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03

김우재 박사의 칼럼 “향원의 몰락”을 고친다면



김우재 박사의 칼럼은, 많은 사람들이 비판하기 꺼려하는 사안을 실명으로 비판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런데 그러한 비판마다 비판의 방향이 약간씩 틀어져서 유효한 비판이 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한겨레>에 기고한 “향원의 몰락”도 마찬가지다.

“향원의 몰락”은 모두 여섯 문단으로 구성된다. 각 문단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문단(1): 과학지식이 풍부했던 엥겔스가 아니었다면 마르크스는 당대의 엉터리 과학자 트레모의 주장을 『자본』에 인용했을지 모른다.

- 문단(2): 엥겔스는 엉터리 사상가인 오이겐 뒤링을 저지하기 위해 『반-뒤링론』을 썼다.

- 문단(3): 최근 혜민 스님 등 방송계에서 잘 나가는 셀럽 강연자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 문단(4): 설민석 사태는 방송계가 인문학 강연 콘텐츠를 대중에게 무분별하게 내보내는 관행에서 비롯된 것으로, 오래전부터 우려하던 일이 수면 위로 부상한 것에 불과하다.

- 문단(5): 다윈은 박사학위가 없는 아마추어 박물학자이지만 당대의 학자들과 자신의 발견을 공유하고 토론했고, 대중적 유명세보다 자신의 저술 속에서 완결성을 추구했다.

- 문단(6): 엉터리 학문이 미디어를 장악하고 있어도 조용한 학계는 비겁하다.

얼핏 보아도 문단들이 다 제각각 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단(1)과 문단(2)는 문단(6)에서 학계를 비난하기 위한 밑밥으로 깔아놓은 것이다. 마르크스나 엥겔스도 양아치나 사기꾼을 저지하기 위해 싸웠는데 왜 한국 학계는 그러지 않느냐고 비판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문단(3)에서 갑자기 방송가 셀럽 강연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글은 여기서부터 망하기 시작한다. 글쓴이는 문단(1)과 문단(2)에서 추진력을 얻어 문단(6)에서 학계를 강하게 비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단(3)부터 글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가기 시작하고 문단(5)까지 오면 그저 엉뚱하기만 한 글이 되고 만다. 그래서 문단(6)에 나오는 결론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문단(1)과 문단(2)에 나온 트레모나 뒤링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속한 분야에서 문제를 일으킬 만한 인물들이었다. 그래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대응은 적절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문단(3)과 문단(4)에 등장하는 혜민 스님과 설민석의 사례는 학계가 아니라 방송계의 일이다. 방송계의 일인데 학계가 나서야 한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혜민 스님이 방송에서 불교철학을 강의한 것도 아니니 혜민스님 스웩 사태는 불교계와 관련될 수는 있어도 학계와는 무관하다. 설민석 사태가 “방송계의 관행”에서 비롯되었으며 “오래 전부터 우려하던 일”이라는 것은 문단(4)에도 나온다. 그런데 이게 왜 학계의 문제인가? 설민석 강의나 듣고 감동받을 정도로 역사를 아예 모르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설민석 강의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이미 다들 알고 있었다. 왜 다들 알고 있었는가? 설민석이 방송에 나올 때마다 설민석 강의에서 어떤 부분이 틀렸는지 기사로 나왔기 때문이다. 방송국 PD들이 그걸 몰랐을까? 그런데도 방송에 설민석이 계속 나온 것은, 설민석이 나오기만 하면 프로그램을 생각 없이 만들어도 시청률이 잘 나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왜 학계의 책임인가?

문단(5)는 왜 있는지 이해조차 안 가는 부분이다. 다윈에게는 박사학위가 없었지만 당대 학자들과 교류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다윈이 “대중적 유명세보다 자신의 저술 속에서 완결성을 추구했다”는 것이 설민석 사태에 무슨 시사점이 있는가? 설민석은 애초부터 역사 구연동화로 인기를 끈 사람인데, 설민석 보고 대중적 유명세를 좇지 말고 자신의 저술 속에서 완결성을 추구하라고 요구하는 것인가?

이렇듯, 문단(1)과 문단(2)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로 야심차게 깔아놓았던 밑밥은 문단(3), 문단(4), 문단(5)에서 좌충우돌 대모험을 겪으면서 추진력을 다 잃어버린다. 그러니 문단(6)에서 학계가 사이비들과 싸우지 않으니 비겁하다는 주장을 해봐야 힘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지난 번 배명진 사태 때도 그렇고 이번 설민석 사태에서도 그렇고 왜 글쓴이는 방송계의 문제를 학계의 문제인 것처럼 호도하는가? 글쓴이가 더 이상 학계에는 미련이 없지만 방송계에는 미련이 많기 때문인가? 그러한 부분은 개인 사정이니 내가 지적할 부분은 아닌 것 같고, 어떻게 글을 고쳐야 강력한 비판을 할 수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더 생산적인 작업일 것이다.

우선 “향원의 몰락”이라는 글은 제목부터 문제가 있다. 공자가 말한 향원(鄕原)은 동네에서 좋은 사람인 척하고 두루두루 좋게 지내지만 실제로는 공동체에 위험한 사람을 가리킨다. 이번에 방송에서 물의를 일으킨 사람들을 ‘사이비’(似而非)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할 것 같은데 굳이 글쓴이가 그들을 ‘향원’이라고 불렀던 이유는 무엇일까? 글쓴이가 ‘사이비’라는 단어를 모르거나 의미를 몰라서 그런 것은 아닌 것 같고, 아무래도 ‘향원’ 같은 고상해 보이면서 남들이 잘 안 쓰는 표현을 쓰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향원’은 조국 교수 등을 비판할 때 쓰는 말이지 설민석 등을 비판할 때 쓰는 말이 아니다.

글쓴이의 원래 취지에 맞게 글을 고친다고 해보자. 글쓴이가 비판하고자 했던 대상이 설민석이 아니라 학계라는 점과, 글의 앞부분에서 밑밥을 깔고 중간 부분에서 글의 방향을 틀면서 추진력을 얻어 후반부에 강한 인상을 남겨주며 글을 마무리하고 싶어 한다는 점에 중점을 두자. 문단도 원래 글처럼 여섯 문단으로 만들어보자. 그러나 예스러운 표현이나 남들이 잘 몰라서 언급하기만 해도 똑똑해 보일 수 있는 사례를 사용하는 것은 일단 미루어두는 것이 좋겠다. 멋있어 보이는 글을 쓰기 전에 정상적인 글을 쓰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고친 글도 어떻게든 학계를 욕하는 것으로 글을 끝맺도록 하자. 그런데 설민석 사태는 방송계의 문제다. 이 둘을 그냥 이으면 글이 확실하게 망한다. 설민석 사태에서 학계 비판으로 이어지는 부분에서 글의 방향을 살짝 틀면서 추진력을 얻어야 한다. “향원의 몰락”은 그 방향을 잘못 틀었기 때문에 글이 망한 것이다.

설민석과 학계의 연결고리는 연세대에서 받은 역사교육학 석사학위다. 그런데 그 석사학위가 설민석의 성공에 얼마나 유효했는가? 여기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설민석은 석사학위를 받기 전에도 역사 강사로 활동했으며, 글쓴이가 글에서 언급했듯 학위 없는 아마추어 학자가 학술 활동을 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세대 사범대에서 학위를 잘못 주어서 이 사단이 났다고 주장해도 역시나 글이 망하게 된다. 설민석과 학계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려면 몇 단계를 거쳐야만 한다.

문단(1)에서는 설민석이 그동안 한국사 전문가를 표방해온 데는 석사학위가 일정 부분 역할을 했음을 언급해야 한다. 그 전문가가 연구 전문가인지 교육 전문가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설민석의 석사학위는 그의 방송 활동 내내 불거진 전문성 논란으로부터 설민석을 어느 정도 보호해준 것은 사실이다. 석사학위의 역할을 이 정도로 한정한다면, 누구나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문단(2)에서는 그러한 설민석의 석사학위가 표절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서술해야 한다. 언론에 나온 내용을 적당히 요약하면 문단이 완성된다.

문단(3)에서는 방향을 틀어주어야 한다. 어떻게? “그런데 이게 설민석 혼자만의 책임인가?”라고 하면서 글을 시작하면 된다. 학위 논문을 작성하고 심사하는 데 어떤 절차를 거치며 어떤 사람들이 개입하는지를 쓴다. 그렇게 되면 어떤 석사논문이 표절일 경우 그 책임이 작성자 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줄 수 있다.

그런데 글쓴이가 애초에 욕하고 싶었던 것은 설민석이 아니라 학계 아닌가? 그러면 문단(4)에서 설민석의 책임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작다고 써주면 된다. 어떻게? 석사논문 표절을 미성년자 범죄와 엮으면 된다. 석사논문이 통과되기 전까지는 대학원생은 사실상 학문적 미성년자라고 하는 것이다. 이 말에 대부분은 또 수긍할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석사과정생은 학문적 미성년자인데 학문적 보호자인 지도교수가 미성년자의 범죄를 방조하거나 교사했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설민석의 책임은 줄어들고 지도교수나 심사위원의 책임은 커진다.

문단(5)에서는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었던 다른 유명인들의 석사논문 표절 사례를 언급하면서 유명인의 학위논문 표절로 몸살을 겪으면서도 그와 관련된 어느 교수도 처벌받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해당 교수가 처벌받은 사례가 있을 수 있으니 너무 단정적으로 쓰면 곤란할 수 있다. 그런 사례가 있다면 한두 개 정도만 언급하고 예외적인 경우일 뿐이라고 하면 된다.

문단(1)과 문단(2)에서 떡밥을 던지고, 문단(3)에서 방향을 꺾은 다음 문단(5)까지 쭉 추진력을 얻었다고 하자. 그러면 문단(6)에서 어떻게 마무리를 지어야 인상 깊은 한방을 먹일 것인가? 그러한 과도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 글을 멀쩡히 잘 쓰다가 끝부분에서 괜히 인상 깊은 메시지를 던지려고 무리하다가 글이 삐끗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특별한 게 생각나지 않으면 하던 욕을 마저 하고 글을 끝내면 된다. 석사학위를 표절한 사람을 족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도교수와 심사위원을 족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면서 글을 끝맺으면 된다.

이렇게 글을 썼다고 하자. 제목은 어떻게 해야 하나? 글도 쓰기 전에 제목에 억지로 멋진 단어를 넣고, 제목에 맞추어 억지로 글을 욱여넣다가 글이 망하는 경우도 많다. 괜히 멋진 단어 넣으려고 하지 말고 “설민석의 석사 학위는 누가 주었나?” 정도로 하는 것이 좋겠다.

* 링크: [한겨레] 향원의 몰락 / 김우재

( http://m.hani.co.kr/arti/opinion/column/976182.html )

(2021.01.03.)


2021/03/01

새해 해맞이 풍습의 유래



코로나19가 퍼지니까 싸돌아다니지 말라고 해도, 굳이 새해라고 해 뜨는 거 보러 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조상 중에 일출 못 보고 죽은 귀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굳이 이런 때 고작 해 뜨는 것을 보러 바닷가로 몰려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바다나 산에서 보는 일출이 장관일 수는 있겠는데 굳이 새해 첫날 보아야 뭔가 의미심장할 것 같지는 않다. 해 뜨는 것이야 1년 내내 똑같다. 계절에 따라 풍경이 바뀔 수는 있겠지만 1월은 너무 춥다. 일출은 따뜻할 때 보아도 된다. 일출을 1월 초에 보나 2월 말에 보나 풍경은 거의 다르지 않다. 굳이 추위에 떨면서 해 뜨는 것을 볼 이유가 없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니, 한국에 언제부터 새해 첫날에 일출을 보는 풍습이 생겼나 궁금해졌다. 적어도, 조선시대에는 그런 풍습이 있을 법하지 않다. 태양력을 써야 새해 첫날에 일출을 볼 이유가 생기는데 개화기 전까지는 태양력을 거의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음력 설에 일출을 보러 갈 이유도 없다. 설에는 차례 지내고 성묘하기 바쁠 테니 그런 날 해 뜨는 거 보겠다고 나설 정도면 조상도 없고 족보도 없는 쌍놈일 것이다. 그런데 옛날에는 방한용품도 마땅치 않았을 것이므로 굳이 겨울에 얼어 죽겠다고 해 뜨는 것을 보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적어도 개화기 이전까지는 한반도에서 새해 첫날에 해 뜨는 것을 보는 풍습이 생겼을 법하지 않다.

새해 해맞이 풍습이 개화기 이후에 생긴 것이라면 혹시 일본에서 온 것인가? 물론, 황교익처럼 “짠맛은 일본에서 왔다”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덮어놓고 일본에서 왔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짠맛이 바다에서 온 줄 알았는데 일본에서 왔다고 하니 말 다 한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현대 한국의 많은 풍습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일본에서 건너온 것이기는 하다. 중국이나 미국이나 유럽에 해맞이 풍습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일본에만 있던 풍습이라고 하면 한국의 해맞이 풍습은 일본에서 건너왔을 가능성이 크다.

어차피 나는 다른 나라 풍습 같은 것은 모르니까 다른 나라에 그런 풍습이 있나 하고 구글에 “해돋이 유래”라고 검색하니 맨 윗줄에 “해맞이의 유래”라는 경향신문 기사가 나왔다. 역시 혼자 생각해봐야 소용이 없고 자료를 빨리 찾는 게 더 낫다.

단국대 동양학연구원의 장유승 책임연구원에 따르면, “새해 첫 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건 세계 공통”이지만 “이렇게 집단적으로 열광하는 나라는 드물”고 “집단적・주술적 성격의 새해 해맞이는 일본에서 유래한 풍속”이라고 한다. 짠맛은 바다에서 왔겠지만 새해 해맞이는 정말로 일본에서 왔던 것이다.

한국에서 여론몰이 할 때 반일 치트키만 한 것이 없는데, 왜 새해 해맞이 하는 사람들을 막을 때 반일 치트키를 쓰지 않았나 모르겠다. “새해 해맞이는 일제 잔재”, “새해 해맞이 가면 토착왜구”라고 했다면 사람들이 서로서로 감시해서 일출을 보러 가지 않았을 것이고 코로나19 방역에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하는 사람 치고 역사를 잘 아는 사람도 없지만, 역사를 잊은 사람들을 선동하는 데는 또 역사만한 것도 없다. 역시나 이래저래 역사는 중요한 것 같다.

* 링크(1): [YTN] 가지 말라는데도... ‘해돋이’ 관광지행 열차는 만석

( www.ytn.co.kr/_ln/0103_202012311657195648 )

* 링크(2): [경향신문] 해맞이의 유래 /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책임연구원

( 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1801032053005 )

(2021.01.01.)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예언한 알라딘 독자 구매평 성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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