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onald Findlay and Kevin H. O’Rourke (2007), Power and Plenty: Trade, War, and the World Economy in the Second Millennium (Princeton University Press), pp. 429-472. ]
1. World War I
2. The Aftermath of War
3. Interwar Commercial Policy
4. Transport Costs
5. The Volume of World Trade
6. Price Convergence and Divergence
7. The Great Depression, the Collapse of World Trade,
and the Developing Countries
8. The Collapse of the Ottoman Empire
9. Conclusion
1. World War I
1792-1815 전쟁.
18세기 중상주의 종말
1차대전 - 19세기 자유주의 경제질서 종말, 경제 전쟁.
- 봉쇄의 성격이 100년 전과 달라짐.
신기술, 새로운 국제경제 환경, 수출 막는 게 아니라 수입 못하게.
‘close’ blockades → ‘distant’ blockades,
잠수함 counter-blockade.
결과는 중립국 선박 더 이용.
중립국 선박에 대한 잠수함 공격 불가피.
결국 1917년 미국 참전
- 무역과 해운의 중앙 통제.
‘Total War’ 정부지출 급증, 민간경제 통제
1915년 영국 McKenna Tariff 등 보호주의 전후에도 지속.
효과 큰 정도 아니나 정책기조가 변한 것.
- 전쟁 중 국제무역이 단절되었는가. 아닌 듯.
교전국 수출 급감(봉쇄 때문 아니라 자발적, 자원확보차원,
영, 프, 러 수입 증가. 독일 수입 감소(봉쇄 성공?)
연합국 무역적자는 미국에서 차입으로 메움.
중립국 수출 증가.
식품, 원자재, 무기, 무역흑자 누적.
전쟁으로 교역액이 감소한 것은 아님(독일 예외).
그러나 운송비용 급증, 상품시장 통합도 하락.
교역액 아닌 교역량은 감소했을 것
나라마다 다양.
2. The Aftermath of War
전쟁 전 상태로 돌아가기 곤란.
교역 충격이 생산 및 무역 패턴을 변화시켜 소득 재분배.
전후 경제적 조정. 무역정책의 정치경제 등에 영향. 기본적으로 국제경제통합에 부정적.
베르사유 조약은 지정학적으로도 안정적 질서를 제공하지 못함.
- 비-유럽 1차산품 수출능력 팽창으로 전후 과잉, 가격 하락,
유럽 제조업 군비확장으로 전후에 과잉 설비
비-유럽 공업화 촉진으로 무역패턴 변화. 이런 것들에 대응해야 함.
곡물부문 - 미, 캐나다, 호주, 아르헨티나 경작지 확장
1920년대 곡물가격 급락
육류 - 미, 아르헨
사탕 - 자바, 쿠바
유럽은 중공업. 철강, 비행기, 금속, 조선 과잉 설비
- 일본은 공업화 가속.
화학, 엔지니어링, 철강. 유럽 제조업품 시장잠식.
중국, 인도 (재)공업화.
특히 미국의 공업화 가속 엄청남. 캐나다, 남아프리카도.
- 1815년 이후와 마찬가지로 전후에 보호주의 주장세력 강해짐
사회주의 확산, 노동조합 강화, 기업규모 확대, 정부개입 증대 등과 함께 경제의 유연성 감소,
무역자유화 어렵게 함.
금본위 복귀 위한 긴축정책도 쓰기 힘듦.
전시 채무와 배상금 문제. 국제협력 더 어렵게 됨.
금본위 붕괴는 국제무역 회복에 찬물.
새로운 국민국가들의 등장은 국제 분업 체계를 와해시켜 무역패턴 혼란
민족주의적 보호정책
러시아는 공산혁명으로 국제경제에서 사라짐.
폴란드 같은 곳 타격 받음.
3. Interwar Commercial Policy
전시 통제가 사라지지 않음. 수량제한, 바터, 수입허가제, 외환통제, 정부독점. 이런 수량 제한을 철폐하자는 국제회의가 여러 번 열렸으나 효과 크지 않음. 관세도.
1920년대 중엽에 1913년보다 전반적으로 높음.
1931년에는 더욱 높음.
유럽 바깥에도 보호주의 만연
정책주권을 시행해보려는 것?
인도, 중국, 버마, 이집트, 미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호주, 더 악화
1920년대 후반 이후 1차 상품가격 폭락
1930년대 대공황
농민 및 제조업 전부 보호 원함.
교역국들의 상호작용, 관세, 보조금.
- 대공황:
금융긴축
독일 1927 미국 1928
주식투기 방지 위해 한 조치
결과: 독일 주가폭락, 투자 감소, 1927-32년 미국 주가,
투자가 1929년까지 지속되나 통화량 증가 둔화.
금본위 때문에 긴축정책 파급
수요 감소로 교역감소, 수지 문제 악화.
임금 하방경직성으로 이윤과 고용 압박
독일, 미국 등의 은행 위기로 더욱 심화
1차산품 수요 감소로 가격하락. 1차산품 수출국도 타격.
실질이자율 상승으로 채무국 외환위기,
1931년부터 평가절하, 수입통제, 관세 인상. 선진공업국도 관세. 인상. (표 9.2b)
수량제한 재도입 또는 신규도입. 독 쌍무적 무역, 영제국 특혜 등은 MFN 원리 포기.
일본 - autarky 추구.
보복적 보호주의의 예: 호주-인도 밀 시장, 인도-일본 면직물
- 교역회복의 시작. 자유무역정책 선회의 시작.
1932년 Benelux 관세인하시작협의
1937년 Oslo group Benelux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Hague 합의 수량할당 철폐
1934년 U.S. Reciprocal Trade Agreement Act 무역 합의를 행정부 권한으로 위임.
이후 1939년까지 미국은 20개 조약에 서명.
중요한 것은 영국과의 조약
1930년대 초 50% 이상 관세를 40% 이하로 인하.
1939년 발효.
그러나 2차 대전.
4. Transport Costs
철도건설 계속. 특히 저개발국. 증기기관차가 디젤 및 전동차로 대체됨. 자동차 보급 확산.
미국에서 특히 빠름.
에너지원이 석유로 전환.
자동차, 기관차, 비행기. (배는 늦다).
석유 전략적 중요성 커지고 국제무역 새로운 유인으로 등장.
러, 미 → 중동 산지
실질 운송비 하락속도가 전전보다 둔화됨.
5. The Volume of World Trade
1929년까지 상승 1932년까지 급락
1937년까지 회복
1938년 다시 하락.
연율 0.7-1%
1855-1913년 연율 3.8%은 성장에 비하면 형편없음.
1929-32년 급락은 주로 제조업품 무역 (42% 하락), 1차산품 무역은 13% 하락.
즉 유럽과 북미 수출이 가장 큰 타격.
명목 가치는 더욱 하락, 수출 가격 하락이므로
수출가격은 1차산품이 더 하락. 교역조건 악화
- 다자간 무역 비중은 더 낮아짐,
양자 간 또는 블록 내 무역이 상대적으로 커짐.
추축국의 무역상대국 재편은 전략적 고려에 의한 듯.
공황 대책의 의미도 가짐.
6. Price Convergence and Divergence
1929-32년 무역 급락의 근본 원인은?
GDP 대비 무역량이 떨어졌다는 점.
1913년 뿐 아니라 1870년에 비해서도 떨어진 것
대공황 때문이 아니라 보호주의 때문.
금본위 와해.
가격 자료 - 시장통합중단 또는 후퇴를 보임.
무역장벽과 기타 요인이 시장통합 방해,
역전 → 무역량 감소
7. The Great Depression, the Collapse of World Trade,
and the Developing Countries
저-개발국 교역조건 악화.
그러나 집계적 거시경제지표는 선진공업국보다 낫다. 특히 아시아.
그 이유는? 교역조건 1932년 이후 회복.
수출성장, 금본위포기, 평가절하, 외채 상환중지, 통화팽창, 재정적자,
공공사업, 재무장, 수입 제한, 고율관세,
수입대체 공업화,
수입대체 농업성장. 수입대체 포퓰리즘.
- 거시적 공황효과보다 수출상품 가격 폭락이 더 문제인 저개발국 많음.
수출상품 재배에서 자급자족으로 후퇴.
부채나 조세부담 때문에 이것이 불가능할 경우
시장 생산 계속이나 상황 악화로 정치적 긴장, 폭동, 반란.
1930년 버마, 베트남, 아프리카 농민들도 극한 상황,
폭동 나이지리아, 토고, 아이보리코스트, 벨기언콩고
대공황이 식민지 해방운동을 촉진했다고 하는 Rothermund.
8. The Collapse of the Ottoman Empire
지배 계급은 수니 아랍.
1차 대전에는 이스탄불의 젊은 터키인들 때문에 추축국 쪽으로 참전하여 패배함.
아랍민족주의 흥기
터키에 대항전 (T.E. Lawrence 등장).
그러나 Sykes-Picot 합의로 중동을 영-프 분할통치.
시리아, 레바논 -> 프랑스
바그다드, 바스라, 팔레스타인 -> 영국
Kemal's defense of 터키 against 그리스 1919.
1921년 이라크 건국, 1932년까지 영국 위임통치
1958년 군사혁명
9. Conclusion
1차 대전 → 국제경제시스템 붕괴 → 2차 대전
대공황과 대량실업 → 나치 등장. 무솔리니의 에티오피아 침공.
대공황과 구미 선진국의 보호주의 → 일본이 자유주의와 국제주의를 포기
아우타르키, 제국주의 선회
미-영-프가 경제정책 협력 못하고 충돌한 것이 위기를 부추긴 면이 있음.
- 보호주의, 전시 채무, 배상금, 환율 등을 둘러싸고 반목 갈등.
(2020.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