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7

[강의계획서] 언어철학 (강진호, 2021년 1학기)



- 수업명: <언어철학>

- 2021년 1학기

- 서울대 철학과 학부 전공수업

- 담당교수: 강진호

■ 과목 개요

본 과목에서는 분석철학의 전통에서 발전해온 언어철학의 주요 흐름과 주제를 학부 전공 수준에서 개괄한다. 분석철학의 전통에서 ‘언어철학’이란 말은 두 가지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첫째, ‘언어에 대한 철학(philosophy of language)’으로서의 언어철학은 언어의 본성, 특히 의미의 본성을 탐구하는 철학의 한 분야이다. 둘째, ‘언어적 철학(linguistic philosophy)’으로서의 언어철학은 의미의 본성에 대한 탐구를 토대로 철학적 문제들을 해결 또는 해소하고자 하는 하나의 특정한 철학적 방법론이다. 가령 어떤 분석철학자들에 따르면 “수(數)가 존재하는가?”와 “도덕적 사실이 존재하는가?”라는 형이상학적 문제는 각각 “수 표현이 대상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분석될 수 있는가?”와 “도덕 판단을 나타내는 문장이 참이거나 거짓인 서술문으로 분석될 수 있는가?”라는 언어철학적 문제로 이해되어야 한다.

흔히 20세기 분석철학을 ‘언어적 전회(linguistic turn)’라는 말로 특징짓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철학적 방법론으로서의 언어적 철학은 20세기 분석철학의 발전에 있어서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언어적 철학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의미의 본성에 대한 탐구이다. 그러므로 20세기의 많은 분석철학자들은 의미의 본성을 탐구하는 ‘언어에 대한 철학’으로서의 언어철학이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 등 다른 모든 철학 분야의 토대를 제공한다고 생각하였다. 오늘날 언어철학을 철학의 토대로 여기는 분석철학자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언어철학을 이해하는 것은 오늘날의 분석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여전히 필수적이다.

본 과목에서는 분석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들인 프레게, 러셀, 비트겐슈타인, 에이어, 콰인, 오스틴, 스트로슨, 그라이스, 데이빗슨, 루이스, 크립키 등의 관련 저작들을 읽고 논의함으로써, 분석철학의 전통에서 의미의 본성에 대한 탐구가 어떻게 발전해왔으며 이러한 탐구가 다양한 철학적 문제들을 해결 또는 해소하고자 하는 시도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개괄한다. 이러한 개괄을 통해, 의미의 본성에 대한 탐구가 한편으로 왜 그 자체 중요한 철학적 문제이며 다른 한편으로 왜 철학 전체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지 고찰한다.

■ 필수 교재

• 과목 강독 자료 모음 (※ 강의게시판에 강독 자료 파일들을 올려놓을 것임.)

• 솔 크립키 (1980), 정대현・김영주 옮김. 『이름과 필연』 (필로소픽 2014)

• 솔 크립키 (1984), 남기창 옮김. 『비트겐슈타인 – 규칙과 사적언어』 (필로소픽 2018)

■ 참고 교재

• 콜린 맥긴 (2019). 박채연・이승택 옮김. 『언어철학』 (도서출판b)

• 고틀로프 프레게 (1879). 전응주 옮김. 『개념표기』 (이제이북스 2015)

• 고트롭 프레게 (1884). 박준용・최원배 옮김. 『산수의 기초』 (아카넷 2003/2015) [※ eBook]

• 고틀로프 프레게 (1892). 김은정 외 옮김. 「뜻과 지시체에 관하여」 (전기가오리 2017) [※ 절판]

• 버트런드 러셀 (1905). 김혜연 외 옮김. 「지칭에 관하여」 (전기가오리 2018)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1922). 이영철 옮김. 『논리-철학 논고』 (책세상 2006)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1922). 이영철 옮김. 『철학적 탐구』 (책세상 2019. 개정판)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1958). 이승종 옮김. 『철학적 탐구』 (아카넷 2016)

• A.J. 에이어 (1936). 송하석 옮김. 『언어, 논리, 진리』 (나남 2010)

• J.L. 오스틴 (1975). 김영진 옮김. 『말과 행위』 (서광사 2005)

• 도널드 데이빗슨 (1984/2001). 이윤일 옮김. 『진리와 해석에 관한 탐구』 (나남 2011)

• 도널드 데이빗슨 (2001). 김동현 옮김. 『주관, 상호주관, 객관』 (느린생각 2018)

• Alexander Miller (2018). Philosophy of Language, 3rd ed. (Routledge)

• William Lycan (2018). Philosophy of Language, 3rd ed. (Routledge)

• Colin McGinn (2015). Philosophy of Language – The Classics Explained (MIT)

• Scott Soames (2012). Philosophy of Language (Princeton)

• A.M. Martinich & David Sosa (ed.)(2012). The Philosophy of Language, 6th ed. (Oxford)

• Peter Ludlow (ed.)(1997). Readings in the Philosophy of Language (MIT)

• Michael Beaney (ed.) (1997). The Frege Reader (Blackwell)

• A.J. Ayer (1936/1946). Language, Truth, and Logic, 2nd ed. (Dover 1952)

• Ludwig Wittgenstein (1958/2009). Philosophical Investigations, 4th ed. (Wiley-Blackwell)

• J.L. Austin (1962/1975). How to Do Things with Words, 2nd ed. (Harvard)

• W.V.O. Quine (1953/1980). From a Logical Point of View, revised ed. (Harvard)

• Quine, W.V.O. (1960/2013). Word and Object, new ed. (MIT)

• Paul Grice (1991). Studies in the Way of Words (Harvard)

• Donald Davidson (1984/2011). Inquiries into Truth and Interpretation, 2nd ed. (Oxford)

• Donald Davidson (1980/2011). Essays on Actions and Events, 2nd ed. (Oxford)

• David Lewis (1983). Philosophical Papers: Volume I (Oxford)

• Saul Kripke (1980). Naming and Necessity (Harvard)

• Saul Kripke (1984). Wittgenstein on Rules and Private Language (Harvard)

■ 성적 평가 방법

본 과목의 성적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평가한다.

(1) 출석 (5%)

(2) 소논문 (10%)

(3) 중간고사 (25%)

(4) 기말고사 (25%)

(5) 기말논문 (35%)

출석: 어느 과목을 막론하고 담당교수는 성실하게 강의할 의무를, 수강생은 성실하게 수업에 들어올 의무를 가진다. 수강생이 정당한 이유 없이 수업에 결석할 경우 이를 성적 평가에 반영할 것이다. 정당한 이유가 있어 수업에 결석해야 하는 학생은 수업시간 전 미리 담당교수에게 연락을 취해야 한다.

소논문: 3월 17일(수) 수업 후 A4 5페이지(줄 간격 300% 기준) 분량의 소논문 과제가 부과된다. 논문 주제는 담당교수가 정한다. 소논문은 4월 4일(일)까지 제출해야 하며, 늦게 제출된 논문은 늦은 일수에 비례하여 감점 처리한다. 논문 내용에서 표절이 발견될 경우는 0점 처리한다. 제출된 소논문은 담당교수와 상의 하에 담당조교가 채점하고 간단한 논평을 덧붙여 수강생에게 돌려준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4월 17일(토)과 6월 16일(수) 지정된 시간에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실시한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답안지는 담당교수와 상의 하에 담당조교가 채점하고 담당교수가 보관한다. 수강생은 담당조교 입회 하에 답안지 채점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기말논문: 5월 3일(월) 수업 후 A4 12-16페이지(줄 간격 300% 기준) 분량의 기말논문 과제가 부과된다. 논문 주제는 담당교수가 제시한다. 기말논문은 6월 21일(월)까지 제출해야 하며, 늦게 제출된 논문은 늦은 일수에 비례하여 감점 처리한다. 논문 내용에서 표절이 발견될 경우는 0점 처리한다. 제출된 기말논문은 담당교수와 상의 하에 담당조교가 채점하고 간단한 논평을 덧붙여 수강생에게 돌려준다. 단 A0 이상의 평점을 받은 기말논문은 담당교수가 논평을 덧붙여 수강생에게 돌려준다.

■ 수강생 참고사항

• 본 강좌를 수강하고자 하는 학생은 철학과의 <논리학> 또는 <기호논리학> 강좌를 수강하였거나 아니면 <논리학> 강좌에서 가르치는 내용에 준하는 논리학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 본 강좌를 수강하고자 하는 학생은 논리학 관련 과목 이외의 철학 교양 또는 전공 과목을 최소한 하나 이상 수강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

• 비대면 수업이 요구될 경우 실시간 Zoom 강의를 진행한다.

■ 강의 일정

03월 03일(수) / 과목 소개 - 언어철학이란 무엇인가?

I. 의미의 본성에 대한 논리실증주의와 콰인, 그라이스의 견해

03월 08일(월) / 논리실증주의의 검증주의 의미 이론

- 에이어, 『언어, 진리, 논리』, 1장

03월 10일(수) / 논리실증주의의 검증주의 의미 이론 (계속)

- 에이어, 『언어, 진리, 논리』, 1장

- 에이어, 『언어, 진리, 논리』, 2판 서론

03월 15일(월) / 분석/종합 구분에 대한 콰인의 비판

- Quine, “Two Dogmas of Empiricism”

03월 17일(수) / 콰인의 의미 회의주의와 번역 불확정성 논증

- Quine, Word and Object, Ch.2

* 소논문 주제 배부

03월 22일(월) / 그라이스의 의도 기반 의미 이론

- Grice, “Meaning”

II. 의미와 참 – 진리조건 의미론의 발전

03월 24일(수) / 진리조건 의미론의 기원 (1) - 함수 개념을 통한 프레게의 문장 분석

- Frege, “Function and Concept”

03월 29일(월) / 진리조건 의미론의 기원 (2) - 프레게의 뜻과 지시체 구분

- Frege, “On Sense and Reference”

03월 31일(수) / 프레게 식 형식의미론

04월 04일(일) / 소논문 제출

04월 05일(월) / 진리조건 의미론의 기원 (3) - 타르스키의 참 이론

- Tarski, “The Semantic Conception of Truth and the Foundations of Semantics”

04월 07일(수) / 진리조건 의미론의 기원 (3) - 타르스키의 참 이론 (계속)

- Tarski, “The Semantic Conception of Truth and the Foundations of Semantics”

04월 12일(월) / 데이빗슨의 타르스키식 형식 의미론 / 데이빗슨의 해석 이론 – 원초적 해석과 ‘자비의 원리’

- Davidson, “Truth and Meaning”

- Davidson, “Radical Interpretation”

04월 14일(수) / 데이빗슨의 해석 이론 - 원초적 해석과 ‘자비의 원리’ (계속)

- Davidson, “Radical Interpretation”

- Davidson, “Belief and the Basis of Meaning”

04월 17일(토) / 중간고사 (오전 10:00-12:00)

04월 19일(월) / 루이스의 가능세계 형식 의미론

- Lewis, “General Semantics”

04월 21일(수) / 루이스의 가능세계 형식 의미론 (계속) / 루이스의 규약 기반 의미 이론

- Lewis, “General Semantics”

- Lewis, “Languages and Language”

04월 26일(월) 루이스의 규약 기반 의미 이론 (계속)

- Lewis, “Languages and Language”

III. 크립키-비트겐슈타인의 의미 회의주의

04월 28일(수) / 크립키-비트겐슈타인의 의미 회의주의

- 크립키, 『비트겐슈타인-규칙과 사적언어』

05월 03일(월) / 크립키-비트겐슈타인의 의미 회의주의 (계속)

* 기말논문 주제 배부

05월 05일(수) / 휴강 [어린이날]

05월 10일(월) / ‘회의적 역설’에 대한 성향주의 해결책과 그 문제점

- Miller, Philosophy of Language, Ch.6 [발췌]

05월 12일(수) / ‘회의적 역설’에 대한 성향주의 해결책과 그 문제점 (계속)

- Miller, Philosophy of Language, Ch.6 [발췌]

IV. 화용론의 기원 – 오스틴의 언화행위 이론과 그라이스의 대화함의 이론

05월 17일(월) / 오스틴의 언화행위 이론

- 오스틴, 『말과 행위』, 강의 8~10

05월 19일(수) / 휴강 [부처님오신날]

05월 24일(월) / 그라이스의 대화함의 이론

- Grice, “Logic and Conversation”

V. 한정기술구, 고유명사, 자연종 용어의 의미

05월 26일(수) / 한정기술구의 의미 - 러셀의 기술이론

- Russell, “On Denoting“

05월 31일(월) / 러셀의 기술이론에 대한 스트로슨과 도넬란의 비판

- Strawson, “On Referring”

- Donnellan, “Reference and Definite Descriptions”

06월 02일(수) / 고유명사의 의미 (1) - 크립키의 기술주의 지칭이론 비판과 직접 지칭이론

- 크립키, 『이름과 필연』, 제1강연-제2강연

06월 07일(월) / 고유명사의 의미 (2) - 크립키의 인과적 지칭이론

- 크립키, 『이름과 필연』, 제1강연-제2강연

06월 09일(수) / 자연종 용어의 의미 (1) - 고정지시어로서의 자연종 용어와 후험적 필연성

- 크립키, 『이름과 필연』, 제3강연

06월 14일(월) / 자연종 용어의 의미 (2) - ‘양상적 환상’과 심신동일론 비판

- 크립키, 『이름과 필연』, 제3강연

06월 16일(수) / 기말고사 (오후 03:30-05:30)

06월 21일(월) / 기말논문 제출

(2024.09.07.)


2024/05/03

초등학교 셔틀버스의 전원주택 진입로 출입을 막다



전원주택 진입로에 깔린 콘크리트를 거의 다 제거했다. 제거하지 못한 부분은 예전에 도시가스관을 묻으면서 새로 포장한 부분인데, 이 부분은 다른 부분보다 몇 배 두꺼워서 뜯어내지 못했다. 그 부분을 빼고는 내 사유지에 깔린 콘크리트를 모두 제거했다. 진입로에 깐 콘크리트가 두꺼웠으면 깰 엄두가 안 났을지도 모르는데, 두께가 그리 두껍지 않은 데다 철근이 아닌 굵은 철사가 들어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제거할 수 있었다. 하여간, 시골에서 하는 일은 뭐든 미덥지 않다.

처음에는 망치로 두드려서 콘크리트를 깼다. 덤프트럭 등 대형 공사차량이 지나면서 생긴 균열을 중심으로 망치로 두드렸다. 콘크리트가 깨질 때까지 두드리니까 깨지기는 깨지는데 그만큼 반작용이 있었다. 자연에서 얻은 지혜를 이용하기로 했다. 높은 곳에서 조개를 떨어뜨려 깨뜨려 먹는 새들이 있다. 여기서 착안하여 뜯어낸 콘크리트 덩어리 중 웬만큼 큰 것을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린 다음 콘크리트 바닥에 내리쳤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땅이 약간 울리지만 역시나 한 번에 콘크리트가 깨지지는 않았다. 콘크리트가 깨질 때까지 콘크리트 덩어리를 들어 올렸다가 내리쳤다. 그렇게 바닥에 금이 가게 한 다음 곡괭이로 뜯어냈다.

진입로에 있는 콘크리트를 뜯어내고 통로의 폭을 좁히는 것은, 도로가 무제한으로 확장되는 것을 막고 대형 공사차량이 마을로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전원주택에서 진입로로 사용하는 길은 서쪽 진입로와 동쪽 진입로, 이렇게 두 개다. 이 중 개발행위허가를 받은 것은 서쪽 진입로이고, 내 사유지를 지나는 동쪽 진입로는 개발행위허가와 무관하다. 그런데 동쪽 진입로로 들어오면 이동 거리가 짧아지기 때문에 대형 공사차량들이 동쪽 진입로로 들어왔고, 운전기사들이 자주 출입구를 혼동하여 엉뚱한 곳으로 들어서면서 마을 안길이 파손되었다. 나는 주요 네비게이션 업체에 연락하여 사유지를 지나는 경로를 지웠고, 전원주택 입주민 중 일부가 나에게 항의하자 전원주택 단지 내의 모든 주택에 안내문을 뿌렸다. 전원주택 건설업체 사장하고도 적당히 합의했다. 건설업체 사장은 동쪽 진입로 중 일부를 임대하고자 하여, 나는 공사차량 진입을 막으려고 재산권 행사를 하는 것이지 주민들의 통행까지 막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니 굳이 돈 들일 것 없다고 답했다. 건설업체 사장은 이미 공사 차량을 서쪽 진입로로 오게끔 하고 있었고, 그렇게 합의가 잘 마무리되었다.

건설업체 사장하고도 합의를 보았겠다, 주민들에게 내가 왜 그런 작업을 하는지를 안내했겠다, 더 이상 나의 작업을 방해할 사람이 없을 줄 알았다. 실제로 안내문을 나누어주기 전에는 나에게 항의하는 사람이 간혹 있었는데 안내문을 나누어준 뒤에는 아무도 나에게 시비하지 않았다. 그런데 2월 24일(토) 오후 5시쯤 도시가스공사에서 깐 콘크리트 빼고 나머지 콘크리트는 거의 다 제거할 무렵, 승용차를 타고 가던 한 주민이 나에게 시비를 걸었다. 안내문을 나누어주기 전에도 나에게 시비를 걸었던 놈이었다.

그 입주민은 나에게 “차라리 펜스를 치고 길을 막지 그러냐? 못 하는 거냐?”며 나를 도발했다. 나는 정중하게 “막을 수 있는데 주민들 통행 때문에 안 막는 겁니다”라고 답했다. 입주민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며 내가 콘크리트를 까서 먼지가 발생한다, 흙탕물이 전원주택 단지로 진입한다고 했다. 전원주택 단지는 진입로로부터 200미터 밖에 있는 데다 일대가 다 비포장 상태라 만일 정말로 먼지나 흙탕물 때문에 문제가 있다면 주요 원인은 다른 비포장 토지에 있을 것이다. 그 입주민은 자기 자식이 ◯◯초등학교에 다니는데 진입로에 이런 짓을 하면 초등학교 셔틀버스가 못 들어온다고 따졌다. 입주민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셔틀버스에 관한 것이었을 것이다. 나는 “나도 평생 이 동네에서 살았고 이 근처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셔틀버스 타러 버스 정류장도 못 나오느냐?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셔틀버스도 없었다”고 했다. 그러자 그 입주민은 요즈음 차가 위험하네 어쩌네 했고, 나는 강남이나 목동에서도 아이를 그렇게는 안 키운다고 답했다. 입주민이 다시 “그냥 길을 막으라”고 했고, 나는 “알았다. 길을 막겠다. 당신 신상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입주민은 답하지 않았다. 나는 입주민이 타고 온 차의 번호판을 보고 “아, 38로 07◯◯이네요. 알겠습니다. 가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38로 07◯◯가 염병해서 동쪽 진입로를 막는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나누어준 다음 정말로 동쪽 진입로를 막으려고 했다. 물론, 전원주택 단지에 다른 선량한 주민이 있는 것은 알지만, 동네 기강을 한 번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24일(토)는 콘크리트를 뜯었고 25일(일) 낮에는 교회에서 예배 보고 와서 주변을 정리하는데 어떤 아저씨가 오더니 나에게 캔커피를 주며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 아저씨는 집에서 창문으로 내가 하는 일이 보이는데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 순간, 저 아저씨가 내가 콘크리트 덩어리를 바닥에 계속 내리치는 것을 보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 아저씨 눈에 내가 하는 일이 이상해 보였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거나 나는 그 아저씨에게 내가 왜 이러한 일을 하는지 설명했다. 그러자 그 아저씨는 어제 104호 입주민이 나에게 시비를 거는 것을 보았다며, 자기 집 마당에 포장이 안 되어 있어서 시멘트로 포장하려고 하는데, 104호 입주민이 레미콘 차가 지나가는 것도 아니고 레미콘 차에서 반죽된 시멘트를 보내는 관도 자기 땅으로는 못 지나가게 한다고 말했다.

역시 못된 놈들은 한두 사람에게 못된 짓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못된 짓을 할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못된 짓을 하는 법이다. 104호 입주민에게 꼭 타격을 입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104호에게 타격을 입히겠다고 동쪽 진입로를 막으면 나에게 캔커피를 준 선량한 입주민에게까지 피해를 입게 될 것이었다. 나는 그 선량한 입주민에게 원래는 104호 입주민 때문에 동쪽 진입로는 막지 않으려고 했지만 다른 입주민을 생각하여 막지 않겠을 것인데 그 대신 초등학교 셔틀버스 진입은 막겠다고 했다. 그 입주민은 자기 아이도 초등학교에 다니지만 그냥 밖에서 뛰놀게 한다며 상관없다고 했다.

나는 26일(월) 오전에 그 초등학교에 전화를 걸어 담당자와 통화했다. 내가 동쪽 진입로의 일부 구간을 언제라도 막을 수 있으므로 셔틀버스가 전원주택 단지 안으로 진입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그렇게 했을 때 초등학교에서 학부모들의 민원을 어떻게 처리할 수 있는지 물었다. 나의 재산권 행사가 정당하기는 하지만, 분명히 극성맞은 학부모들이 초등학교에 민원을 넣어 교사들의 업무가 늘어날 것 같아서 그 부분도 고려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관계자는, 학부모들이 특별한 절차를 거쳐서 민원을 넣은 것은 아니고 학교에 전화를 걸어서 셔틀버스 전원주택 단지 내 진입을 요구했다는 것, 최근에 누군가가 진입로에 화단을 조성하여 셔틀버스 기사들이 통행하기 부담스러워한다는 것, 원래는 버스 정류장에서 승하차했다는 것을 밝혔다. 나는 화단을 내가 만들었다는 것을 밝히고, 앞으로 영구적으로 셔틀버스 진입을 금지할 것이며, 학부모들이 항의하면 내 핑계를 대라고 했다. 초등학교 관계자는 “사유지 주인이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거죠”라고 답했는데, 기분 탓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담당자의 목소리가 상당히 밝아 보였다. 초등학교 입장에서나 셔틀버스 기사 입장에서나 전원주택 단지에 안 들어가는 것이 좋을 것이었다.

29일(목) 오후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115호 입주민이라고 했다. 다른 주민을 통해 내 소식을 들었다고 하면서 마음이 상했을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115호 입주민에 따르면, 104호 입주민은 애초에 통제가 안 되는 사람이며 다른 입주민들하고도 불화가 있고, 대부분의 입주민들은 나의 안내문을 읽고 내가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으로 이해했으며 대부분은 나를 나쁘게 보지 않는다고 한다. 그 날 초등학교로부터 셔틀버스 운행에 관한 연락을 받았는데, 115호 입주민은 자기 자녀도 그 초등학교에 다니는데 셔틀버스가 단지 안에 들어오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입주민들 모임이 있는데 언제 시간 되면 차나 식사를 같이 하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115호 입주민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셔틀버스가 통행할 수 있으면 공사차량도 통행할 수 있게 되고 공사차량이 통행하지 못하게 하려면 셔틀버스도 통행하지 못하게 해야 하는 상황에서 셔틀버스의 통행을 막은 것이니 양해해달라고 말했다.

* 뱀발

몇몇 입주민들에게 말하기는 했는데, 나는 동쪽 진입로 일부에 걸친 내 사유지가 몇 평 안 되기는 하지만 진입로로 남겨둔 통로 이외의 다른 모든 부분에 꽃과 나무를 심을 생각이다. 인부와 기계를 빌릴 돈이 없으므로 콘크리트를 치우고 꽃과 나무를 심는 데 시간이 좀 걸리기는 하겠지만, 몇 년 안에 지금과는 매우 다른 예쁜 모양이 될 것이다.

(2024.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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