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짧고 읽을 책은 많다. 어떤 책이 망한 책인지 알아야 시간을 덜 허비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책이 망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출판사 서평은 책 팔려고 쓰는 글이니까 믿을 수 없다. 신문사 서평은 출판사에서 보낸 글을 옮겨 쓴 것 같아서 믿을 수 없다. 담당 기자가 직접 책을 읽고 서평을 썼다고 해도, 그 기자가 제대로 알고 글을 쓰는 건지 믿을 수 없다. 서평가로 유명한 사람들이 쓰는 서평도 아무 책이나 읽고 아무 내용이나 따와서 아무 말이나 덧붙이는 경우가 많아서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내가 책을 다 읽어보고 ‘아, 이 책은 망했구나’ 하고 깨달으면 이미 인생의 일부분 허비한 것이다. 그러니 읽기 전에 알아야 한다. 책을 다 읽지도 않고 그 책이 망했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 그런 사람들은 망한 책을 끝까지 다 읽어도 왜 망했는지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 말을 들어봐야 망한 책을 같이 읽고 같이 인생을 허비하게 된다.
마리 루티가 쓴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를 예로 들어보자.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이 책이 꽤나 괜찮은 것처럼 서평을 썼는데, 신문사 서평 따위에 속으면 안 된다.
일단 지은이 약력을 보자. 지은이 마리 루티는 브라운대학교에서 학부를 마치고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상당히 좋은 학교다. 그 좋은 학교에서 지은이는 무엇을 전공했는가. 마리 루티는 브라운대학교를 졸업한 후 파리대학교에서 심리분석 이론을 연구했고 박사 과정에서는 사회학과 비교문학을 전공했다. 심리분석 이론과 비교문학을 전공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의심스러운데, 지은이는 진화심리학이 틀렸다고 자신만만하게 주장한다. 이는 천문학과 교수가 고대 천문 관측 기록을 토대로 고조선이 대륙을 지배했음을 밝히겠다고 하는 것만큼 의심스럽다. 이렇게 의심이 들면, 책이 괜찮다는 증거를 찾지 말고 망했다는 증거를 찾는 것이 좋다.
서문을 보자. 문학 박사가 쓴 글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글이 난삽하다. 책을 군데군데 펴 봐도 하나 같이 이상한 말 뿐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고 진지하게 읽을 필요가 없다. 이럴 때는 「옮긴이의 말」을 보는 것이 좋다. 옮긴이는 이 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이 책에서 마리 루티가 진화심리학 대중서를 비판하고는 있지만, 저자의 시선은 진화심리학자들이 아니라 대중들에게 향해 있다. 이 책은 진화심리학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는 책이라기보다는, 진화심리학자들이 대중을 상대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그 폐해가 무엇인지 조목조목 짚어보는 책에 가깝다. [...] 진화심리학에 관심이 없는 독자들도 연애 상담을 다루는 지면에서 이러한 성 고정관념(남자는 원래 이렇고 여자는 원래 이렇다)을 자주 접했을 테고, 한편으로는 고개를 끄덕이고 한편으로는 분노했을 것이다. 불쾌하지만 이상하게 설득력 있게 들렸던 연애 처방이 어디서 왔는지 궁금했던 사람들에게, 그리고 반박하고 싶어도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라는 말 앞에서 머뭇거렸던 사람들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296-297쪽)
거짓말이다. 마리 루티는 진화심리학을 소비하는 일반인이 아니라 진화심리학계를 겨냥한다. 지은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기계발서 저자들과 잡지 칼럼니스트들이 강조하는, 여자는 자고로 비싸게 굴어야 한다는 개념이 어디서 왔을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면, 이제 알았을 것이다. 바로 빅토리아 시대 도덕에 홀딱 반한 진화심리학자들이다. (76쪽)
진화심리학의 불편한 역사는 그 분야를 지나치게 방어적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최근 몇 십 년 동안 과학 분과들을 포함해 대부분의 다른 학문 분야들에서는 지식 생산이 편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사실을 강조해온 반면, 진화심리학은 그 분야의 연구 결과들이 ‘엄연한’ 과학에 해당하며 따라서 철저히 가치 중립적이고 이념적 편향은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 데 사력을 다하는 것 같다. (90쪽)
진화심리학이 제시하는 모범 답안의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나머지 분야 사람들이 수십 년에 걸쳐 해체해온 성 고정관념을 원상 복구시키고 거기에 과학적 타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많은 분야가 더 평등한 땅으로 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시점에, 진화심리학은 성에 대한 불평등주의적 시각을 장려한다. (137쪽)
진화심리학의 빅토리아 시대적 감수성을 고려하면, 최근에 조신한 여성의 이미지가 진화심리학의 취약한 구석이 된 것이 그리 놀랍지는 않다. 진화심리학의 모범 답안이 닳아서 해지는 징후를 보인다면, 그것은 여성의 성은 소극적이라는 묘사가 현대의 사회적 현실의 관점뿐 아니라 순수한 진화론적 관점에서도 점점 정당화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일 것이다. (181쪽)
지은이가 진화심리학계를 직접 공격하는데도, 옮긴이는 지은이의 주장이 진화심리학계를 직접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소설을 써보자면 이렇다. 학부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옮긴이는, 어쩌다 마리 루티의 책을 번역하게 된다. 어떻게 일이 들어와서 번역을 하기는 했는데, 생물학 전공자가 보기에 책의 내용이 너무 말이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가 이상한 책을 번역했다고 말하면 출판사와 관계가 틀어지고 위약금을 물어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과녁을 진화심리학계가 아니라 진화심리학을 악용하는 사람들로 바꾼 것이 아닐까. 그렇게 되면 말이 되기는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처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라는 책이 망한 책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책의 일부분만 읽었기 때문에, 망한 책이라고 단정하지 않고 망했을 가능성이 높은 책이라고 한 것이다. 이 책을 일부분 읽고 든 생각은, 비교문학 박사가 쓴 진화심리학 비판서를 읽는 것보다는 진화심리학 교재를 읽는 것이 더 유익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2017.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