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15

명료함은 명료한가



명료함이나 명료한 글쓰기를 분석철학의 특징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면 대륙철학은 불명료한가? 그렇게 말하면 대륙철학 전공자한테 혼난다. 내가 철학과 대학원에 다닐 때 그와 관련하여 대륙철학 전공자가 분개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내가 약 올려서 분개한 것은 아니고, 철학을 잘 알지도 못하는 놈들이 (대륙철학을 이유 없이 미워하든 좋아하든) 대륙철학은 불명료하다고 말한다고 분개했던 것이다. 그 분은 현상학 전공자였는데, 현상학이 얼마나 엄밀함과 명료함을 추구하는데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이상한 이야기나 한다고 분개했었다.

나와 같은 학기에 철학과 대학원에 입학한 분 중에는 일본에서 유학하다가 현상학을 배우러 한국에 돌아온 스님도 있었다. 나는 일본에서도 현상학을 많이 한다고 들었는데 굳이 한국에 올 이유가 있었느냐고 스님에게 물었다. 내 물음에 스님은 한국의 이◯◯ 선생님에 대한 일본 학계의 평가를 듣고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그 선생님을 가리켜 “어떻게 한국에서 저런 분이 나올 수 있느냐?”라며 놀라워했다고 한다. 그 선생님의 주요 업적은 몇 십 년 동안 뒤엉켜있던 개념들을 정말 말끔하게 정리정돈한 것이라고 한다. 내가 현상학을 전혀 몰라서 어떻게 정리했다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그렇다고 한다. 그 선생님은 현상학 교재를 집필하기도 했는데, 학부 때 현상학에 심취했다가 분석철학으로 귀순(?)한 사람들조차 그 책은 정말 훌륭한 교재라고 평가한다.

철학과 대학원을 다니면서 현상학 뿐만 아니고 다른 대륙철학 분야 선생님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평가를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선생님의 논문이나 책에 대하여 어떤 분석철학 대학원생은 “명료하다”, “논지가 투명하게 드러난다”고 평가했던 적이 있다. 내가 대륙철학 쪽 선생님들의 논문이나 책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그에 대해 내가 뭐라고 덧붙일 말은 없지만, 하여간 이러한 평가들은 명료함이나 명료한 글쓰기가 분석철학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 같다.

내가 왜 예전 기억을 떠올렸느냐 하면, 사무엘 C. 휠러(Samuel C. Wheeler III)의 다음과 같은 일화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분석철학을 정의하는 기준으로 명료한 글쓰기를 제안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기준도 어떤 사람이 받은 훈련에 상대적이다. “분열(schism)을 넘는 의사소통”이라는 관점에서 나는 데리다에게 솔 크립키의 『명명과 필연』(Naming and Necessity)을 주었다. 나는 크립키의 책이 거의 투명한 텍스트이고 매우 명료하고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데리다는 이전에 이 책을 읽어보려고 했으나 무엇이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반대로, 그는 하이데거가 매우 명료하다고 말했다. 크립키가 명료하게 썼다고 생각하면 당신은 분석철학자일 것이고, 하이데거가 명료하게 썼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대륙철학자일 것이다.(p. 2)


상당수의 글쓰기 책에서는 명료함이 글쓰기의 중요한 덕목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명료함이 어떤 것인지 설명한 책은 드문 것 같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어떤 글이 명료하고 어떤 글이 그렇지 않은지 대강 아는 것 같다. 그렇지만 그것은 글쓰기 책에서 제시하는 비교 대상들이 신문 칼럼 수준 정도라서 그런 것이다. 일반인이 읽을 수 있는 수준을 한참 뛰어넘는 글의 명료함은 어떠한 것일까? 만약에 전문 철학자들이나 읽는 전문적인 글이 명료하다고 한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서로 전문가들의 영역이 겹치지 않는 두 분야가 있고 두 분야에 모두 정통한 전문가도 드물다고 할 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글이 명료하고 다른 분야의 글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이 때 어떤 글이 명료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런데 어떤 글이 명료하다고 할 기준을 명시적으로 제시하기 어렵다고 해서, 명료함의 기준이 사람이 받은 훈련에 상대적이라고 곧바로 결론내리는 것은 뭔가를 해야 할 것을 건너뛰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것처럼 보인다. 구글에서 이와 관련하여 자료를 찾아봤는데 한국어 자료는 별로 없고, 영어 자료는 뭔가 많이 나오기는 하는데 내가 영어로 못하고 말귀도 잘 못 알아먹어서 대충 목록이나 훑어보다가 말았다. 당장 내가 할 일과 밀접한 것도 아니니 다른 사람이 이와 관련된 연구를 하면 슬쩍 가서 물어볼 생각이다.

* 참고 문헌

Samuel C. Wheeler III (2000), Deconstruction as analytic philosophy (Stanford University Press).

(2021.09.15.)


2021/11/14

[교양] 알렉스 라이트, 제10장. “산업 시대의 도서관” 요약 정리 (미완성)

     

[ Alex Wright (2008), Glut: Mastering Information Through the Ages (Cornell University Press)

  알렉스 라이트, 분류의 역사, 김익현・김지연 옮김 (디지털미디어리서치, 2010), 241-265쪽. ]



242-243

대영박물관 도서관

1800년에 도서 4만8천 권

1833년에 도서 25만 권으로 증가

19세기 산업화의 영향으로, 도서관은 학자들의 조합에서 서지 조립 라인으로 탈바꿈


243-244

산업 시대 도서관의 유산이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견고한 이유

산업혁명이 시작된 영국

1831년 대영박뭄관은 안토니오 파니치(Anthonio Panizzi)를 인쇄본 책을 관리하는 보조 사서로 고용함.

1759년 대영박물관을 찾는 사람은 한 달에 다섯 명 정도

100년 후에는 하루 180명으로 늘어남.


244-245

파니치

법학사 학위를 취득

오스트리아 제국의 통치로부터 이탈리아를 해방시킬 목적으로 결성된 비밀 혁명 조직에서 활동하다가 검거를 피해 극적으로 이탈리아를 탈출

유럽을 떠돌다가 영국에 정착함

파니치는 대영박물관에 취직한 후 몇 년 동안 대영박물관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진력하여 사서의 지위에 대한 정치화된 철학을 정립함.


245

대영박물관 도서관의 도서목록

1810년에 인쇄된 도서 목록은 책 7권 분량

파니치가 업무를 인계한 1831년에는 48권 분량

게다가 끼워넣은 종이와 갈겨쓴 오자투성이


245-247

파니치는 주제별 분류 목록을 소개함.

종합적인 분류법을 만들려는 시도.

판, 출판사, 출판일, 출판 지역 등 부가적인 ‘메타’ 정보를 식별하는 새롭고 복잡한 규칙을 제시함.

파니치는 다량의 서지적 상황을 망라한 총 91개 규칙을 소개함.

예) 책(book)과 저작(work)를 구분

책은 물리적 판

저작은 책 속에 부호화된 지적 자산

파니치는 물리적 대상이면서 의미의 전달자인 책의 이중적 속성을 알아차리고 추상적 단계를 도입함.

사서들은 식별 과정과 통합 과정을 분리할 수 있게 됨.

식별 과정 - 서가에 특정한 책의 위치를 정하는 과정

통합 과정 - 어떤 책의 지적인 내용을 규모가 더 큰 장서들의 주제의 체계 속에 위치를 정하는 과정


247

파니치에게 자신이 만든 세부적인 규칙들은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것

사용가능한 목록을 더 많이 만드는 것 자체는 혁명적인 행동

도서관의 문턱을 낮추어서 책을 잘 모르는 평범한 사람들도 도서관에 드나들기를 바란 것

“나는 가난한 학생들이 배움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려고 할 때 이 왕국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과 똑같은 수단을 가지기를 바란다. 그들이 (부자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이성적으로 추구하고, 똑같은 권위 있는 책을 참고하고, 가장 복잡한 연구에 파고들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247-249

파니치의 분류법에 대하여 가장 유력한 도서관 후원자들의 거센 반발

니콜라스 해리스 니콜라스 경

토머스 칼라일



250

산업화의 물결이 대서양을 건너 확대되면서 미국 도서관에서도 영국과 비슷한 소동이 일어남.

미국 보스턴의 유명한 목록 편집자인 찰스 아미 커터(Charles Ammi Cutter)

대중을 위해 책을 목록화하는 새로운 방식을 고안함

‘공공의 사용’에 부합해야 한다고 믿음

이는 도서 목록은 우선 학자들의 필요에 부응해야 한다는 유럽적 시각에 완전히 반대되는 것


250-251

커터는 파니치처럼 도서 목록의 내용을 분리하고, 평범한 사람들도 쉽게 찾을 수 있게 하는 방법으로서 주제별 도서 목록을 만드는 것을 수용함.

학식 있는 독자들과 달리, 공공 도서관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특정한 책을 찾으러 도서관에 오는 것이 아니라 막연한 질문을 품고 도서관을 찾는다고 생각함.

주제별 목록의 유용성이 도서관의 성패를 좌우


251

커터는 『사전체 목록 규칙』(Rules for a Dictionary Catalog)에서 새로운 다차원적 목록 체계를 제시함.

확장적 도서 분류법(Expansive Classification System)

이는 파니치의 분류법보다 더 복잡함

작가, 제목, 주제에 따라 책을 설명하는 구조

주요 특징은 정교한 다차원적 주제 분류법이라는 것

상위 ‘부류’와 ‘개별 주제’의 구별

예) 상위 부류는 역사, 개별 주제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역사

알파벳 한두 개를 조합하여 도서 정리 번호를 부여함

각 알파벳이나 그 조합은 특정 주제를 나타냄

더 자세한 주제는 뒤에 숫자를 붙여 나타냄.

WP83은 미국 회화

W는 미술, WP는 회화, 83은 미국


251-253

커터는 모든 도서관에 공통적인 분류법에 한계가 있음을 인지

규모가 다른 도서관에 다른 목록 방법

도서관 규모에 따라 7단계로 분류된 분류법

1단계는 소형 도서관, 7단계는 대형 도서관

소규모 공공 도서관이나 대규모 대학 도서관에도 동일하게 잘 들어맞는 분류법을 만드는 것이 카터의 꿈

커터의 분류법은 듀이십진분류법 때문에 빛이 바래짐.

그러나 카터의 분류법은 미국 의회도서관 도서 목록 형식에 남아있으며 대학 도서관에서도 사실상 표준이 됨.


253

커터의 기술 혁식 중 하나는 카드식 도서 목록

커터가 카드식 도서 목록을 발명한 것은 아니지만 그 가치를 알아차림.



254

듀이의 최고 업적은 표준화된 카드식 도서 목록

듀이는 도서 목록을 도서관처럼 본질적으로 커다란 기계로 봄.

호환할 수 있는 부분을 도입하고, 일관된 표준과 관행을 확립하여, 변화를 통일하는 방식으로 도서 목록의 작용을 표준화하여 완벽한 분류법을 만들려고 함.


254

듀이는 효율성에 집착함.

시간을 아끼는 차원에서 자기 이름도 ‘Melville’에서 ‘Melvil’로 바꾸고 성도 간단히 ‘Dui’로 바꿈.

아침 인사를 하는 비서에게 사소한 데 시간 낭비하지 말고 다른 일을 하라고 충고할 정도


254

듀이는 중앙집중적인 조직을 세우려는 자신의 뜻에 잘 따르고 더 융통성 있는 사서를 고용하고 싶어서 여성들을 모집하는 것을 적극 추천함.

여성들은 자기 방식을 고안해내기보다는 듀이 자신이 만든 시스템에 순응하고 싶어 할 것으로 믿음.(듀이는 남성 우월주의자)


255-256

듀이는 1876년 뷴류법을 처음 내놓고 경제적 이익을 선전하면서 흥미를 끌려고 함.

“추가적인 비용 지출 없이도 도서관의 유용성이 엄청나게 증가할 것이다. (듀이십진분류법의) 도움, 도서 목록, 서가 목록, 색인, 상호 참조를 이용하면 이전의 어떤 방법보다도 훨씬 더 경제적일 것이다.”


256

듀이십진분류법의 초기에는 모든 책을 숫자로 시작하는 아홉 개의 상위 ‘부류’(class)로 분류함.

각 부류는 열 개의 ‘강목’(division)으로 나뉘어짐

강목은 다시 1천 개의 개별 제목으로 나뉘어짐.


256-257

듀이십진분류법의 하향식 결정론에 대한 비판

비평가들은 듀이십진분류법이 너무 단순하고 문화적인 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고 조롱함.

기독교에 대한 명백한 선호가 드러났다는 것.

에) 신학 부류 중 200-280은 기독교 교파에 대한 부분. 296은 유대교, 297은 이슬람교.

이에 대해 듀이는 자신의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다고 인정함.

“이론적으로 볼 때 모든 주제를 단순히 아홉 개의 큰 주제로 나누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하지만 바람직한 일이다.”


257-258

듀이십진분류법이 겉보기에는 융통성 없이 분류한 것 같지만, 상호 참고된 제목 목록처럼 다면적인 방법을 통한 접근에 대비함.


258-259

듀이 분류법에 대한 경쟁자들

커터의 분류법 외에도 블리스 분류법, 국제십진분류법, 의회도서관 분류법 등

이러한 분류법들의 한계는 관려적인 주제별 분류 목록

즉, 사서들이 나올 만한 주제들을 예상해 목록으로 만드는 것

주제가 늘어날수록 이런 노동집약적 접근법은 개념적인 균열을 드러내기 시작함.



(2022.01.01.)

    

[외국 가요] 빌리 홀리데이 (Billie Holiday)

Billie Holiday - I’m a fool to want you ( www.youtube.com/watch?v=qA4BXkF8Dfo ) ​ Billie Holiday - Blue Moon ( www.youtube.com/watch?v=y4b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