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에 과학정책 선생님과 아침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다. 기숙사에서 셔틀버스 타고 학교를 오다가 우연히 만나 학생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그 선생님은 나보고 요즈음 학교에서 축제하는 것을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모른다고 답했다. 선생님은 지나가다 학생들이 하는 공연하는 것을 보다가 요새는 학교에서 학생들이 이런 공연을 한다고 자기 친구들에게 공연 장면을 휴대전화로 촬영하여 보내려다가 말았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약간 놀라서 물었다. “제가 연구실에서 들은 게 연습이 아니고 공연이었어요?” 나의 물음에 선생님은 웃으면서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발달하면서 관객들의 눈이 높아졌다고 하셨다. 그렇게 화제는 왜 한국에서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발달했는지로 넘어갔다.
어차피 내 전공도 아니고 밥 먹다가 하는 이야기라 나는 아무 근거 없이 아무 말이나 했다. 우선, 정말로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외국보다 발달한 것이 맞는가? 나는 외국 경험이 없어서 모르는데 선생님은 유학을 영국에서 하셨기 때문에, 확실히 한국이 다른 외국보다 해당 산업이 발달한 것은 맞는 것 같다고 하셨다. 그러면 왜 발달했느냐가 문제로 남는데, 나는 엔터테인먼트의 강도와 노동 강도가 비례하는 것이 아니냐는 가설을 제시했다. 가령, 옛날에 아주머니들이 힘들게 살던 시절에는 어쩌다 관광버스를 타고 여행을 가도 그냥 가는 것이 아니라 하루 종일 버스에서 춤을 추었다고 하는데 그러한 사례들이 엔터테인먼트의 강도와 노동 강도가 비례함을 지지하는 사례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OECD 국가 중에서 한국이 멕시코 다음으로 노동 시간이 기니까 그렇다고 치자. 그러면 왜 멕시코가 아니라 한국인가? 멕시코에서는 마약을 구하기 쉬운데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고 마약의 대체제가 엔터테인먼트라서?
선생님이 나의 아무 말을 듣고 재미있어 하셔서 나는 아무 말의 범위를 확장해보았다. 나는, 내가 사기꾼이라면 엔터테인먼트의 강도와 노동 강도가 비례하는지를 실증적으로 검토하는 단계를 건너뛰고 한국인의 핏줄 면면이 흘러내려오는 문화 DNA를 찾겠다고 하면서 『삼국지』 「위서 동이전」을 인용할 것이라고 했다. 거기에는 한민족이 음주가무를 좋아한다더라는 내용이 나온다는데 이거 이상하지 않은가? 세상에 음주가무가 없는 민족이 없을 것이고 생산력만 놓고 보면 중국이 한반도를 압도했을 텐데, 왜 중국 사람들 눈에도 한민족의 음주가무가 유별나 보였는가? 이 지점에서 노동 강도 가설을 가져오는 것이다. 실증적인 분석의 공백을 스토리텔링으로 채워넣어 눈속임하는 것이다. 동아시아 3국은 벼농사를 주로 짓는데, 벼농사를 지으면 밀 농사를 짓는 것보다 수확량이 세 배 정도 많아서 인구 부양력이 증가하지만 노동 시간도 세 배 정도 많아져서 음주가무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된다. 그렇다면 왜 한민족인가? 한중일 중에서 한국이 농사짓기 제일 안 좋아서 그렇다. 나는 이런 식의 아무 말을 이어갔고, 과학정책 선생님은 그러한 자유연상 아무 말을 듣는 내내 웃으며 재미있어 하셨다.
그런데 <한겨레>에서 하는 기획 인터뷰라고 하는 것이 학생식당에서 아침 먹으면서 낄낄 웃으며 할 정도의 아무 말이라는 것 아닌가?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리 놀랍지는 않다.
* 링크: [한겨레] 그런 것이 한국 정신인가 / 한승훈
( 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62064.html )
(2022.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