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가 만든 “0석 정의당, 우리는 이래서 망했다”라는 영상에서 언급한 정의당이 망한 원인은 대충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정권심판론으로 빨려들어간 총선
- 연동형 비례제에서의 민주당의 행패(비례위성정당)
- 윤석열 탄생 책임 논란에 대한 대응(단일화와 관련)
- 정체성 논란: 청년 의원 두 명에 대한 과도한 관심, 페미니즘 논쟁, 노동 중심성을 잃었다는 비판
- 리더십 부재: 조국 장관 임명안 찬성, 이재명 체포동의안 찬성 등 방향이 일정하지 않음
영상에서 언급한 것은 여러 가지이지만, 외부 요인을 상수로 놓고 정의당의 대응을 변수로 놓는다면 두 가지 문제 때문에 망했다고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정의당이 의제나 정책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의당의 정치적 능력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나는 정의당 내부 사정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들이 실제로 어떤 좌충우돌 대모험을 겪으며 망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영상에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일종의 시나리오 정도는 써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위의 두 가지 문제가 양성 피드백을 일으킨다고 가정하면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가 가능할 것이다.
정의당이 민주당과는 다른 독자적인 의제나 정책을 제시한다고 해보자. 실제로 어느 시점까지는 정의당에게 그러한 것이 있다고 정의당 지지자든 관심자든 민주당 지지자든 믿었던 것 같고 그것이 나름대로 무형 자산으로 여겨졌던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의당이 민주당 말을 안 듣는 게 언론을 통해 과하게 보도되어도 사람들은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다. 현실 정치가 어떠니 민주 진보가 어떠니 염병하는 소리를 해도, 두 정당의 방향성이 다르니 저러나 보다 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정의당이 의제와 정책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얼마 되지도 않는 지지율 가지고 터무니없이 지분이나 요구하는 떼쟁이로 보일 것이다. 저 놈들은 왜 저러냐고 했을 때 딱히 할 말이 없거나 무지무지하게 말을 많이 해야 한다. 의원 수가 많고 적고를 떠나 대중에게 말이 안 먹히게 된다.
의제나 정책을 제시하는 데 실패하면 정치적인 위상이 떨어지고, 그렇게 되면 물적・인적 자원을 확보하는 것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물적・인적 자원을 확보하지 못하면 의제나 정책을 개발하는 데도 문제가 생기고, 그러면 당이 더 쪼그라든다. 이러한 악순환에 빠진다면, 마치 망해가는 중소기업 사장이 전세금을 빼 들고 강원랜드를 가는 것처럼, 정치적 한탕을 거머쥐고자 하는 유혹에 빠지기 쉬워질 것이다. 당 지지율이 10%이니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만 도입되면 30석을 거머쥘 수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30석에 눈이 뒤집혔는데 위성정당 만들면 도로황이 된다는 지적이 귓등에나 들어 왔겠는가?
강원랜드에서 전세금을 탕진한 중소기업 사장이 집에 돌아왔다고 해보자. 지난날을 후회하고 예전처럼 기술 개발해서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할까? 대개는 운이 나빠 돈을 잃었다고 생각하고는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려서 또 도박을 하게 된다. 그렇게 한 도박이 아마도 여성과 청년이었을 것이다.
여성과 청년이 왜 도박이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당의 규모를 고려하면 도박이 맞다. 강원랜드에서 하는 것만 도박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합법적인 투자도 도박이 된다. 가령, 자산이 15억 원 정도 있고 연 수입이 6-7천만 원 쯤 되는 사람이 파생상품에 5-6천만 원 넣으면 투자지만, 자산이 6천만 원쯤 있고 한 달 벌어서 한 달 사는 사람이 3천만 원쯤 파생상품에 넣으면 도박이다. 얼마나 유능한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당에서 청춘을 바치고 안정적인 활동을 보여준 사람들이 구석에 박혀 늙어가고 있는 마당에, 그들보다 딱히 능력이 있는 것 같지도 아니고 정체도 알 수 없고 검증된 것도 없는 사람들에게 단지 얼굴이 팽팽하고 밝고 발랄하고 활기차 보인다는 이유로 당의 자원을 몰아주는 것이 도박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런 식으로 이유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국회에 들어왔다고 치자. 그들은 무엇을 할까?
(1) 젊은 척, 발랄한 척, 끼 많은 척, MZ 세대인 척 한다.
(2) 상황 봐가며 적당히 처신하고 일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한다.
누가 봐도 (1)로 하라고 비례 앞 순번으로 넣어준 것이니 그 역할에 부응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다. 그럴 목적이 아니었다면 비례 순번 관련 규정을 그렇게 개떡같이 정했을 이유가 없다.
그렇게 나 여자요, 나 청년이요 하며 당 차원의 메시지 전달과는 아무 상관 없이 오직 개인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쇼나 하며 불필요하게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런 쇼는 정당 호감도를 깎으면 깎았지 높이지는 않았다. 그러든지 말든지 신문에 칼럼이나 쓰는 일부 진보 어른들은 신중한 척, 이해심 있는 척, 지혜로운 척, 연륜 있는 척하며, 뭘 하든 오냐 오냐 잘 한다 잘 한다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예전에 진중권과 서민이 갈라서기 전에 두 사람이 같이 출연한 유튜브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거기서 서민이 류호정 의원이 쇼나 하는 것 같다고 우려를 표하니, 진중권은 류호정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찾아보았느냐, 국회 홈페이지 들어가면 다 나오는데 사람들이 찾아보지도 않고 그런다면서 류호정 의원이 잘 하고 있고 쇼로 보일 만한 행동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후에 어떻게 되었나? 류호정은 온갖 패악질을 부리다 당을 나갔고, 정의당은 망했고, 서민은 쌍꺼풀 수술을 했고, 진중권은 김건희 여사와 한 시간씩 통화하는 사이가 되었다.
류호정 의원의 의정 활동에 대한 평가 중에는 의외로 법안 발의도 많이 하고 그 외 여러 활동도 잘 했다는 의견도 있다. 나는 진중권처럼 국회 홈페이지에 안 들어가 봐서 무슨 법을 얼마나 발의했는지, 국정감사 때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간단한 의문 정도는 제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왜 사람들은 대기업에서만 일감 몰아주기를 한다고 생각할까? 당에서 저렇게까지 띄워줄 정도라면 정의당에서 일감 몰아주기를 했다고 해도 그렇게 이상하지 않을 것 같지 않나?
국회의원은 대체로 일반인보다 잘난 사람들인 것은 맞지만 혼자 잘 나서 일을 잘하는 것은 아니라서 보좌관, 비서관이 여러 명씩 붙어 있다고 알고 있다. 류호정 의원실은 얼마나 잘 돌아갔을까? 가령, 정책보고서 같은 것 용역줄 때 국회의원이 일일이 다 알아서 연락하는 게 아니라 비서관이 용역 맡을 사람을 찾아서 연락한다. 류호정 의원실은 이런 게 잘 되었을까?
류호정 의원이 국회의원이 된 지 1년도 안 되어서 수행비서 해고와 관련된 언론 보도가 대대적으로 나왔을 때를 떠올려 보자. 둘 중 누가 잘못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의원실 내부의 문제가 이런 식으로 외부로 터져나온 것은 이례적인 것 같다. 류호정 의원이 <중앙일보>의 “나는 고발한다” 시리즈에 실은 글이 하나 같이 개떡 같았다는 점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정치인이 예민한 사안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내지 않으려고 일부러 하나마나한 소리를 자연스럽게 해서 방송 분량을 채우거나 마냥 좋은 이야기를 써서 칼럼 분량을 채우는 경우는 많이 보았지만, 이런 식으로 글을 막 못 써버리는 경우는 드물다. 대학교 단과대 학생회장도 집행부가 대필할지언정 그런 식으로 처리하지는 않는다. 류호정 의원 주변에 글을 봐줄 사람이 없어도 문제고, 누군가가 글을 봐주었는데도 그런 글이 나올 정도로 인력 풀이 망했어도 문제고, 인력 풀이 멀쩡한데 의원이 우겨서 그런 글을 언론사에 보냈어도 문제다. 셋 중 어느 경우든 망한 거다.
이런 와중에 정책이 잘 나오면 그게 더 이상하겠다. 전 정책위부의장이라는 사람의 인터뷰를 보자. 아주 예술이다.
“성공의 역설이라고 봅니다. 역할을 다했다. 그러니까 기존에 진보정당들이 주장해 왔던 굉장히 중요한 의제들이나 이런 것들은 이미 민주당을 통해서 주류가 된 거죠. 그래서 이제 시민들 눈에는 (정의당이) 그냥 주류의 일부로 보이는 거죠. 그러면 왜 독자로 있어야 되느냐를 설명하기가 어려워진 거죠.”
성공의 역설 같은 소리를 하고 자빠졌네. 정말로 진보정당이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했으면 그냥 조용히 정치를 그만두고 생업으로 돌아가야지, 어디 이준석당 같은 데나 기웃거리다 개털된 주제에 저걸 말이라고 하고 있나? 저딴 소리나 하는 사람이 정책위부의장을 하는 판이니 학생운동 망한 학교에서 자의식 고양된 20대 초반 대학생이 할 법한 소리나 정책이랍시고 내놓는 것은 아니었을까?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공약이고 내놓은 게 서울 해체였다.
이런 상황에서 메시지 전달이라도 잘 하겠는가? 전달할 메시지가 망했으니 메시지를 전달할 방식이 세련되어봤자 의미가 없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멀쩡한 이야기조차도 개떡같이 이야기하기 딱 좋다. 대충 들어보면 맞는 말 같이 들리지만 아무 내용도 없고 실효성도 없는 소리나 길고 지루하게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기 쉽다. 전달할 메시지가 없지만 마치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굴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달할 메시지는 분명하지 않고 무엇을 할지도 확실하지 않지만 어쨌든 사람들의 관심은 끌고 싶다고 해보자. 가만히 있으면 쪼그라들다 사라질 판이니 어떻게든 이목을 끌어야 지지율이든 인지도든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이유로 일으키는 논쟁이라는 것은 시끄럽기만 하고 아무런 유의미한 결과물이 없는 논란으로 귀결될 뿐이다. 페미니즘 논쟁이라고 불린 것들을 통해 도대체 무엇을 얻었나? 청년 의원들의 언론에 몇 번 더 등장한 것 빼고 도대체 어떤 성과가 있었나?
이런 것들을 온갖 더럽고 치사하고 억울한 상황에 몰린 사람들이 본다고 해보자. 예나 지금이나 그런 상황은 옆에 누군가가 있으나 없으나 해결하기 어렵다. 투쟁 사업장들의 투쟁 일수가 괜히 세 자릿수인 게 아니다. 투쟁 일수가 두 자릿수에서 세 자릿수로 넘어가는 동안 버티게 하는 힘 중 하나는 그래도 누군가가 옆에 있고 그 일을 언급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일 테다.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억울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처한 문제를 언급하고 해결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조차도 안 하고 쓸데없는 소리나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면 어떨까? 이를 기존의 지지층이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물론, 청년 의원들이 그러한 문제들을 전부 도외시했다는 것은 아니다. 투쟁 사업장도 찾아갔을 것이고 간담회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몇 군데나 갔을까? 세상에 억울한 사람은 수도 없이 많고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의 양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메시지 전달이 중요하다. 개떡같은 메시지를 개떡같이 전달하는 것을 어떻게 옹호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래 놓고는 “그러면 진보정당인 정의당이 페미니즘을 버렸어야 합니까?”라고 묻는다. 누가 버리랬나?
나는 어머니를 통해 자동차 공장 노조가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들은 적이 있다. 하청 업체 임원이 이혼녀인 업체 직원을 스토킹한 사건인데, 당시 노조에서는 직원을 보호하고 하청 업체가 임원을 해고하게 하고 사건을 경찰에 넘겼다. 노조가 없었다면 직원은 임원의 스토킹 사실도 외부로 알리지 못했을지 모른다. 이 일을 언급하며 어머니는 노조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서 한 가지 짚어보자. 나의 어머니는 사회주의자인가? 아닐 것이다. 나의 어머니는 페미니스트인가? 아마도 아닐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 어머니는 노조가 왜 필요한지 정확히 알고 있다. 반대로 물어보자. 도대체 페미니즘 논쟁이라는 게 도대체 무슨 효용이 있었나?
이런 식으로 당이 난장판이 나면, 무슨 말을 해도 들어줄 사람이 없게 된다. 조직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으며 정책을 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누구를 부르고 누구를 모셔서 의제를 만들고 정책을 논하겠는가? 그러니 지난 총선 때 정책인 척하는 간단한 구호나 만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녹색 뭐시기 같은 소리나 한다고 한들 그들에게 애초에 실행 능력도 없는 거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데다 태양광으로 뒤지게 욕 먹는 민주당이 내놓은 정책보다 뭐가 나은지도 설명할 수 없을 판이다. 마땅히 할 게 없으니 자빠져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것도 아니고 뜬금없이 제7공화국 같은 소리나 하는데, 마침 위선자이지만 잘 생긴 조국도 제7공화국 같은 소리를 한다. 이왕이면 잘 생긴 조국을 찍지 왜 못 생긴 사람들이 많은 정의당을 찍어야 하는가? 의제도 없고 정책도 없고 매력도 없다. 어떻게 망하지 않을 수가 있나?
SBS 영상을 보면서 정의당이 이렇게 망할 거면 노회찬 의원은 왜 죽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했다. 변호사 친구 돈인 줄 알고 받았지 드루킹 돈인 줄 알았으면 받았겠냐고 말하고 대충 어디 조용한 곳에 가서 살지 왜 죽었나. 그렇지만 어떤 식으로든 정의당이 망했다면 노회찬 의원은 자기 때문에 망했다고 생각해서 제대로 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든가 말든가 정의당 말아먹는 데 일조한 사람들은 자기가 딱히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가 보다. 죽은 사람만 불쌍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 링크: [SBS] 0석 정의당, “우리는 이래서 망했다” / 뉴스토리
( www.youtube.com/live/6XZoT6DU50U )
(2024.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