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04

안동 <유교랜드> 탐방기



내가 안동 <유교랜드>에 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올해 8월부터였다.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김영민 교수가 <한국일보>에 쓴 칼럼 “만들어진 전통으로서 유교, 타율적 도덕으로 이 땅을 구한다?”을 읽고서 <유교랜드>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유교랜드>에 가야겠다고 생각만 하던 어느 날, 학부 동기가 국내 여행을 제안했다. 후보지로 강릉, 안동, 여수가 나와서 나는 적극적으로 안동을 밀었고, 결국 나를 포함한 세 명은 안동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우리 일행은 비슷한 시기에 같은 학부를 다녔다. 유학의 본산이라고 주장하는 학교를 다니며, 기독교 학교 다니는 학생들이 채플을 듣듯이 필수 교양과목으로 <유학사상>을 들었다. <유학사상>을 들은 세 사람이 <유교랜드>를 방문하니 얼마나 감격이 차올랐겠는가?







<유교랜드> 건물에 들어섰다. 입장권을 사기 위해 매표대 앞에 섰는데 등 뒤로 쿵짝쿵짝 하는, 촌스럽고 시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여기는 <유교랜드>인데 왜 이런 음악이 나오지? 표를 끊고 뒤돌아서서 본격적인 관람을 시작하자마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내부에 들어서서 맨 처음 보게 되는 것은 비행 청소년들을 나타낸 것으로 추정되는 마네킹이다. 그 맞은편에는 공장에서 매연을 내뿜는 영상이 나오고, 전시관 가운데는 스포츠카가 있다. 비행 청소년, 스포츠카, 환경오염, 이 셋이 왜 한 공간에 있는가? 힌트는 환경오염을 보여주는 벽의 구석에 붙은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에 있다.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 1991년에 일어난 일이다. 환경오염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건을 말해보라고 하면, 대체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나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 등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이라니. 유치원 때의 기억이 스믈스믈 떠올랐다. 그 당시 우리집은 당구장을 했는데, 아버지가 당구장 출입문에 낙동강 폐놀 방류 사건 뭐시기 하는 문구와 두산 제품 불매하자는 문구를 종이에 써서 붙인 적이 있었다. 30년 전 기억이 떠오르면서 모든 수수께끼가 풀렸다. 그 방에 놓인 것들은 모두 30년 전에 사회 문제라고 언론에 나왔던 것들이다. 스포츠카는 오렌지족과 야타족을 가리킨다. 문란한 성 풍속을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없으니 스포츠카로 대신한 것이다. 1990년대 초반에는 골프가 확산되는 것도 일종의 과소비이자 풍기문란 비슷한 것으로 여겨졌는데 골프 의류와 장비는 이를 가리키는 것이다.





30년 전 사회 문제라고 여겨졌던 것들을 상기하게 되니 반갑기는 한데, 벽 곳곳에 “우리는 지금 행복한가”,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인가”,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고 묻는 형광 글씨가 있는 것을 보니 혼란스러웠다. 2020년에 1990년대 초반의 모습을 보여주며 우리가 지금 행복한지,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물으니 정신이 아득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저 멀리 “유교, 그 아름다운 세상을 찾아서”라고 쓴 형광 글씨가 있고 그 밑으로는 시간의 터널처럼 보이는 터널이 있는데, 터널 입구에 맨 앞에는 “2002”라고 써 있다. 분명히 지금 본 게 1990년대인데 다시 2002년에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고? 관람객들이 시간 여행을 한다는 기분이 들도록 일부러 시점들을 어긋나게 배치해서 지금이 언제인지 헷갈리도록 한 것인가? 어쨌거나 그렇게 터널을 지나가면 대동마을이 나오고 주인공인 동이와 동이 가족들이 보인다.







대동마을에는 눈에 띄는 이상한 점이 있다. 여자가 거의 안 보인다는 것이다. “만민이 어우러지는 세상을 ‘대동’이라고 한다”는 대동마을인데 아들, 손자, 삼촌, 아버지, 할아버지만 있고 여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런 극단적 남초 사회가 대동 사회라니 그들에게 뭔가 말 못 할 슬픈 사연이 있었던 것인가? 아니다. <유교랜드>에는 여자가 딱 두 번 나온다.

하나는 2층 대동마을에서 보여주는 영상이다. 관람객들을 환영하고 대동마을이 어떤 곳인지를 설명하는 영상인데 여기서 여자들은 늦기 전에 씨 뿌리러 가야 한다면서 서둘러 밭에 가버리고 이후 내내 남자들만 나온다. 영상에서는 미래에서 손님들이 왔다면서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 동생을 불러서 손님들을 맞는다. 어머니, 고모, 이모, 여동생은 부르지 않는다. 그렇게 남자들만 잔뜩 나와서 예의가 어떻고 인륜이 어떻고 요즈음 세상이 어떻고 인의예지신이 어떻고 하는 말을 한다.






다른 하나는 “조선의 여성 선비”를 소개하는 곳이다. 여성 선비? 선비는 일단 남성이라는 말이다. 선비와 여성 선비의 관계는 마치 깡패와 여자 깡패와 비슷해 보인다. 하여간, <유교랜드>에서는 “성현의 가르침을 배우고 행하여 인품을 갈고 닦는데 어찌 남녀의 차별이 있을 수 있겠”느냐고 한다. 그렇게 여성 선비들이 했던 일이란 무엇인가? 소혜왕후가 『내훈』을 짓고 신사임당이 현모양처이자 훌륭한 예술가였고, 허난설헌이 시인으로 명성을 떨치고, 장계향이 『음식다미방』이라는 요리책을 남긴 것이다. 남자들이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를 할 동안 여자들은 남편 뒷바라지 잘 했다고 선비라고 쳐주는 것이다.





여성이 이렇게 딱 두 번 등장하는 것을 보고 같이 간 일행이 이렇게 말했다. “이야-, 이게 <유교랜드>야 <한남랜드>야?” 참고로, 같이 간 두 명은 모두 남자다.

물론, <유교랜드>에 등장하는 인물이 거의 다 남자인 것은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아니다. 유교 사회에서 여성이 긍정적으로 등장하는 사례 자체가 드물기 때문이다. 유교에서 여성이라고 하면 뭐가 떠오를까? 우선, ‘삼종지도’가 떠오른다. 삼종지도를 여성의 덕목이라고 하면 욕먹을 것 같으니 뺀다. ‘칠거지악’이 떠오른다. 칠거지악도 넣으면 안 될 것 같다. 『논어』 「양화편」에 나오는 “여자와 소인만은 다루기가 힘들다. 가까이하면 불손하고 멀리하면 원망하게 된다”는 구절을 소개해도 안 될 것 같다. 이것도 뺀다. 그렇게 21세기에 맞게 이것도 빼고 저것도 빼니 남는 것이라고는 『내훈』, 현모양처, 예술가, 요리책만 남는다. 어떻게든 유교에서 좋은 것만 보여주려고 애쓴, 기획자의 고뇌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이렇게 보면 <유교랜드>라는 이름도 상당히 고심해서 지은 이름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름은 <유교랜드>이지만 거기서 전시하는 것은 대부분 한국 유교에서 비롯된 몇 가지 피상적인 것들이다. 이건 초대 교회 없고 중세 교회 없고 종교개혁 없고, 예수님과 선교사와 한국 개신교 100년의 일부만 전시해놓고 <기독교랜드>라고 이름 붙인 것과 비슷하다. 그렇다고 <선비랜드>라고 하면 대놓고 한남랜드 만들겠다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나름대로 성-중립적인 표현을 하려고 <유교랜드>라고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유교랜드>는 “3대가 함께 즐기는 유교문화 체험 테마파크”를 표방한다. 3대가 함께 즐길만한 유교문화는 어떤 것이 있을까? 촌수와 호칭을 배우고 확인하는 퀴즈를 푼다. 그에 해당하는 가족의 이름을 입력하면 조악한 족보가 나온다. 천자문 배우기에서는 기초 한자 일곱 개를 입력하고 끝난다. 책거리할 때의 잔치상을 그림으로 그려놓고 거기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사서삼경 익히기에서도 겉핥기의 겉핥기 정도 되는 내용이 나온다. 장원급제 포토존이 있다.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하여 레이저 포인터로 된 게임을 할 수 있다. 홍동백서 조율이시에 따라 제사상에 음식을 위치대로 올려놓을 수 있다. 가훈 짓기도 할 수 있다.













<유교랜드>의 유교문화 체험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현재에도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활동이다. 촌수와 호칭은 서열을 매기고 구분 짓는 활동이다. 넓게 보면, 학번에 따라 말을 놓으라마라 하고 OT 같은 데 가서 술 먹다가 “내가 재수해서 나이가 한 살 많은데 같이 입학했다고 어린놈들이 나한테 말을 놓아요” 하면서 쳐우는 것 등이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하기는 하는데 소수만 하는 활동이다. 천자문 익히기, 사서삼경 익히기 등이다. 실제로도 그런 활동은 소수만 하는 만큼 <유교랜드>에서도 아주 피상적으로만 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아무도 안 하는 활동이다. 과거 체험이라든지, 의병 체험이라든지, 장원급제 포토존 하는 것들이다.

첫 번째 것은 해봤자 시시한 것이며, 두 번째 것은 대부분 하지도 못하고 해봤자 재미도 없을 것이며, 세 번째 것은 아무도 해본 적도 없고 앞으로 누구도 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게 무엇을 보여주는가? 결국, 한국에서 유교 문화라고 하는 것은, 그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동아시아 문명에서 유교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학자들이 연구할 일이다. 그것과 별개로, 21세기 한국 사람들에게 유교란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결국 족보 따지고, 촌수 따지고, 가훈 짓고, 제사상 잘 차리는 것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영상물에서도 엿보인다. “인의와 예지의 도깨비 나라”는 어른 말을 안 들으면 도깨비가 아이를 혼내주는 이야기이고, 심청이 이야기는 오늘날로 따지면 아버지가 능력도 안 되면서 신용 대출 받아서 자식이 신체 포기각서 쓰고 팔려가게 하는 이야기이다. 『삼강행실도』나 『오륜행실도』도 아니고 그나마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것이 이 정도라는 것이다. 이는 노신이 「광인일기」에서 말한 것처럼 오늘날 한국에서 유교가 “사람을 잡아먹는 예교(禮敎)”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재 <유교랜드>에는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 찾는 사람이 매우 적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이 운영해서는 적자 폭을 메울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유교랜드>를 활용할 수 있을까? 아마도 세 가지 활용 방안이 가능할 것이다.

첫 번째 활용방안은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세상 즐거울 일 없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치료 목적으로 관람하게 하는 것이다. 물론, 그냥 관람하게 하면 증세가 나빠질 수 있으니 가이드 역할을 할 사람과 함께 가야 할 것이다. 나도 일행과 관람 내내 웃으며 돌아다녔다.

두 번째 활용방안은 외국 학자들이 한국에 학술대회 등으로 들렀을 때 관광 코스로 만드는 것이다. 학술대회 끝나고 외국인 학자들한테 경복궁이나 보여주는 것이 고작인데, 경복궁은 현대 한국을 이해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그런데 <유교랜드>라면 어떨까? 사회학자나 인류학자가 특히 관심을 보일 것이다.

세 번째 활용방안은 전통적 구습을 탈피하는 교육 장소로 활용하는 것이다. 전교조 등과 제휴를 맺고 학교 소풍이나 수련회를 <유교랜드>로 오게 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 학생들의 눈에 유교적 구습이 너무도 우스운 것으로 보일 것이다. 유교 경전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지만 어쨌든 과거를 그리워하는 유교 꼰대들이 반동적인 행태를 보이더라도, <유교랜드>를 다녀간 학생들은 그들에게 적개심을 가지거나 분노하는 대신 웃으면서 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 식으로, 세대 간의 갈등이 완화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유교랜드>를 짓는 데만 430억 원이나 들었고 매년 10억 원이나 되는 적자가 나고 있다. 이를 두고 아까운 혈세만 축내고 지역의 애물단지가 되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렇게만 볼 것이 아니다. <유교랜드>는 한국인은 어떤 사람들이며 한국은 어떤 곳이며 기성세대가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들인지를 과장되지만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곳이며, 430억 원이나 들여서 테마파크를 만들어도 제대로 된 체험할 수 있는 것이 없을 정도로 유교적 구습이 오늘날 힘을 잃었음을 드러내는 곳이다. 지난 세대는 유교적 구습에 고통받았지만 새로운 세대는 웃으면서 과거와 작별할 수 있음을 <유교랜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유교랜드>를 짓는 데 들어간 430억 원과 매년 발생하는 10억 원의 적자는 그리 큰 비용이 아닐지도 모른다.







(2020.12.04.)


2021/02/03

[자기 계발] 배우가 되려는 사람이 지켜야 할 것

  
(1) 시간 지키기
  
- 시간 지키기는 시간 운용을 어떻게 할지를 함축한다.
- 배우 교육은 전문가 교육이며, 전문가 교육은 사회에 진출했을 때 바로 적응하게 하는 교육이다.
- 전문가가 되기 위한 교육의 기본은 시간 지키기다.
  
  
(2) 잡기를 금하고 기초 훈련 반복하기
  
- 배우의 기초 훈련은 몸 풀기, 몸 다스리기, 소리 내기다.
- 기초 훈련은 연기를 배우는 순간부터 연기를 그만 두는 순간까지 늘 되풀이해야 한다.
- 기초 훈련은 공연 연습과 별도로 매일 해야 한다.
- 배우는 술과 담배를 하면 안 된다. 3년 전, 10년 전부터 마신 술이 배우의 목소리를 타고 전달되기도 한다.
- 연습시간에 내기 바둑을 두거나 연습실에서 화투를 치는 행동은 맑고 경건해야 할 배우의 정신을 혼탁하게 하니 하면 안 된다.
  
  
(3) 한계를 극복하는 휸련하기
  
- 연습 일정이 100이고 도달해야 할 목표가 100이라면 배우 훈련은 항상 120 이상 밀도 있는 훈련이어야 한다.
- 연출가는 때때로 정해진 시간에 약속한 것 이상으로 배우를 채찍질하거나 풀어주면서 120의 훈련을 시키고 리허설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배우가 무대에서 편안하게 100을 발휘할 수 있다.
  
  
(4) 자매예술에 대한 이해와 기술 갖추기
  
- 연극은 여러 예술이 어울려 하나가 되는 것이므로 배우는 자매예술가들이 하는 것을 잘 이해해야 한다.
- 자매예술에 대한 이해는 음악, 미술, 공연 작품에서 비롯된다.
- 연출가는 자매예술에 대한 이해만 있어도 되지만 배우는 실제 무대에서 연기를 해야 하므로 자매예술의 기초 기술을 습득해야 한다.
- 셰익스피어나 몰리에르의 작품을 하려면 서양식 몸가짐을 가지기 위해 발레의 기본을 익혀야 한다. 한국 고전을 공연할 때 한국 무용의 기초가 없다면 한복을 입고 서서 걷는 것도 쉽지 않다. 서양 고전작품을 공연할 때 칼을 휘두르기 위해서는 펜싱의 기본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5) 수련 일지 쓰기
  
- 배우는 날마다 기초 훈련을 해야 하며 날마다 수련 일지를 써야 한다.
- 일지에는 연습 시간, 연습 장소, 내용(호흡, 발성, 발음 훈련 등)을 기록하고 자기 느낌을 정리한다.
- 매일 자기관리를 함으로써 훈련을 열심히 하게 되고 집중력을 가지게 된다.
- 수련 일지 쓰기가 습관이 되면 현장에서 일할 때도 일지를 쓰게 된다. 이러한 습관은 작품이나 대사 분석 등을 체계적으로 수행하게 하며 대본을 대충 읽고 주먹구구식으로 분석하는 것을 피하도록 한다.
  
  
* 참고: <배우수련>, 안민수 지음, 헤르메스미디어 펴냄, 44-51쪽.
  
  
(2016.12.10.)
  

2021/02/02

수로에서 억새를 태우다가



수로 근처에 있는 억새에 불을 놓다가 밭둑에 있는 밤나무를 태워먹을 뻔 했다. 나는 억새가 그렇게 화력이 센지 몰랐다.

억새에 불을 놓은 것은 토지의 경계선을 명확하게 표시해놓기 위해서였다. 여름에 토지 경계를 측량하고 나서 밭 경계에는 말뚝을 박고 나무를 심었으나, 수로 근처 경계는 억새가 너무 우거져서 손을 대지 못하고 빨간 말뚝만 박아놓았다. 이제 겨울도 되었고 풀도 다 말라죽어서 억새를 정리한 것이다.

억새를 베어놓고 나니 처리하는 것이 문제였다. 몇 년 전에 동네 아저씨가 수로 근처에 있는 억새에 불을 놓았다가 불이 번져서 밭둑에 있는 나무들까지 홀랑 다 태워먹은 일이 있었다. 그 이후로 그 쪽 억새에는 아무도 불을 놓지 않아서 죽은 억새가 켜켜이 쌓여있었다. 내가 벤 억새가 그대로 썩어 없어지면 다행인데 혹시라도 어떤 놈이 불을 놓아서 타기라도 하면 문제가 생길 일이었다. 그래서 내가 미리 문제가 될 만한 소지를 없애기로 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불이 옮겨 붙을 만한 곳에 있는 억새나 마른 풀을 낫으로 베어서 정리했다. 태울 억새도 모두 수로에 고인 물에 띄웠다. 적당히 타다가 가라앉게 할 생각이었다. 설사 불이 뜻하지 않게 옮겨 붙는다고 해도 근처에는 산도 없고 집도 없고 논은 추수가 끝나서 비어있고 밭도 비어있었다. 유일하게 문제가 되는 것은 밭둑에 있는 밤나무다. 몇 년 전에 타죽은 줄 알았던 밤나무에 움이 터서 자란 것인데, 이것만 타지 않게 하면 문제가 될 것이 없을 것이었다.

물 위에 떠 있는 억새에 불을 붙였다. 마른 풀에 불을 붙일 때보다 훨씬 빨리 불이 붙었다. 느낌이 안 좋았다. 그래도 조치를 다 취했으니까 별 일 없겠거니 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불길이 너무 강했다. 볏단이나 마른 풀이나 고추대나 깨 떨고 남은 대 같은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억새에 소나무처럼 인화물질이 들어있는 것도 아닐 테니 마른 풀 정도로 잘 탈 줄 알았는데 상상 이상으로 잘 탔다. 불길이 너무 세서 내가 예상한 곳을 벗어난 곳에 불이 붙었다.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얼마 안 되는 억새에 그렇게 큰 불이 붙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밤나무 쪽으로 불이 옮겨 붙고 있었다. 저거 태워먹으면 어머니한테 미친놈이라고 욕을 바가지로 먹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이 옮겨 붙는 것을 막아야 하는데 불길이 너무 세서 불이 안 번지게 하러 접근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면, 한 쪽 팔로는 얼굴을 감싸고 한 손으로 삽으로 잡고 밤나무 근처로 불이 번질 때마다 삽으로 땅을 내리쳐서 불이 번지는 것을 막았다. 대충 정리가 된 다음에 맨 먼저 한 일은 눈썹이 타지 않았는지 손으로 얼굴을 만져서 확인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눈썹은 타지 않았다.

내가 이번 일을 겪고 생각하게 된 것은, 왜 사극이나 소설 같은 데서 화공 쓰는 장면에 억새나 갈대를 쓰지 않느냐는 것이다. <불멸의 이순신> 같은 드라마에서는 일본 배에 화공을 쓸 때 조선 병사들이 볏단을 던지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볏짚을 태워보면 잘 타기는 하는데 그렇게 화력이 강하지는 않다. 볏짚에 기름을 부은 것으로 설정을 해도 당시에 휘발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동물성 기름이 그렇게 잘 타는 것도 아니다. <삼국지연의> 같은 데서는 유황과 염초(질산칼륨)로 배에 불을 붙인다고 나오는데 당시에 비료공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질산칼륨을 그렇게 대량으로 구할 곳도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화약무기가 발달한 남송시대의 영향이 소설에 투영된 것일 것이다.

화공에서 억새나 갈대를 썼다고 하면 훨씬 개연성이 있게 된다. 억새는 마른 풀보다 불이 잘 붙고 화력도 더 강하며, 줄기가 곧고 단단하기 때문에 여러 개를 모아서 끈으로 묶으면 병사들이 운반하거나 휴대하거나 목표지점에 던지기 쉬울 것이다. 풀은 말을 먹여야 하지만 마른 억새나 갈대는 초식동물의 먹이가 되지도 않으니 다 베어내서 태워 없애도 부담이 없다. 강이나 하구에 갈대가 널려 있으니 노동력만 투입하면 충분히 얻을 수 있다. 마른 풀은 물에 가라앉지만 갈대는 물에 떠서도 불에 잘 붙는다. 고대 전쟁에서 실제로 화공을 어떻게 했는지는 학자들이 할 일이라서 내가 알 바는 아니지만, 적어도 소설 같은 데서는 이러한 요소를 첨가하면 더 그럴듯하게 이야기를 꾸밀 수 있을 것 같다.

(2020.12.02.)


2021/02/01

[과학기술학] 홍성욱 (1999), 4장. “문화로서의 과학, 과학으로서의 역사 ㅡ 쿤 다시 보기” 요약 정리 (미완성)

     

[ 홍성욱, 『생산력과 문화로서의 과학기술』 (문학과지성사, 1999), 149-170쪽. ]
  
  
  1. 과학사학자로서의 토머스 쿤
  2. 막스 플랑크와 양자역학의 불연속 개념의 도입
  3. 왜 쿤은 플랑크를 독특하게 읽었는가
  4. 쿤 식의 사료 읽기와 ‘본질적 긴장’
  5. 쿤과 사회구성주의: 공통점과 차이점들
  
  
  1. 과학사학자로서의 토머스 쿤
  
[151-152쪽]
- ‘쿤 식(Kuhnian) 사료 읽기’
• 과거의 과학에 숨겨져 있는 구조와 의제를 밝혀내는 새로운 역사 해석법
• 쿤의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잇는 연결 고리
• 쿤이 과학사와 과학사회학에 각각 끼친 영향
- ‘양자 논쟁’(Quantum Controversy)
• 쿤의 역사 연구 방법론 일반
• ‘주관’과 ‘객관 간의 긴장과 상호작용
• 과학에 대한 역사적 이해는 일종의 ‘객관적 지식’

 
  2. 막스 플랑크와 양자역학의 불연속 개념의 도입
  
[155-156쪽]

- 막스 플랑크의 양자 가설 : 과학 혁명의 모델로 간주됨
• 혁명의 방아쇠를 당기는 문제들과 기존 패러다임에서 해결되는 문제들 사이에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 역사가들이 전자에 많은 관심을 쏟았듯이 당대의 과학자들도 그랬는가?
예) 19세기말에 살았던 과학자들에게도 마이컬슨-몰리 실험과 흑체 복사 현상이 고전 물리학에 속하는 다른 문제들보다 더 신비하고 도전적이고 혁명적인 것으로 비쳐졌는가?
- 『흑체 이론과 양자 불연속성』(1976) - 쿤의 플랑크 연구
• 쿤은 흑체 복사 문제가 많은 물리학자들의 주의를 끌지 못했음을 보여줌.
• 소수의 실험물리학자들과 그보다 더 적은 이론물리학자들만 그 문제에 관심을 가짐..
• 그런 다음, 쿤은 플랑크의 가설이 본질상 고전적인 것이고 플랑크 자신도 1908년 로렌츠가 플랑크를 설득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가설이 지닌 혁명성을 알지 못했음을 설득력 있게 논증함.
• 그 혁명적인 의미를 처음으로 알아본 사람은 플랑크가 아니라 1906년 알버트 아인슈타인과 파울 에른페스트라는 것. 쿤은 양자역학의 시초를 1900년에서 1906년으로 옮겨놓음.


  3. 왜 쿤은 플랑크를 독특하게 읽었는가
  
[156-160쪽]
- 공약불가능성(incommensurability)
• 에너지 요소 → 양자,  공명자 → 진동자
• 고전 물리학자로서의 플랑크와 양자물리학자로서의 플랑크의 공약불가능성
- 변칙사례(anomaly)
• 양자혁명의 시발점이 1906년이라면 변칙은 1900년 무렵 빈 법칙과 이와 맞지 않는 경험적 관찰들 간에 발생한 불일치 같은 것이 아님.
• 변칙은 플랑크의 1900년 논문 이전이 아니라 에른페스트와 아인슈타인의 1906년 논문들이 나오기 직전의 시기에서 찾아야 함.
• 홍성욱은 플랑크의 수학적인 공식들 그 자체가 변칙이었을 수 있다고 함. 레일리와 제임스 진스가 1905년에 플랑크의 공식들이 고전물리학과 양립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야말로, 젊은 아인슈타인과 에른페스트가 플랑크의 복사 법칙으로부터 혁명적인 양자 이론을 고안하고 제시하도록 추동한 수수께끼였다는 것.
- 다른 물리학사가와의 차이
• 마틴 클라인: 플랑크가 가끔씩 자기 가설의 의미를 다소 혼동한 것으로 해석
• 쿤: 혼동 속에서 위대한 과학적 발견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거짓
• 역사가들이 자신들에게 친숙한 기존의 용어와 시각으로 플랑크의 글을 오해한 것
 
 
  4. 쿤 식의 사료 읽기와 ‘본질적 긴장’
  
[160-162쪽]
- 과학은 전체적인 배경을 고려해야 이해될 수 있는 ‘문화’와 흡사
• 과학 텍스트도 그러한 낯선 문화의 일부분
• 과학자가 쓴 텍스트에 드러난 명백한 오류의 발견과 이해가 필요
• 텍스트의 모든 구절이 이해되고 모든 변칙적인 점들이 사라지도록
• 쿤의 일화(1): 1947년 어느 날, 그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을 갑자기 이해할 수 있게 됨.
• 쿤의 일화(2): 로버트 보일의 글을 거의 이해하지 못하다가 텍스트의 불가해성을 단숨에 극복함.
• 쿤의 일화(3): 플랑크

[162-163쪽]
- 쿤의 철학적인 개념들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에 근거함
• 과학의 보편성과 객관성에 대한 일반적인 믿음에 대한 도전
- 객관과 주관 사이의 ‘본질적 긴장’
• 주관적인 경험이 낳은 객관적인 이해와 객관적인 이해가 낳은 주관적인 결과
• 쿤의 역사적 방법론과 과학 지식의 가설 연역적 구조 사이의 닮음

[164-167쪽]
- 과학자들이 자신의 업적을 얘기하는 것과 그들의 텍스트의 실제 내용 사이의 불일치
• 과학에 대해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던 과학자들의 담론과 이미지에 대항하기
- 과학에 대한 역사적 평가의 차이점
• 과학자들: 과학자들의 단위발견은 그들의 크레디트를 쌓는 기초
• 역사가들: 과학적 발견은 본질적으로 연속적인 것
  
  
  5. 쿤과 사회구성주의: 공통점과 차이점들
  
[167-169쪽]
- 사회구성주의의 쿤 해석 
• 과학적 발견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사회적인 이해관계
- 쿤 식의 과학사과 1980년대 과학사회학 간의 공통점과 차이점
• 텍스트의 ‘불완전성’. 어디서 그 사라진 부분을 찾느냐
• 쿤은 텍스트 안에서 찾음.
• 과학사회학자들은 사회ㆍ문화적 배경 속에서 찾음.
• 둘 다 ‘숨은’ 요소를 찾음으로써 과거의 과학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 가능하다고 봄.

[169-170쪽]
- 사회구성주의의 성과 
• 과학자들은 새로운 사실이나 인공물을 만들어내려고 다양한 ‘밑천’을 동원하고 조작함
• 과학자가 밑천을 동원하는 유연성+밑천이 과학자의 활동을 구속하는 제한성 
- 역사 연구의 실천에 대한 새로운 조명
• 역사적 사료들은 역사가의 실천에 대한 밑천이자 구속물
• 과학적 실천만큼이나 복잡한 역사 연구의 실천
  
  
(2018.12.08.)
     

초등학교 셔틀버스의 전원주택 진입로 출입을 막다

전원주택 진입로에 깔린 콘크리트를 거의 다 제거했다. 제거하지 못한 부분은 예전에 도시가스관을 묻으면서 새로 포장한 부분인데, 이 부분은 다른 부분보다 몇 배 두꺼워서 뜯어내지 못했다. 그 부분을 빼고는 내 사유지에 깔린 콘크리트를 모두 제거했다.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