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쓸 때 가장 필요한 덕목이 있다면 아마도 절제일 것이다. 글에서 쓸데없는 부분은 쳐내는 데는 절제력이 필요하다. 쓸 내용을 다 썼으면 거기서 멈추고 뺄 내용을 빼야 글이 나아진다. 많은 사람들은 넣지 말아야 할 것을 더 넣어서 글을 이상하게 만든다.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것보다 없어야 할 것이 있는 것이 글에 더 해롭다. 있어야 할 것이 약간 없으면 좀 밋밋하다 싶은 글이 될 수 있지만, 없어야 할 부분이 버젓이 있으면 심지어 글도 아닌 것이 될 수 있다. 마치, 삼계탕에 인삼이나 마늘이 안 들어가면 조금 아쉽지만 먹을 수 있는 삼계탕이 되지만, 삼계탕에 독극물이 들어가면 아예 못 먹는 것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망한 글에 이상한 짓을 해서 더 망하게 된 경우는 하나도 안타깝지 않다. 빚이 100억 원 있으나 101억 원 있으나 별반 차이가 없다. 내가 안타깝게 여기는 것은 멀쩡하게 글을 잘 써놓고는 막판에 이상한 문장 몇 개를 덧붙여서 뒷맛이 안 좋게 된 경우다. 논문 중에도 그런 경우가 있다. 서론부터 본론까지 멀쩡하게 써놓고 결론 끝부분에 유치한 글을 덧붙여서 글이 격조가 떨어지는 논문도 가끔씩 있다. 연구를 멀쩡히 잘 해놓고는 왜 막판에, 꼭 고미숙 박사의 책을 세게 읽은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이 쓴 것 같은 문장을 덧붙여서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하는가? 그럴 거면 연구나 제대로 하지 말지. 그런 글을 보면 남이 쓴 글인데도 내가 안타깝다.
『삼국지연의』를 예로 들면, 글 쓸 때 절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모종강본 삼국지를 기준으로 하면, 삼국지는 120화로 구성된다. 120화 중에서 상당 부분을 제거해도 이야기 전개에 문제가 없고 소설의 완성도도 떨어지지 않는다. 관우가 오관육참장 안 하고 황하를 곧바로 건너가서 유비를 만났다고 해도 되고, 주유가 제갈량을 시샘한 부분을 덜어내도 되고, 화타나 좌자의 일화는 아예 통으로 없애도 된다. 조금 아쉬울 수 있지만 대세에 큰 영향을 안 준다. 그러나 삼국지에 한 문단을 덧붙이는 것만으로도 삼국지의 품격에 어마어마한 손실을 줄 수 있다. 한 문단이면 충분하다.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죽어가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병든 제갈량이 누워있고 촉에서 온 유선의 사신이 제갈량에게 후사를 묻는다. 제갈량은 장완과 비의를 추천하고 나서 곧바로 눈을 감는다. 제갈량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제갈량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한 줄 띄고 이런 글을 덧붙인다고 하자.
“새파란 놈이 낮부터 쳐자고 있고 팔자 좋구만?”
“익덕, 말을 삼가게. 공명 선생이 듣겠네.”
“들으라고 이러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몇 번째 여기 온 거예요? 우리 형님이 어떤 분인데 비싼 척은 비싼 척이야? 아, 생각할수록 성질나네. 확 불싸지를까보다.”
밖이 소란스러워 자고 있던 제갈량이 눈을 떴다. 눈가에 고인 눈물을 손으로 닦는다.
‘뭐지? 밖이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 얼굴이 온통 수염으로 뒤덮인 사람은 왜 저렇게 고래고래 소리 지르지? 그 옆에 있는 사람은 귀가 왜 저렇게 크고 팔은 또 왜 저렇게 길어?’
눈을 가늘게 뜨고 정신을 수습하던 제갈량이 깨닫는다.
‘아, 시발 꿈이었네.’
(2019.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