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선배가 하는 글쓰기 수업에서 조교 일을 하게 되었다. 어제는 선배, 나, 학부생 튜터, 이렇게 셋이 저녁식사를 했다.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선배가 정치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광주광역시 출신인 선배는 평생 민주당을 지지해왔는데 어떻게 민주당 당 대표가 이재명일 수 있냐며 개탄했다. 왜 사람들이 이재명을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없으며(가족 중에도 이재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또 왜 사람들이 조국을 지지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도 말했다. 여기서 핵심어는 ‘합리성’이었다. 왜 사람들이 그렇게 비-합리적인 판단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 말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그런 게 사랑 아니겠어요?”
사람들이 정말로 지능이 낮아서 이상한 정치인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이상한 정치인을 편들어주려니 지능이 낮아 보이는 언행을 하는 것뿐이다.
전국 최상위권 학생이 수능 문제를 다 맞추고 딱 한 개 틀리게 생겼는데 이왕이면 수능 만점을 받고 싶어서 부정 행위를 했다고 해보자. 그 학생의 점수는 한 문제 틀린 것만큼만 감점해야 하는가, 부정 행위를 했으니 0점 처리를 해야 하는가? 0점 처리해야 한다. 아무리 불수능이어서 수능 만점이든 한 문제 틀린 것이든 대학 입시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더라도 0점 처리하는 것이 맞다. 이 경우 0점 처리를 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짓을 한 사람이 내 자식이라고 해보자. 아무리 냉혈한이라도 한 번만 봐달라고 할 것이다.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그런 짓을 조국 교수 일가가 했다고 해보자. 왜 사람들은 조국 교수 자녀 입시 비리를 덮어주고 싶어 하는가? 해당 사실을 부정하던 사람들이 그러한 사실이 있었음을 더 이상 부정할 수 없게 되자 입시 비리는 있었지만 입시 결과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며 옹호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조국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조국 교수를 사랑하니 조국 자녀의 입시 비리가 내 자식의 일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생판 남의 자식이 입시 비리를 저지른 것을 왜 감싸고 염병들을 했겠는가?
자식이 깡패이고 양아치이고 죽일 놈이어도 부모는 자기 자식이 원래 착한 애인데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그런다고 말한다. 그 놈의 자식 때문에 그 놈 친구들 인생이 망한 것이겠지만 부모는 그렇게 말한다. 어떤 경우는 하도 명백히 깡패여서 부모도 자식이 깡패인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경찰에 안 잡히기를 바란다. 우리 어머니도 이재명이 감옥에 가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내 말을 듣던 학부생 튜터는 대학원 선배에게 이렇게 말했다. “조교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 뱀발
정당 지지율이 망했을 때 정치인들이 유권자 앞에서 큰절하는 것도 그렇게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니다. 내가 아직 결혼해 본 적이 없어서 부부 생활 같은 것은 잘 모르지만, 배우자 중 한 사람이 잘못 했을 때 곤경을 벗어나기 위해서 다른 배우자 앞에서 (아무 법적 효력도 없는) 각서를 쓰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아마도 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각서는 요식 행위이고 어차피 다 용서할 준비가 되어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정당 지지율이 망했을 때 유권자들 앞에서 (아무 정치적 내용 없는) 큰절을 하는 것이 그런 것과 무엇이 다른가? 아마 똑같을 것이다. 지지자들은 이미 속으로는 다 용서했는데 용서했다고 밝힐 구실이 필요하다. 그 구실을 만들어주는 것이 큰절이다. 이게 사랑이 아니라고?
(2024.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