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화천이가 새끼를 낳았다. 화천이의 배가 하도 불러서 도대체 몇 마리나 낳으려고 저러나 싶었는데 겨우 두 마리 낳았다. 겨우 두 마리 낳으려고 저렇게 배가 부른가 싶었는데 이상하게도 화천이 배는 여전히 띵띵했다. 나는 화천이가 늙어서 살이 안 빠지나 싶었다.
이틀 쯤 지났을 때 화천이 새끼들은 보이지 않았고 화천이 집 근처에 핏자국이 있었다. 화천이가 새끼 두 마리를 모두 잡아먹은 것이었다.
화천이가 새끼를 낳기 전부터 까만 고양이가 우리집에 들락거렸다. 예전에 우리집을 들락거리던 회색 줄무늬 고양이는 화천이가 반겼던 것 같은데 이제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까만 고양이는 작고 귀여운 고양이인데, 화천이는 까만 고양이만 보면 내가 현관문 앞에 만들어놓은 골판지 집으로 숨어들었다. 덩치만 놓고 보면 화천이가 더 큰 것 같기도 한데 어쨌든 화천이는 집으로 숨었다. 화천이는 까만 고양이를 위협적인 존재로 판단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화천이가 새끼를 잡아먹은 데는 까만 고양이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화천이가 골판지 집에서 새끼를 낳은 직후에도 까만 고양이가 화천이를 찾아와서 내가 쫓아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화천이는 집 안에서 새끼를 낳으려고 했었다. 내가 거실에 있을 때 화천이가 현관문 밖에서 그렇게 애타게 울어서 현관문을 열어주니 화천이는 거실에 있는 컴퓨터 책상 밑으로 쏙 들어왔었다. 나는 화천이가 놀고 싶어서 그러나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화천이는 한참동안 자기 엉덩이를 핥기 시작했다. 그냥 몇 번 핥았으면 그런가보다 했을 텐데 방바닥에 화천이 침이 묻는 게 보일 정도로 자기 엉덩이를 핥았다. 그러더니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평소와 달리 한 번에 길고 낮게 울음소리를 길게 뽑아냈다. 산통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나는 곧바로 화천이를 현관문 밖으로 쫓아냈다. 집 안에서 새끼를 낳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집 안에서 새끼를 키우게 할 수도 없었고, 낳기만 하게 한다고 한들 핏덩이를 내 손으로 옮길 수는 없었다. 내 손으로 핏덩이들을 옮기면 옮기는 과정에서 새끼들이 죽거나 화천이가 새끼들을 죽일 것이었다. 돌이켜 보면, 새끼를 낳을 때가 되어 화천이 집도 새로 만들어주었는데 화천이가 굳이 내가 있는 책상 밑에 와서 새끼를 낳으려고 했던 것도 까만 고양이 때문이었던 거 같다.
털복숭이가 있을 때는 화천이가 털복숭이랑 놀았는데 작년에 털복숭이가 없어진 이후로 화천이는 집에서 사람만 보면 그렇게 엉겨 붙으려고 한다. 밭에서 일을 해도 옆에 와서 붙으려고 하고, 나무가 잘 있나 보러 가도 화천이가 따라오고, 집 안에 있으면 현관문을 열 때까지 현관문 앞에서 운다. 그래서 이번에 새끼를 낳으면 화천이가 새끼랑 놀겠거니 했는데 그 놈의 까만 고양이 때문에 화천이가 몇 마리 낳지도 않은 새끼를 다 잡아먹었다.
그런데 며칠 뒤에 창고에서 삐약삐약 하는 새끼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화천이가 지난 주에 새끼를 낳은 직후에 새끼 몇 마리를 몰래 창고에 옮긴 것인가? 그건 아니다. 창고에서 삐약삐약 하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 화천이의 배는 확실히 줄어든 것이 보였고 엉덩이에는 핏자국이 있었다. 화천이는 이번 주에 새끼를 또 낳은 것이었다. 지난 주에 새끼를 낳은 직후에 화천이의 배가 꺼지지 않은 것은 새끼를 다 낳지 않아서였다. 똥을 끊어싸는 것도 아니고 새끼를 끊어서 낳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어머니도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고 하신다.
화천이가 새끼를 다시 낳은 곳은 창고에서도 비교적 높은 곳에 있는 올려둔 종이상자였다. 위협이 될 만한 존재가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가서 다시 새끼를 낳은 것이다. 화천이는 현관문 앞에 있는 자기 집에서는 새끼를 안전하게 낳고 기를 수 없겠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어쩌면 집 안에 사는 사람들이 자기 새끼를 효과적으로 보호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화천이가 땅바닥에서 새끼들이 있는 종이상자까지 가려면 몇 번이나 폴짝 뛰고 매달려야 한다. 그렇게 화천이는 하루에도 여러 번씩 땅바닥과 상자를 오가고 있다.
(2021.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