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중학교에서 인지과학캠프 강사를 했다. 외고에서 했던 캠프가 잘 되어서 같은 재단의 국제중학교에서도 업체에 캠프를 신청했다고 한다. 업체도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캠프가 처음이라 이사도 긴장된다고 했다. 나는 피-고용인이라 그런지 별로 긴장하지 않았다.
한 반에 스무 명쯤 있었고 남녀 비율은 반반이었다. 여학생 중 절반은 수업하는 걸 잘 보았고 나머지 절반은 딴청 부렸으며, 남학생들은 한두 명 빼놓고 죄다 떠들고 딴청 부렸다. 어떤 남학생은 의자에 똑바로 앉지 못하고 45도쯤 삐딱하게 걸쳐 앉아 책상 밖으로 한 발을 내놓고 당장이라도 밖으로 뛰쳐나갈 자세로 있었다. 내가 교사였다면 “◯◯◯ 학생, 그렇게 삐딱하게 앉으면 허리가 안 좋아져요. 선생님한테 처맞아서 허리가 나빠져요”라고 했을 텐데, 하루 왔다가는 강사라서 고객한테 그럴 수 없었다. “야, 너 똑바로 앉아”라고만 했다.
학생들한테 지식의 종류를 설명하다가 ‘명제적 지식’과 ‘비명제적 지식’을 설명하게 되었다. 원래 교안에는 없었는데 흐름상 추가해야 할 것 같아서 내가 개인적으로 넣은 것이다. 강의 자료에 넣을 때는 생각 안 했는데 학생들한테 말할 때에야 명제는 고등학교 수학 시간에 배운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래서 명제의 정의를 설명하려는데 학생들은 이미 명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니 “그거 고등학교 수학에 나와요”라고 답했다.
학생들은 대부분 고2 수학까지 선행학습 했다. 학원에서 배웠다고 한다. 한 학생에게 실력이 어느 정도 되냐고 물으니 고등학교 내신 문제를 풀면 85점 정도 나온다고 했다. 85점이라니, 그 정도면 잘하는 편 아닌가? 아니라고 한다. “그거 ◯◯고 문제를 푼 건데요, 그 학교가 학력 수준이 높은 학교는 아니라서 그렇게 잘한 건 아니에요.”
고2 때도 고2 수학을 제대로 못했던 나로서는 중학생이 자기가 고2 수학을 푸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게 놀라웠다. 그런데 나중에 다른 사람한테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다. 나보다 열 살 많은 박사 형님은 “그거 별거 아냐. 우리 때도 그랬어”라고 했고, 나보다 네 살 어린 석사과정생도 “요즈음은 거기(국제중) 말고도 서울에 그렇게 하는 애들 많아요. 그게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에요”라고 했다.
선행학습 해서 중학생이 고등학교 수학 문제 푸는 건 방송에서만 봤지 실제로 그런 애들을 본 건 처음이었다. 나는 촌동네에 살았고 중학교도 동네에 있는 중학교를 다녔다. 거기서는 제대로 진도 나가는 것조차 벅찰 만큼 학생들의 전반적인 학력 수준이 낮았다. 지금도 동네 학부모들 이야기를 들으면, 고등학교 전교생 중 절반 이상은 문과 수학 내신 시험에서 40점도 못 받는다고 한다. 마침 나는 서울에서 과외 할 때도 못 하는 애들만 과외를 했다. 그러니 국제중 애들을 보고 놀랄 수밖에.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다른 남학생보다 유독 더 몸부림치는 애가 있어서 물어봤다. “너도 선행학습 했어?”, “네.”, “어디까지 배웠어?”, “고1까지요.” 그러자 뒤에서 다른 남학생들이 깔깔 웃으면서 “뻥 치지마. 너 중3까지밖에 안 했잖아” 하면서 장난쳤다. 중학교 2학년이 중3 수학밖에 못 한다고 놀림 받는다니.
* 뱀발: 오해의 여지가 있을까봐 덧붙이자면, 나는 사람마다 지적인 능력이 다르고 도달할 수 있는 지적 수준도 다르기 때문에 같은 나이인 학생들이 같은 내용을 같은 수준으로 배우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머리가 좋으면 열일곱 살 때도 대학 가고 머리가 나쁘면 스물두 살에 고등학교 졸업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선행학습이 문제인 것은 애가 수준이 안 되는데 부모가 억지로 시켜서 아이의 지적 능력이 발달하는 데 악영향을 끼치지 때문이지, 같은 나이의 다른 학생들과 다른 교육을 받아서가 아니다. 어쩌면, 무리하게 선행학습 받게 하는 것보다 똘똘한 애가 시골 살아서 수준 낮은 교육을 받는 것이 더 문제일 수도 있다.
(2016.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