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08

오픈북 시험 부정 행위에 관한 현직 교수의 견해



조국 교수 부부가 아들의 오픈북 시험 문제를 대신 풀어주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조국 교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부정 행위를 재정의하고 있다. 전우용 교수는 부정 행위와 그렇지 않은 행위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며, 자식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화자본’의 영향을 원천적으로 배제할 수 없으며 학업의 영향을 미치는 ‘자본’ 그 자체의 영향력을 제거하라고 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질서’를 근본부터 부정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전우용 교수 같은 사람들의 눈에는 조국 교수 부부의 오픈북 시험 부정 행위가 대단한 철학적 함축이라도 가지는 것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학부 수업 오픈북 시험에서 측정하고자 하는 것은 학생의 답안 작성 능력이다. 그 학생이 답안 작성 능력을 가지기까지 수많은 요소들이 개입했을 것이지만 오픈북 시험은 그런 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 어떤 자료를 가지고 있는지, 그러한 자료를 어떻게 가지게 되었는지도 문제 삼지 않는다. 남이 자료를 구해주었다고 해도 답안 작성 능력이 없으면 답안을 작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픈북 시험도 부정 행위의 기준은 명확하다. 정해진 시간에 해당 학생이 답안을 작성했는가, 이것 하나다. 해외 대학에서 20년 전에 석사학위 받은 사람이 오픈북 시험의 부정 행위를 옹호하는 것은 그렇다고 치자. 한 개인의 능력이 형성되는 데 유전적 요소나 환경적 요소가 어느 정도로 개입하는지 불분명하니 부정 행위의 기준도 불분명하다고 현직 교수가 주장하는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나는 궁금하다. 전우용 교수는 왜 대학생 아들들의 과제를 대신 작성해주지 않고 말만 몇 마디 해주고 마는가? 전우용 교수는, 과제에 관한 자식들의 물음에 한 마디 대답으로 끝나는 것이나 한 시간 넘는 토론으로 이어지는 것이나 오픈북 시험 대리 시험이나 별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과제를 대신 작성해주는 것도 별 문제 없다고 판단할 법한데, 왜 전우용 교수는 아들들의 과제를 대신 작성해주지 않았을까? 귀찮아서? 자식들을 아끼지 않아서? 자식들이 아버지보다 과제를 더 잘 해서?

(2020.01.08.)


2020/03/07

[중국사] 사마천 『사기』 권6 「진시황 본기」 요약 정리 (미완성)

   
[ 사마천, 『사기본기』, 김원중 옮김 (민음사, 2015). ]
  
  
■ 탄생
- 진시황(秦始皇)은 진나라 장양왕(庄襄王)의 아들.
• 장양왕이 볼모로 조나라에 있을 때 여불위의 애첩을 보고 반하여 취한 후 시황을 낳음.
• 진 소왕(昭王) 48년(기원전 259년) 정월에 한단(邯鄲)에서 태어남.
• 이름을 정(政), 성을 조(趙)라고 함.
  
■ 진왕에 등극함(기원전 246년)
- 시황이 13살 때 장양왕이 죽고 진왕에 오름.
- 당시 진의 영토
• 이미 파(巴), 촉(蜀), 한중(漢中)의 땅을 병합한 상태
• [초나라의] 완(宛)을 넘어가 영(郢)을 점령하여 남군(南郡)을 설치함.
• 북쪽으로 상군(上郡), 동쪽으로 하동(河東), 태원(太原), 상당(上党) 등을 점령하여 군현을 둠.
• 동쪽으로 형양(滎陽)에 이르러 이주(서주와 동주)를 멸하고 삼천군(三川郡)을 둠.
- 여불위(呂不韋)를 상국으로 삼고 10만의 호의 문신후(文信侯)에 봉함.
- 시황은 세상의 빈객과 유세가들을 불러서 그들을 이용하여 천하를 병합하려고 함.
• 이사(李斯)를 발탁하여 사인(舍人)으로 삼음.
• 몽오(蒙驁), 왕의(王齮), 포공(麃公) 등을 장군으로 삼음.
- 시황이 즉위할 때는 나이가 어려 모든 국사를 대신들에게 위임함.

■ 시황 원년(기원전 246년)
- 진양(晉陽)이 반하자 장군 몽오(蒙驁)를 보내 평정함.

■ 시황 2년(기원전 245년)
- 포공(麃公)을 장군으로 삼아 [위나라의 도읍] 권(卷)을 공격하여 위군 3만여 명의 목을 벰.

■ 시황 3년(기원전 244년)
- 몽오가 한(韓)나라를 공격하여 성 열세 개를 점령함.
- 왕의(王齮)가 죽음.
- 10월, 장군 몽오(蒙驁)가 위나라의 창(暢)과 유궤(有詭)를 공격함.
- 그 해에 큰 기근이 들음.

■ 시황 4년(기원전 243년)
- 창(暢)과 유궤(有詭)를 함락함.
- 3월에 군사를 철수함.
- 진나라의 인질이 조나라에서 돌아오고 인질로 와 있던 조나라의 태자가 본국으로 돌아감.
- 10월, 경인(庚寅) 날에 메뚜기 떼가 동쪽에서 날아와 하늘을 뒤덮음.
- 천하에 전염병이 돌았음.
- 양식 1천 섬을 바친 백성들에게 한 등급의 작호를 내림.

■ 시황 5년(기원전 242년)
- 장군 몽오(蒙驁)가 위나라를 공격하여 산조(酸棗), 연(燕), 허(虛), 장평(長平), 옹구(雍丘), 산양성(山陽城) 등을 모두 함락하여 20여 개 성을 차지하고 처음으로 동군(東郡)을 설치함.
- 그 해 겨울에 큰 벼락이 떨어짐.

■ 시황 6년(기원전 241년)
- 한, 위, 조, 위, 초가 힘을 합하여 진나라를 공격하고 수릉(壽陵)을 점령함.
• 진나라가 군사를 출병하자 다섯 나라의 군사들이 물러감.
- 위나라를 점령하고 동군(東郡)을 압박하자, 위나라 군주 각(角)이 수하들을 이끌고 야왕(野王)으로 달아나 험한 산세에 의지하여 위나라 하내(河內) 땅을 지킴.

■ 시황 7년(기원전 240년)
- 혜성이 동쪽에서 나타나더니 다시 북쪽에서 보였으며 5월에는 다시 서쪽에서 나타남.
- 장군 몽오(蒙驁)가 죽음.
- 용(龍), 고(孤), 경도(慶都)를 공격하다 군대를 돌려 급(汲)을 치게 함.
- 혜성이 다시 서쪽에 나타나 16일 동안 나타남.
- [장양왕의 생모인] 하태후(夏太后)가 죽음.

■ 시황 8년(기원전 239년)
- 진왕의 동생 장안군(長安君) 성교(成蟜)가 군대를 거느리고 조나라를 공격하다 모반함.
• 장안군은 둔류(屯留)에서 죽고, 장안군을 따르던 군관들은 모두 참수당함.
• 그 곳의 백성들은 모두 임조(臨洮)로 옮겨 살게 함.
- 성교(成蟜)의 토벌군 대장인 벽(壁)이 죽자 둔류의 병졸인 포학(蒲鶴)이 모반하여 그 시신을 갈기갈기 찢음.
- 하수(河水)의 물고기들이 육지로 대거 올라오자 사람들이 수레를 끌고 먹을 것을 구하러 동쪽으로 감.
- 노애(嫪毐)를 장신후(長信侯)로 봉함.
• 산양(山陽) 땅을 봉지로 주고 그 곳에 살게 함.
• 궁실(宮室), 거마(車馬), 의복(衣服), 원유(苑囿), 사냥터 등 모두 노애가 제멋대로 함.
• 나라의 모든 대소사는 노애의 손을 거치지 않고는 시행되지 않음.
• 하서(河西)의 태원군(太原郡)을 더하여 노애의 봉지로 줌.
- 주석
* 원유(苑囿): 왕실에서 짐승을 놓아기르던 동물원을 말함. 규모가 큰 것을 원(苑), 작은 것을 유(囿)라 함.

■ 시황 9년(기원전 238년)
- 혜성이 나타났으며 때때로 하늘을 가로지름.
- 위(魏)의 원(垣)과 포양(蒲陽)을 공격함.
- 4월, 진왕이 옹(雍) 땅에서 유숙함.
- 기유(己酉)일에 진왕이 관례를 치르고 [허리에] 검을 차기 시작함.
- 장신후(長信侯) 노애(嫪毐)가 역모를 꾀하다가 사전에 발각됨.
• 왕의 옥새와 태후의 인장을 위조하고, 현의 군사 및 호위병, 관아의 기병, 융적의 우두머리, 가신(家臣, 궁중에서 기거하는 신하)들을 데리고 기년궁(蘄年宮)을 습격함.
- 진왕은 이를 알고 창평군(昌平君)과 창문군(昌文君)에게 명하여 반란을 진압하도록 함.
• 함양성 안에서 싸워 수급 수백을 벰.
• [공이 있는] 모두에게 작위를 내리고, 전쟁을 치른 환관들도 작위를 한 급씩 올려줌.
• 노애가 싸움에 패하여 달아남.
• 진왕이 즉시 영을 내려 노애를 생포한 자에게 100만 전(錢)을, 죽인 자에게 50만 전을 상금으로 주겠다고 함.
- 노애 등의 일당이 모두 잡혀서 함양으로 압송됨.
• 위위 갈(竭), 내사 사(肆), 좌익 갈(竭), 중대부 영제(令齊) 등을 참수하여 효수함.
• 노애(嫪毐)는 거열형(車裂刑)에 처하고 그 종족들은 멸족함.
• 그 가신들과 죄가 경미한 자들은 귀신(鬼薪)의 형에 처함.
• 4천 가구의 관직을 박탈하고 촉군(蜀郡) 방릉현(房陵縣)으로 옮겨가 살게 함.
• 그 달에 혹한이 와서 얼어 죽은 사람이 있었음.
- 양단화(楊端和)가 연지(衍氏)를 침공하여 점령함.
- 혜성이 서쪽 하늘에 나타났다가 다시 북쪽에 나타났는데 북두칠성을 따라 80일 동안 남쪽에 나타남.
- 주석
* 위위(衛尉): 진한 때 구경(九卿)의 하나. 궁정 내 근위대 및 숙위(宿衛)를 총괄함. 녹봉은 연 2천 석. 중대부령(中大夫令), 태위(太衛) 등으로 호칭이 바뀜.
* 내사(內史): 국가의 기밀을 관장하던 부서의 장.
* 좌익(佐弋): 진한 시대 때 구경(九卿) 밑의 소부(少府)에 속한 관리의 이름. 좌익(左弋)이라고도 하며 좌익령(佐弋令)의 약자. 왕가나 황가(皇家)의 제사상에 올리는 오리와 기러기를 사냥하여 바치는 임무와 화살 및 쇠뇌의 제조를 감독하고 그 생산품을 왕가나 황가 및 변경의 지방 군현에 공급하는 임무를 관장함.
* 귀신(鬼薪): 일종의 형도(刑徒)에 해당하는 벌. 종묘에 기거하면서 필요한 나무를 구하여 바치도록 하는 노역(勞役)이나 관청에서의 잡역, 수공업으로 생산하는 노동자 등의 각종 노역에 종사하는 형벌. 형기는 3년.
* 연지(衍氏): 전국 시대 위나라의 고을. 지금의 하남성 정주시(鄭州市) 북쪽.

■ 시황 10년(기원전 237년)
- 상국(相國) 여불위(呂不韋)가 노애의 반란과 연루되어 면직됨.
- 환의(桓齮)를 대장군으로 삼음.
- 제(齊)와 조(趙)가 조회하러 오자 주연을 베풂.
- 제나라 사람 모초(茅焦)가 진왕에게 간함. “진이 바야흐로 천하를 도모하려는데 대왕께서 모태후(母太后)를 [옹에] 유배하셨으니 제후들이 알고 진에 등을 돌릴까 걱정입니다.”
• 진왕이 곧 태후를 옹에서 함양으로 데려와 감천궁(甘泉宮)에 살게 함. 
- [진왕이] 타국 출신의 빈객(賓客)들을 모두 색출하여 쫓아내려고 함.
• 이사(李斯)가 서표(書表)를 올려 상소함.
• 진왕이 축객령(逐客令)을 취소함.
- 이사가, 먼저 한(韓)을 공격하여 취하면 다른 나라들이 두려워 할 것이라고 설득함.
• 진왕이 이사에게 군사를 주어 한을 공격하도록 함.
• 한왕이 두려워하여 한비자(韓非子)와 함께 진을 약화시킬 것을 꾀함.
- 대량(大梁) 사람 울료(尉繚)가 와서 진왕에게 말함.
• 울료: “진의 국세가 강하게 되어 그 밖의 제후국들의 왕은 마치 진나라 군현의 우두머리와 같이 되었습니다. 신은 제후들이 합종(合縱)하여 불시에 진나라를 공격하게 될 것을 근심하는 바입니다. 이것은 곧 지백(智伯), 부차(夫差), [제나라] 민왕(湣王)이 망한 원인이었습니다. 재물을 아끼지 마시고 제후들의 대신들에게 나누어주어 그들의 지모를 어지럽게 한다면, 불과 30만 금의 황금으로 충분히 그들을 모두 멸할 수 있습니다.”
• 진왕이 울료의 계책을 따르고 그를 접견할 때는 대등한 예절로 대하고 울료의 의복과 음식도 자기의 것과 같게 함.
• 울료가 측근에게 말함. “진왕은 사람됨이 우뚝 선 콧날, 가늘고 긴 눈, 사나운 새 같은 가슴, 승냥이와 같은 음성에, 은혜를 베푸는데 인색하고, 호랑이와 이리 같은 흉악한 마음을 가슴에 감추고 있어서 곤궁할 때는 쉽게 다른 사람 아래에 들어가고 뜻을 얻으면 쉽게 그 사람을 잡아먹는다. 나는 평민인데도 그는 나를 만날 때 항상 스스로 몸을 낮춘다. 진왕이 장차 천하를 얻게 되면 천하는 모두 진왕의 노획물이 될 것이다. [그와] 오랫동안 같이 지낼 수 없다.”(秦王爲人, 蜂准, 張目, 摯鳥膺, 豺聲, 少恩而虎狼心, 居約易出人下, 得志易輕食人, 我布衣, 然見我常身自下我. 誠使秦王得志于天下, 天下皆爲虜矣 不可與久游.)
- 울료는 즉시 진나라에서 도망치려고 함.
• 진왕이 이를 알아차리고 한사코 머무르게 하고 진의 국위(國尉)로 삼아 울료의 계책을 씀.
• 실제적인 계책의 시행은 이사가 주관하게 함.
- 주석
* 국위(國尉): 진나라의 군사를 총괄하는 자리

■ 시황 11년(기원전 236년)
- 왕전(王翦), 환의(桓齮), 양단화(楊端和) 등에게 [위나라] 업성(鄴城)을 공략하게 하여 아홉 성을 빼앗음.
• 왕전이 [조나라의] 연여(閼與)와 요양(橑楊)을 공격하여 그들을 모두 모아 하나의 군대로 만듦.
• 왕전이 통합군을 18일 간 거느렸는데 두식(斗食) 이하의 봉록을 받는 자는 집으로 돌려보내고 군사 열 명 중 두 명을 뽑아 군대에 남게 함.
• 업(鄴)과 안양(安陽)을 빼앗아 환의가 그 군대를 거느림.
- 주석
* 두식(斗食): 연간 곡식 100섬 이하를 받는 미관말직.


(2020.03.20.)
  

2020/03/06

[과학철학] Eells (1991), Ch 1 “Populations and probability” 요약 정리 (미완성)

   
[ Ellery Eells (1991), Probabilistic causality (Cambridge University Press), pp. 22-55. ]
  
  
  1.1 Populations
  1.2 Probability


  1.1 Populations

23
속성-수준 확률 인과 주장 소개

23-24
엘스는 ...
이것이 옳다면, C가 요소 E에 대한 긍정적 인과 요소인지 여부는 모집단에 따라, 또는 개체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

24-25
속성-수준 확률 인과 주장은 세 가지의 관계에 관한 것이어야 함.
원인 요소, 결과 요소, 원인 요소가 결과 요소에 확률 원인인 모집단(population)

25
유관한 토큰 모집단(relevant token population)을 주어진 특정한 종(kind)으로 생각해야 함.
어떠한 토큰 모집단은 항상 많은 유형들이나 종들을 가진 한 토큰
모집단 P에서 요소 C가 요소 E에 가지는 인과적 유의미성(causal significance)은 모집단 P가 예화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종 Q에 의존할 수 있음.

25
확률값은 우리가 주어진 한 모집단을 어떤 속성과 연결하는지에 의존함.
엘스는 객관적이고 물리적인 확률을 유관한 속성을 지닌 가설적 모집단의 빈도로 해석함.


  1.2 Probability

44-45
실제 모집단 P는 반복 가능한 어떠한 "실험"의 결과로 볼 수 있음.
개체들 N의 한 집합을 "초기 조건들의 분산"으로 탐구
초기 조건: P의 개체들이 요소 X, Y, Z, X1 등을 가지거나 결여한 것과 관련하는 방식으로 인과적으로 유관한 요소
I1, I2, ,  … In처럼 n개의 초기 조건들이 있다면, 초기 조건의 분산은 Ii와 ~Ii의 가능한 조합들에 관한 분산으로 구체화함.
초기 조건이 분배된 상황을 “실험 설정”(experimental set-up)
어떤 종류의 초기 조건들이 토큰에 나타나는지 또는 부재한지에 따라 이들 성향은 달라질 것



  
  
(2018.05.21.)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예언한 알라딘 독자 구매평 성지순례

졸업하게 해주세요. 교수되게 해주세요. 결혼하게 해주세요. ​ ​ ​ ​ ​ * 링크: [알라딘] 흰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소설 ( 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4322034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