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27

2024년 여름에 수확한 매실



올해는 다른 해보다 매실을 몇 배 많이 땄다. 내가 다른 해보다 신경을 약간 더 썼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매실청을 10kg 정도 겨우 담갔다고 하는데, 올해 담근 매실청은 벌써 몇십 kg이 넘어간다. 그나마 매실 중 미처 줍지 못하고 썩어서 버린 게 반이라서 그런 것이니, 내년에 더 신경 쓰면 올해보다 매실청을 더 많이 담글 수 있겠다.

올해 딴 매실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예년보다 크기가 많이 커졌다는 것이다. 도토리만 하던 매실이 살구 정도 크기로 커졌다.

우리집에 있는 매실은 두 종류다. 하나는 아버지가 예전에 심은 매실나무로 정확한 품종은 모른다. 매실이 비교적 늦게 익고 황매실 상태로 나뭇가지에 매달리는 기간이 짧으며 열매 크기가 도토리만 하다. 다른 하나는 내가 심은 매실나무로 아버지가 아는 분께 받은 일본 품종이다. 매실이 비교적 빨리 익고 황매실 상태로 나뭇가지에 매달리는 기간이 길고 열매 크기가 살구만 하다.

내가 작년과 올해 봄 매실나무 가지치기를 했더니 원래 있던 매실나무의 매실 크기가 전반적으로 커졌고, 일부는 일본 품종 매실나무에 열린 매실처럼 살구만 해졌다. 별도로 거름을 준 것도 아닌데도 햇볕을 전반적으로 잘 받고 가지 사이로 바람이 잘 통하도록 가지치기에 신경을 쓴 것만으로도 그렇게 되었다.

(2024.06.27.)


2024/08/25

[외국 가요] 사이먼 앤 가펑클 (Simon & Garfunkel)



Simon & Garfunkel - Bridge Over Troubled Water

( www.youtube.com/watch?v=nvF5imxSaLI )

Simon & Garfunkel - Sound of Silence

( www.youtube.com/watch?v=l0q7MLPo-u8 )

Simon & Garfunkel - The Boxer

( www.youtube.com/watch?v=l3LFML_pxlY )

Simon & Garfunkel - Mrs. Robinson

( www.youtube.com/watch?v=9C1BCAgu2I8 )

Simon & Garfunkel - El Condor Pasa (If I Could)

( www.youtube.com/watch?v=i6d3yVq1Xtw )

(2023.05.26.)


모기장 위의 연동이



아침에 창고 문을 열었을 때 연동이가 나를 따라 냅다 뛰어 들어왔다. 평소 같으면 내 주변에서 맴돌면서 놀아야 하는데 오늘 아침에는 나를 보지도 않고 2층으로 올라갔다.

창고에서 매실청 담근 것을 다 휘젓도록 화천이는 2층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알아서 나오겠거니 하고 문을 열어두고 창고 밖으로 나왔다.

몇 시간이 지나도 연동이가 창고에서 나오지 않았다. 밥도 안 먹고 창고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2층에 올라가서 연동이를 부르자 연동이가 작은 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연동이는 모기장 위에 편하게 누워 있었다. 날이 더우니 통풍이 좋은 침구류를 찾았던 모양이다.

(2024.06.25.)


2024/08/24

AI 인문학



글이 풍기는 기운만으로도 그 글이 어떤 글인지 대충 알 수 있는 글이 있다. 제대로 읽지 않고 첫 문단과 마지막 문단만 슬쩍 훑어봐도 글 전체에 사악한 기운이 감돌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을 다룬 어떤 글의 첫 문단을 보자.

‘아마존 메커니컬 터크’(Amazon Mechanical Turk)는 아마존에 있는 하나의 부서가 아니다. 마치 작은 업무를 담당하는 하나의 부서인 것처럼 이름을 달고 있지만, 사실상 아마존 전체의 빅데이터를 관리하는 핵심 조직이다. 아마존이 이 조직의 이름을 ‘메커니컬 터크’라고 명명한 것은 기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왜냐하면 메커니컬 터크란 실제 존재했던 가짜 자동기계장치를 지칭하는 명칭이기 때문이다. 발터 베냐민이란 철학자를 안다면,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라는 글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튀르키예식 옷차림을 한 체스 두는 자동인형을 모를 수가 없을 것이다.

첫 문단의 마지막 줄만 봐도 글쓴이의 허세를 느낄 수 있다. 체스 두는 자동인형은 당시 유럽에서 유명했기 때문에 발터 베냐민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자동인형에 관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 그런데도 글쓴이는 굳이 “발터 베냐민이란 철학자를 안다면”이라고 하면서 마치 발터 베냐민을 알아야만 이 글의 논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처럼 바람을 잡는다. 베냐민이 제시한 어떤 개념이 이 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 아니다. 글쓴이가 발터 베냐민을 잘 아느냐? 확인할 수 없다. 글쓴이는 글의 첫 문단부터 일종의 속임수를 쓴 것이 분명하다.

마지막 문단을 보자.

최적의 매개변수란 손실 함수가 최소 값이 될 때 구할 수 있는 매개변수의 값이다. 이 값을 얻어내려면 매개변수의 기울기를 통해 함수의 값이 가장 작아지는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최적의 값을 찾아내는 반복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런 수학적 계산 방식을 경사하강법이라고 부른다. 인공지능이란 바로 이 과정에서 인간의 능력으로 계산 불가능한 인공신경망의 가중치 계산을 컴퓨터로 처리하는 프로그램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문제는 이런 기술적 은어로 인공지능의 원리를 이해한다고 최근 목도하는 인공지능의 도약이 설명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사회적이었다. 이 사실을 간과한다면, 자본주의와 인공지능이라는 우리에게 던져진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놓치게 될 것이다.

글쓴이는 경사하강법의 정의를 겨우 띡 써놓고는 “여기에서 중요한 문제는 이런 기술적 은어로 인공지능의 원리를 이해한다고 최근 목도하는 인공지능의 도약이 설명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라고 하며 뜬금없이 “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사회적”이라고 말한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 말을 쉽게 설명하거나 치밀하게 논증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글에서는 아무 관련 없는 것들의 사전적 정의를 줄줄 늘어놓고는 느닷없이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고 한다. 이것도 일종의 수법이다. A에 대한 피상적인 것을 늘어놓다가 갑자기 “중요한 건 B야!”라고 선언하고 부연 설명 없이 곧바로 글을 끝내면 독자들은 일시적으로 혼란에 빠지게 되고 글쓴이가 사실 A만 모르는 게 아니라 B도 모른다는 것을 숨길 수 있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글의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더라도 문장이나 표현의 패턴만 가지고도 개소리일 가능성이 높은 글을 대강 선별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으로 개소리 글을 선별하는 작업을 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충분히 학습하기까지는 사람이 글을 선별하는 노동이 필요하겠지만, 나중에는 사람이 미처 주목하지 못한 표현이나 패턴도 인공지능이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작업도 일종의 AI 인문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 링크: [한겨레21] 인공지능 ‘봄날’ 떠받친 사회적 함수 / 이택광의 AI 인문학

(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637.html )

(2024.06.24.)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예언한 알라딘 독자 구매평 성지순례

졸업하게 해주세요. 교수되게 해주세요. 결혼하게 해주세요. ​ ​ ​ ​ ​ * 링크: [알라딘] 흰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소설 ( 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4322034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