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자들과 <저널 클럽>을 하던 중 어떤 대학원생이 과학자에게 과학철학이 어떤 도움이 될지 물었다. 가끔씩 하는 이야기이기는 한데 <저널 클럽>에서 소개한 논문의 내용과 느슨하게나마 관련이 있어서 물어본 것이었다.
맨 먼저 답변한 사람은 학부 <과학철학> 수업에서 강의하는 대학원생이었다. 그 대학원생은 수업 첫 시간에 학생들에게 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기본 입장은 과학자들 중에 포퍼 같은 과학철학자들의 작업에 영향을 받은 사람이 종종 있다고 하니 도움이 아예 안 된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과학철학이 과학자들이 하는 연구에 그렇게 도움이 되겠냐는 것이었다. 그 대학원생은 웃으면서 어차피 과학철학 연구자들한테 돈도 얼마 안 주니까 과학철학을 하는 게 사회적으로 그리 큰 손실은 아니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과학자들에게 주는 도움이라는 것을 세분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가령, 어떤 과학자들이 이론을 잘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할 때, 철학 같은 것이 그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불어넣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떠오르게 만든다면 이는 이론 제작 과정에 대한 직접적 도움일 것이다. 그런데 도움에는 직접적 도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연구를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하여 연구에 투입되는 시간이나 비용을 보존하거나 늘릴 수 있게 한다면 이는 간접적 도움일 것이다.
간접적 도움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사기꾼이나 허풍선이들이 연구비를 빼먹는 것을 잡는 일이다. 가령,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교묘하게 뒤섞은 다음 자기가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상관관계 뿐인 데도 마치 인과관계를 알아낼 수 있는 것처럼 연구계획서를 쓰고 여론을 호도해서 정상적인 연구로 가야 할 연구비를 빼먹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이걸 누가 잡아야 하겠는가? 과학철학자들이 잡아야 한다. 물론, 과학철학자들만 그런 놈들을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자들도 시간을 따로 들이면 그런 연구가 왜 연구가 아니거나 과장된 것인지 밝힐 수 있다. 그런데 과학자들이 그런 놈들이나 잡아내고 이게 연구 맞느냐 아니냐, 과장이 얼마나 된 거냐 하면서 싸운다면 연구는 언제 하겠는가? 과학자들은 유용한 연구를 하고 과학철학자가 그런 것을 잡아내는 게 경제적이다.
다른 하나는 과학자들이 고상하지만 크게 유용하지 않은 생각에 빠지는 것을 막는 것이다. 가령, 과학자가 법칙이란 무엇인지 고민한다고 해보자. 법칙이 단순히 어떠한 규칙성을 표현할 것에 불과한 것인지, 규약인지, 속성들의 관계를 표현한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인류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법칙에 대해 고민할 시간에 과학 연구를 더 열심히 해서 더 많은 법칙을 발견하는 것이 인류에게 훨씬 더 유용하다. 그렇다고 해도 법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 자체가 가치 없는 것은 아니다. 사기꾼들은 우연적 일반화를 가지고 와서 법칙이라고 우기도 다니면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킬 것이다. 법칙이 무엇인지는 과학철학자들이 대신 고민해서 과학자들이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연구만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과학자들이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연구하는 게 마치 문제인 것처럼 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마치 자기가 공동체를 퍽이나 위하는 줄 알겠지만 오히려 개인에만 초점을 맞출 뿐 공동체를 보지 못하니까 그러는 것이다. 인류가 하는 지적인 작업은 어디까지나 사람들의 협업과 분업으로 구성된 일련의 거대한 작업이다. 자기는 자기 할 일을 잘 하고 대신 그 분업이 유기적으로 잘 구성되면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는다. 그러한 연장선에서, 과학 활동과 관련된 윤리적 고민은 윤리학 전공자들이 전문적으로 하고 과학자들이 윤리적 심각한 고민 같은 것은 안 하고 앞만 보고 연구만 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윤리학 전공자가 과학에 기여하는 바가 아닐까?
내가 이런 식으로 답변하니까 처음에 질문했던 대학원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거 쿤이 말했던 거잖아요.” 쿤이 무슨 말을 했더라?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과학이 다른 학문과 다르게 빠르게 발전할 수 있던 것은 과학자들이 패러다임을 공유하기 때문에 기초가 되는 것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하지 않고 세부 분야를 연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내가 말했던 것은 쿤이 말했던 것을 약간 변형한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어쩐지 너무 쉽게 술술 나오더라니.
나는 나름대로의 내 생각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나는 밈을 전달하는 복제자에 불과했던 것인가? 도킨스가 맞는지도 모르겠다.
(2023.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