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04

구린 작명



이화여대에서 <미래라이프대>를 설립한다고 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이름이 너무 구리다는 것이었다. 무엇을 가르친다는 건지 알 수 없으면서 이름만 구리다. ‘평생교육원’이라고 하든지 ‘미용대학’이라면 안 되나? 굳이 한자와 영어를 조립해서 ‘미래라이프’라고 하는 기괴한 이름을 만들 필요가 있었나?

한국에서 개떡 같이 작명하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단과 대학이든 정부 부처든 이름을 희한하게 만든다. 한두 단어로 해당 기관이 하는 역할을 표현하지 못하고 이 단어 저 단어 막 갖다 붙이거나 영어 발음을 그대로 옮겨놓거나 한자와 영어를 섞어놓는다. 식민지에서 쓰는 언어도 아니고, 왜 이렇게 근본 없는지 모르겠다.

<미래창조과학부>의 영문 표기는 “Ministry of Science, ICT and Future Planning”이다. “Ministry of Science”라고만 해도 충분하다. 정부 부처 이름에 굳이 Future Planning 같은 걸 붙일 필요가 없다. 어느 부서든 미래를 계획하지 과거를 계획하지 않는다. 내가 알기로, 과거를 계획하는 부서는 조지 오웰 <1984>에 나오는 진리부(Ministry of Truth)밖에 없다. (진리부는 현재의 필요에 맞게 과거 사실을 조작하는 부서다.)

이런 추세면 국방부도 <멸공통일 국방부>나 <밀리터리부>로 바뀌지 말란 법이 없다. 대학에서 학과 통폐합과 개떡 같은 작명 실력이 결합하면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학과> 같은 기괴한 학과명도 곧 나올 것 같다.

* 링크: [중앙일보] 이대, 직장인 단과대 '미래라이프대' 설립 추진 철회

( http://news.joins.com/article/20394482 )

(2016.08.04.)


2016/10/03

<인지과학캠프>에 참여한 외고 학생들의 태도

     

이번 여름 <인지과학캠프>에 참여한 외고 학생들의 태도는 지난 겨울 <인지과학캠프>에 참여한 학생들의 태도보다 안 좋았다. 이번 캠프에 참여한 강사들은 이 점에 불만을 토로했다. 요즘 애들이 못 됐다, 학교 교사한테는 안 그러면서 강사라서 얕잡아본다, 자기들이 상위권이라고 생각해서 오만하다 등등. 어떤 강사는 자기가 강의를 하는데 학생이 눈치도 안 보고 삼각함수를 풀어서 울 뻔했다고 했고, 다른 강사는 앞에 앉은 두 여학생이 한 시간 내내 휴대전화로 셀카를 찍었다고 했다. 강사들은 다들 학생들이 자기 강의를 안 듣고 딴청 부리는 것에 화가 나 있었다.
  
내가 들어간 반에서도 학생들 태반은 딴청을 부렸는데, 나는 그다지 화가 안 났다. 워낙 내가 인격자인 탓도 있겠지만, 학생들이 딴청 부리는 게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화가 안 났다. 대학생도 수업 태도가 안 좋다는 말을 안 듣는 판이니 고등학생이 자세가 좋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보면 공부 못하고 수업 태도 나쁜 애들은 수도 없이 많았으니, 외고 애들이 공부 잘한다고 오만해서 수업 태도가 나쁜 것도 아니다. 나도 30년 간 인지과학과 무관한 삶을 살다가 아르바이트 하려고 속성으로 인지과학캠프 강사가 된 것이니, 10대 후반 애들이 대학원생의 강의 한 번 듣고 강의가 재미있어서 경청할 가능성은 낮다.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니 한창 노화중인 나도 힘이 없는데, 한창 자라는 애들이 나와 비슷한 시간에 일어났으니 피곤할 수밖에 없다. 이번 여름은 특히나 덥다. 나는 학교 교사도 아니라 아르바이트 강사일 뿐이다. 내가 가르치는 걸 잘 듣든 귓등으로 듣든 생활기록부에 남는 기록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도 내가 강의하는 걸 멀쩡히 잘 듣는 애가 한 반에 몇 명씩은 있었으니, 사실은 이게 더 신기하다. 그리고 애들이 딴청 부리든 말든 내가 받는 돈은 달라지지 않는다.
  
원래 캠프에서는 한 반에 두 번 안 들어가게 시간표를 만드는데 어떻게 된 건지 그날 나는 같은 반에 두 번 들어가게 되었다. 아침에 개론을 가르친 반에 오후에 철학을 가르치러 들어가니, 애들은 “선생님, 놀아요”, “선생님, 쉬었다 해요”라고 했다. 나도 애들 말대로 그렇게 하고 싶었는데, 뒤에 있는 보조 강사가 학생을 감시하는지 나를 감시하는지 모르는 상황이라 애들 말대로 할 수는 없었다. 나는 학생들한테 이렇게 말했다.
   
“나도 그렇게 하면 좋겠지만, 어차피 이거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여러분들 말대로 하면 제가 잘리겠죠? 어쨌든 하긴 해야겠지만 쉬엄쉬엄 합시다. 쉬엄쉬엄하려면 여러분들이 내 노동 강도를 높이면 안 돼요. 내 노동 강도가 높아지면 내 강의를 보는 여러분들도 피곤해지니까 여러분들도 손해예요. 떠들지만 않으면 돼요. 여섯 시에 일어나니까 힘이 없잖아요. 힘이 없는데 왜 떠들어요? 굳이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아도 안 돼요. 집에서 유튜브 본다고 생각하고 편한 자세로 보세요. 힘들면 책상에 엎드린 채로 고개만 들고 봐도 돼요. 그러다 졸리면 조금 자도 돼요. 옆에 친구랑 이야기할 거 있으면 필담해도 돼요. 떠들지만 않으면 돼요. 떠들면 내 노동 강도가 높아지고 그러면 여러분도 피곤해지니까.”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도 앞에 앉은 못 생긴 남학생 두 놈이 떠들었다. “야! 너네는 그냥 자! 쫑알쫑알 떠들 거면 그냥 쳐 자!” 이랬는데도 약 30초 후에 두 놈은 또 떠들었다. 어쨌거나 나는 수업 종료 5분 남기고 강의 내용을 다 설명했다. 
  
  
* 뱀발: 
  
캠프 때는 항상 이사가 와서 현장을 살핀다. 네 번쯤 보니 낯이 익어서 그런지 이사가 나한테 한두 마디씩 물어본다.
  
- 이사: “◯◯씨도 인지과학 협동과정 소속인가요?”
  
- 나: “아니오, 철학과 소속입니다.”
  
- 이사: “아, 철학과면 <인문학 캠프> 강사가 더 좋았을 수도 있었겠네요. 그러면 어떻게 <인지과학 캠프>에 참여하게 됐나요? 인지과학에 관심이 있어서?”
  
- 나: “아니오. 인지과학에 별다른 관심은 없었는데요.”
  
- 이사: “그러면 왜...?”
  
- 나: “돈이 필요해서요.”
  
내 말을 듣고 이사는 배를 잡고 웃었다. 한참 웃고 나서, 이사는 다음 번 캠프 하기 전에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고칠 건데 그때 교안을 같이 만들면 좋겠다고 말했다.
  
  
(2016.08.03.)
     

2016/10/02

[EBS 특별기획] 통찰 - 배철현 교수

  
[EBS 특별기획] 통찰 - 3. 동굴과 열정 그리고 자기 성찰1
  
[EBS 특별기획] 통찰 - 4. 동굴과 열정 그리고 자기 성찰2
  
[EBS 특별기획] 통찰 - 5. 인류 이야기의 시작, 길가메시 서사시
  
[EBS 특별기획] 통찰 - 6. 알파벳과 문자
  
  
(2016.09.06.)
  

2016/09/30

올해 여름에 뱀을 안 잡은 화천이

     

작년에 그렇게 뱀을 잡아 와서 사람을 놀라게 했던 화천이가 올해는 뱀을 잡아 오지 않는다. 8월이 다 되도록 뱀을 잡아 오지 않는다.

어머니는 화천이가 올해는 저렇게 새끼들하고 같이 있으니 뱀을 잡아 오지 않는다며, 작년에 화천이가 그렇게 뱀을 잡아온 것은 자기 새끼를 가져가서 그런 게 아니겠느냐, 고양이가 괜히 영물이라고 하는 게 아닌 모양이다, 라고 하셨다.

 
 
 
 
 
 
(2016.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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