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요양보호사 시험을 보기 위해 교육을 받는다. 시험을 보고 일정 점수 이상을 받아야 요양보호사가 된다고 한다. 시험은 5지선자형 객관식이다. 시험 문제의 대부분은 요양보호 업무 중 해야 할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다. 어머니가 문제 하나 틀릴 때마다 나는 “아이고, 우리 엄마가 노인네 한 명 또 죽였네”라고 말한다.
어머니는 답이 이상한 것처럼 보이는 문제가 있으면 나에게 답이 무엇인 것 같으냐고 물어본다. 얼마 전에는 이런 문제를 물어보셨다.
문제) 고혈압 대상자의 혈압약 복용 방법으로 옳은 것은?
(1) 혈압이 조절되면 약 복용을 중단한다.
(2) 술을 마신 경우에도 약을 꼭 챙겨먹는다.
(3) 투약 후에도 고혈압이 지속되면 의사와 상의한다.
(4) 약 복용을 거르면 다음날 함께 복용한다.
(5) 몸이 약해지므로 장기간 투약하지 않는다.
정답은 (3)번이다. 어머니는 (2)번이라고 했다. (1), (4), (5)번은 확실한 오답인 것은 어머니도 안다. (2)와 (3) 중에서 다른 대부분의 수강생들이 (3)을 선택할 때 어머니는 (2)를 선택했다.
어머니는, 어차피 약을 먹어도 고혈압은 지속되니까 상관없지만, 술을 마셨다고 해서 약을 안 먹으면 고혈압에 안 좋으니까 (2)번이 맞다고 생각했다. 다른 수강생들이 말했다. “고혈압 약은 아침에 먹어요.” 어머니는 지지 않았다. “환자가 아침에 술을 마시면 어떻게 할 거예요?” 이에 다른 수강생이 “아침부터 술을 마시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라고 반문했고, 어머니는 “주정뱅이들은 아침부터 술을 마셔요. 요양보호 받는 사람이 주정뱅이면 어떻게 할 거예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어머니의 이러한 주장에 수강생들은 물론이고 강사도 아무 말도 못했다고 한다. 강사는 답이 (3)번이니 (3)번이 답이라고만 말했다고 한다.
주정뱅이들은 아침부터 술을 먹는다는 게 맞는 말이기는 하다. 그런데 고혈압 약을 먹어야 하는 사람이 아침부터 술을 마시면, 고혈압이 문제인 게 아니라 그냥 죽어야 하지 않나? 하여간 어머니는 틀렸다. 왜냐하면 약을 술과 같이 복용하면 간에 무리가 가서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 설명을 듣고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진작에 이렇게 말했어야지, 선생이 아무 말도 못해. 실력이 없어.” 그리고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고혈압 약을 아침에 먹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네. 그 여편네들은 남편이 고혈압인가?” 그런데 나의 아버지도 고혈압이다. 어머니는 왜 몰랐을까? “아, 아침마다 먹는 게 고혈압 약이었구나. 약을 하도 많이 먹으니까 그게 고혈압 약인지 당뇨 약인지 몰랐지.”
하여간 어머니가 요양보호사 시험 관련한 교육을 받는 것을 옆에서 보면서, 그런 시험들에 쓸 만한 내용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20.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