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없는 고양이를 도둑고양이라고 부르지 말고 길고양이로 불러야 한다는 의견이 몇 년 전부터 나왔다고 한다. 길에 사는 고양이들이 뭘 훔치는 것도 아닌데 왜 도둑고양이라고 부르느냐는 것이다. 들에 사는 주인 없는 개를 들개라고 부르는 것처럼, 길에 사는 주인 없는 고양이를 길고양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주인 없는 개는 도둑개가 아니라 들개인데, 왜 고양이는 길고양이나 들고양이가 아니라 도둑고양이인가? 한국인들은 왜 그렇게 불렀을까? 한국인들이 고양이보다 개를 좋아해서? 그런 건 이데올로기쟁이들이나 할 법한 답변이다. 내가 국어학자도 아니고 도둑고양이의 어원에 대한 문헌학적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고양이의 생태를 보면 대충 답을 알 수 있다. 주인 없는 고양이들은 정말로 도둑처럼 들어와서 무언가를 훔쳐먹는다.
우리집 고양이들이 오래된 집을 좋아하지 않아서, 나는 계절마다 고양이 집을 하나씩 만들어준다. 이번 겨울에는 고양이들이 덜 춥게 지내라고 집을 두 개를 만들어서 하나로 붙이고 집 입구 앞에 바람을 막을 판 같은 것을 붙여놓았다. 어차피 골판지로 대충 만든 것이지만 그래도 찬 바람이 덜 들어가도록 집 두 개를 붙이면서 맨 바깥쪽 입구와 중간 통로를 어긋나게 만들었다. 그래서 입구를 통해 찬 바람이 들어가도 직선으로 들어가지 않고 ㄹ자로 들어간다.
처음에는 화천이와 새끼가 새로 만든 집에 맨 끝방까지 들어가서 지냈다. 그걸 보고 나는 이번 겨울은 지난 겨울보다 고양이들이 덜 춥게 지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두 고양이가 집 밖에서 오들오들 떨다가 밤이 되면 어디론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차고 같은 곳에 있었을 것인데, 사실 현관문 앞보다 차고가 더 따뜻하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현관문 앞은 화천이의 영역이고 그래서 내가 평소보다 더 신경 써서 집을 만들어주었는데, 왜 화천이는 자기 집에 안 들어가는가? 벌써 싫증이 난 것인가? 아니었다. 어느 날 밤에 화천이 집 안을 보았을 때 화천이 대신 검은 고양이가 자고 있었다. 하도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더니 검은 고양이가 놀라서 집에서 뛰쳐나와 도망갔다. 도둑고양이가 화천이 집을 빼앗은 것이었다.
그 후로도 검은 고양이는 틈틈이 와서 화천이 집을 자기 집처럼 썼고 그 때마다 화천이와 새끼는 집 밖에서 오들오들 떨며 웅크리고 있었다. 내가 틈나는 대로 검은 고양이가 화천이 집 안에 있는지 확인하여 쫓아낸 뒤에야 화천이와 새끼는 다시 자기 집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번 데여서 그런지, 이제는 맨 끝 방에 안 들어가고 입구 근처에서 잔다. 기껏 집을 두 개 만들어서 붙여놓았는데 하나만 만든 것과 똑같게 되었다.
지금도 도둑고양이는 사람이 없을 때마다 마당에 들어와서 화천이 사료를 빼앗아 먹는다. 하도 오다 보니까 이제는 보지 않고 소리만 들어도 도둑고양이가 온 것을 알 수 있다. 화천이와 새끼는 밥 먹을 때 차분히 먹어서 그릇이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안 나는데, 도둑고양이가 밥 먹을 때는 급하게 먹느라 그릇이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거실에서 컴퓨터를 하다가 현관문 앞에서 그릇이 덜그럭하는 소리가 나서 창문으로 내다보면 어김없이 도둑고양이가 화천이 밥을 먹고 있다. 도둑고양이는 허겁지겁 사료를 먹다가 창문으로 내가 보고 있음을 알아차리면 곧바로 대문 밖으로 뛰어나간다.
고양이가 먹어봤자 얼마나 먹겠느냐만은, 화천이가 밥 먹는 것을 방해하는 것도 그렇고, 도둑고양이가 자꾸 우리집에 접근하도록 내버려 두면 또 화천이 집을 빼앗을 것이기 때문에, 도둑고양이를 내쫓을 수밖에 없다. 도둑고양이하고 말이 통한다면, 밥은 먹되 집은 넘보지 말라든지, 화천이 영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따로 무료급식소 비슷하게 차려놓을 테니까 적당히 먹고 가라든지 하는 식으로 타협을 볼 텐데, 타협 볼 방법이 없으니 내쫓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쫓아내도 도둑고양이는 틈틈이 우리집에 와서 화천이 밥을 빼앗아 먹는다.
어제는 현관문 앞에서 화천이와 새끼하고 놀고 있는데 차고에서 고양이들이 싸우는 소리가 났다. 화천이도 내 옆에 있고 화천이 새끼도 내 옆에 있는데 누가 차고에서 싸우는 것인가? 차고에 가보니, 도둑고양이 두 마리가 영역 다툼을 하고 있었다. 둘 다 도둑처럼 몰래 차고에 들어와서는 그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도둑고양이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검은 털과 하얀 털이 젖소 무늬처럼 되어 있는 고양이가 두 마리였다. 한 마리는 하얀 털이 더 많고 다른 한 마리는 까만 털이 더 많았다. 아마도 그 둘은 형제거나 친척일 것인데 하여간 돌아가며 화천이 밥을 빼앗아 먹고는 차고에서 그러고 있었던 것이다.
길고양이를 두고 도둑고양이라고 하다니 길고양이들을 유심히 본 적이나 있느냐는 사람들은, 사실 고양이를 유심히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인 것이다. 유심히 보기는 쥐뿔이나 뭘 유심히 보았겠는가?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고양이가 예쁘게 생겼으니까, 지나가다가 대충 먹이나 주고 몇 분 같이 놀다가 자기 볼 일 보러 갔겠지.
오늘날 도시에 사는 주인 없는 고양이가 아무것도 훔치지 않는 것은, 고양이가 원래부터 예쁘고 착하고 고귀한 동물이어서가 아니라 한국 사람들이 죄다 아파트에 사는 바람에 고양이가 도둑질할 수 없게 되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날 도시에 사는 고양이를 길고양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기는 맞는데, 이건 사람들의 편견을 없애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도둑질을 못하게 된 고양이들을 도둑고양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된 것에 불과하다. 원래부터 주인 없는 고양이는 도둑고양이였는데, 도시 환경이 바뀌면서 도둑질을 못 하는 길고양이 된 것이다. 길고양이를 도둑고양이라고 부르는 것이 동물 학대를 조장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동물 학대는 원래 나쁜 것이고 그와 별개로 도둑고양이는 도둑고양이가 맞다. 우리집에 오는 주인 없는 고양이는 도둑고양이다.
오늘도 우리 집에 찾아온 도둑고양이를 여러 번 보았다. 화천이 밥그릇에 있던 사료를 훔쳐먹다 몇 번이나 나에게 들켰고 들킬 때마다 도망갔다. 화천이가 없었으면 도둑고양이가 눌러앉아도 되었을 것인데, 화천이가 있으니 도둑고양이를 쫓아낼 수밖에 없다. 안 되기는 했으나 어쩔 수 없다. 창문으로 내 얼굴을 비추는 정도로만 도둑고양이를 쫓아낸다.
(2022.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