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에서 <금융거래정보 등의 제공 사실 통보서>를 우리집에 보냈다. 서울북부지방검찰청에 아버지의 계좌 거래내역을 제공했다는 내용이었다. 검찰청에서는 왜 농협에 아버지의 계좌 거래내역 정보제공을 요구했는가?
몇 년 전, 아버지는 녹색 무슨 협동조합의 대표가 되었다. 아버지가 협동조합에서 중요한 일을 해서 대표가 된 것은 아니다. 협동조합에서 농지를 취득하려면 아버지의 명의를 빌려야 했고 그렇게 서류상으로 대표가 된 것이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일종의 바지 대표였다.
나는 그 협동조합의 이사장을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친할머니 장례식장에 문상객으로 왔을 때였다. 사람들이 그 아저씨를 의원님이라고 불러서 전직 국회의원인가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국회의원 선거에서 세 번 떨어진 사람이었다. 예전에 정봉주가 팟캐스트에서 “국회의원 세 번 떨어지면 당선 안 되어도 의원이라고 불러준다”고 말했는데 정말 그러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당시 그 아저씨는 지렁이로 음식물 쓰레기 처리하고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는 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가 지역 조합의 바지 대표가 되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 조합이 오래가지 못할 것임을 알았다. 아버지 같은 분을 지역 조합의 바지 대표로 세울 정도의 상황이라면 어지간히 협동조합에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녹색 무슨 협동조합이 서울시의 지원을 받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정상적인 성장은 아닐 것이라고 짐작했다.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상황이거나 이익이 남더라도 방만하게 운영되어서 장기적으로 잘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예측대로 그 협동조합에 대해 안 좋은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장사는 잘 되고 태양광 패널도 저가 중국산을 쓰지만 임금이 체불되었다고 했다. 결국 협동조합의 이사장은 구속되었다.
검찰에서 아버지 명의의 계좌 거래내역을 조회한 것은 그 녹색 무슨 협동조합 때문이다. 검찰에 소환되는 일 없이 계좌 거래내역 조회에서 끝났다. 그 협동조합이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해먹은 것이 없었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바지 대표치고는 운이 좋았다.
<금융거래정보 등의 제공 사실 통보서>를 받고 나서 제일 먼저 생각난 사람은 유시민이었다. 노무현재단의 이사장인 유시민은 검찰이 노무현재단의 계좌 거래내역을 들여다보았다고 작년부터 주장했다. 유시민이 60세 즈음부터 이상한 이야기를 계속 했기 때문에, 계좌 추적 의혹을 제기할 때도 나는 별 생각 없이 넘겼었다. 그런데 <금융거래정보 등의 제공 사실 통보서>를 받아보니 유시민의 의혹 제기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부터 유시민은 “검찰이 노무현재단의 주거래은행 계좌를 들여다보았다”고 하면서 “본인이나 재단에 범죄 혐의가 없는데도 만약 이런 식으로 계좌를 들여다봤다면 그건 재단이나 자신을 검찰이 불법 사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시민은 검찰이 대단히 불법적인 일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했고, 검찰은 그런 일이 없었다고 부인하고, 나는 법을 모르니까, 검찰이 노무현재단 계좌를 보는 것이 대단히 불법적인 일인 줄 알았다. 유시민이 “불법 사찰”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제4조를 알게 되었다. “금융회사 등에 종사하는 자는 명의인의 서면상의 요구나 동의를 받지 아니하고는 그 금융거래의 내용에 대한 정보 또는 자료를 타인에게 제공하거나 누설하여서는 아니 되”지만, “법원의 제출명령 또는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따른 거래정보 등의 제공” 등의 사유가 있으면 금융기관에서 “사용 목적에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서 거래정보 등을 제공”할 수 있다. 즉,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으면 검찰은 은행으로부터 금융거래내역을 합법적으로 받아볼 수 있다. 유시민은 신라젠과 관련하여 의심을 받으니, 검찰이 유시민 개인의 계좌와 유시민이 이사장으로 있는 노무현재단의 계좌의 거래내역을 보았다고 해도 그것을 불법 사찰이라고 할 수는 없다. 유시민의 기분이 나빴다고 해도 불법 사찰은 아니다.
그렇다면 유시민은 왜 그러한 반응을 보였을까? 아마도 세 가지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첫 번째 가능성은 정말로 유시민이 검찰 내부의 어떤 움직임을 감지했을 가능성이다. 검찰이 영장을 발부받아 계좌를 조회하는 것은 합법이지만, 검사들은 워낙 악랄하고 악마 같은 놈들이라서 합법적인 수단으로도 유시민과 노무현재단에 대한 공작을 하고 있다고 판단하여 유시민은 지지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것일 수 있다.
두 번째 가능성은 유시민이 일반 시민들을 개돼지로 보고 여론을 호도하려고 했을 가능성이다. 조국 사태 때문에 여론이 뒤숭숭하니 검찰이 불법을 저지르는 집단이라고 선동하려고 그런 주장을 했을 수 있다. 정상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금융거래정보 등의 제공 사실 통보서> 같은 것을 받아볼 일은 없으니까 검찰이 노무현재단의 계좌를 들여다본다고 주장하면 분노한 사람들이 멍멍 꿀꿀 하면서 검찰을 비난하게 만들 수 있다. 나도 해당 법률을 알기 전까지는 검찰이 노무현재단의 계좌 거래내역을 보는 것이 불법적인 행위인 줄 알았다.
세 번째 가능성은 유시민이 60세가 넘어가면서 뇌세포가 변해 전혀 다른 인격체가 되기 시작했을 가능성이다. 유시민에 따르면, 60세 이후에 뇌세포가 변하는 것은 과학적 사실이라고 한다.
나는 음모론보다는 과학적 사실을 믿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2020.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