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에 내가 학부 수업 두 개를 담당하고 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학생들이 질문을 많이 한다. 수업 내용과 직결되는 질문을 하는 경우도 있고, 직결되지는 않지만 느슨하게라도 관련이 있는 질문을 하는 경우도 있다.
쉬는 시간에 강의실 구석에서 쉬고 있는 나를 찾아와서 질문하는 학생도 여러 명이다. 질문하는 것을 몇 마디 듣다가 정상적인 질문이라는 판단이 들면 그 이야기는 수업 시간에 하자고 하고 학생을 돌려보낸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다른 학생들도 궁금해할 법하거나 다른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질문이어서다. 다른 하나는 내가 힘들어서다. 3학점짜리 수업 두 개를 연속으로 해야 하니 여섯 시간 동안 계속 강의해야 한다. 학교 시간표를 보니까 15분 간격으로 교시가 배치되어 있다. 그에 따라 나는 75분에 한 번씩 정확히 15분 동안 쉰다. 그렇게 쉬고 있는 나를 몇몇 학생들이 찾아와서 질문한다. 나는 힘드니까 마저 쉬어야 한다.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
지난 <심리철학> 시간에는 어떤 학생이 “철학으로 과학을 다루는 게 말이 되느냐? 어차피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철학으로 과학을 탐구한다는 게 무슨 말인가? 학생한테 질문이 무슨 뜻인지 더 자세히 설명할 수 있느냐고 하니까 학생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 날은 행동주의를 강의했고 그 전 시간에는 심신 이원론을 강의했다. 심신 이원론이든 행동주의든 딱 봐도 가망 없어 보이는 이야기 같은데 어차피 되지도 않을 것을 철학자들이 괜히 열심히 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학생이 받은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학생의 질문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1) 과학이 탐구하는 대상을 철학이 다룬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2) 과학에서 하는 작업을 철학이 재구성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
이렇게 정리하고 학생한테 질문이 대충 이런 내용이냐고 하니까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일단 (1)은 딱 봐도 아닌 것 같다. 물리 현상은 물리학자가 다루고 심리 현상은 심리학자가 다루어야지 철학자가 뭘 안다고 그런 현상들을 다루겠는가? (1)은 아니라고 치고, 문제는 (2)인데, 학생들에게 구획 문제 같은 이야기를 해봐야 그건 과학 아닌 게 과학인 척하는 것을 잡는 것이지 과학적 내용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예로 든 게 브릿지먼(Percy Bridgman)의 조작주의(operationalism)였다. 과학에서 어떤 개념의 의미는 그 개념에 대응하는 조작들의 집합에 의해 결정되고 딱 그만큼이라는 게 조작주의의 기본 정의이다. 예를 들어 길이라는 개념의 의미는 길이를 측정하는 데 필요한 조작들의 집합이라는 것이다.
물론, 조작주의는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런 실패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다. 철학이 아무 발전이 없다는 것은 윤리 과목 입시 강사들이 고등학생들 앞에 놓고 피상적인 이야기나 대충 늘어놓은 때 하는 이야기다. 철학적 작업들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설사 오답이라고 하더라도 점점 정교해지고 치밀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답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오답이라고 하더라도 점점 나은 오답이 나오고 있다. 이게 가치가 없는 일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대충 이렇게 설명하고 나서 질문한 학생한테 답변이 괜찮은 것 같으냐고 하니까 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 나는 과학철학 같은 경우에는 설명, 방법 같은 일반적인 주제를 다루는 분야도 있지만 물리학, 생물학, 경제학 등 특수 분과의 주제를 다루는 분야도 있고, 철학과 과학의 경계가 모호한 부분에서 철학자인지 과학자인지 애매한 사람들(사기꾼이라는 게 아니라 철학자이면서 과학자인 사람이라는 뜻이다)이 과학자들하고 협업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 뱀발
예전에 진보 인사로 분류되는 대학 강사나 교수들이 언론에 나와서 요즈음 학생들은 질문을 안 한다며 사교육이 어쨌네 저쨌네 하며 거의 입버릇처럼 개탄한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대외 활동에 정신이 팔린 사람들이 수업을 개떡같이 해놓고 학생들을 탓한 것으로 보인다. 학생들한테 질문하라고 해봐야 나오는 질문이라고는 “이거 시험에 나와요?” 정도라나 뭐라나?
그 당시 그런 이야기를 듣고 든 생각은 ‘그런 질문이 그렇게 듣기 싫으면 시험에 뭐가 나오는지 아예 다 가르쳐주면 되잖아?’였다. 거기서 착안하여 나는 이번에 중간고사 문제와 기말고사 문제를 미리 다 알려주기로 학기 초에 약속했다. 시험에 나올 문제만 알려주면 문제가 될 것 같아서 3배수 문제를 만들어 시험 전에 미리 공개하기로 했다.
(2024.09.25.)