주성치의 <서유기 월광보합>, <서유기 선리기연>의 경우 주인공이 지존보이면서 손오공인데, 이는 불교의 영혼이나 윤회와 관련지어 설명할 수 있다. 누군가가 윤회한다고 하면 그 사람의 영혼의 동일성이 유지된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영혼을 일종의 실체로 보는 것은 아니냐는 물음도 가능할 것이고, 그런 식으로 환생할 경우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 어떻게 될 것이냐는 물음도 가능할 것이다. 그에 대한 불교의 답변은 자아 같은 것은 실체가 아니라 작용이라는 것이다. 내가 불교를 제대로 공부한 것은 아니고 얼핏 들은 것이어서 정확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내용을 설명하면서 영화 내용을 설명하면 영화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고 불교 개념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수업을 구성하면 부수적인 이점이 있는데, 바로 수업 자료를 모아 책으로 출판할 경우 시리즈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저작들은 영화 한 편과 철학자 한 명을 연결하여 일종의 철학사로 구성했기 때문에, 설사 어떤 책이 잘 팔린다고 해도 후속작을 내기 애매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와 달리, 영화 한 편을 사고실험 하나, 개념 하나와 연결한다면, 후속작을 여러 권 만들 수 있다.

공공도서관 같은 데서는 매년 할당받은 예산을 써야 하는데, 누군가에게 초청 강연을 맡기려면 그 사람에게 강연을 맡길 수 있다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 때 주로 사용되는 근거는 그 사람이 쓴 책이다. 내가 <영화로 철학하기> 수업 자료로 엮어서 책으로 출판하면 공공 도서관에서 나를 부를 근거가 생긴다. 물론, 대학원생이 까불고 다니는 것은 망했음을 보여주는 일종의 표지이기 때문에 졸업 전에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말고, 졸업하고 나서 영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충 1회 강연에 30-40만 원 정도 받을 테니 많은 돈은 아니지만 내 형편에 부수입으로 괜찮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정작 목사님께 소개받은 학교에서 내가 강사로 채용되지 않았다. 면접 분위기도 좋았고, 면접관들이 물어본 것도 답변 잘 했고, 강의는 무슨 요일에 할 수 있냐고도 물었다. 면접관이 말하는 것만 들으면 강사 시켜줄 것 같았는데 강사가 안 되었다. 집에서 승용차로 2시간 30분이나 가서 면접을 보았는데 허탕쳤다. 채용이 안 되어 약간 짜증 났었는데, 강사로 채용된 분이 나보다 나이 많은 독일 유학 박사라는 소식을 듣고 거짓말처럼 짜증이 싹 사라졌다. 그 분이 맡는 게 맞다.

문제는, 내가 강의를 여러 개 할 생각이 아니어서 <영화로 철학하기> 말고 다른 강의 자리는 지원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학부 강의 경력이 있어야 서울시 교육청에서 하는 사업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다. 개학은 점점 다가오고 마땅한 강사 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어느 신학대 철학 전공 수업을 맡을 강사를 모집한다는 안내문을 보게 되었다. 마감 기한까지 시간이 많지 않아 부랴부랴 서류를 제출했다. 서류 심사 기간이 거의 다 끝나가는데도 해당 학교에서는 아무 연락도 하지 않았다. 서류 심사 기간이 끝나고 내가 강사로 채용되었다는 이메일이 왔다. 그렇게 학부 <언어철학>과 <심리철학> 수업을 맡게 되었다.

아니, 내가 서류상으로만 정상이고 사실은 미친 놈이었으면 어쩌려고 면접도 안 보고 나를 강사로 채용했을까? 신학대여서 신의 섭리 같은 것을 믿었나?

하여간, 첫 수업을 해야 했는데, 어차피 첫 주는 수강 변경 기간이라 수업을 알차게 해봐야 크게 의미가 없다. 수업과 관련되지만 안 들어도 이후 수강하는 데 지장 없는 이야기를 첫 주에 한다. 그렇다고 대충 놀 수도 없다. 사실, 놀면 (내가) 좋은데, 그러면 학생들이 나를 양아치로 볼 것이고 상도덕에도 맞지 않다.

어떻게 해야 첫 주 수업을 알차게 할 수 있나? 학술적 글쓰기와 관련된 일종의 특강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분량의 글쓰기 특강을 한다면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고, 그렇게 특강을 만들고 고치고 개선하다 보면 다른 곳에서 아르바이트로 특강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참 좋은 생각인데, 그렇다고 내가 글쓰기 특강을 준비해 놓은 것도 아니었다. 다음에 학부 강의를 할 때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첫 수업에서는 여느 수업과 마찬가지로 해당 과목과 관련된 전반적인 사항을 한 시간 정도 설명했다. 수업 관련해서 나의 방침도 간단히 설명했다. 나는 학생들에게 무리한 것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며, 상황을 보아가며 탄력적으로 수업을 운영할 것이라고 했다. 생각보다 학생들이 잘 하면 약간 더 시키고 안 될 것 같다 싶으면 더 쉽게 설명하거나 더 적게 진도를 나갈 수도 있는데, 최대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가게 하겠다고 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어도 소화를 못 하면 똥으로 나오는 법이며, 이는 교육에도 해당된다. 피트니스 클럽에서 고객이 신체적 손상을 입지 않는 범위 내에서 약간 도전적인 것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과 비슷하게 학부 수업을 진행할 생각이다.

내가 학생들에게 당부한 것도 있다. 하나는, 과제를 낼 때 절대로 분량을 초과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비평문 과제의 경우 A4용지 두 쪽 이내로 분량을 제한할 것인데 오바해서 세 쪽 이상 쓰면 무조건 감점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전에 글쓰기 수업 조교 할 때 어떤 학생이 두 쪽 이내로 써야 할 감상문을, 담당 교수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홉 쪽이나 써서 화가 많이 났던 적이 있다. 분량만 많은 것이 아니라 글이 너무 개떡 같아서 그 때 화를 못 참고 첨삭하며 글을 거의 저며놨던 적이 있다.(그 때문에 그 선생님이 약간 안 좋게 받았다고 들었는데 그건 지금 생각해도 죄송하다.) 내 노동력을 착취하려고 하면 안 된다. 분량을 초과하여 쓰는 학생은 반드시 응징하겠다고 밝혔다.

다른 하나는 성적 관련하여 부당한 요구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예상을 너무 밑도는 터무니 없는 점수를 받았다면 어떻게 된 일인지 강사에게 물을 수 있다. 그런데 가끔 A0를 받아놓고도 강사에게 그 정도 권한이 있는 거 다 안다면서 자기 성적을 A0에서 A+로 올려달라고 강사에게 당당하게 요구하는 학생들이 있다고 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본 게 아니라 아는 사람에게 들은 실화다. 나는 이 이야기를 꺼내면서 학생들에게 말했다. “세상에 그런 싸가지 없는 놈들이 실제로 있어요. 신학대학에서 그렇게 하지 않겠죠? 하나님이 보고 계십니다.” 나는 혹시라도 그런 놈이 있다면 반드시 응징할 것이라고 했다.

나의 두 가지 당부를 들은 학생들은 모두 웃었다. 그렇게 나의 첫 학부 수업이 끝났다.

(2024.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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