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마천, 『사기본기』, 김원중 옮김 (민음사, 2015). ]
■ 탄생
- 진시황(秦始皇)은 진나라 장양왕(庄襄王)의 아들.
• 장양왕이 볼모로 조나라에 있을 때 여불위의 애첩을 보고 반하여 취한 후 시황을 낳음.
• 진 소왕(昭王) 48년(기원전 259년) 정월에 한단(邯鄲)에서 태어남.
• 이름을 정(政), 성을 조(趙)라고 함.
■ 진왕에 등극함(기원전 246년)
- 시황이 13살 때 장양왕이 죽고 진왕에 오름.
- 당시 진의 영토
• 이미 파(巴), 촉(蜀), 한중(漢中)의 땅을 병합한 상태
• [초나라의] 완(宛)을 넘어가 영(郢)을 점령하여 남군(南郡)을 설치함.
• 북쪽으로 상군(上郡), 동쪽으로 하동(河東), 태원(太原), 상당(上党) 등을 점령하여 군현을 둠.
• 동쪽으로 형양(滎陽)에 이르러 이주(서주와 동주)를 멸하고 삼천군(三川郡)을 둠.
- 여불위(呂不韋)를 상국으로 삼고 10만의 호의 문신후(文信侯)에 봉함.
- 시황은 세상의 빈객과 유세가들을 불러서 그들을 이용하여 천하를 병합하려고 함.
• 이사(李斯)를 발탁하여 사인(舍人)으로 삼음.
• 몽오(蒙驁), 왕의(王齮), 포공(麃公) 등을 장군으로 삼음.
- 시황이 즉위할 때는 나이가 어려 모든 국사를 대신들에게 위임함.
■ 시황 원년(기원전 246년)
- 진양(晉陽)이 반하자 장군 몽오(蒙驁)를 보내 평정함.
■ 시황 2년(기원전 245년)
- 포공(麃公)을 장군으로 삼아 [위나라의 도읍] 권(卷)을 공격하여 위군 3만여 명의 목을 벰.
■ 시황 3년(기원전 244년)
- 몽오가 한(韓)나라를 공격하여 성 열세 개를 점령함.
- 왕의(王齮)가 죽음.
- 10월, 장군 몽오(蒙驁)가 위나라의 창(暢)과 유궤(有詭)를 공격함.
- 그 해에 큰 기근이 들음.
■ 시황 4년(기원전 243년)
- 창(暢)과 유궤(有詭)를 함락함.
- 3월에 군사를 철수함.
- 진나라의 인질이 조나라에서 돌아오고 인질로 와 있던 조나라의 태자가 본국으로 돌아감.
- 10월, 경인(庚寅) 날에 메뚜기 떼가 동쪽에서 날아와 하늘을 뒤덮음.
- 천하에 전염병이 돌았음.
- 양식 1천 섬을 바친 백성들에게 한 등급의 작호를 내림.
■ 시황 5년(기원전 242년)
- 장군 몽오(蒙驁)가 위나라를 공격하여 산조(酸棗), 연(燕), 허(虛), 장평(長平), 옹구(雍丘), 산양성(山陽城) 등을 모두 함락하여 20여 개 성을 차지하고 처음으로 동군(東郡)을 설치함.
- 그 해 겨울에 큰 벼락이 떨어짐.
■ 시황 6년(기원전 241년)
- 한, 위, 조, 위, 초가 힘을 합하여 진나라를 공격하고 수릉(壽陵)을 점령함.
• 진나라가 군사를 출병하자 다섯 나라의 군사들이 물러감.
- 위나라를 점령하고 동군(東郡)을 압박하자, 위나라 군주 각(角)이 수하들을 이끌고 야왕(野王)으로 달아나 험한 산세에 의지하여 위나라 하내(河內) 땅을 지킴.
■ 시황 7년(기원전 240년)
- 혜성이 동쪽에서 나타나더니 다시 북쪽에서 보였으며 5월에는 다시 서쪽에서 나타남.
- 장군 몽오(蒙驁)가 죽음.
- 용(龍), 고(孤), 경도(慶都)를 공격하다 군대를 돌려 급(汲)을 치게 함.
- 혜성이 다시 서쪽에 나타나 16일 동안 나타남.
- [장양왕의 생모인] 하태후(夏太后)가 죽음.
■ 시황 8년(기원전 239년)
- 진왕의 동생 장안군(長安君) 성교(成蟜)가 군대를 거느리고 조나라를 공격하다 모반함.
• 장안군은 둔류(屯留)에서 죽고, 장안군을 따르던 군관들은 모두 참수당함.
• 그 곳의 백성들은 모두 임조(臨洮)로 옮겨 살게 함.
- 성교(成蟜)의 토벌군 대장인 벽(壁)이 죽자 둔류의 병졸인 포학(蒲鶴)이 모반하여 그 시신을 갈기갈기 찢음.
- 하수(河水)의 물고기들이 육지로 대거 올라오자 사람들이 수레를 끌고 먹을 것을 구하러 동쪽으로 감.
- 노애(嫪毐)를 장신후(長信侯)로 봉함.
• 산양(山陽) 땅을 봉지로 주고 그 곳에 살게 함.
• 궁실(宮室), 거마(車馬), 의복(衣服), 원유(苑囿), 사냥터 등 모두 노애가 제멋대로 함.
• 나라의 모든 대소사는 노애의 손을 거치지 않고는 시행되지 않음.
• 하서(河西)의 태원군(太原郡)을 더하여 노애의 봉지로 줌.
- 주석
* 원유(苑囿): 왕실에서 짐승을 놓아기르던 동물원을 말함. 규모가 큰 것을 원(苑), 작은 것을 유(囿)라 함.
■ 시황 9년(기원전 238년)
- 혜성이 나타났으며 때때로 하늘을 가로지름.
- 위(魏)의 원(垣)과 포양(蒲陽)을 공격함.
- 4월, 진왕이 옹(雍) 땅에서 유숙함.
- 기유(己酉)일에 진왕이 관례를 치르고 [허리에] 검을 차기 시작함.
- 장신후(長信侯) 노애(嫪毐)가 역모를 꾀하다가 사전에 발각됨.
• 왕의 옥새와 태후의 인장을 위조하고, 현의 군사 및 호위병, 관아의 기병, 융적의 우두머리, 가신(家臣, 궁중에서 기거하는 신하)들을 데리고 기년궁(蘄年宮)을 습격함.
- 진왕은 이를 알고 창평군(昌平君)과 창문군(昌文君)에게 명하여 반란을 진압하도록 함.
• 함양성 안에서 싸워 수급 수백을 벰.
• [공이 있는] 모두에게 작위를 내리고, 전쟁을 치른 환관들도 작위를 한 급씩 올려줌.
• 노애가 싸움에 패하여 달아남.
• 진왕이 즉시 영을 내려 노애를 생포한 자에게 100만 전(錢)을, 죽인 자에게 50만 전을 상금으로 주겠다고 함.
- 노애 등의 일당이 모두 잡혀서 함양으로 압송됨.
• 위위 갈(竭), 내사 사(肆), 좌익 갈(竭), 중대부 영제(令齊) 등을 참수하여 효수함.
• 노애(嫪毐)는 거열형(車裂刑)에 처하고 그 종족들은 멸족함.
• 그 가신들과 죄가 경미한 자들은 귀신(鬼薪)의 형에 처함.
• 4천 가구의 관직을 박탈하고 촉군(蜀郡) 방릉현(房陵縣)으로 옮겨가 살게 함.
• 그 달에 혹한이 와서 얼어 죽은 사람이 있었음.
- 양단화(楊端和)가 연지(衍氏)를 침공하여 점령함.
- 혜성이 서쪽 하늘에 나타났다가 다시 북쪽에 나타났는데 북두칠성을 따라 80일 동안 남쪽에 나타남.
- 주석
* 위위(衛尉): 진한 때 구경(九卿)의 하나. 궁정 내 근위대 및 숙위(宿衛)를 총괄함. 녹봉은 연 2천 석. 중대부령(中大夫令), 태위(太衛) 등으로 호칭이 바뀜.
* 내사(內史): 국가의 기밀을 관장하던 부서의 장.
* 좌익(佐弋): 진한 시대 때 구경(九卿) 밑의 소부(少府)에 속한 관리의 이름. 좌익(左弋)이라고도 하며 좌익령(佐弋令)의 약자. 왕가나 황가(皇家)의 제사상에 올리는 오리와 기러기를 사냥하여 바치는 임무와 화살 및 쇠뇌의 제조를 감독하고 그 생산품을 왕가나 황가 및 변경의 지방 군현에 공급하는 임무를 관장함.
* 귀신(鬼薪): 일종의 형도(刑徒)에 해당하는 벌. 종묘에 기거하면서 필요한 나무를 구하여 바치도록 하는 노역(勞役)이나 관청에서의 잡역, 수공업으로 생산하는 노동자 등의 각종 노역에 종사하는 형벌. 형기는 3년.
* 연지(衍氏): 전국 시대 위나라의 고을. 지금의 하남성 정주시(鄭州市) 북쪽.
■ 시황 10년(기원전 237년)
- 상국(相國) 여불위(呂不韋)가 노애의 반란과 연루되어 면직됨.
- 환의(桓齮)를 대장군으로 삼음.
- 제(齊)와 조(趙)가 조회하러 오자 주연을 베풂.
- 제나라 사람 모초(茅焦)가 진왕에게 간함. “진이 바야흐로 천하를 도모하려는데 대왕께서 모태후(母太后)를 [옹에] 유배하셨으니 제후들이 알고 진에 등을 돌릴까 걱정입니다.”
• 진왕이 곧 태후를 옹에서 함양으로 데려와 감천궁(甘泉宮)에 살게 함.
- [진왕이] 타국 출신의 빈객(賓客)들을 모두 색출하여 쫓아내려고 함.
• 이사(李斯)가 서표(書表)를 올려 상소함.
• 진왕이 축객령(逐客令)을 취소함.
- 이사가, 먼저 한(韓)을 공격하여 취하면 다른 나라들이 두려워 할 것이라고 설득함.
• 진왕이 이사에게 군사를 주어 한을 공격하도록 함.
• 한왕이 두려워하여 한비자(韓非子)와 함께 진을 약화시킬 것을 꾀함.
- 대량(大梁) 사람 울료(尉繚)가 와서 진왕에게 말함.
• 울료: “진의 국세가 강하게 되어 그 밖의 제후국들의 왕은 마치 진나라 군현의 우두머리와 같이 되었습니다. 신은 제후들이 합종(合縱)하여 불시에 진나라를 공격하게 될 것을 근심하는 바입니다. 이것은 곧 지백(智伯), 부차(夫差), [제나라] 민왕(湣王)이 망한 원인이었습니다. 재물을 아끼지 마시고 제후들의 대신들에게 나누어주어 그들의 지모를 어지럽게 한다면, 불과 30만 금의 황금으로 충분히 그들을 모두 멸할 수 있습니다.”
• 진왕이 울료의 계책을 따르고 그를 접견할 때는 대등한 예절로 대하고 울료의 의복과 음식도 자기의 것과 같게 함.
• 울료가 측근에게 말함. “진왕은 사람됨이 우뚝 선 콧날, 가늘고 긴 눈, 사나운 새 같은 가슴, 승냥이와 같은 음성에, 은혜를 베푸는데 인색하고, 호랑이와 이리 같은 흉악한 마음을 가슴에 감추고 있어서 곤궁할 때는 쉽게 다른 사람 아래에 들어가고 뜻을 얻으면 쉽게 그 사람을 잡아먹는다. 나는 평민인데도 그는 나를 만날 때 항상 스스로 몸을 낮춘다. 진왕이 장차 천하를 얻게 되면 천하는 모두 진왕의 노획물이 될 것이다. [그와] 오랫동안 같이 지낼 수 없다.”(秦王爲人, 蜂准, 張目, 摯鳥膺, 豺聲, 少恩而虎狼心, 居約易出人下, 得志易輕食人, 我布衣, 然見我常身自下我. 誠使秦王得志于天下, 天下皆爲虜矣 不可與久游.)
- 울료는 즉시 진나라에서 도망치려고 함.
• 진왕이 이를 알아차리고 한사코 머무르게 하고 진의 국위(國尉)로 삼아 울료의 계책을 씀.
• 실제적인 계책의 시행은 이사가 주관하게 함.
- 주석
* 국위(國尉): 진나라의 군사를 총괄하는 자리
■ 시황 11년(기원전 236년)
- 왕전(王翦), 환의(桓齮), 양단화(楊端和) 등에게 [위나라] 업성(鄴城)을 공략하게 하여 아홉 성을 빼앗음.
• 왕전이 [조나라의] 연여(閼與)와 요양(橑楊)을 공격하여 그들을 모두 모아 하나의 군대로 만듦.
• 왕전이 통합군을 18일 간 거느렸는데 두식(斗食) 이하의 봉록을 받는 자는 집으로 돌려보내고 군사 열 명 중 두 명을 뽑아 군대에 남게 함.
• 업(鄴)과 안양(安陽)을 빼앗아 환의가 그 군대를 거느림.
- 주석
* 두식(斗食): 연간 곡식 100섬 이하를 받는 미관말직.
(2020.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