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10

꽃샘추위와 선생님



지도교수님 연구실에 갔다. 날이 최근에 약간 쌀쌀해지기는 했지만 낮이라서 별로 춥지 않았다. 지도교수님은 내가 반팔을 입고 다니는 것을 보고 이렇게 물어보셨다. “자네는 안 추운가?”, “네, 안 춥습니다.”, “참... 젊음이란 것은 무서운 것이구만.” 선생님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서 현재 기온을 알아보셨다. 영상 12도였다.


나는 선생님 연구실에서 몇 가지 간단한 일을 했다. 일을 끝내고 돌아갈 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 수고했네. 젊더라도 날씨가 쌀쌀할 때는 옷을 따뜻하게 입도록 하게.”



(2018.04.10.)


2018/06/09

대학원과 수명

     

협동과정에서 과학사를 전공하는 어떤 신입생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과제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어요. 수명이 줄어드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이 협동과정에 오기 전에 과학철학 선생님께 상담을 받았다고 한다. 그 학교에 과학사 선생님도 없고 과학기술학 선생님도 없어서 과학철학 선생님께 상담을 받은 것이다.
  
“그 선생님이 여기(협동과정)가 좋은 곳이라고 해서 왔는데 수명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아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이렇게 답했다. “좋은 곳이라는 게 연구하기 좋은 곳이라는 말이지 몸에 좋은 곳이라는 말은 아니었을 테니까요.”
  
  
(2018.04.09.)
    

2018/06/08

[기타] 니콜라스 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프롤로그” 요약 정리

[ Nicholas G. Carr (2010), The Shallows: How the Internet Is Changing the Way We Think, Read and Remember (W. W. Norton & Company).

니콜라스 카, 「프롤로그」,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최지향 옮김 (청림출판, 2015) ]

- 맥루한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변화와 그 변화로 인한 위험 알았고 이 위험을 망각할 수 있다는 위험성도 경고함. 맥루한은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할 때마다 우리는 콘텐츠(미디어가 전하는 정보)와 자동적으로 마주하게 된다는 점을 파악함.

- 미디어 효과의 장단점을 둘러싼 논쟁에서 주된 쟁점은 미디어가 전하는 콘텐츠.

(i) 미디어 옹호자: 문화의 ‘민주화’가 실현되는 신호다.

(ii) 회의론자: 문화의 ‘단순화’의 전조다.

- 맥루한은 이들이 간과하는 점을 발견함.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가하는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미디어 콘텐츠는 미디어 그 자체보다 덜 중요함. “기술의 영향력은 의견이나 개념 수준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식 방식을 꾸준히, 아무런 저항 없이 바꾸어놓는다.”

(2017.11.26.)

2018/06/07

만점의 두 배는 몇 점인가

     

어떤 학생이 교수에게 메일을 보냈다. 메일의 내용은, 교수가 다음 시간까지 플라톤의 『향연』을 읽어오라고 했는데,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감흥도 없고 말장난인 것 같아서 그 날은 수업에 안 들어가는 대신 사랑을 찾아다니겠다는 것이다. 이것만 해도 말 같지도 않은데 그 학생은 메일 마지막에 이런 문장까지 덧붙였다. “교수님께는 죄송하지만 동의를 구하는 메일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부족하기 때문에 교육이 필요하고 선생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담당 교수는 엉뚱한 행동을 했다. 개소리를 메일로 받고는 멋진 문장이라며 감탄하더니 수강생들에게 읽어주고는 해당 학생에게 출석 점수 만점의 두 배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학생들도 따라하라는 말이나 다를 바 없다.
  
사랑을 분석하는 것과 사랑을 체험하는 것이 엄연히 다른 활동이라는 사실은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다. 이는 낙하 법칙을 분석하는 것과 낙하 법칙을 체험하는 것이 다른 것과 같다. 『향연』이 말장난 같다면서 사랑을 찾아다니겠다는 학생은, 왜 낙하 법칙을 분석하기 위해 옥상에서 뛰어내리지 않는가? 둘의 차이는 초등학생이라도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백번 양보해서, 그 학생에게 어떤 가슴 아픈 사연이 있어서 대학생이 되어서도 둘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서, 휴일이나 공강 시간에 쳐놀다가 꼭 수업 시간에 사랑을 찾으러 싸돌아다녀야 하나?
   
어떤 책을 읽고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애초부터 학업에 소질이 없는 사람도 많다. 그렇다고 해도 교수는 꼼수 부리고 막 나가는 학생들이 설치고 돌아다니는 것을 내버려 두면 안 된다. 그런 학생들을 갱생시켜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원래부터 글러먹게끔 되어있는 학생은 어쩔 수 없더라도, 그런 학생들을 제어하지 못하면 결국 다른 학생들도 해를 입는다. 학생들이 수업에 안 나오려고 개소리나 하고, 또 그런 개소리가 교수한테 먹힌다는 사실을 학생들이 알게 된다고 하자. 그런 학교에서 정상적인 수업이 가능하겠는가? 교수라면 학생을 따끔하게 혼내지는 않더라도 수업에 오기 싫으면 안 와도 되는데 개소리는 하지 말라고는 해야 한다. 나는 그것이 교육자로서 최소한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교수는 팝 아티스트 짓을 한 그 학생에게 출석 점수의 만점의 두 배를 주겠다고 학생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 강의시간에 이 편지를 학생들에게 읽어주었다.
 
한 문장 한 문장 읽어갈 때마다 학생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훌륭해! 훌륭해! 나는 학생들에게 이 학생에게는 출석 점수로 만점의 두 배를 부여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만점의 두 배면 몇 점일까? 하고 물었다.
 
한 학생이 바로 대답했다.
“만점입니다.”
그렇다. 만점의 두 배는 만점이다. 무한의 두 배가 무한인 것처럼.
  
놀고들 있다. 수업 시간에 이런 소리나 하면서, 기업에서 왜 철학과 학생을 외면하느냐, 철학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느냐, 철학 한 번 배워봐라 반성적 사고가 팡팡 솟아난다, 라고 주장하면 누가 그 말을 듣겠는가?
   
  
 
 
나는 인문학이나 인문학 전공자를 불신하는 사람을 꽤 많이 보았다. 왜 그럴까? 내가 관찰하거나 대화한 바로는 그런 사람들이 그러는 이유는 대체로 다음 세 가지 중 하나였다. (i) 언론 매체에 등장해서 인문학 타령하는 사람 치고 정상이 없어서 (ii) 주변 사람 중 인문학 타령하는 사람 치고 정상인이 없어서, 그리고 (iii) 본인이 직접 인문대를 다녀봤는데 학부 내내 제대로 배운 게 없어서. 나는 심지어 이런 이야기도 들은 적 있다. “◯◯씨는 철학 공부한 사람 같지 않아서 참 좋네요.”
  
  
(2018.04.07.)
     

2018/06/06

[경제학사] 오광우 (1998), 4장 “1940년 이후의 이론적 발전” 요약 정리 (미완성)



[ 오광우, 『계량경제학사』, 민음사, 1998, 85-95쪽. ]

4.1 계량경제학의 확률화

4.2 코울즈 위원회 설립

4.3 쿠프먼스와 바이닝의 논쟁

4.1 계량경제학의 확률화

4.2 코울즈 위원회 설립

4.3 쿠프먼스와 바이닝의 논쟁

(2024.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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