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17

[과학철학] Kuhn (1996), Ch 6 “Anomaly and the Emergence of Scientific Discoveries” 요약 정리 (미완성)

[ Thomas S. Kuhn (1996),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3rd ed. (University of Chicago Press), pp. 52-65.

토머스 S. 쿤, 「6장. 변칙현상 그리고 과학적 발견의 출현」, 『과학혁명의 구조』, 김명자・홍성욱 옮김 (까치, 2013), 129-147쪽. ]



■ [pp. 52-53, 129-130쪽]

- 정상과학은 과학 지식의 범위와 정확성의 지속적 확장이라는 목표에 매우 성공적인 고도의 집적 활동임.

- 정상과학은 사실이나 이론의 새로움을 추구하지 않음.

- 그렇지만, 과학사에서는 종종 뜻밖의 새로운 현상이 밝혀지거나 새로운 이론이 창안되어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짐.

• 역사는 과학 활동이 이런 종류의 놀라움을 산출하는 기술을 개발해왔음을 시사함.

• 패러다임 하에서의 연구는 패러다임 변화를 유도하는 데 효과적인 방식이어야 함.

• 새로운 사실이나 이론이 일련의 규칙에 의해서 진행된 게임에서 우연히 만들어진다면, 그것들이 동화되는 데는 또 다른 일련의 규칙이 필요함.

- 이러한 종류의 변화는 어떻게 발생할 수 있는가?

• 6장에서 발견 또는 사실의 새로움을 고찰하고 고안(invention) 또는 이론의 새로움을 고찰할 것임.

• 사실의 발견과 이론의 고안의 차이는 인위적임.

• 그러한 인위적 성격은 이 책의 주요 주제 중 몇 개를 푸는 단서가 됨.

- 6장에서 소개하는 사례들은 고립된 사건이 아니라 규칙적으로 재발하는 구조를 지닌 확장된 일화임.

• 발견은 변칙현상(anamaly)의 의식(awareness)에서 시작됨. 즉 패러다임을 유도한 예상을 자연이 위반했음에 대한 인식에서 발견이 시작된다는 것.

• 이는 변칙현상의 영역에 대한 확장된 탐험으로 지속됨.

• 이는 변칙현상이 예상되게끔 패러다임 이론이 조정되었을 때만 종결됨.

• 변칙현상이 예상된 것으로 귀결되는 방식으로 패러다임 이론을 조정하면 종결됨

• 새로운 종류의 사실을 기존 이론에 동화시키는 것은 이론에 어떤 것을 더하는 것 이상의 조정을 요구함.

• 그러한 조정(과학자가 자연을 다른 방식으로 보게 하는 것)이 끝나기 전까지 새로운 사실은 과학적 사실이 되지 못함


■ 사례(1): 산소 발견 [pp. 53-56, 130-36쪽]

- 산소 발견자 후보(1): 스웨덴의 약제사인 C W. 셸레

• 비교적 순수한 산소 기체의 시료를 처음으로 얻음.

- 산소 발견자 후보(2): 영국의 과학자이자 신학자인 조지프 프리스틀리

• 수은의 붉은 산화물을 가열할 때 나온 기체를 수집하여 이를 아산화질소로 식별했다가(1774), 나중에 플로지스톤 없는 공기로 식별함(1775).

- 산소 발견자 후보(3): 프랑스의 라부아지에

• 프리스틀리의 실험 재연하여, 처음에는 “순수하며 호흡하기에 더 좋은” 보통 공기로 식별했다가(1775), 나중에서야 별개의 화학종으로 식별함(1777).

[pp.54-55] 132-133

- 누가, 언제 산소를 최초로 발견했는가? 이 질문에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

- 많은 사람들이 산소의 발견자로 인정하는 라부아지에도 죽을 때까지 산소를 ‘산성의 원리’로 생각했고, 산소 기체는 그 “원리”가 칼로릭과 결합할 때에만 생성된다고 주장함. 

- 그렇다면 1777년에도 산소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야 하는가? 

- ‘산성의 원리’ 개념은 1810년대까지, ‘칼로릭’ 개념은 1860년대까지 살아남음.

[pp.55-56] 133-4

- 발견을 한 순간의 일로 돌리려는 것은, 과학적인 발견을 무언가를 보는 행위처럼 ‘일회적인 단순 행위’로 오해했기 때문.

- 발견의 시기를 확정하려는 시도는 어쩔 수 없이 자의적일 수밖에 없음. 새로운 종류의 현상을 발견하는 것은 무언가가 있다는 것과 그것이 무엇인지를 둘 다 확인하는 것을 포함하는 복합적인 사건이기 때문.

- 관찰과 개념화, 사실과 이론적 동화는 발견 과정에서 밀접하게 얽힌 두 과정임. 그래서 발견은 하나의 진행 과정이며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음.

- 관련된 개념적 범주들이 모두 미리 갖추어진 경우(현상이 새로운 유형이 아닌 경우)에만, 그에 대한 발견과 그것이 무언인지에 대한 발견이 함께 이루어질 수 있다.

[p.56] 134-136

- 발견에 개념적 동화 과정이 동반된다면, 발견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수반하는가? 산소 발견의 경우에는 그렇다.

- 라부아지에가 1777년부터 발표한 것은 산소의 발견이라기보다는 연소에 대한 산소 이론. 산소의 발견은 연소에 대한 산소 이론을 동반했고, 이 이론은 화학을 전면적으로 재구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이 과정은 화학혁명이라고 불림. 

- 그렇지만 산소의 발견은 이론 변화의 원인이 아님.

- 라부아지에는 산소 발견 이전에 이미 플로지스톤 이론은 무언가 잘못되었고 연소하는 물체는 대기의 어느 성분을 흡수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음. 산소 연구는 무언가 잘못된 것 같다는 라부아지에의 초기 느낌에 구체적인 형태와 구조를 만들어주는 방식으로 기여함.

■ 사례(2) - X선의 발견 [pp. 57-61, 136-141쪽]

- 우연히 이루어진 발견의 고전적인 사례

- 뢴트겐이 음극선 실험을 하던 중 음극선 실험 장치에서 떨어진 위치의 시안화백금바륨 스크린이 밝게 빛나는 것을 우연히 발견

- 이에 대한 7주 동안의 자세한 조사 결과 그 현상의 원인이 음극선 관에서 직선으로 들어왔으며, 그 경로가 자기장에 의해 휘어지지 않는다는 등의 여러 사실을 알아냄

- 결국 그것이 음극선 탓이 아니라 일종의 빛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라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종결.

X선 발견과 산소 발견의 공통점 [pp.57-58] 137

- X선 발견은 패러다임에서 예상되지 않는 어떤 현상을 인식하면서 시작되어, 일정 기간 동안의 동화 과정을 거쳐, 그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함으로써 종결됨.

- X선은 1895년 11월 8일에서 12월 28일 사이의 어느 시점에 탄생.

X선 발견과 산소 발견의 차이점 [pp.58-59] 137-139

- X선의 발견으로 패러다임의 변화가 동반되었는가? 이론상의 변화는 크지 않았다. 

- 그렇지만 당시 과학자들은 X선의 발견을 충격으로 받아들이기도 함. X선이 발견된 실험 장치는 당시 널리 사용된 매우 익숙한 표준적인 실험 장치였기 때문.

- 뢴트겐의 실험장치에서 X선이 나왔다면, 자신들의 장치에서도 동일한 X선이 나와야 함. X선이 정말 있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기존 실험을 재검토하거나 실험 장치를 수정해야 함.

- X선의 발견은 표준적인 실험 관행상의 중대한 변화를 초래했다.

- 결국 새로운 종류의 현상을 발견하는 일은 패러다임(이론적 예측과 실험 절차 모두)의 변화를 동반함.

[pp.59-61] 139-141

의식적이든 아니든, 특정한 장치를 도입하고 그것을 특정한 장식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제한된 종류의 상황들만 전개될 것임을 전제로 함

산소 실험

우라늄 분열 반응

■ 사례(3) - 라이덴병 발견 [pp. 61-64, 141-146쪽]

- 이론 유도형의 발견. 명료화되지 않은 잠정적인 이론에서 유도됨

- 라이덴병은 전기를 유체로 보는 학파가 전기를 물처럼 병에 담고자 하는 시도에서 유도됨. 그러한 시도는 우연한 성공으로 궤도에 올라, 그에 대한 상세한 탐구 끝에 전기에 대한 최초의 완벽한 패러다임으로 자리를 잡게 됨.

심리학적 설명 [pp.62-63] 143-144

- 세 가지 사례의 공통점 

(i) 변칙에 대한 사전 인지 

(ii) 관찰적, 개념적 인식의 점진적 동시 출현 

(iii) 그 결과로서, 패러다임 범주와 과정의 변화(때로는 저항을 동반하기도)

- 이와 같은 특성이 지각 과정 자체의 성격에 내재한다는 증거

예) 브루너와 포스트먼의 실험

[pp.63-64] 144-145

- 실험 대상자들에게 카드 한 벌을 잠깐 동안 통제된 형태로 보여주고 가려내게 함. 카드는 대부분 정상이지만 몇 장은 변칙적으로 만듦.

- 실험은 한 사람에게 카드를 한 장씩 계속 보여주며 매번 패를 보여줄 때마다 실험 대상자들에게 무엇을 보았는지 묻고, 카드 한 벌 전체를 두 번 연속해서 옳게 맞추는 경우 한 차례의 실험을 종료하는 방식.

- 처음에 실험 대상자들은 이상한 카드를 정상적인 카드로 잘못 인식하다가, 변칙적인 카드를 점점 자주 보여주자 점차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망설이며 깨닫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이상한 카드들을 어려움 없이 제대로 맞추게 됨.

- 그러나 어떤 사람은 끝까지 적응하지 못함

[p.64] 145-146

- 이는 하나의 은유이지만 과학적 발견 과정에 대한 간단한 도식적 설명을 제공함.

- 과학에서는 신기한 새로움은 예측되었던 바를 거스르는 저항으로 특징지어지는 난관을 뚫고 비로소 출현하게 됨.

- 변칙 상황에 대해 초기에는 예상되고 통상적인 것만이 경험되다가, 나중에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이러한 상태는 개념적 범주가 조정됨으로써 당초 이상하던 것이 결국 이상하지 않은(예측되는) 것으로 바뀜으로써, 그 변칙은 결국 새로운 발견으로 완료됨.

혁신과 정상과학 [pp.64-65] 146-47

- 정상과학은 새로움을 지향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것을 억제하는 경향을 띤 탐구지만 혁신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매우 효과적.

- 패러다임의 수용에 따른 전문화는 한편으로는 과학자의 시야를 크게 제한시키고 패러다임 변화에 대해서 상당한 저항으로 작용한다.

- 다른 한편으로 패러다임이 주의를 집중시키는 그런 분야에서 정상과학은 다른 방식으로는 이룰 수 없는 관찰-이론 사이의 엄청나게 정확한 일치를 추구하게 됨.

- 궁극적인 새로움을 이끈 결과들은 발견될 수 있었던 것은, 이론적 예측의 정확성을 높이고 실험장치의 정확성을 높이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

- 새로움은 무엇을 예측해야 할지를 정확히 알면서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그 모습을 드러냄. 변칙은 패러다임이 제공하는 배경 위에서만 나타난다.



(2020.06.09.)


2017/07/16

이회창 리턴즈



대통령 선거 끝나고 대학원생들하고 선거 결과 이야기를 하는데 어떤 대학원생이 이런 말을 했다. “그런데 홍준표 말고 이회창이 나왔으면 결과가 어땠을까?”

최근 20년 간 민자당 계열 정당에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사람은 이회창, 이명박, 박근혜, 홍준표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후보들 상태가 안 좋아지는 것이 보인다. 네 명 중에서 가장 나은 사람이 이회창이다. 이회창은 대법원장・감사원장・총리・여당총재를 거치며 대통령 빼고 안 해본 것이 없고, 개인적인 도덕성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우위에 있다. 경력・능력・도덕성・품위 등에서 이회창은 이후의 다른 후보들을 압도한다. 이회창이 이번 대통령 선거에 나왔다면 어땠을까.

이회창은 올해 82세(1935년생)다. 이회창이 지금보다 열 살 어리고 이번 대선 때 나왔다면 어땠을까. 그런데 이회창이 열 살 어렸다면 이회창의 모든 경력이 다 뒤집히기 때문에, 열 살 어린 이회창과 내가 염두에 두는 이회창이 같은 존재인지 애매해진다. 이회창을 2007년에 냉동해서 2017년에 해동했다고 해보자. 그런데 이회창을 왜 냉동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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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한나라당에서 이명박과 박근혜가 대통령 후보 경선을 벌였다. 누가 후보가 되든 한나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한나라당에서 이러한 상황에 위기감을 느낀 사람들이 있었다. 한나라당의 정책 연구소인 여의도연구소 연구원들이었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고정 지지율이 40% 정도라서 별다른 전망을 보여주지 않아도 정부・여당의 발목이나 잡으며 국정 운영만 방해해도 손쉽게 정권을 잡을 수 있다. 문제는 정권을 잡은 다음의 일이다. 이명박과 박근혜 둘 중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국정 운영에 실패할 것이고 이는 한나라당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릴 것이었다.

한나라당이 위기에 처했을 때 무너진 조직을 수습하고 당을 재건할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이회창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 번째 문제는 2007년에 이회창은 이미 72세였다는 점이다.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김대중 후보의 최대 약점은 고령이었는데, 그 당시 김대중 후보의 나이가 72세였다. 이회창은 다음 대선을 기약할 수 없었다. 두 번째 문제는 이회창이 이미 대선에서 두 번 낙선했다는 점이었다. 대통령 선거에서 세 번 떨어지면 정치적으로 치명상을 입게 되어 국회의원은 할 수 있지만 다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된다.

고심 끝에 여의도연구소는 대통령 선거 출마 준비 중인 이회창을 납치하여 냉동 인간으로 만들어 여의도연구소 지하실에 모셔둔다. 이회창이 없는 대선에서 이명박은 65%에 가까운 득표율로 대통령이 된다.

5년이 지난 2012년, 한나라당은 당 이름을 새누리당으로 바꾼다. 당시 서울시장이던 오세훈이 <나꼼수>의 계략에 빠져 서울시장직을 건 정치적 모험을 하다 당을 위기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박원순이 서울시장이 되고 정권이 민주당에 넘어갈 위기에 처하자, 여의도연구소는 이회창을 해동할지 고민한다. 그 사이 새누리당은 2012년 총선에서 승리하고 박근혜가 대통령 후보가 된다. 여의도연구소는 이회창 해동을 보류한다. 새누리당이 위기에서 벗어나서가 아니었다. 진짜 위기는 이제부터이기 때문이었다.

여의도연구소의 우려대로 대통령이 된 박근혜는 결국 당을 1987년 6월 항쟁 이후 최대 위기에 빠뜨렸다. 박근혜는 탄핵당하고 당이 쪼개지고 당내 대선 후보들 지지율을 다 합쳐도 10%가 안 되는 개막장이 되었다. 여의도연구소는 이회창을 해동한다. 2017년 이회창의 호적상 나이는 82세지만 10년 간 냉동을 했기 때문에 신체 나이는 72세다. 연구원들은 이회창에게 10년 간 있었던 일 속성으로 교육한다. 4대강 사업부터 최순실 게이트까지 모든 주요 사건들을 알게 된 이회창은 극심한 정신적 충격에 시달렸으나, 곧바로 마음을 대쪽처럼 수습하고 정치적 행보에 나선다.

안철수를 띄우고 문재인을 욕하던 종편들은, 이회창이 다시 등장하자 매일 이회창을 칭송하기 바빴다. 안철수와 문재인을 민주당 계열 정당으로 한데 묶어 비난하고 이회창을 보수의 참된 지도자로 부각시켰다. 민주당 표를 분산하고 민자당 계열 표를 하나로 묶는 전략이었다.

종편의 지원을 등에 업고 이회창은 보수 후보들을 한 사람씩 제압해나갔다. 유승민은 순순히 이회창을 따르기로 했다. 유승민을 정치권에 끌어들인 사람이 이회창이었기 때문이다. 유승민은 원래 자리인 이회창의 비서실장으로 돌아갔다. 유승민과 달리 홍준표는 이회창에게 저항했다. 홍준표가 막말을 하려는 찰나, 이회창은 이렇게 말했다. “어... 요즘은 고대 나온 사람도 대선 후보 합니까? 허허허허” 홍준표는 아무 말도 못했다.

보수층이 이회창에게 집결했고 민주당 지지자들은 문재인과 안철수에게 분산되었다. 1997년 대선과 정반대 상황이 벌어졌다. 종편과 방송 3사까지 이회창의 편이었다. 이회창과 박근혜의 선긋기도 분명해보였다. 여기까지 여의도연구소의 전략이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여의도연구소에서 한 가지 고려하지 않은 요소가 있었다. TV토론이었다. “문재인 후보님, 한 가지 묻겠습니다. 제가 안철수입니까 갑철수입니까?”, “네?”, “문재인 후보님, 제가 MB 아바타입니까?”, “네?” 안철수는 TV토론에서 자폭했고 민주당 지지자는 문재인에게 몰렸다. 그렇게 19대 대통령 선거 투표일이 되었다.

<19대 대통령 선거 개표 결과> 문재인 41%, 이회창 40%, 안철수 12%, 심상정 6%, 기타 1%. 19대 대통령 당선자 문재인.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이회창은 여의도연구소 연구원들과 비밀요원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한다. “이러려고 나를 납치해서 냉동했냐? 배때기에서 창자를 끄집어낼까보다.”

<끝>

(2017.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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